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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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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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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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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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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옥토끼의 본능, 본성

DUMMY

기르불은 생각할 건덕지가 끊이질 않았고 몰려드는 고민에 위압감을 느꼈다.


사실 옥토끼와의 동행은 처음부터 거절하려고 정해놨었다. 근데 괜스레 마음만 약해져서 말을 좀 약하게 해줬을 뿐이었다. 츠카는 거기서 나온 말실수를 파고들어 거절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


기르불은 속으로 옥토끼가 어떤 놈들인지 명심해놓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그들은 가장 오래 산 지사리를 신생아 취급할 수 있는 노인네들이었다. 약삭빠르고 고집은 더럽게 센 놈들. 스스로를 한탄하던 그는 다시 옥토끼한태 화살을 돌렸다가, 의미없음을 깨닫곤 다시 지난 일을 후회했다.


그때 찬호가 잠에서 깼다. 그는 허리를 둥글게 말면서 벌떡 일어섰다. 불과 13시간 전만 해도 그에게는 꿈만 같은 행동이었다. 기르불이 무심하게 물었다.


“잘잤니? 그래 보여.”

“네! 마치 오늘 태어난 기분이에요~.”


찬호가 저리 기분 좋아하는 걸 보고도 기르불의 착잡함은 가시질 않았다. 그의 생각 속은 계속해서 잡생각으로 더럽혀졌다.


‘얘를 생각하면 잘한 결정이지만······. 아니야, 멋대로 몸에 손을 댔다면서 혼낼지도 몰라.’


지사리의 넓은 시야 속에서도, 기르불의 초점은 찬호의 다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행의 모든 행동의 전제조건이 되었던 그 부상은 이제 겉으로 보면 전혀 티가 안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퉁퉁 부어올라 매일 진통제와 항생제를 쪼개먹어야 했다.


찬호의 말소리에, 옥토끼 츠카도 잠에서 깼다. 츠카는 기르불을 사이에 두고 찬호와 마주앉아 있었다. 기르불은 몸을 조금 더 키워 찬호를 가렸다.


<건강해 보이네. 아프진 않고?>

“네, 괜찮아요. 사실 움직이면 아직 아프지만······어제까지는 누워만 있어도 땀이 계속 났거든요.”

<내가 맞춘 뼈지만, 정말 걸작이라니까. 지사리 너도 안에 들어가서 한 번 보지 그래? 살짝 스치기만 하는거면 괜찮잖아?>


찬호와 츠카가 걱정없이 대화를 나눴다. 찬호는 츠카가 그의 다리에 염력을 집어넣을 때만해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으면서, 지금은 완전히 경계를 풀어버렸다.


<뼈와 신경만 조립해놨을 뿐이야. 아직 붙지는 않았으니 흔들리면 다시 어긋날 거야.>

“다시 맞춰주시면 되죠.”

<맞추는 거 아프잖아. 안 그렇디?>

“아파도 뭐 어때요. 저희 회사에서도 가끔 옥토끼가 이런 의료 출장을 나가거든요? 정말 가끔, 그것도 친선 국가의 수뇌부쯤 되어야 회사에서 옥토끼를 파견시켜줘요. 웬만한 사람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이라는 거에요.”


기르불이 끼어들었다.


“들어봤지. 그래. 돛대 없는 배가 옥토끼를 외교 무기로 쓴다는 거 말이야.”


그는 편하게 지사리 말을 사용했다. 츠카의 텔레파시를 통해 그의 억양이 적나라하게 전달되었다. 기르불의 말은 이어졌다.


“공공연한 비밀이지.”

“하하, 저도 들어만 봤어요. 직접 받아보니까 진짜 ‘무기’로 쓰일 만 하네요.”

“무기······.”


그는 문득 뒤를 돌아, 평화롭게 흐르는 하염 강과, 묶인 채 넋이 반쯤 나간 남자를 쳐다보았다. 츠카와 타카슬을 따라온 추적대의 대장 되는 자였다. 물에 빠져 죽었어야 했지만 츠카가 구했다.


시야를 넓히자 불갈대 군락터 곳곳에 다른 추적대 대원들도 저마다 생존 기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기르불은 무리지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보니 존재하지 않는 골이 아파왔다.


“옥토끼, 돛대 없는 배가 널 좋아할까, 싫어할까?”

<확실한 건 주브만칼리보단 나을 거라는 거야.>

“쯧, 됐어. 저거 깨워봐.”


기르불이 몸끝으로 추적대 대장을 가리켰다.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져 있었을 뿐이지 그는 멀쩡히 깬 채로 모든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떴다.


“뭐야. 일어났었어?”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가?>

“상관없지. 저쪽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얘기일텐데. 이봐, 너 이름이 뭐냐?”


남자는 조금 망설이다가 굉장히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어투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아서 뭐하게?”

“얼씨구, 말 한 번 참 재능있게 하네. 어떻게 그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짜증이 날 수 있지, 응?”


기르불이 손바닥 모양을 만들어 남자의 뺨을 갈겼다. 불의 손은 남자를 쑤욱 통과했다. 워낙에 빨라서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기르불이 있지도 않은 혀를 찼다.


“네가 대신 때릴래?”

“전 여기서 못 일어나잖아요. 저, 추적대 분? 저희가 당신을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찬호가 앉은 채로 상체만 이리저리 기울이며 최대한 살갑게 굴려고 애썼다. 남자가 대답했다.


“왜 우리를 구했지, 옥토끼? 뭘 원하는 거냐. 그걸 말해라. 다른 발악은 하지 않을테니 최대한 빨리 끝내자. 어차피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니까······.”

“너무 긴데요. 그럼 죽은 목숨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러자고. 죽목아, 괜히 새침떨지 말고 좋게좋게 가자.”


찬호와 기르불은 히히덕거리며 ‘죽목’과 ‘죽은 목숨’ 중에 뭐가 더 웃긴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츠카는 그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난 널 구하지 않았어. 그냥 건졌을 뿐이고. 너흴 살린 건 이 인간들이지. 그러니 이쪽에 물어봐.>

“그러니까. 왜 건졌냐고.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냥. 못 참았을 뿐이야. 30명의 인간이 눈앞에서 죽는 순간을 보니 자제가 안 됐어.>


죽목은 츠카에게서 보증 세워두고 야반도주한 친구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을 보았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이 옥토끼를 구워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카가 텔레파시를 이었다.


<단식하는 인간이 눈앞의 밥상을 며칠이고 마다할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 자제심을 잃고 폭식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똑같아. 베카린을 버려두고, 타카슬이 물고기를 사냥하는 걸 방관하고, 이쪽의 대장 소녀를 죽이려고 했지. 근데 더는 못참겠더라고.>

“옥토끼는 살생을 싫어한다는 말이 진짜였네. 우리 대장도 똑같던데.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습성이지만 가까이서는 복장터지지.”


츠카는 그저 웃어넘겼다.


그는 허공에 공기를 뭉친 다음, 죽목을 후려쳤다.


죽목은 뒤로 튕겨져나가 바닥에 넘어졌다. 손이 뒤로 묶여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했다. 소란을 들은 추적대 대원들이 이쪽을 쳐다봤다.

어리둥절해하는 죽목에게 츠카가 차갑게 뇌까렸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역겨우니까 뇌 닫아. 죽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야.>


쓰러진 죽목의 옷 속에서 나혈구가 데굴데굴 굴러나왔다. 츠카는 그걸 끌어들였다. 나혈구 속에 든 츠카의 피는 주인을 향해 쏠려 있었다.


츠카는 그걸 깨뜨렸다. 나혈구 안에 있던 물이 튀었다. 핏물은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에게로 둥실둥실 날아갔다. 그것들은 피부를 뚫고 몸 속으로 들어갈 때, 츠카는 신음을 냈다.


<난 여전히 저 새끼가 싫어. 밖에서 꿈틀대는 다른 인간들도.>


기르불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


“저들이 싫은 것보다 저들의 시체가 더 싫다는 거야?”

<옥토끼의 본능의 영역이야. 하지만 정 뭣하면 한 번 더 ‘자제’할 수도 있어. 별로 안 그러고 싶지만.>

“그럼 됐어. 물어볼게 있었거든. 저놈 여기로 다시 데려와 줘.”


츠카는 염력으로 죽목을 들어서 원래 위치 원래 자세로 되돌렸다.

입안의 비릿한 쇠냄새와 욱씬거리는 등짝을 감내하던 죽목 앞으로 기르불이 다가왔다.


죽목은 기르불 너머로 찬호가 자신에게 관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걸 봤다.


“심문할 수 있겠어요?”

“날 뭘로 보는 거냐? 네가 하는 것보단 낫겠지.”

“지원이 아쉬워하겠네요.”

“걘 사람 심리를 고려하면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잖아. 별 도움 안 될 거야. 고문할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제 시작할 거니까 조용히 해.”


기르불은 머리만 한 크기로 줄어든 다음 죽목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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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에, 간신히 심문에서 벗어난 죽목 씨는 추적대 사람들을 지휘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추적대는 귀환을 위한 물품을 제작하는데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불갈대가 자라나기 전에 추적대를 돌려보내야 했기에, 기르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대나무를 구부리고 끈끈한 풀을 제작하는 데 기르불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도움이 되었다.


찬호와 츠카는 작업터에서부터 먼 곳에 앉아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야, 다들 열심히네요.”


찬호는 츠카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가볍게 운을 뗐다. 하지만 츠카는 찬호의 의도에 부합하는 가벼운 대화보다는, 기르불 없이 단 둘이 나눠야 하는 진중한 이야기를 하고싶어했다.


츠카가 물었다.


<너는 저들을 살려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해?>


찬호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오자 황당해했다.


“네?”

<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음······그냥 사람들이죠. 아마 저사람들을 입단속 시켜도, 결국 저들 중 하나는 주브만칼리 정부에 저희 존재를 까발릴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죠. 다 죽이면 해결될 문제긴 하지만, 살려주기로 한 걸 째째하게 번복할 수도 없고요.“


찬호는 정작 츠카가 물었던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츠카는 더욱 세심한 곳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졌다.


<만일 네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들을 죽였을까?>

"함부로 대답 못할 질문이네요. 저희 팀의 결정권은 지원이 가지고 있어요. 그건 건드려선 안 되는 금기에요. '나였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같은 상상은 결국 대장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팀 내 불화로 번지고, 결국에는 상관 살해로 이어지죠. 그러니 대답하지 않을게요."


찬호는 웃으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츠카도 눈치껏 더 묻지 않았다.


기르불의 도움으로 추적대는 빠르게 원하는 물자들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 다음날 떠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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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거짓말 22.06.24 20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9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8 2 10쪽
28 평화 22.06.21 27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40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7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23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6 3 10쪽
20 화령 +1 22.06.14 30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7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6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21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1 4 9쪽
»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1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6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4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30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30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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