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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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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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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2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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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평화

DUMMY

옥토끼는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찬호는 오른쪽 귀가 없는, 불완전해진 루니를 보며 그 사실을 실감했다. 그들은 상처를 되돌릴 뿐이다.


츠카와 루니는 지원의 다리에 박힌 칼을 빼고 소독, 지혈을 실시했다.

그 칼은 둥글고 뾰족한 몸체에 여러 개의 칼날이 나선형으로, 마치 나사처럼 돋아 있었다. 칼날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사람을 찌르면 나선형 칼날을 따라 부드럽게 살갗을 갈라 몸 속 깊숙히까지 칼끝이 다다르고, 칼날 사이의 구멍들로 살덩이가 걸려서 도로 적출하기 힘든 구조였다.


지원의 칼은 벌목, 도살, 살인, 땅파기 등등 다양하게 쓰였지만, 이 칼은 살인에만 특화된, 악의 넘치는 무기였다.


<응급처치만 했을 뿐이야. 누워 있어.>


루니는 그렇게 타이르곤 지원의 다리를 감싸고 남은 붕대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출혈은 없었지만, 상처 주위의 털이 바람에 살랑이면서 자꾸 상처를 자극해 따가웠기 때문이었다.


지원은 루니의 조언을 쌩까고 곧바로 일어나서 조폭이 상대를 도발하는 자세로 앉았다.


<누우라니까?>

“츠카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어, 나?>


츠카가 그 짧은 앞발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츠카, 지금까지 저는 당신의 과거와 사생활을 존중해서, 주브만칼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 그 추적대들이 ‘부활’하는 걸 보고, 저는 옥토끼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구상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옥토끼 밖에 없으니까요.”


지원은 몹시 피곤했고, 배고팠고, 목말라서 계속 눈이 감기고 목소리가 잠겼다. 그때 찬호가 원래 용도가 짐작가지 않는 천조각을 몸에 두른 채 조종실 구석 어딘가에서 비상식량을 가져왔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이거 좀 먹으면서 해요.”


그가 건넨 것은 건조 초콜릿바와 미지근한 물이었다. 찬호는 지원의 옆에 앉아 자신의 몫을 먹기 시작했다. 지원은 받은 것들을 한꺼번에 입에 집어넣고 입속에서 시리얼로 만들어서 삼켰다. 그녀는 얼굴을 구기면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간신히 뱃속으로 음식을 넘긴 그녀는 지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짚이는 일이 있습니까?”


츠카는 고개를 저었다.


<나랑 한 공간에 같이 있는 인간들은 나한테 약물을 주사하고, 내 살을 떼가는 것밖에 하지 않았어. 가끔 약기운에서 제정신을 차렸을 때 놈들의 생각을 읽어보려고도 했지만 그놈들은 자기가 들고 있는 약이 어떤 종류인지, 적출해낸 육편이 어디로 옮겨지는지도 몰랐어.>

“그럼 당신은 주브만칼리 정부의 핵심 인사와 접촉했던 적이 있습니까?”


츠카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나와 처음 만난 인간은 나를 카추샤에게 안내했어. 그년한테서 아무 이상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았어. 그저 ‘신기하다’는 감정밖에 없었었다고.>

“언제부터 감금당했습니까? 실험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죠?”

<그건 정확히 기억해. 내가 카추샤를 만나고 3일 뒤, 그때부터 모든 게 시작됐어.>


여기서 기르불이 끼어들었다.


“근데 내가 알기로 카추샤는 10년 전에 주브만칼리 수장이 됐고 적강일은 30년 전이었는데. 20년 동안 인간을 만난 적이 없다고?”


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20년 동안 우리타 산맥에서 떠돌아다녔어.>

<츠카, 적강하면 바로 인간과 지사리를 찾기로 한 거 아니었어?>


루니의 질문이었다.


<곰도 두 발로 걷고 포악하길래 난 그게 인간인 줄 알았지. 그리고 하염강에 불갈대들이 자꾸 타오르는 걸 보고 지사리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말이 안 통하길래······.>


지원은 츠카에게서 추적대가 부활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흐려지는 시야를 붇잡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지원은 말을 멈췄다. 찬호는 물을 꼴깍꼴깍 마시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축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앉은 채 기절해 있었다.

찬호는 이해가 갔다. 그 역시 이 잔에 담긴 물만 다 마시고 어디에라도 누워서 잠을 잘 속셈이기 때문이었다.


찬호는 그녀를 눕히고, 맞은편 벤치에 앉은 츠카와 루니를 옆으로 치운 다음에 거기에 누웠다.


“죄송한데 인간들은 지금 휴식이 필요해요. 일어날 때까지만 잘 테니까······, 기르불이랑 루니는 츠카한테 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저 일어난 다음에 해주세요. 저도 주브만칼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니까······. 옆에서 좀 듣게······.”


찬호가 머리를 벤치에 누이자 놀라운 속도로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졸음을 제어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기르불은 곧바로 코를 골기 시작한 두 인간들을 보고는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


“너희도 좀 자 두지? 둘 다 피곤할 텐데.”


그는 두 옥토끼에게 말했다. 루니가 대답했다.


<둘 중 하나는 깨어있어야 해. 타카슬이 또 무괴랑 싸우기 시작하면 답 없어. 츠카가 먼저 자 둬.>


츠카가 말했다.


<내가 제어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지원이는 일어나면 너한테 질문을 엄청나게 많이 할 거야. 지금 안 자면 후회할 걸.”

<정 그러면, 알았어.>


츠카는 자고 있는 찬호의 망토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는 찬호의 배 위에서 그의 체온을 느기며 잠을 청했다.

루니는 그걸 보고 자신도 나중에 지원의 옷 속에 들어가서 옛 추억을 재현해볼까 고민했지만, 곧 지금의 지원은 다 커버렸으니 징그럽겠다고 생각했다.


------------------------------------------------------------------------


6시간 뒤, 지원은 깨어났다.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츠카는 보이지 않았다.


“일어났어요? 루니랑 츠카는 지금 조종실에 있어요.”


찬호는 바닥에 앉아서 생선을 회치고 있었다. 문득 지원은 옷 속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왼쪽 가슴 아래를 더듬거렸다.


“아, 칼 좀 썼어요. 이거만큼 잘 드는 게 없어서요. 배에 있는 칼은 다 무뎌서 그걸로 회쳤더니 살이 뭉게지더라고요.”


지원의 칼은 찬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낚시했습니까?”

“아니요. 타카슬이 배 위로 던져줬어요.”


그때 저 멀리에서 타카슬이 수면 위로 풀쩍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근데 지원, 생선을 안 익히고 먹어도 되는 거였어?”


기르불이 물었다. 그는 자신의 입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지만······, 저희는 채소를 먹은 지 오래됐으니 괴혈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슬슬 날고기라도 먹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기생충은 어떡하려고?”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기르불은 납득했다. 찬호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제 말은 바득바득 부정하시더니만 왜 지원 말은 한 번에 믿어요?”


인간들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츠카와 루니를 위해 신선한 회의 맛을 음미하지 않고 입에 싹다 욱여넣고 씹었다. 그 와중에도 찬호는 감탄을 연발했다.


“와, 와, 쫄깃쫄깃해라. 이게 얼마만에 먹는 거야······. 역시 회는 신선한 게 최고에요.”

“위장에 부담이 가지 않게 꼭꼭 씹어서 드십시오.”


살을 전부 먹어치우고 내장과 뼈를 밖으로 버리자, 조종실에서 츠카가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지원은 츠카가 마음을 추스를 때가지 질문하는 걸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츠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칼, 좀 이상해.>


찬호는 지원의 칼에 묻은 피를 다 제거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급하게 망토로 박박 닦았다.


“죄송해요. 츠카, 죄송해요.”

<그것 때문이 아니야. 지원, 너 그거 한 번도 제대로 관리 안 했잖아? 근데 몇 개월 동안이나 그걸로 땅도 파고 나무도 죽이고 갈대랑 생선이랑 사람도 엄청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날이 그렇게 잘 드는 게 이상해. 혹시 가나 대륙에서 만드는 칼은 다 그래?>


찬호는 츠카의 텔레파시가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최소 1시간 동안 자신에게 암묵적 함묵령이 내려질 거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그건 정확했다.


지원이 설명을 하려고 했다.


“이건······.”


그때 기르불이 끼어들었다.


“이건 가나 대륙에서 만든 게 아니거든.”

<그럼? 대륙이 하나 더 있어?>

“아니, 인간이 아니라, 지사리가 만든 거다. 이 세상에 4개 밖에 없는 칼이라고.”


찬호는 조용히 조종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루니가 여유롭게 키를 잡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조종실에는 인간용 의자들이 있었지만, 루니의 덩치에는 너무 컸기에 그는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저 여기서 좀 잘게요.”

<응.>


밖에서는 츠카가 지원의 칼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지구의 최중심부에 있는 물질로 만들어졌지. 그런만큼 아주 단단하고, 또 지사리의 인간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 능력 덕분에 세상의 어떤 칼보다도 날카롭다고.”

<음······대단한건가? 근데 지사리가 왜 칼을 만들어? 나머지 3개는 어디 있어?>

“적강 이후로 소방 전쟁이 끝나고 지사리 쪽에서 평화의 증표로 인간에게 만들어준 검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평화이고요. 나머지는 다 박물관에 있죠. 대륙 동쪽 사분에 하나, 동남쪽 터리놀에 하나, 서쪽 유곡에 하나.”


츠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지원, 네가 좀 대단하긴 한 가 보구나? 인간들이 그런 귀한 칼을 너한테 맡긴 걸 보니까.>

“안 맡겼어. 훔쳐온 거야.”

기르불이 말했다.


<훔쳐?>

츠카는 지원을 훽 돌아보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근데 제가 훔친 건 아닙니다.”

“원래는 중앙도시 벌서라에 하나가 있어야 했어. 가나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 4개에 하나씩 돌아가도록 우리가 4개를 만든 거라고. 근데 김옥희가 그 중 하나를 빼돌렸지.”


새로운 이름이 나왔다.


<김옥희, 인간의 이름이야?>

“돛대 없는 배를 창설하신 분입니다. 제 선생님이시고요. 저한테 이걸 주신 분입니다.”


츠카는 혼란스러웠다.


<어······내가 주브만칼리에만 있었어서 잘 모르겠는데, 가나에서는 그게 범죄가 아니야?>

“범죄 맞아. 절도죄지. 문화유산을 훔쳤으니 그냥 절도죄도 아니고 문화재절도죄야.”

“선생님은 ‘이 칼이 인간에 대한 지사리의 화해의 상징이지만, 현 시대는 주브만칼리와 가나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므로 불완전한 화해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든 평화를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흠, 그냥 지가 갖고 싶었던 거지. 자기는 인간이 아닌가?”

“제가 그 분이 아니기에 당신의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생님의 진정한 평화를 바랐던 마음가짐만큼은 진실했었습니다.”


기르불이 어떤 소리를 내면서 몸을 U자로 만들었다. 츠카는 이제 저게 인간의 한숨과 똑같은 의미라는 것을 익혔다.


“그렇겠지······. 지금 벌서라 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평화는 그냥 강철로 만든 모조품이야. 난 이 임무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벌서라에 지원을 고발할 생각이야.”

“모른 척 해주신다면 좋겠지만, 제가 그걸 막을 권리는 없겠지요.”

“아니 그냥 네 발로 직접 가서 반납하라니까? 내가 똑같은 거 하나쯤은 만들어 줄 수 있어.”

“이건 선생님의 유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 칼이 평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찬호는 조종실 벽과 창문을 뚫고 들려오는 언쟁 소리에 괴로워했고 루니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츠카는 웃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뭐야, 왜 웃어. 재밌냐?”

<그냥······주브만칼리에서는 바깥 세상이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혹시 가나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없어?>


지원은 앉아있던 벤치에 스르륵 누웠다.


“있지만, 당신도 저한테 주브만칼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셔야 할 텐데요.”

<네가 이야기 하나를 해 주면, 나도 네 질문에 대답 하나를 해 줄게. 어때?>

“합리적인 거래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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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5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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