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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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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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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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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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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달콤한 휴식

DUMMY

여느 강이 그렇듯 하염강 또한 하류로 갈수록 호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폭이 넓고 유속이 완만해졌다. 바위 같은 데에 뗏목이 걸릴까봐 신경을 세우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지원과 찬호는 츠카와 할 일이 없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인간은 서로 츠카에게 주브만칼리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건 가나에서도 할 수 있고 괜스레 자극하는 게 더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찬호는 거기에 ‘그게 예의라고요’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가던 어느날 아침, 찬호는 잠에서 깨어나면서 소금 비린내를 맡았다. 그는 바람에서 그 냄새를 더 잡아내려고 가만히 멈춰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지원은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바다 냄새가 났어요.”


지원은 강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갖다댔다. 그녀는 밤새 깨어있었기에 후각이 소금 냄새에 무뎌져 있었지만, 미각은 강물에서 미세한 짠맛을 느꼈다.


“바닷물이 역류하는 지점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한쪽으로 붙어야 하지 않나요?”

“타카슬이 깨어나면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타카슬과 대화하려면 츠카가 필요했기에 타카슬이 깨어난 뒤로도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날부로 일행은 주브만칼리의 서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변의 모래사장 뒤로는 명죽림이 있었다. 다행히 명죽은 염분 가득한 땅에서까지는 자라나지 않았다.


주브만칼리 서부는 가나 대륙과 가장 가까운 해안이지만 명죽림과 불갈대, 그리고 우리타 산맥의 험악한 산새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서 등한시되는 곳이었다. 지원이 이끄는 일행은 명죽림을 통과할 수 있기에 환청만 신경쓰면 쾌적한 전진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넓은 모래사장에서, 나혈구 덕분에 만칼리 추적대는 일행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저쪽에서는 명죽림이든 불갈대든 상관없이 츠카를 무조건 잡아들이려고 이를 악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괜찮을까요?”


찬호가 말했다.


일행은 대나무 지붕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뗏목을 그대로 뜯어왔기 때문에 전혀 일할 필요도 없었고, 그날 내내 누워만 있었다.


물론 지원은 전날 밤의 불침번이었기에 쉬는 게 당연했지만, 일행 전체가 멈추는 것보단 그럭저럭 쌩쌩한 사람은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찬호는 무언가 할 일이 없냐고 물었다.

지원은 잎사귀 이불에 정자세로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 다리가 거의 낫긴 했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난 어떻게 할까?>


츠카가 물었다.


“흩어졌다간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계세요.”

<괜찮아. 이 주변엔 사람도 없잖아? 그리고 난 어디서 발을 헛디디거나 해도 안 죽어.>

“저도 한때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웬 옥토끼가 물밑에서 솟아서 동료였던 지사리를 납치한 이후로는 세상에 완벽히 ‘괜찮은’ 상황은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럼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괜찮은 건가?>

“적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영문도 모르고 일이 잘못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지금 저희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저는 밤새 피로가 쌓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주변을 정찰하거나 한다면 분명 실수가 잦을 겁니다. 그러니 1시간만 확실히 쉬어두고 싶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여러분이 말했던 일들을 할 겁니다. 그동안에는 저에게서 떨어지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원은 곯아떨어졌고, 츠카는 더 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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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는 몇번이고 불을 꺼뜨릴 뻔했다.


모닥불은 어찌나 세심하던지 기르불에게 주었던만큼의 관심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했다. 참 외로움을 많이 타는 친구였다. 찬호는 단순한 모닥불을 마치 지사리라도 되는 양 그렇게 정의하곤, 반쯤 투덜대면서 중얼거렸다.


“아이고, 모닥불. 또 배고파졌어요? 장작 먹을 시간이네요······.”


츠카는 그걸 몹시 이상하게 보았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는 찬호를 통해 심심해하는 인간이 어디까지 기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배우게 되었다.


지원은 여전히 찬호에게 두 발로 일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찬호는 차차 기르불을 몹시 그리워하게 되었다. 지원은 친절했지만 빈말로도 좋은 대화상대는 아니었다. 츠카 역시도 묻는 말에는 대답했지만 그는 찬호보다는 타카슬과 이야기하기를 선호했다.


찬호는 지원이 바닥에 질질 대나무를 끌며 지나갈 때에 넋두리를 했다.


“지원······, 저 심심해요.”

“그러십니까.”


지원은 대나무를 바닥에 내던져두고 바다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유유히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던 타카슬과 대화했다.

그녀는 돌아와선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젠 덜 심심할 겁니다.”


곧바로 그게 뭔 소리인지 알았다.

바다 쪽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렸다. 엉덩이를 통해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찬호는 타카슬 방향에서 먼지와 흙탕물이 튀는 걸 보았다. 발산하는 먼지와 흙탕물은 점점 찬호에게 다가왔다.


찬호는 일어서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지원의 눈치를 보느라 때를 놓쳤다. 그는 갈색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썼다. 손으로 눈가를 닦아낸 후 소동의 원인을 보니, 타카슬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주둥이 끝으로 모래를 헤집고 몸을 흔들어 공간을 넓히는 식으로 큰 물길을 만들었다. 바다에서부터 찬호가 앉았던 모래사장까지는 30m는 되는 거리였다. 30m짜리 운하에 바다의 파도가 그대로 전해졌고, 그 끝에 있는 타카슬의 피부에 닿으면서 철썩철썩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운하의 깊이가 부족해서 타카슬은 고작 반 정도만 잠겨 있었다. 그가 공간을 넓히기 위해 몸을 뒤집자 배에서 진흙이 흘려내렸다.


찬호는 입을 벌리고 그가 난동을 피우며 물길을 확장시키는 걸 지켜보았다. 지반은 타카슬의 몸짓, 꼬리짓, 지느러미짓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그걸 감상하는 데 빠져 있었다.


그때 지원은 자신을 보조하던 츠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녀는 꼴이 엉망이 된 찬호와, 어차피 물속에서 지내니 별 상관은 없겠지만 똑같이 더러운 타카슬을 번갈아보았다.


“찬호, 조금 기다렸다가, 물의 진흙이 가라앉으면 몸을 씻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셔도 될 겁니다. 물 속에서는 다리에 부담이 덜 가니까요. 타카슬, 감사합니다.”

“응,”


타카슬은 유선형 몸을 따라 길쭉하게 파인 운하 속에서 몸을 구부정하게 말하서 뒤로 돌았다. 그는 스르륵 빠져나갔다.


“츠카. 여기서 찬호를 지켜보고 계십시오. 찬호가 춥다거나 숨이 찬다고 말한다거나, 입술이 파래지거나, 피부가 창백해진 것 같다면 바로 건져올리세요.”

<그래. 그래.>


타카슬이 빠져가나간 자리에는 꽤 많은 물이 흘러들어왔고, 찬호는 그 안에 들어갔다. 차가웠지만, 곧 익숙해지자 다리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츠카는 늘상 찬호의 다리를 억눌러두던 염력을 풀어주었다.


지원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찬호 근처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녀가 츠카와 오전 내내 땀흘리며 만들어낸 대나무 침대가 바닥의 먼지와 벌레를 어느 정도 막아내어 주었다.


<사용감은 어때?>


츠카가 눈은 찬호에게 고정해두고 지원에게 텔레파시를 걸었다.


“좋습니다.”

<처음 만드는 데 이 정도면 나 괜찮지 않아? 찬호의 뼈도 제대로 맞췄는데 가나로 돌아가면 이런 일이나 알아볼까?>

“가나 대륙에서는 ‘돛대 없는 배’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허락도 별로 어렵지 않고, 허락 받은 이후에는 당신이 원하는 대부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기대되네.>


지원은 츠카가 기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찬호에게 지느러미를 만지작당하고 있는 타카슬을 쳐다보았다.


“타카슬의 처우는······,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군요. 동물원에 들어가게 될지, 아니면 돛대 없는 배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야생에서 살게 할거야.>


츠카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타카슬이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제 마음대로는 될지 모르겠지만.”


찬호는 물 위에 편하게 누워 있다가 바다 쪽으로 떠밀려나갔다. 타카슬은 주둥이 끝으로 그를 돌려보냈다. 지원은 옆에 기계장치 보따리를 놔 두고 그것을 테이블 삼아 어린 대나무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칼로 그것들을 다듬고 있었다.


츠카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하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사람은 어떤 자극적인 마약 없이도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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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8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 달콤한 휴식 22.06.15 19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5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9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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