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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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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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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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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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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계_중앙황천 대차사들

DUMMY

다움성의 연회장은 두 번째 대혼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미틈오름이 지나가며 무너뜨린 바위 언덕이 그대로 연회장이 되었다.


부서진 바위와 돌이 쌓여 자연스레 벽을 이루었고, 뜨거운 돌물이 넘실대다 굳은 모양 그대로 드높은 지붕이 되었다.


지붕의 빈 곳은 투명한 결계로 엮어놓아 하늘빛에 따라 색이 바뀌었다.


회의라고는 해도 다과회와 비슷했다. 연회장 곳곳에 맛도 향기도, 빛깔마저 다채로운 음식이 놓였다.


중앙황제 현원과 여덟 명의 대차사는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거나 창가에 기대어 섰다.


가끔 손님이 함께 하는데 오늘은 백하와 사빈, 한얼이 초대되었다. 그들은 빛이 잘 드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사빈은 연회장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 계속 두리번거렸다.


한얼이 희락수를 따라주었다.

“바나는 안 왔습니까?”

“회의는 재미없대요.”


*


처음에는 바나도 신나서 촐랑거렸다.

“다움성이라고라? 재미진 것들 많을 거여라.”


황제가 사는 곳이니 구경거리가 많을 거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아날빛숨을 뛰어다니던 바나가 다가왔다.

“왕왕! 주인님, 회의가 뭐여라?”


“황제님과 대차사님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거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고칠지, 문제가 안 일어나게 하려면 뭘 할지 그런 얘기.”


“춤은 없어라? 노래는, 왈?”

“회의에 무슨 춤과 노래가 있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지. 너도 얌전히 있어야 해. 손님으로 가는 거니까 방해하면 안 돼.”


사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바나는 이미 문 쪽으로 멀어졌다.


“다움성에 간다면서?”

“제가 그랬어라? 모르는 일이어라.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라.”


바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


“녀석이라면 그럴 만도 합니다. 사실 재미는 없습니다.”

한얼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 역시 혼을 인도하거나 인간세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훨씬 좋았다. 지팡이 솔찬과 밧줄 다술과 함께 잉걸둥지를 청소하는 일이 백번 나았다.


“황제님이 말씀하시오.”

백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표정만큼이나 차가운 말투였다.


사빈은 중앙황제 현원을 바라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원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장식 없는 예복을 입어 장터에 다니는 천인과 비슷했다.


웃을 때마다 양쪽 볼에 보조개가 패여 연회장이라도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푸근했다.


“상의할 것이 있어 오라 하였으니 좋은 의견을 나눕시다.”

현원은 대차사 두모를 보며 손을 들었다.


두모가 모여앉은 대차사들을 둘러보았다.

“이계의 요물에 대해 들어봤을 겁니다. 차원의 틈에서 보았다지만, 증언이 달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른 대차사들을 둘러보고 턱을 끄덕였다.

“정말로 이계의 요물인지 다른 차원의 잔해인지 알 수 없으나 만일을 대비해 차사들을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란히 앉은 얀다가 그의 말을 받았다.

“다섯 성천에서 구역을 나눠 맡기로 했으니 적당한 차사를 다움성으로 보내주세요.”


그녀 역시 두모와 함께 염라부를 총괄하는 대차사로 두모와 얀다는 부부 사이였다.


염라부에서 판결을 맡은 대차사답게 둘 다 눈빛이 예리하고 말투도 정확했다. 보기만 해도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한얼이 사빈에게 속삭였다.

“회의 때는 보통 두모님과 얀다님이 말씀하시죠. 염라부에서 하던 습성 때문입니다.”


사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대차사 중에서 그만큼 딱 부러지는 성격은 없어 보였다.


대명천을 맡은 해담은 너무 진지해서 농담도 할 줄 모르고, 모든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회의에 나서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회의가 나아가지 않고 제 자리를 맴도니까.


중천을 담당하는 훼는 사빈이 직접 용숫주를 전해준 대차사였다.


느긋하고 편안한 성격이라 실실 웃고, 덜렁대기에 사막 같은 중천에서도 잘 버티지만, 다움성의 연회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영천옥을 총괄하는 아투와 다림 역시 부부 사이였다.

개심수 숲과 혼을 관리하고, 마음숲에 도우미도 파견한다.


아투는 너무 과묵해서 벙어리라 여기는 천인도 많았다. 다림 역시 생각이 많고 소심한 편이었다.


영천옥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배려심도 깊어야 한다. 아투와 다림 부부가 영천옥을 맡아 혼들에게도 다행이었다.


얀다가 영천옥을 관리할 때는 너무 치밀하고 까다로워 개심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낙원을 관리하는 웅비와 이수는 연인 사이였다.

웅비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이었고, 이수는 다정다감했다. 낙원에 딱 어울리는 이들이었다.


사빈이 대차사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사이 황제는 벌써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미틈오름은 끝난 게 아니에요. 우주의 가장자리는 여전히 요동치고 있어요. 수리마루님의 창조가 아직도 이어지듯, 대혼란도 우리와 공존하고 있어요. 바로 우리 주위에서.”


우주의 가장자리라는 말에 한얼과 사빈은 각각 생각에 빠져들었다.


‘스승님이 가신 곳일까?’

‘예사달 할머니가 말씀하신 곳이 거기일까? 차원의 경계···.’


“남방과 동방의 신력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해담이 가운데 앉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궤도가 흐트러지는 건 남방홍제와 동방청제가 신제가 되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즉위식을 하면 되는 거 아니오?”

웅비가 싱글거렸다.


“그것이 문제예요.”

현원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신력을 받아야 하는데···. 어디서 받는지 모르죠.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으니까.”


현원이 모른다면 이쪽 차원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뭐야?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회의가 진행될수록 사빈은 몸이 저릿거렸다.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벽을 이룬 돌과 바위가 몇 개인지 세면서 참았으나 하품만 계속 쏟아졌다.


사빈 앞의 다과상은 빈 접시가 늘어갔다.


대차사들은 말투가 느려서 자장가처럼 들렸다.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부릅뜨려 힘을 주었으나 허사였다.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둘러보다가 백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여태껏 사빈을 지켜보고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다가 사빈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대차사들의 화제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수집가로 넘어갔다.


낙원을 지키는 이수는 수집가를 모르니 사뿐히 손을 들었다. 낙원에만 머무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영혼수집가가 어떤 건가요? 그것도 차원의 틈 때문에 생겨났나요?”


‘아, 영혼수집가···.’

파라다이스 빌라에서 들은 이름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야. 사람의 영혼을 가져가서 새로운 수집가를 만들어. 그들에게 영혼을 빼앗기면 감정도 없는 일벌레가 돼. 자신의 수명도 갉아먹지.’


그믐밤의 옥상에서 가온이 설명해주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차원의 틈일까?’


대차사 훼가 손을 휘휘 저었다.

“틈을 막으면 수집가도 못 들어오겠지.”


“지금은 그쪽 차원에서 오는 통로가 막혔대요.”

사빈은 무심코 대답하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생각만 한다는 것이 말이 되어 나왔다.


“사빈아, 영혼수집가를 아느냐?”

현원이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빈이 대답하려고 일어서는데 치마에 떨어졌던 과자 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그것부터 털어야 할지 말을 먼저 해야 할지 황망히 손을 흔들다가 모른 척 고개를 들었다.


“푸하하!”

웃음을 참던 백하가 기어코 웃음을 터뜨렸다. 한얼도 키득거리며 주먹으로 입술을 가렸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굳어있던 연회장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대차사들도 모두 일어나 차를 따라 마시며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사빈도 긴장을 풀고 인간세에서 들은 대로 이야기했다.

“그쪽 차원에서 드나들던 통로는 막혔지만, 사람들이 그들과 거래하고 싶어 해서 계속 늘어난대요. 사람이 스스로 영혼수집가가 되기도 하고요.”


“역시나 사람이 문제로군.”

해담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 알겠어요. 그러니까 피천귀나 비슷하군요.”

“예. 그래서 반계에서 영혼수집가를 흡수했대요.”


훼가 탁자 모서리를 두드렸다.

“어허, 여기서도 반계가 빠지지 않는군.”


반계라는 말에 연회장의 모든 이들이 할 말을 잃었다.


사빈은 흘끗 백하를 돌아보았다.

반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부르르 떨던 그였다. 예상대로 주먹을 쥐고 눈에 힘을 주었다.


“대감, 괜찮아요?”

백하는 사빈과 눈이 마주치자 끓어오르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다림이 한숨 쉬듯 말했다.

“사람이 피천귀를 만들고, 피천귀가 다시 사람을 조종하고. 결국 반계를 만든 힘의 근원도 사람에게서 나온 거지요. 그런 면에서 사람이 천인보다 강해요.”


“설마 반계에서 천선계까지 넘보겠는가?”

웅비의 말에 두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어. 중천을 그렇게 만든 혼이 아니오? 반계에서 당연히 이용할 거요.”


“이대로 가다가 염라부도 중천처럼 되면 어쩌나요?”

이수가 묻자 훼가 앞으로 나섰다.


“염라부 뿐만 아니라 대명천도 마찬가지요. 중천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훼가 팔짱을 끼고 버티어 섰다.


중천이 어떻게 황폐해졌는지 지켜본 그에게는 중앙황천 어디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탁한 기운이 염라부까지 미칠 겁니다. 차사들의 안전도 걱정이구요.”


대차사들은 회의를 이어갔지만, 사빈은 중천의 황폐한 사막을 떠올렸다.

순간, 가슴에 묻어있던 기억이 올라왔다.


‘다음에는 차와 과자를 가져다줄게. 다시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 해. 알았지?’

중천에서 만난 비뢰수에게 약속했다.


‘중천에 가봐야 해.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사빈은 그믐의 기억을 마음에 새겼다.


‘고사목에게도 약속했는데···’

고사목들이 사빈을 에워싸고 작별 인사를 할 때였다.


‘여기도 숲이 될 수 있나요?’

‘당연하지. 씨앗을 갖다줄게. 달해산과 새놀산의 나무 씨앗과 상생농장의 씨앗이면 충분할 거야.’

‘기다릴게요. 마고님.’


마지막 인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기다릴게요. 마고님.’


눈앞에 뜨락고원에서의 환상이 펼쳐졌다.


환상 속의 중천은 아름다웠다.

산에는 바위와 숲이 어우러졌다. 계곡 사이로 맑은 강이 흘렀다. 깨끗하고 푸른 강물에서 시냇물로 갈라지고, 여러 곳에 샘이 솟았다.


벌판에는 싱그러운 풀과 꽃이 가득했다.

천인들도 노래하며 날아다녔고, 혼들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인간세의 수련을 끝냈다는 후련함, 씻김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었다.


‘중천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거야.’

그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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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빛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천계_중앙황천 대차사들 23.07.21 43 2 11쪽
89 천계_한긋장벽을 따라 23.07.20 42 2 11쪽
88 천계_부르는 소리 23.07.19 42 2 10쪽
87 천계_마음이 가는 곳 23.07.18 44 2 11쪽
86 천계_영진촌 낭원 23.07.17 42 2 11쪽
85 천계_변경된 일정 23.07.16 41 2 14쪽
84 천계_백하의 고민 23.07.15 44 2 12쪽
83 천계_어리화는 짙어지고 23.07.14 41 2 13쪽
82 그믐_그리운 아버지 +2 23.07.13 44 2 14쪽
81 그믐_한 번뿐인 나들이 23.07.13 43 2 13쪽
80 그믐_새로운 일꾼 23.07.12 43 2 10쪽
79 그믐_거리의 소녀 23.07.11 44 2 12쪽
78 그믐_중간자의 사연 2 23.07.10 43 2 9쪽
77 그믐_중간자의 사연 1 23.07.10 44 2 11쪽
76 그믐_운기정 서재에서 23.07.09 46 2 11쪽
75 그믐_흉흉한 소문 23.07.08 44 2 12쪽
74 그믐_백홍선원 부운거사 23.07.07 49 2 11쪽
73 그믐_창성곡의 산적 23.07.06 52 2 13쪽
72 천계_온사랑 팔찌 23.07.05 50 2 13쪽
71 천계_회향미곡 잉걸둥지 23.07.04 51 2 13쪽
70 천계_이상한 편지 23.07.03 54 2 11쪽
69 천계_온천 물빛이 바뀌다 23.07.02 55 2 13쪽
68 천계_두 번째 구멍 23.07.01 55 2 13쪽
67 천계_피하지 못할 고백 23.06.30 58 2 10쪽
66 천계_뜻밖의 만남 23.06.29 58 2 14쪽
65 천계_다시 시작된 수색 23.06.28 59 2 12쪽
64 천계_천인의 기억법 23.06.27 61 2 12쪽
63 천계_인연이라는 끈 23.06.26 64 2 12쪽
62 천계_마음을 전하는 일 23.06.23 68 3 12쪽
61 그믐_옥구슬의 사연 23.06.22 6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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