뮐러 씨의 취미 생활
그리고는 집사와 한스를 보고 소리쳤다.
“이보게! 위험하니까 다가오지말게!”
1m 가 넘는 방망이 같은 것이 의자 위에 묶여 있었다. 집사가 자신도 보안경을 쓰고 한스에게도 보안경을 내밀었다.
‘무···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뮐러 씨가 외쳤다.
“이봐 뒤로 더 떨어져!’
집사가 익숙한 듯이 뒤로 물러났고, 한스도 뒷걸음쳤다. 뮐러 씨는 기다란 막대기로 방망이를 살짝 내리쳤다.
퍼어엉!!!쿠과광!!
순간 방망이 앞 쪽에 있던 무언가가 앞으로 날라가며 주변에 뿌연 연기를 뿌렸다. 방망이 앞 쪽에서도 엄청난 연기가 나왔고, 뒤 쪽으로도 흰 연기가 분출되었다. 한스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으아악!!!이···이럴 수가!”
‘이···이건 내가 상상했던 보병용 무기! 이미 이 자는 만들고 있었던 것 인가!’
뮐러 씨가 앞으로 나아가더니 철판을 살펴 보았다.
“자네도 와서 좀 보라고!”
한스가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이럴 수가!”
20mm 짜리 금속 판이 관통되어 있었다. 뮐러 씨가 말했다.
“화약을 더 넣으면 150mm도 관통시킬 수 있다네. 다만, 이런걸 보병들이 쓰기에는 안정성이 너무 떨어지지.”
한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어떻게 그 정도 화약으로 금속 판을 관통시킬 수 있는 겁니까? 엄청난 신기술입니다! 이것이 상용화되면 독일의 승리입니다!”
뮐러 씨가 깔대기 하나를 작은 원통 안에 끼우며 말했다. 그리고는 폭약을 원통 안에 집어 넣었다.
“자네도 쉽게 만들 수 있네. 자, 화약을 이렇게 채워 넣으면 폭발되는 힘이 한 부분에 집중되기 때문에 강력한 금속판조차 뚫을 수 있네. 밖에 나가서 해보지.”
뮐러 씨가 즉석으로 제작한 수제 폭탄은, 한 손으로 감싸쥘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작은 원통형 모양이었다. 뮐러 씨는 그 폭탄과 20mm 정도 두께의 강판을 가지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어마어마한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사방에 퍼졌다.
쿠광!!콰과광!!
검은 연기가 흩어지고, 뮐러 씨가 한스에게 금속 판을 보여주었다. 금속 판에는 지름 10mm 정도로 커다랗게 관통이 되어 있었다.
“단지 화약을 깔대기 모양으로 움푹 파이게 담았을 뿐인데도 이렇게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지!”
“혹시, 이것을 보병이 휴대할 수 있도록 상용화가 가능할까요?”
“안정성 문제 때문에 아직은 상용화는 힘들 것 같네. 나한테 필요한 것은 그저 시간일세.”
한스는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당장 프랑스의 전차 수천 대가 몰려오고 있다. 몇 년 뒤 상용화가 된다면 그 때는 너무 늦는다!’
뮐러 씨가 말했다.
“이보게. 그 전차마다 무전을 다는 아이디어, 누가 생각해 낸 것 인가?”
“아, 그것은 제가 아니라 통신 장교인 구데리안 대위의 의견입니다.”
“대위라? 흐음···”
그 때, 뮐러 씨가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20년 뒤가 재미있겠군···”
“그..그게 무슨···”
“아..아무 것도 아닐세.”
한스는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뮐러 씨가 말했다.
“기왕 왔으니 저녁이나 먹고 가게. 전선에서는 순무 빵 밖에 안 나오지 않나?”
그 때, 한스는 주차장 쪽을 무심코 보았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저···저것은!!!”
뮐러 씨가 말했다.
“아, 저건 내가 디자인한 탱크일세. 물론 포를 달지는 않았다네.”
“어···어떻게 저것이···”
“이웃들 나무 그루터기 뽑아주는 용도로 쓰고 있다네. 나의 소박한 취미 생활이지.”
“직접 운전 하십니까?”
“핸들로 운전할 수 있도록 설계해서 나 같은 늙은이도 쉽게 운전할 수 있네.”
“저···저것은···”
“아, 저것은 어뢰라네.”
한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뮐러 씨가 말했다.
“그냥 껍데기일 뿐일세. 안에 화약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대단한 걸 모으십니다.”
“난 그저 취미로 예술품을 모을 뿐이라네. 전쟁이라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네.”
한스는 참호에서 불발탄을 줍고 다니며 그것으로 나이프를 만들던 병사들을 떠올렸다. 다음 날 죽을 수도 있는 최전선 참호에서조차 병사들은 예술품을 만드느라 공을 들였다. 한스도 전차의 빠져들었지 않은가? 하지만 한스는 전쟁터에서 죽은 수 많은 병사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전쟁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했다. 뮐러 씨가 말했다.
“자네 대학은 다녔나?”
한스가 말했다.
“김나지움을 졸업했고, 전쟁이 끝나면 대학을 가고 싶습니다.”
“대학을 가게 되거든 공학을 전공하게. 미래에 독일은 공학을 공부하는 많은 젊은이가 필요할 거야.”
뮐러 씨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덧붙였다.
“공학을 공부해야 기술이 발달해서 산업이 발전하지 않겠나?”
그런데 뮐러 씨는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한스가 말했다.
“저도 공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뮐러 씨가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난 트랙터 산업이나 할 걸세. 유럽은 전쟁으로 공학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하고 있지.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건, 독일은 새로운 시대의 기술 전쟁에서는 밀리지 않아야 하네.”
“그···그렇군요..”
‘그러고보니···전쟁 끝나면 뭐하지···’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를 매번 치루다 보니, 한스는 언제부턴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쥐꼬리만한 월급은 조금 모아두었지만, 이걸로 뭐 할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더군다나 전쟁에서 배운 것은 수류탄 던지는 법, 기관총 사용법, 전차 관리법 뿐 이었다. 언제부턴가 한스는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뮐러 씨의 자택에는 요리사까지 딸려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식탁이 고기 반찬과 위스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에밀라와 뮐러 씨의 부인도 같이 식사를 했다. 에밀라의 기분이 왠지 좋지 않아 보였지만, 한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뮐러 씨가 말했다.
“20년 뒤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자네는 어떤 국가가 전차전에서 우위를 점할 것 같나?”
한스가 말했다.
“프랑스 아닐까요? 지금 르노와 생샤몽을 만들어낸 기술을 보면···”
뮐러 씨가 말했다.
“내 생각엔 안경을 잘 만드는 국가가 지상전의 왕자가 될 걸세.”
“안경 말입니까? 아!! 조준경이···”
한스는 불현듯 머리 속에 생각이 떠올랐고 뮐러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조준경을 쓰는 전차는 멀리서 적 전차를 미리 발견하고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겠군요.”
“정확히 아는 군. 조준경에 기포가 껴 있거나 왜곡이 있으면 제 아무리 실력 좋은 포수라고 해도 정확히 포를 쏘기 힘들 걸세. 만약 우리가 좋은 조준경을 쓴다면? 놈들이 독일 전차를 찾지도 못할 때 우리는 멀리서 그 녀석들을 격파할 수 있겠지.”
뮐러 씨가 씨익 웃으며 한스에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대학을 나오면 우리 회사에 기술자로 취직시켜 주고 싶군.”
“가...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일 뿐이지만 한스는 그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에밀라는 어딘가 화가 난 표정으로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댔다. 뮐러 씨는 식사 이후 한스에게 담배까지 선물했다.
‘이거면···돌아갔을 때 동료들 몫은 충분히 되겠어..’
“감사합니다. 뮐러 씨.”
한스는 여관으로 돌아와서 뮐러 씨가 만들었던 폭탄의 설계도를 그렸다.
‘나중에 시간 되면 나도 만들어 봐야지···’
적 전차가 몰려올 수 있는 길에 이 폭탄들을 쭉 설치해놓고, 놈들이 올 때 이걸 터트리면 전차 하부 장갑아 모조리 날라갈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폭약을 깔대기 모양으로 담는 것 만으로 그렇게 강판을 뚫는 효과가 나오는 것인지 한스는 너무 궁금했다. 전쟁이 끝나면 전차는 만들지 않더라도 트랙터나 다른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한스의 마음 속에 잊고 있던 희망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게도 전쟁이 끝나면 미래가 있어!’
다음 날, 전선으로 도착해서 한스는 동료들에게 담배를 나눠 주었다. 모리츠 상병이 말했다.
“담배맛 기가 막히군.”
맥스라는 신병이 저격총을 적진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모리츠 상병이 말했다.
“이 자식 신병인데, 저격 실력이 기가 막히다고.”
요나스가 말했다.
“영국 저격수 자식이 이길지, 맥스가 이길지 내기 중이야.”
반대편에 있는 영국 참호에는 실력이 기가 막힌 저격수가 하나 있었다. 그 놈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다들 참호 위로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독일 병사들은 그 저격수의 위치를 알기 위해 철모를 위로 높이 올려 보기도 하고 군화를 위로 올려 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유인하면 그 영국 저격수 놈은 절대로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안심하고 철조망 보수 작업을 하러 나갔다가 놈한테 당한 독일 병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 맥스라는 신병 곁에는 오줌을 받아놓은 통이 있었다. 한스가 물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던 건가?”
니클라스가 말했다.
“8시간 째야. 쟤도 대단하지.”
그 때, 모리츠 상병이 아이디어를 냈다. 막대기와 통조림을 가져와서, 허수아비처럼 만들고, 그 위에 군복과 헬멧을 입혔다. 한스가 말했다.
“이걸론 뭔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모리츠 상병은 허수아비 측면에 소총을 하나 달았다. 어느 새 근처 병사들도 다같이 몰려 와서 이번 작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놈이 속을까?”
“속진 않을 거야. 그래도 허점은 보일 수도···”
모리츠 상병이 허수아비를 들어 올리고, 마치 사람이 두리번거리는 것 마냥 허수아비를 조금 회전시켜 보았다. 그 때, 신병 맥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뭐야! 맞은 거야?”
“놈한테 적중했나?”
신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쌍안경을 보고 있던 레온이 외쳤다.
“적중했습니다! 정확히 놈 얼굴에 맞았어요!”
“우와와!!! 해냈어!”
“와오!!! 잘 했다 신병!!”
“넌 훈장 감이야!”
모든 병사들이 다같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맥스는 웃지 않았다. 맥스는 콧수염이 있었기 때문에 표정을 잘 관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슬퍼하는 표정 또한 아니었다. 맥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병사들에게 등을 보이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한 병사가 맥스에게 외쳤다.
“축하해 멕스!”
“냅둬 쟤 화장실 급할 거야.”
모리츠 상병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좀 쏘지만 저 녀석은 대단하군. 내가 죽어도 안심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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