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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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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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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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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DUMMY

일행에게는 타카슬에 대한 신뢰를 시험해 볼 시간이 다가오지 않았다. 다음 삭날 전에 일행은 가나 대륙에 도착했다.


그들의 배가 도착한 곳은 서로만이 아닌, 서로만으로부터 남쪽으로 15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인 유흥도시 터리놀이었다.


온통 철썩거리는 소금물밖에 보이질 않던 수평선에 새하얀 모래사장과 높은 화령탑, 햇빛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이는 건물들이 불쑥 튀어나오자 찬호는 하루종일 그쪽 방향만을 쳐다보았다.


안타깝게도 터리놀은 서로만과 다르게 옥토끼를 대동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순순히 손님 대접을 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때문에 지원은 터리놀 영해에 곧바로 진입하지 않고, 구조용 신호탄을 터뜨려 터리놀 해안 경비대가 일행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


해안 경비대는 일행의 배를 향해 다가왔고,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지원과 찬호는 갑판 위로 올라가 두 손을 들어올렸다. 햇살이 눈을 향해 곧바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줄 손이 부족해지자 눈쌀이 찡그려져 저절로 인상이 해적처럼 험악해졌다.


츠카와 루니는 기르불의 램프를 들고 조종실 위쪽으로 올라가 앉았다.


해안 경비대는 옥토끼를 특별히 경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지사리라는 것을 알아채자 조용히 주머니에서 아스팔트 조각을 꺼냈다.


“어디서 왔지?”


경비대 중 하나가 말했다. 지원이 대답했다.


“저희는 서로만에서 왔습니다.”


그들이 주브만칼리에서 왔다는 것은 극비사항이었다. 때문에 일행은 미리 최소한의 질문에 대해서만 대답하고 나머지는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입을 맞춰두었다.


“뭘 하려고 터리놀에 들어왔나?”

“죄송합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터리놀에 미리 입국 허가가 내려져 있을 겁니다. 상부에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주지원이고, 이 사람은 유찬호입니다. 저 두 옥토끼는 루니와 츠카, 지사리는 기르불입니다. 이 중 주지원과 유찬호, 기르불, 루니가 아그레망을 받았습니다.”


아그레망은 외교 사절 자격을 승인한다는 뜻이었다.


경비대들은 지원의 자신감 넘치는 말과 옥토끼 2명의 존재 때문에 어느정도 경계를 풀었다. 그들은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지원과 찬호에게 접근하여 양손을 묶었다.


“너희를 압송하겠다.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구류되어 있을 거다. 옥토끼 두 분? 저희에게 지사리를 넘겨주시겠습니까?”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경비대는 지원과 찬호의 옷 위를 더듬어 그들이 어떤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해안 경비대의 배 위로 그들을 인도했다.


또한 츠카와 루니에게는 극도로 정중하게 기르불을 양도받았고, 아스팔트로 코팅된 장갑을 낀 경비대들이 기르불의 램프를 들고 배 위로 귀환했다.


루니가 경비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츠카는 우리 쪽에 등록 안 된 놈이야. 일단 서로만 쪽으로 넘겨. 벌서라 조약 알지?>


경비대 중 하나가 대답했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일단 두 분 여기에 발바닥 찍으시지요.”


루니와 츠카는 뭐라뭐라 적혀 있는 서류에 연달아 발바닥 도장을 찍었다. 그들은 총과 아스팔트에 둘러쌓인 지원과 찬호, 기르불과 달리 유순하고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서로만 대사관에 두 분의 신원을 확인받고 나면 곧바로 서로만으로 출국 수속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루니 님이 미리 아그레망을 받아두셨다면 하루도 안 걸릴 겁니다.”


이때 찬호가 끼어들었다.


“저희는 언제 풀려날까요?”


루니에게는 깍듯이 존대하던 경비대는 본래 불법입국자들을 상대하던 말투로 되돌아와 퉁명스레 대답했다.


“몰라.”


찬호는 궁시렁대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 그러세요······.”


한편 지원은 배 안에 있는 물건들에 대한 질문에 소상히 대답하는 중이었다. 어떤 물건이 있는지, 취급에 주의해야 할 것들은 없는지, 또 그 중 터리놀에 반입할 수 없거나 위법적으로 취득한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권총 한 정, 권총 탄약이 몇 발 남아있습니다. 얼마인지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또 신호탄과 신호탄 발사기도 있습니다. 무기로 쓸만한 것들은 그게 전부입니다.”


찬호는 지원이 의도적으로 평화의 존재를 숨기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가 물었다.


“저 지원, 하나 잊어먹은 거 있지 않아요? 그 칼······.”


지원은 찬호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루니로부터 텔레파시가 날아왔다.


<말하지 마.>


찬호는 지원이 유래없이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급하게 말을 바꿨다.


“칼······처럼 날카로운 대나무 조각말이예요. 그거 젓가락 대용으로 썼는데 저 혀 베였었잖아요.”

“확실히 그건 위험하긴 하지요. 경비대 선생님, 조종실에 가방이 하나 있을 겁니다. 그 안에 뾰족한 대나무 조각이 있으니, 검사할 때 다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버리셔도 좋습니다.”


지원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경비대에게 말했다. 경비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가 일단락되고, 경비대들이 배 위의 물품들에 대한 조사를 대략적으로 마치고, 그들이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을 배 안쪽으로 데리러 가려 할 때, 지원이 마치 지금에서야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하나 더 있습니다.”


경비대가 짜증난다는 듯 그녀를 돌아봤다.


“뭐? 뭘 까먹었는데?”

“까먹지는 않았지만, 터리놀 법률로 어느 분류에 해당되는지 알 수 없어 미리 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뭔데 그게?”

“무괴입니다.”


그때 배가 한 번 크게 기우뚱거렸다.


저 멀리에서 지원, 찬호, 기르불과는 수준이 다른 대접을 받고 있던 츠카가 황급히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다. 옥토끼들을 에워싸던 인간들은 자기보다 몇 만 배는 나이가 많을 옥토끼를 감히 강력하게 제지하지 못했다.


<타카슬, 별 일 아니니까 배 흔들지 마! 괜찮아, 이 인간들은 나쁜 인간들 아니래!>


타카슬은 츠카의 만류에 배에서 떨어졌고 배의 흔들림이 진정되었다. 경비대들 중 절반은 바다를, 절반은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을 바라보았다.


“무괴라고?”

“예, 그렇습니다. 잡아먹는 용도가 아니니 수산물은 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데 목적이 있지 않으니 무기도 아니고, 타고 다니지 않으니 가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무괴는 어떻게 분류해야 합니까?”


경비대는 예상 밖의 상황에 입을 떡 벌리고는 다시 다물지 못했다. 그는 물론이고 터리놀의 누구도 무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해 본 적이 없었다.


찬호가 말했다.


“그냥 이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안 돼요? 다시 돌아와서 부르면 되잖아요.”


지원이 대답했다.


“타카슬은 사람이 아니니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가나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츠카나 다른 이민자들과는 다른 절차를 밟게 될 겁니다. 저희가 터리놀에 입국했다는 정보가 서로만으로 전송될 테니, 차라리 지금 서로만 쪽에 타카슬에 대한 정보까지 한꺼번에 전달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비대는 당황스러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면서 첨언했다.


“그, 그래, 잘했다. 나중에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길 바에야 지금 다 불어두는 게 좋지. 하······.”


터리놀 해안 경비대의 모든 대원들은 직감했다. 세 종족과 한 마리로 이루어진 이 무단입국자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도 없이 거대한 세력을 뒤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어줍잖게 몸 비틀며 그 세력의 눈에 밟히지 않길 원하기보다는, 철저한 원칙을 따르며 터리놀의 법률이 그들을 지켜주기를 바라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원칙대로, 늘 해왔던 대로, 지원과 찬호를 터리놀 해안 경찰서의 유치장에 집어넣고 기르불은 화령탑 1층에 감금했으며, 루니와 츠카는 서로만 대사관으로 보냈다.


타카슬의 입국은 거부당했다. 검역에 필요한 메뉴얼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지원은 영해에 들어오기 직전 타카슬에 대한 소유권을 영구히 포기했다. 타카슬은 이제 생선이나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이 되었다.


야생동물은 터리놀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누군가가 타카슬을 사살한다고 할지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터리놀 법률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가 영해에 들어오든 말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 수 없게 되었다.


“무책임하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문제가 됩니까? 바다의 모든 곳이 무괴의 서식지입니다. 그저 살던 곳에 방사했을 뿐입니다. 해수욕을 하는 시민들의 눈앞에 타카슬을 풀어놓은 것도 아닙니다. 제가 터리놀 시민들에게 폐를 끼친 점은 하나 없습니다.”


거기에 찬호도 거들었다.


“애초에 책임이라 할 게 있나요? 이 근처에 상어도 자주 나타난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지원은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쳤다.


기르불은 자신이 혹시라도 몸을 부풀렸다가 아스팔트에 접촉할까 두려워 말조차 삼가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일행과 경비대의 대화를 듣다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애초에, 너희들은 땅 위에서 살잖아? 타카슬은 바다에만 있을 거고. 인간들이 굳이 타카슬을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타카슬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야. 왕제로서 내가 보증할게.”


그때 배가 한 번 더 크게 기우뚱거렸다.


지원과 찬호는 바닥에 고정된 의자를 붙잡은 덕에 넘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루니와 츠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타카슬과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이 흔들림이 그가 만든 거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선원 한 명이 뛰어들어왔다.


“무괴가 또 배를 흔들고 있습니다!”


경비대들은 기르불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눈빛으로 하는 말을 찬호가 대신 꺼냈다.


“기르불, 땅 위에서는 보증 같은 거 서주는 거 아니에요. 그건 경전에도 적혀있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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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 없는 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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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국 22.07.02 20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8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5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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