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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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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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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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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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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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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주브만칼리의 상식

DUMMY

찬호는 속옷 위에 찬 벨트에서 총을 꺼내들었고, 지원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츠카, 모래와 물로 벽을 세워요.”


츠카는 그렇게 했다.

염력에 의해 일행이 있던 곳 양옆의 모래가 움푹 파이고 중앙이 우뚝 솟아올랐다.


그러자 그 모래더미를 향해 총격이 가해졌다. 총 한 두개의 소리가 아니었다. 모래더미가 속절없이 후두두두 무너질 때, 츠카는 그 위로 물을 끼얹었다.


모래더미는 조금 내려앉았지만 더 단단해졌다. 츠카는 모래와 물을 반복해서 쌓아올렸다. 총알은 진흙을 통과하지 못했고, 파괴가 생성을 따라오지 못했다.


총격이 멈췄다.


일행은 자신들이 그 자리에 굳어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츠카가 만든 모래 장벽 뒤로 바싹 붙었다.


“츠카, 좋은 위치에 만들었습니다만 파도 때문에 이 벽은 조금씩 무너질 겁니다. 계속 모래와 물을 보충해주십시오. 그리고 텔레파시로 놈들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파악해 주십시오.”

<알았어, 잠깐만.>


츠카가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찬호가 손에 총을 꽉 쥐고 물었다.


“추적대일까요? 저희를 죽이려고 다시 파견된?”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그게 가능해요? 저흰 타카슬 속도로 단 한번도 안 쉬었잖아요! 최소 2주 후에나 여기 왔어야 했는데?"


흐릿한 별빛 속에서 지원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머리 윤곽선이 푹 꺾이는 건 알 수 있었다. 지원의 한숨이 들렸다.


“어쩌면 저희가 계속 ‘상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챙기시고, 눈앞의 적에 집중합시다.”


그때 츠카는 지원의 말대로 텔레파시를 펼치고 있었다.


찬호의 혼란과 지원의 회의감, 그리고 매우 강렬한 살의가 주위에 포진되어 있었다.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것들을 느끼자마자 찬호와 지원의 생각과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10개야.>

“네?”

<10개라고.>

“10명이라고 하셨습니까? 어느 방향에 있습니까?”


츠카는 거부감을 느꼈다. ‘명’이라는 단위는 적절하지 않았다.


<10개의, 감정이 있어. 사람이 아니야. 지원, 저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라니요? 총을 쏘는데?”

“동물입니까? 대략 어느 정도의 지능입니까? 원숭이? 돌고래? 아니면 개?”

<지능이 안 읽혀져.>


츠카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지원과 찬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걸레짝이 된 상식과 고정관념을 후두려팰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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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츠카가 사람을 책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내용이 적힌 페이지가 엮여 책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수많은 면모 모두가 그 사람을 이루는 개성이다.


책에는 사전처럼 두꺼운 것도, 안내책자처럼 얇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둘 모두 책이다.


그렇다고 종이 두 장을 붙여서 제목만 커다랗게 써넣은 것도 책이라 할 수 있을까?


<동물은 아니야. 동물은 이런 살의를 가지지 못해. 내가 아는 어떤 생물도 이렇게 평면적인 감정은 느낄 수 없어.>

“일단 방향이랑 거리만 알려줘요.”


츠카는 찬호의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켜 주려다가, 상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고는 찬호의 정신에 직접 이미지를 쐈다.


놈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다. 명죽림에 몸을 숨긴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체를 잘 모르겠다 한들 깊게 생각할 여지가 없군요. 타카슬이 올 때까지 버팁시다.”


지원이 모래언덕에 몸을 딱 붙이고 말했다.


<이 배은망덕한 놈. 대체 어디 간 거야?>

“츠카, 염력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까?”

<안 돼. 너무 멀어.>

“그럼 차라리 당신이 총을 잡고 쏘십시오. 찬호가 당신의 정보에 의존해서 고개를 내미는 것보다 저들을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당신이 쏘는 게 더 안전하고 정확할 겁니다.”

<내가?>

“망설일 시간 없습니다.”


찬호는 자기 총을 손바닥 위에 올려 츠카에게 건넸다. 권총은 곧 허공에 둥둥 뜨게 되었다.


츠카는 그걸 모래 언덕 위쪽으로 올렸다. 잠깐의 방향 조정 이후, ‘탕’하는 굉음이 울렸다. 상대방도 수십연발의 총알로 응답했고, 츠카는 곧바로 모래벽을 보충하느라 총을 떨어뜨렸다.


“맞았어요?”

<아무 변화도 없어! 빗맞췄나봐.>

“앞에 방패를 세워뒀을 겁니다. 위협용으로라도 한 발씩 쏘셔야 합니다.”


한편 지원은 폭탄이 날아올 것을 걱정했다.

총과 달리 폭탄은 물에 잠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녀는 주변의 모래를 끌어서 벽을 계속 두껍게 만들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폭탄은 날아오지 않았다. 츠카를 시켜 몇 번의 총격을 더 가했지만, 이후로는 대응사격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났고, 그믐달이 떴다. 달이 떴으니 타카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지원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츠카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를 모래 언덕 옆으로 살짝 내밀었다. 정확한 저격이 날아와 츠카의 머리통이 뚫렸다. 지원은 그를 다시 끌어들였다.


2시간, 3시간, 그리고 동이 틀 때가 되자 일행은 끔찍한 깨달음을 얻었다.

상대방은 그들을 쏴죽이려는 게 아니라, 이 작은 모래 언덕 뒤에 가두어 굶겨죽일 작정이었다.


--------------------------------------------------------------------------------


타카슬은 달이 지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츠카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놈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찬호는 타카슬을 변호하거나 츠카를 옹호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헐벗은 몸의 체온 유지를 위해 츠카를 더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


지원이 말했다.


“어쩌면 너무 넓은 바다까지 무턱대고 나갔다가 방향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무괴와 마주쳤을지도 모릅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지원은 주기적으로 츠카에게 ‘놈들은 여전히 있냐’고 물었다. 츠카는 그때마다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텔레파시로 주변을 흝었지만, 10개의 살의는 언제나 부채꼴로 그들을 포위한 채였다.


찬호와 지원은 대나무 피리를 바닥에 꽂아놓고 해시계로 만들어서 1시간 단위로 번갈아 잠을 잤다.


지원은 츠카에게 바다에서 물고기를 좀 건져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귀가 축 늘어질 정도로 넋이 빠지는 걸 보고 기대를 접었다. 츠카는 간신히 그러겠다고 수락했지만, 곧 지원이 도로 말렸다.


“아니,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저들은 나혈구가 있을 거고, 당신의 위치가 이상하다고 여기면 곧바로 총격을 가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군요.”


지원은 상대가 자신처럼 명죽림의 환청을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이거나, 혹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추리했다. 잠을 못 자서 생각이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체력이 위험합니다. 식량과 물도 보따리에 있는 게 다인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구조대가 며칠 내에 올 텐데 그때 저희가 시체가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잠시 후 찬호가 일어났고 지원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눈을 붙이고 계속 생각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들은 열세였다. 쪽수는 밀리고, 위치도 불리하고, 화력도 부족했다. 그리고 시간도 없었다.


가장 두려운 점은, 저들은 일행에 대해 잘 알지만 일행은 저들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무기는 뭘 가지고 있는지, 식량은 얼마나 있는지, 대체 어떻게 명죽림에서 버틸 수 있는지, 어떻게 지원의 예상보다 몇 주나 더 빠르게 이곳까지 쫓아왔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번갈아서 잠을 자는 것도 그 경계가 애매해지게 되었다. 지원은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찬호는 츠카를 껴안고 멍하니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츠카는 정신을 완전히 열고 셋의 감정을 한데 공유시키고 있었다.


지원은 몸을 웅크린 채 이마를 괴고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츠카는 찬호에게 그 내용까지는 전달해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감정은 느끼게 해 주었다.


찬호는 지원의 팔뚝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꼬인 그녀의 팔이 스르륵 풀려서 땅으로 떨어졌고, 찬호는 그녀의 손등 위에 깍지를 꼈다.

지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전 후회 안 해요. 뭐든.”


츠카를 통해 전해지고 있던 감정이 사라졌다. 지원은 몸을 나른하게 풀고 모래 언덕에 편하게 기댔다. 츠카가 텔레파시를 전했다.


<미안해.>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후회합니다. 모든 걸요. 하지만 후회해도······어쩌겠습니까. 다 제 선택이었습니다. 주브만칼리에서 제가 모르는 건 없다고 자만한 것도, 츠카 당신과 타카슬을 만났음에도 끝끝내 고정관념과 상식을 버리지 못한 것도······다 제 오판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죄송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찬호에게는 좀 죄송하지만요. 찬호는······상부의 명령과 팀의 질서 때문에 제 말을 따랐으니까······.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하셨으니 사과드리진 않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츠카, 언젠가는 저 말고 다른 간첩들이 이 땅에 파견될 겁니다. 가나 대륙은 계속해서 주브만칼리를 공격할 거고, 만칼리 정부는 무너지겠죠.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때도 살아있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 만칼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 도로 잡혀가더라도······네가 말한 그날을 기다릴게.>


세 사람은 의미심장한 말을 나누었다.

문득 지원은 갑자기 눈꺼풀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짐을 느꼈다. 선잠을 반복해 피로가 누적된 결과였다. 계속 눈이 감겼다.


“좀 자야겠습니다.”


지원이 흙벽에 몸을 기댔다. 태양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눈꺼풀 위로 부딪혔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었지만 따듯하고 건조하며 안락했다. 수많은 빛들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다가온 빛들 중 하나가 말했다.


<좋아 보인다?>


지원은 눈을 떴다. 기르불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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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9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5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3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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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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