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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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나는 아직도 그 강렬한 쾌감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체가 엉망인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베리어 올려줘. 냄새가 고약하니까.'
이 정도 오물 냄새는 금방 퍼져 나간다. 공기 중에 퍼진 냄새의 화학 성분을 희석하도록 지시했다. 아직 세포 곳곳에 남아 있는 쾌락의 찌꺼기를 더 핥아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일단 싸질러 놓은 것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가장 먼저였다.
"됐으니까 들어올 생각은 말아."
섹서스가 방어막을 밀치고 들어오려 했다. 언노운이 눈치껏 방어막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옷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데쓰로그 두 마리 소환해 방안을 완벽히 구워 버렸다. 불길이 뿜어 나오자 섹서스가 외쳤다.
"안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아무 일 아니래도! 신경 쓰지 마."
섹서스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역시 신성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무 일 아닐 수가 있나?
이어링에 표기된 전투력 수치가 꼬리표 떼고 35,685,000줄이었다. 바알의 평상시 전투력 즉 권능을 뿜어내기 전 전투력이 25,800.000줄이었다.
네필림으로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 전투력인데 변신하면 얼마나 올라갈지 추측도 되지 않는다.
데쓰로그가 날뛰어 숨 쉴 수 없을 만큼 공기가 데워졌는데도 전혀 그 뜨거움을 느낄 수 없다.
'나 영혼 먹은 거야?'
【정확한 표현으로는 포식이라고 합니다】
뭐 이미 저질러진 일에 언노운에 화를 내 봤자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
일단 온몸을 불로 태워서 오물의 흔적을 깨끗이 증발시켰다. 그런데 기분이 정말 묘하다.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마치 자궁을 벗어난 아이가 처음으로 빛을 본 것처럼 모든 것이 신선했다.
'인간의 영혼을 포식하는 것으로 전투력이 이렇게 늘 수 있어?'
【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받아 놓고 사용하지 못했던 것을 사용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언노운의 말로는 아스모데가 준 권능과 바알의 권능이 영혼을 포식하며 늘어난 그릇에 더 담긴 결과라고 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신성력의 차지도 안정되었으며 속도 또한 빨라졌다고 한다.
아직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 충격은 가시질 않았다.
'인간의 영혼을 포식할 때마다 이러냐?'
【처음이어서 신체의 반응을 제어하지 않았습니다】
'영혼을 포식하는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쾌감이 몰려오는 거지?'
【활착률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영혼을 포식하면 포식한 영혼과 동화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때 활착률을 높이기 위해 가장 큰 감정을 낼수 있는 쾌감만을 극도로 높입니다. 이러면 활착률이 아주 높아지게 됩니다】
'아니 인간의 영혼을 포식하면 전투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지는데 지금까지 왜 포식하지 않았지? 쓰레기 같은 인간이 많았는데?'
【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 포식은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정해진 영혼은 가로채기 힘듭니다. 그리고 평범한 곳에서는 포식할 수 없습니다. 악마가 만든 인간 사육장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왜 언노운이 인간 사육장으로 나를 인도 했는지. 그리고 뮤턴트를 왜 내 소유로 만들어 놨는지.
'여기 있는 꿈 꾸는 인간들은 피의 교단 소속이라 내가 포식하지 못한다는 거고. 결국 내가 포식할 수 있는 것은 내 소유의 뮤턴트란 말인 거지.'
【바로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육백 명의 나머지 뮤턴트 영혼도 포식할 수 있습니다만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왜?'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영혼을 포식하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 첫 경험으로 충분합니다. 전투력이 높아져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몸이 가진 한계는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견딜 수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의 DNA를 합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붕괴하였을 겁니다】
'이 전투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이구나. 그럼 영혼 포식하더라도 결국엔 탈 인간을 해야 하는구먼.'
【현재 직접적인 접촉 가능한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최대치의 전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마도 인간의 영혼을 포식하면 이런 쾌감에 빠지나?'
【대부분 활착률을 높이기 위해 쾌감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방법이 가장 많이 선호되고 있으며 효과 또한 좋습니다】
'미친! 이건 정말 마약과 같아. 중독되면 아니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야. 무시무시한 쾌감이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영혼을 더 포식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거야. 그 쾌감을 또 한 번 느껴 보고 싶어질 정도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쾌감 지수 열 가지를 한꺼번에 증폭시킨 정도의 쾌감이니 평범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의 쾌감으로 정신 붕괴가 일어납니다】
'그렇겠지.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어 앞뒤로 다 싸질러 놓았는데. 이래서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미친 듯이 탐하는구나. 감정적으로 정말 미친 짓이었다.'
【영혼 포식은 인간이 만든 마약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쾌감입니다. 중독성은 말할 것도 없고 끝없는 목마름에 계속 탐욕적으로 갈구하게 될 것입니다】
'제어해줘. 이대로라면 나머지 애들도 먹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도 이만하면 충분하댔잖아? 열세 명을 다 먹은 거야?'
【아닙니다. 이제 한 명 포식한 겁니다】
'한 명? 한 명인데 이 정도야? 전투력이? 악마도 이러나? 이건 좀 앞뒤가 맞지 않잖아?'
【원래 가진 권능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아스모데가 준 살육의 권능과 바알 폭식의 권능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권능입니다. 다만 인간 몸 한계상 그 힘을 끌어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평범한 악마가 인간 영혼을 포식했다고 해서 전투력이 느는 것은 아닙니다. 그릇이 커진 만큼 권능을 더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정도뿐입니다】
'아스모데가 피의 교단이지? 따지고 보면 거의 일품 악마에 버금가는 권능을 왜 내게 주었지?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닌데? 놈들이 공짜로 나에게 그런 권능을 준다고? 피의 교단도 그렇고 파리 교단의 바알은 왜 또 내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능을 준 거지?'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과 계획이 있겠지만 일단 피의 교단과 파리 교단에서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권능을 준 것입니다】
'날 지키기 위해서라고? 누구로부터?"
【천사입니다】
순간 어찔했다.
'네필림이기 때문인가? 천사는 확실히 네필림을 절대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이 차원에는 이미 천사가 없지 않아? 있다고 쳐도 왓처뿐인데?'
【당신의 활동 범위가 커지고 있으므로 그에 따라 눈에 띌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깐. 뭔가 앞뒤가 이상하잖아? 난 악마를 잡아 죽이고 세상을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놈이라고 그런데 악마에게 비호받는다는 것이 말이 돼?'
【네필림은 아주 복잡한 실타래입니다. 누가 푸느냐에 따라 서로이게 이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흰 실도 풀어 낼수 있고 검은 실도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 말입니다】
'뮤턴트 열두 명이 남았지? 그럼 나머지 열두 명도 포식할 거냐?'
【포식할 것을 권합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후들거렸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쾌감이 폭풍이 다시 온몸을 휘감아 도는 것 같았다.
'나머지를 포식하면 전투력이 더 늘어 나는 건가?'
【상당한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오직 인간 수확장에서만 포식이 가능한 건가?'
【지금은 자가포식 기능이 없어서 영혼 수확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내 소유물만 포식할 수 있는 거고?'
【그렇습니다】
'넌 이 모든 것을 알고 움직인 거지? 신체 강탈자에게 뮤턴트를 가져다 바친 것도 그리고 내 소유물로 만든 것도 내가 흡수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거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인간 수확장을 다시 접할 때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겁니다. 모노스 테리움까지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인 지금 이 시점부터 적과 아군의 구분이 확실히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적과 아군? 천사와 악마 말이냐?'
【아닙니다. 악마 중에서 당신을 이용하려는 그룹과 당신을 제거하려는 그룹으로 나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각성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각성 전에 당신을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여기서 모노스 테리움의 결정이 향후 당신이 움직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피의 교단도 파리 교단도 나를 이용하려는 목적이 모노스 테리움을 견제하기 위해서인가? 천사가 아니라?'
【당신은 생각보다 복잡한 환경에 있습니다. 모노스 테리움이 당신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본신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적대시하게 되면 생각보다 어려운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이 보라고 이 세상을 구하면 그뿐이야. 서전 임펙트를 일으킨 놈만 찾아서 원래대로 만들면 되는 간단한 걸 왜 이리 복잡하게 돌아가려 하는 거지?'
【말한 부분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갈래 길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미래의 길을 미리 당신에게 말한다면 당신이 다른 길을 강제로 선택해 버리면 그 시점에서 차원 분기기 일어납니다. 저는 차원 분기가 일어나지 않는 환경에서 당신을 강화하는 것이 주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 수확장은 차원 분기를 일으키지 않고 당신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왜 인간 수확장이 아니면 안 되는 거지?'
【말했다시피 당신은 아직 자가포식을 할 수 없습니다. 본신을 찾기 전에는 영혼 포식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에는 복수의 영혼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담을 수는 있어도 활착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곳이 영혼 수확장입니다. 영혼 수확장을 만들 수 있는 악마의 권능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가이아의 영향으로부터 완벽히 보호된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만 가이아의 흐름을 봉쇄할 수 있습니다. 인간 수확장에서 인간을 사육하고 정신 붕괴가 이루어지면 인간의 영혼에서 빼낼 에너지가 없으므로 거래되거나 상급 악마에게 바쳐집니다】
'결국에는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거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헤나로 도망친 관리자가 이곳 상황을 전할 것입니다. 그 전에 나머지 열 두 명의 영혼을 포식해야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지? 후. 환장하겠구먼. 그 짓을 또 해야 해?'
혼란스럽다. 이 길이 맞는 건지 의구심조차 들지 않는다. 강해진다는 데 뭘 망설이냐 하겠지만 인간 영혼 따위를 포식해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다.
만약 언노운이 미리 이런 상황을 이야기했다면 난 절대 인간 영혼 따위 포식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건 나 스스로 악마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바알의 낙인을 받는 것과 엔젤 킬 마크를 새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니까.
이러면 내 목적을 넘어 신념 자체가 흔들려 버린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투쟁하는 것인데 악마와 같이 인간의 영혼이나 포식하면 난 뭐란 거지? 포식 된 영혼은 그것으로 완전히 끝이다. 악마나 나나 영혼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을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포식하면 할수록 더 많은 권능을 담겠지. 그것을 인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해서 내 죄가 용서되는 것일까?
내가 가는 이 길이 진정 옳은 길일까?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포식합니다】
"아흑!"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었다. 이 미친 쾌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왜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탐식하는지 알 것 같다. 이 쾌감을 한 번이라도 맛보면 절대로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중독? 그런 단어는 사치다.
이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우주적 마약이다. 바닥을 박박 긁으며 기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성감대가 된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사정의 쾌감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쾌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딱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걸 열두 번이나 해야 한다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이 될 정도였다. 제발 빨리라고 외치는데 너무나 강한 쾌감이 휘저어 버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조차 않았다.
오감이 완전히 활짝 개방되었고 알몸으로 바닥을 빨빨 기며 내가 싸질러 놓은 똥오줌과 정액에 범벅이 되었다.
쾌감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싶다. 인간이 평생 느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쾌감을 단 한 번에 단 몇 분에 몰아서 느낀다고 생각해 보라.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 즉시 정신이 붕괴하여 버렸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언노운이 강제로 신경 회로를 차단했을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으니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고 멍한 기분이 한동안 지속됐다. 데쓰로그가 뿜어내는 열기에 방안의 침대는 죽처럼 녹아내렸고 내가 싸질러 놓은 흔적도 곧 말끔히 증발해 버렸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피부 가압중압체만으로 데쓰로그 헬파이어의 온도를 거뜬히 견뎌냈다.
"어이, 아라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손님 오셨다."
섹서스의 외침에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하아. 미칠 것 같았는데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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