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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아날빛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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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5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13,195
추천수 :
431
글자수 :
916,352

작성
23.07.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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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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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천계_마음이 가는 곳

DUMMY

아날빛숨에 도착하자 대취와 산여는 한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잘 해보드라고.”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네.”


가까이 가기 전에 초연이 먼저 문을 활짝 열었다. 연인이 왔음을 알고 바람처럼 다가왔다.


“혼을 인도하러 가는 길이야?”

“그기 아이고···. 나, 날이 좋아서 산책이나 할까허고.”


“좋지. 상생농장이 꽃밭이 되었다던데 가볼까?”

초연은 대취의 팔에 손을 끼고 어깨를 기댔다.


“그라믄, 이따 보자고.”

대취가 산여와 한얼에게 손을 흔들었다.


산여 역시 갈 곳이 있었다.

“나도 갈 곳이 있네. 다담도 꽃을 좋아하거든.”


그는 한얼에게 눈을 찡긋거리고는 식당 위즐증가를 향해 날아올랐다.


아날빛숨은 휘돌아 오르는 거대한 탑처럼 보였고, 길쭉한 알처럼도 보였다.


한얼은 반쯤 열린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벽은 옅은 황톳빛 흙벽에 형형색색의 돌멩이들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한얼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눈앞에 잉걸둥지가 보였다. 다섯 개의 알이 어둠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아날빛숨이었다. 발을 내디디니 어떤 소리가 들렸다.

‘어디로 가느냐?’


잉걸둥지에서 들은 소리였다.

‘왜 갑자기···?’


밖을 내다보던 사빈이 그를 알아보았다.

한얼을 보자 가슴이 따끔거렸으나, 예전보다 희미해졌다.


“거기 뭐가 있나요?”

드문드문 혼들이 다닐 뿐, 거리는 고요했다.


“잔별차를 마시러 왔습니다.”

한얼은 대충 둘러대고 주방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걸 고민했군요?”

사빈은 웃으며 주방을 향해 손짓했다. 차통이 움직이며 찻잎을 덜어냈다.


용희가 주방으로 들어가며 손을 까딱였다. 자신이 가져다주겠다는 신호였다.


‘오늘은 물어봐야지. 계속 오해할 수는 없으니. 뭐부터 물어볼까···.’

사빈은 주방 가리개에서 한얼로 시선을 옮겼다.


한얼 역시 무슨 말로 시작할지 망설였다.

“아, 유리의 혼이 영천옥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련에 붙잡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에요. 미안했거든요. 실증계보다 상상계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씻김이 잘되면 좋겠네요.”

“혼이 불렀기에 마고가 찾을 수 있었던 겁니다. 때가 되었음을 안 거죠.”


용희가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인 쟁반을 가져왔다.


나무로 만든 쟁반 위에 역시 나무로 깎은 주전자와 잔이었다. 소소공방에서 내놓은 작품으로 아날빛숨에서 시험하고 있었다.


“소소의 새 작품입니까?”

“가시버시날과 바람길 연회를 위해서요. 공방마다 작품이 쏟아져 나올 거예요.”


사빈이 차를 따르자 잔별차의 향이 은은한 나무향과 어울려 그윽해졌다.


“인간세에 자주 가신다고요?”

사빈은 찻잔을 내밀면서 한얼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아셨군요. 찾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천사들에게 부탁하지 않나요?”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부탁하기는 좀···.”

한얼은 찻잔을 들어 잔별차의 향을 맡았다.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부탁할 수도 없었다. 무엇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할까.


“혹시··· 바나를 통해 알아내려는 건가요?”

“예?”

한얼은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바람도 없지는 않았다.

백하의 천력이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그저 마고 사빈을 지키는 수호물이 되었으니.


“과거를 찾으려고요. 제가 누구였는지, 어쩌다 중간자가 되었는지.”

한얼은 사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빈님은 중간자가 되고도 인간세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습니까? 기억도 조금 있고요. 저는 이름도 기억도 없습니다.”


그의 말에 사빈은 안심이 되었다. 마고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런 일이라면 도울 수 있어요. 어디서 찾을지 모를 때는 인연의 힘을 믿는 거죠.”

사빈은 자신 있게 말했다. 한얼이 의아해할 정도로 당당했다.


‘시간의 덫이 아버지를 만나게 해준 것처럼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몰라.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니까.’

사빈은 따뜻한 물을 따라 자신 앞에 놓았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덫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시간의 덫을 찾는다고 나설지도 몰라. 바나를 만들려고 삼도천을 헤맸는데.’


사빈은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바나도 만들어주셨는데. 저도 도와야죠. 단서를 찾아볼게요.”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다.

예사달의 편지를 회향미곡에서 받았다고 했다. 천마 비황에게 받았다고.


“그럼 회향미곡에는 왜?”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곤란해져서요.”


‘아무래도 설화옥 근처 같은데···. 거기 뭐가 있을까?’

사빈은 더 물을 수가 없었다.


말하지 않겠다면, 한얼은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비밀로 해드릴게요. 일단은.”


사빈은 예사달의 편지를 떠올렸다.

‘차원의 경계는 또 어디야?’


한얼 역시 예사달에게 편지를 받았다.


천마 비황이 전해준 편지는 세 통이었다. 하나는 다훤, 하나는 사빈, 또 하나는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마음에 속지 마라. 잃어버린 조각이 끌어당겨도 네가 갈 곳만 똑바로 보아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지막 문장은 잉걸둥지에서 받은 질문과 비슷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차가 식어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예? 아, 아닙니다.”

한얼은 찻잔을 들어 한 번에 차를 다 마셨다.


‘사빈님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보러 왔잖아?’

막상 물어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고운 얼굴을 보자 가슴만 덜컹거렸다.


“아, 그러니까 저기···.”

한얼은 어지러운 생각 중에서 하나를 잡아냈다.


“염라부에 다녀오는 길에 신물을 만났습니다. 어린 기린과 천마 남매였는데. 중앙황천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물이죠.”

“기린과 천마 남매요? 혹시 에밀레와 나토두요?”


“어떻게 아십니까?”

한얼이 놀라자 사빈은 깔깔 웃었다.


“천마 비황과 기린 홍월의 아이들이에요. 나토두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어요.”

“그렇군요. 그래서 나토두가 다른 천마보다 훨씬 작군요.”


사빈은 놀라 두 손을 모았다. 설마 그 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나.

“얼마나 작던가요?”


“그다지 작지는 않습니다. 남방홍천의 위사들과 일하기에 작다는 거죠. 지금은 에밀레와 함께 세상을 떠돌며 수련한다고 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사빈은 가슴에 손을 얹고 가늘게 숨을 내뱉었다.


수명환과 중간자의 피가 문제였나 조마조마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세상을 유랑하다니 마고인 자신보다 행복한가.


‘얼마 안 남았어. 나도 마음대로 떠돌 수 있어. 가끔 동녘뜰에 머물기도 하고.’

사빈은 어리화 무늬에 손을 얹었다.


덜컥 아날빛숨의 문이 열렸다. 크고 하얀 형상이 바람처럼 들어섰다.


백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보게! 인도자가 혼을 놔두고 여기 있으면 어찌하는가?”


한얼의 입가가 굳어졌다.

‘역시···.’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대감이야말로 드넓은 마음숲을 놔두고 어찌 저만 쫓아오십니까?”


“허! 무슨. 난 사빈님을 보러 온 것일세.”

백하는 사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얼이 들어가기에 쫓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저도 사빈님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한얼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사빈과의 평온한 대화가 좋았는데 훼방꾼이 나타나니 명치가 콱 막힌 듯 불끈거렸다.


“마음숲은 축제 준비로 바쁘다오. 사빈님이 얼마나 힘들겠소?”

백하는 사빈을 보며 활짝 웃었다.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오. 내가 도와주겠소.”

“예. 그렇지 않아도 대감과 함께 다움성에 방문하라고 하셨어요.”


사빈의 말에 백하는 의기양양하게 탁자를 내리쳤다.

“보시오! 안전하게 그대를 모시겠소.”


“다움성이라면 저도 전갈을 받았습니다.”

한얼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빈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웠는데, 백하가 나타나니 용기가 솟았다. 적어도 그 앞에서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하하, 그런가? 그보다 사빈님.”

백하가 다정하게 사빈을 불렀다.


“가시버시날에 뭘 하시오?”

“그날이라면···, 장터도 둘러봐야 하고, 길놀이를 한다니 그것도 살펴야죠.”


사빈이 눈을 깜빡였다.

“공방마다 크게 판을 벌인다고 했어요. 얄리장터로는 모자랄 거예요. 너나들이도 찾아올 테니까요.”


조근조근 설명하자 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은 없다는 말이로군. 좋소. 사빈님이 마음숲에 있기만 하면 되오.”

백하는 기뻐했지만 사빈은 웃을 수 없었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설마 그때처럼···.’

사빈은 그의 품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기억나 입술이 떨렸다.


반다강의 소용돌이만큼이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그 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사빈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힘을 주었다.


한얼 역시 그날은 사빈과 함께 보낼 계획이었다.


가시버시날은 연인에게 고백하기 좋은 날이 아닌가. 막 그 얘기를 하려던 차에 방해꾼이 나타나다니.


“대감도 바쁘지 않으십니까? 상대라도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렇소. 소중한 이를 위해 준비할 거요. 그러는 인도자도 마찬가지 아니오?”

백하는 한얼을 향해 비스듬히 몸을 돌리며 눈을 부릅떴다.


“저기 두 분, 사이좋게 지내시지요.”

사빈이 양손을 올려 둘 사이를 갈랐다.


“지금도 엄청 좋아 보이지만요. 진짜 형제 같아요.”

말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천인과 중간자가 이리도 비슷하다니.


백하와 한얼이 콧김을 뿜으며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더욱 닮아 보였다.


사빈은 아날빛숨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백하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 마음이 어떤 건지. 그리고 난···, 곧 떠날 텐데···.’

사빈은 한 모금씩 물을 마시며 양쪽에 앉은 백하와 한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백하와 한얼은 투닥거리면서도 축제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움성에 갈 경로까지 하나씩 정하고 있었다.


“인도자는 혼을 인도하셔야지. 천계에서야 축제지, 사람은 계속 태어나니까.”

“그러는 대감께서는 길놀이나 잘 지키십시오.”


“다움성에는 가본 적 없지 않소? 이번에는 내가 사빈님을 지키겠소.”

“스승님이 예사달님과 친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전 예사당에도 갔었습니다.”


“다움성으로 가는 길은 내가 잘 알지.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로 안내하겠소.”


백하와 한얼는 들썩거렸지만, 중요한 일은 빠르게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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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천계_중앙황천 대차사들 23.07.21 42 2 11쪽
89 천계_한긋장벽을 따라 23.07.20 42 2 11쪽
88 천계_부르는 소리 23.07.19 42 2 10쪽
» 천계_마음이 가는 곳 23.07.18 44 2 11쪽
86 천계_영진촌 낭원 23.07.17 42 2 11쪽
85 천계_변경된 일정 23.07.16 41 2 14쪽
84 천계_백하의 고민 23.07.15 44 2 12쪽
83 천계_어리화는 짙어지고 23.07.14 41 2 13쪽
82 그믐_그리운 아버지 +2 23.07.13 44 2 14쪽
81 그믐_한 번뿐인 나들이 23.07.13 43 2 13쪽
80 그믐_새로운 일꾼 23.07.12 43 2 10쪽
79 그믐_거리의 소녀 23.07.11 43 2 12쪽
78 그믐_중간자의 사연 2 23.07.10 43 2 9쪽
77 그믐_중간자의 사연 1 23.07.10 43 2 11쪽
76 그믐_운기정 서재에서 23.07.09 46 2 11쪽
75 그믐_흉흉한 소문 23.07.08 44 2 12쪽
74 그믐_백홍선원 부운거사 23.07.07 48 2 11쪽
73 그믐_창성곡의 산적 23.07.06 52 2 13쪽
72 천계_온사랑 팔찌 23.07.05 50 2 13쪽
71 천계_회향미곡 잉걸둥지 23.07.04 51 2 13쪽
70 천계_이상한 편지 23.07.03 54 2 11쪽
69 천계_온천 물빛이 바뀌다 23.07.02 55 2 13쪽
68 천계_두 번째 구멍 23.07.01 55 2 13쪽
67 천계_피하지 못할 고백 23.06.30 58 2 10쪽
66 천계_뜻밖의 만남 23.06.29 57 2 14쪽
65 천계_다시 시작된 수색 23.06.28 58 2 12쪽
64 천계_천인의 기억법 23.06.27 61 2 12쪽
63 천계_인연이라는 끈 23.06.26 64 2 12쪽
62 천계_마음을 전하는 일 23.06.23 68 3 12쪽
61 그믐_옥구슬의 사연 23.06.22 6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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