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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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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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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작성
22.06.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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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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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형제의 배 이야기

DUMMY

지원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가나의 전래동화입니다.


옛날에 한 어부가 늙어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4명의 자식이 있었고, 4척의 배와 약간의 빚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부는 자식들을 모두 동등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유산으로 배를 한 척씩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빚도 4명이 동등하게 4등분해서 나눠가졌죠.


장례가 끝나고, 빚쟁이들이 독촉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당장에 빚을 변제하기 위한 현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의 일부를 처분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배를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닻을 팔았습니다. 지금은 금속이 흔하지만, 옛날에는 땅속은 지사리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금속이 매우 귀했습니다.

첫째는 빚을 갚을 수 있었지만, 닻이 없으면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배를 크고 늠름하게 보이게 해주는 돛과 돛대를 팔았습니다. 천도 나무도 질이 좋은 것들이라 후한 값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돛대 없는 배는 멀리 나갈 수도 없습니다. 둘째는 고기를 잡으러 먼바다에 나가지 못하고, 그저 연안에서 다른 어부들을 돕는 일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셋째는 배의 주인과 소속을 표시하는 깃발을 팔았습니다. 그는 깃발에 아버지가 겪었던 온갖 모험담을 덧붙여 비싼 값을 받았고, 빚쟁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깃발이 없어진 배는 바다에서 피아식별이 불가능해져 어부들에게는 해적이라고 오인받았고, 해적에게는 어부라고 오인받았습니다. 결국 셋째는 계속되는 공격에 성질이 포악해져, 자신의 배에 그물과 낚시대가 아닌, 총과 대포를 싣고 항해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막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배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막내는 배를 항구에 매어두고, 본인이 직접 노동해서 빚을 갚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빚을 전부 변제한 뒤에 돌아와보니······막내의 배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폭풍우에 떠밀려갔던 것이죠.”


“불쌍하네요.”


찬호가 조종실에서 도로 나와서 지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츠카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교훈 같을 걸 얻어야 하나?>

“그건 츠카 당신이 알아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동화로 얻는 교훈이라는 게 그렇죠. 그럼 이제 제 질문에······.”

<잠깐, 이 이야기의 교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이야기의 일부분일 거야, 그렇지?>


찬호는 맞는 말이라면서 웃었다.


“하긴, 동화책 맨 뒷부분에는 항상 ‘생각해봅시다’라고 적혀 있긴 하죠.”


지원은 머리를 감쌌다. 그러거나 말거나 츠카는 제멋대로 논의를 시작했다.


<근데 왜 고기잡이로 돈을 벌 생각을 안 했을까? 저럼 배도 지킬 수 있고 빚도 갚았을 텐데.>

“배에 채권이라도 묶여있었나 보지.”


기르불이 말했다.


<타카슬, 넌 어떻게 생각해?>


타카슬은 마침 일행의 배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난 배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야기만 들어보면 세번째가 제일 멍청해. 다른 놈들은 적어도 가만히 있게 됐지만, 셋째는 싸우기로 했잖아. 언젠가 죽을 거야.”

그게 타카슬의 견해였다.


“전 넷째가 제일 안타깝네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배를 전부 잃어버렸잖아요.”

찬호가 말했다.


“첫째는 돌아갈 곳이 없게 됐네. 다시 시작할 수도 없게 됐어.”

기르불이 말했다.


<그 이야기 말인데, 나도 알고 있어. 들을 때마다 생각했던 건데 둘째는 다른 어부들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비참함? 아니면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네.>

루니가 조종실에서 텔레파시로 끼어들었다.


츠카는 이 모든 이야기와 의견 교환을 아주 재밌게 경청했다. 지원은 머리를 감싼 채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녀는 빨리 자신의 질문 차례로 넘어가기 위해 교훈을 직접 제시할 필요를 느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4명 중 누구도 아버지의 배를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겁니다. 중요한 건 4명이 불완전해진 자신의 배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츠카, 만칼리의 수도인 아루신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전달해 주십시오.”


--------------------------------------------------------------------------------


만칼리의 수도 아루신은 고위 관료들과 그 가족이 사는 곳이다. 건물은 높고, 도로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품위있다.


건물 중 가장 웅장한 것은 언덕 위에 지어진 태양궁이었고, 넓은 도로들은 태양궁을 중심으로 뻗어 있으며, 사람들은 태양궁의 주인인 카추샤에게 충성하며 그녀의 뜻을 이행하는 경찰에게 협조한다.


그리고 어느날은 수십명의 남자들이 알몸으로 넓은 도로를 가로질러 태양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신고가 쇄도했다. 시민들은 아루신의 모습을 어지럽히는 그들에게 당혹감을 느꼈지만, 그 남자들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카추샤 두나가 그들을 아주 칭찬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문이 으레 그렇듯 처음 나돌때에는 영원토록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처럼 화제가 되더니만, 정작 2일도 되지 않아 모든 시민들은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일에 정신머리를 소모하느니 생업에 집중하는 걸 택했다.


하지만 알몸의 남자들 중 가장 중심에서 달리던 자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물건은 쓰잘데기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루신, 나아가 주브만칼리, 나아가 전세계의 역사를 바꿀 물건이었다.


카추샤 두나는 추적대가 츠카를 놓쳤다는 소식에는 화를 냈지만, 루니의 귀를 보자 놀랍도록 빠르게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의 앞에 나체로 나타난 무례조차 용서했다.


추적대는 루니의 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머리를 숙인 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카추샤는 손가락으로 루니의 귀를 집었다.


“완벽한 일처리는 아니었지만 공을 세웠으니 상을 내리마. 물러가서 대기해.”


그들은 카추샤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접견실을 나갔다.


카추샤는 루니의 귀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확실히 옥토끼의 신체부위였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으며, 귀가 잘린 단면에는 혈관에서 혈액이 흘러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어 수많은 작은 빨간색 동그라미들이 보였다.


징그러움일지, 아니면 전율일지 알 수 없는 소름이 카추샤의 전신을 감쌌다.


비록 츠카의 신체부위도 아니고, 그 양도 너무 적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구는 마지막 단계에 다달아 있었다.


카추샤는 루니의 귀를 상자에 담아 연구실로 보냈다.

하지만 그 연구실에 있는 건 이제 윈스반 가문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결국 그들의 안전장치는 작동되지 않은 셈이니, 책임을 져야 했다.


이윽고 아루신의 거리에는 다시 흉흉한 소식이 돌았다.

윈스반 가문 사람들이 좌천되고, 숙청되고, 투옥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상임위원이었던 베이카 윈스반은 교화소로 끌려갔다. 정치인이었던 자가 교화소로 들어갔다면, 사실상의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이건 소문이 아니었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루신 시민들은 이 일을 기나긴 세월동안 기억할 것이다. 아루신 안에서 정치인의 숙청은 연례행사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일을 다른 시시한 소문들처럼 잊어버린다면, 다음 행사의 주인공은 자신과 가족들이 될 것이다.


만칼리의 수도, 아루신은 고위 관료들과 그 가족이 살기 때문에 겉보기에 아주 휘황찬란하다. 하지만 실상은 중앙 정부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갓난아기조차 소리죽여 울어야 하는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주브만칼리의 누구도 아루신이 살기 힘든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아루신 성 밖의 한 농부는 논의 잡초를 뽑다가 일어서서 허리를 두드렸다. 그의 시선 끝에 아루신 성벽 너머로 언덕 위에 지어진 태양궁이 보였다.


그 농부는 아루신을 보고 경외심을 느꼈다. 결코 선망의 감정이 아니었다. 아루신에 사는 사람들은 영도계급이었으니 아루신에 사는 것이었다. 영도계급이란, 인민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계급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은 노동계급이었다. 노동계급은 아루신 밖에서 산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혀 이상하다거나 바꾸어야 할 것이 아니었다.


다만 깨끗한 하얀색으로 단아한 자태를 내비치는 태양궁, 저 건물을 보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꽂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 잊고 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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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입국 22.07.02 20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8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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