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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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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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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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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화령

DUMMY

반면 츠카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발을 푸르르 떨고 있었다.


<끄응······.>

“그 실례가 안 된다면 딱히 별 명확한 의미를 담지 않아서 대놓고 따지기에는 애매한데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도 찝찝한 텔레파시는 잠깐 멈춰주실 수 있으실까요?”


찬호가 말했다.


“이야기 끝내신 거 아니었어요?”

“그래. 내가 너 한 번 더 태워서 확인해줬잖아. 지금 네 몸에 수작 같은 건 안 남아 있어.”

<불안한 마음을 이성과 논리로 멀리할 수 있으면 애초에 불안이라는 단어가 없었겠지.>


기르불이 즉답하지 않기에 찬호가 끼어들었다.


“그러시다네요.”

“들었어. 그래.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을 할까.”

“저희가 어떻게 해야 안심하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어. 내가······불안해도 너희가 더 불안하겠지. 나 때문에 너희가 고생하는데, 칭얼거릴 수는 없어. 텔레파시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거야. 제어해볼게.>


찬호는 눈을 한 번 동그랗게 만들고는 피식 웃었다. 기르불도 비슷한 의미의 다른 행위를 했다. 기르불은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츠카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네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나잇값 하는 문장이었다.”


------------------------------------------------------------------


해가 질 무렵, 일행은 화령 의식을 시작했다.


정식적인 화령 송수신은 전부 밤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눈에 낮보다 밤하늘의 지사리가 더 식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낮의 화령이 아예 금지된 건 아니지만, 정말 어지간한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 절차가 수십 배는 더 복잡해 질 것이다. 기르불 같은 초보에게 수천 km를 날아간 다음 수많은 인간들의 심문을 침착하게 받아내라고 주문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원, 찬호, 츠카, 그리고 낮동안 내내 묵묵히 뗏목을 이끌던 타카슬까지도 잠시 헤엄을 멈추고 기르불을 지켜보았다.


우선 기르불은 미리 준비해둔 나뭇가지 더미에 열을 가해 불을 붙였다. 모닥불이 안정적으로 피어오르자, 기르불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혼령의 상태로 바꾸었다.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기르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겉보기에는 오랫동안 달라지는 점이 없었다. 찬호가 인내심을 잃고 뭐라 말하려 했을 때, 지원이 손가락을 들어 제지했다.


시간이 더 지나고, 해가 완전히 졌을 때, 기르불이 일렁였다. 그의 중심부가 앞으로 둥그렇게 돌출되기 시작했다.


지원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는 기르불의 주변에 손을 휘적거리다가, 돌출된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된 건가?>


츠카가 물었다. 그의 것이 아닌 다른 텔레파시도 들렸다.


<혼령화는 여러번 해 봤거든. 아직 감 안 죽었네.>


기르불의 텔레파시였다. 불의 형상이라는 불완전한 육체조차도 벗어던져 혼령이 된 지금의 그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날아가는 거야. 방향 좀 잡아줘.>

“츠카, 기르불이 앉은 땔감을 제 어깨 위에 띄워 주십시오.”


츠카는 지원의 요구대로 했다. 지원은 자신의 팔을 쭉 펼쳐 서로만 방향을 가리켰다.


기르불은 지원의 어깨 위에서 다시 불꽃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열기에 놀라서 고개를 휙 젖혔다.


“좋아, 난 간다. 보고 싶을 거야, 너희 전부 다.”

“다녀오세요. 한 일주일 쯤 뒤면 다시 만나겠죠?”


찬호가 양손을 흔들었다.


“그쪽에서 배를 빨리 준비해준다면 그렇겠지.”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진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출발하십시오.”


지원은 눈이 부셔서 기르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기르불은 그녀의 목과 옆얼굴만 볼 수 있어었다.


“츠카, 넌 못 싸운댔지. 그건 기대 안 할 테니 얘네 잘 챙겨. 돌아와봤더니 어디 병들어 있으면 귀를 잘라서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

<그러든가.>

“거기 물고기 양반한테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그쪽은 나한테 할 말 있나?”


타카슬은 고개를 저었다.


“쟤는 말을 잘 안 해. 꿍꿍이를 숨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무괴라서 그렇습니다.”

“그거 종족차별이야 지원아.”


지원이 반론하기도 전에 기르불은 다시 한 번 혼령화를 시작했다. 익숙해졌는지 이번에는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다. 지원은 팔을 고쳐들었다.


<그럼 진짜 간다.>


기르불은 지원의 팔을 활주로 삼아 씽 날아갔다.


--------------------------------------------------------------------


기르불이 날아가고 잠시 뒤, 츠카의 텔레파시가 들렸다.


<지금쯤 도착했을까?>

“그럴 겁니다. 서로만일지는 모르겠지만.”


지원은 도로 앉았다.


찬호는 기르불이 없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다. 기온이 서늘해졌다. 결코 낮은 온도는 아니었지만, 항상 기르불의 온기 속에서 따듯하게 지내다보니 추위에 민감해진 것이다.


그와 지원은 뗏목 중심의 모닥불에 손바닥을 펼쳤다. 기르불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온기를 펑펑 방출했고, 가끔 심심하면 몸을 밧줄처럼 길게 늘여 일행을 둘둘 감싸기도 했다. 이제는 외투를 둘둘 감싸야 했다.


“아오, 추워.”

<입어.>


츠카가 두 인간에게 옷을 던졌다. 언젠가 지원이 사상검증을 위해 찢어버렸던 만칼리풍 외투였다.


“이걸 보관해두셨군요. 감사합니다.”

<쓸 때가 있을 것 같아서.>

“이제 저희는 이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기르불이 구조대를 이끌고 돌아올 때까지, 그때까지만 참읍시다.”


타카슬은 다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


강계의 머리카락은 매년 집 한채를 연봉으로 받는 미용사가 손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볼품없었다. 그 미용사는 강계의 몰골을 보고는 기겁하며 당장 씻고 거울 앞에 앉으라고 바락바락 주장했지만, 루니는 그를 허공에 들쳐메서 데려갔다.


사장실은 기르불이 싸지른 불똥을 수습하느라 인간들이 들락날락거렸다. 보안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야기인 만큼 구석지고 밀폐된 공간이 필요했다. 루니에게 지시를 내려야 할 강계는 인사불성이고 기르불은 돛대 없는 배 건물 구조를 모르니 결국 루니가 직접 그 공간을 골라야 했다.


강계, 루니, 기르불은 임원진 전용 화장실 변기칸에 쭈그려 앉아 이야기하기로 했다.


루니는 기르불이 붙은 촛대를 변기 뚜껑 위에다 세웠다.

강계는 듣기만 해도 걱정이 마구 셈솟는 불쌍한 목소리로 켁켁대면서 말했다.


“루니, 기르불 님 맞습니까? 혹시 다른 지사리인 건 아니겠죠?”

<기르불 맞아.>

“좋습니다. 기르불 님. 돛대 없는 배에 잘 오셨습니다. 상황이······좀 좋지 않아서, 이런 곳에서 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 부탁합니다.”


기르불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쩔쩔매면서 대답했다.


“난 괜찮아. 나 때문인데 미안하지. 이건 왕검께 청구서를 보내두면, 내가 나중에 땅으로 돌아갈 때 변상처리 해 줄게.”


최소한의 의례는 끝났다. 그들은 시간이 촉박했다. 서로만 시민들은 방금 전의 사단을 목격했을 것이고, 곧 경찰이 들이닥쳐 기르불을 압송해 나갈 것이다. 화령이 돛대 없는 배 최상층을 강타한 사건은 법적 절차 없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시급한 일 때문에 오셨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구조 요청을 하신다고요?”

“그래.”

“예정일은 2주 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작전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우리는 무사히 명죽림을 통과해서 하염 강까지 도착했어. 근데 도중에 츠카라고 하는 옥토끼를 만났지.”


안 그래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들의 얼굴이 더 심각해졌다. 돛대 없는 배에 있어서 옥토끼는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둘 수 있는 중대사안이었다.


“듣자하니 그 녀석은 주브만칼리 정부에 억류되어 있었다고 하더라고. 갖가지 이상한 짓거리를 많이 당해서, 도망치고 있었대.”

“<이상한 짓거리?>”


루니의 텔레파시와 강계의 육성이 겹치면서 공명했다.


“헤 뭐시기 하는 마약을 몸에 집어넣어서 계속 중독을 일으키게 만들어놨더라고. 아무튼, 걔가 무괴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름이 타카슬이야. 츠카와 타카슬이 우리 쪽이랑 오해가 좀 있어가지고 다퉜는데, 그때 타카슬이 찬호의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어. 그거 때문에 작전을 중단했었지.”

“했었다니요?”

“그게, 중간에 화해를 했거든. 츠카가 도망을 쳤으니까 쫒아온 놈들이 있을 거 아니야? 만칼리 인간들은 우리한테도 달가운 자들이 아니니까 서로 협력을 했어. 그때 츠카가 찬호의 다리를 고쳐주는 대신 자기들을 가나로 데려다 달라 하더라고. 사실 우리쪽이 더 아쉬운 상황이다 보니 울며 기름먹기로 그러겠다고 했지.”


강계와 루니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얼추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그럼······츠카는 나혈구에 추적되고 있을 테니 시간이 없겠군.>

“지금 최대한 빠르게 하염 강을 따라 내려오고 있어. 서둘러서 구조대 좀 보내줘. 구조대 쪽으로 나도 같이 갈거야.”

“장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보따리 속에 든 그거? 멀쩡하대. 잘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구조대를 파견하겠습니다. 다만 당신은 방금 전의 소동으로 조사를 좀 받아야 할 겁니다. 제가 최대한 손을 써보겠지만 일각이 급한 상황이니······구조대와 함께 돌아가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기르불은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


“뭐? 안 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걔네한테는 내가 필요해!”

<그러게 왜 멀쩡한 화령탑 놔두고 여기로 왔어? 바로 옆에 있잖아.>


루니는 앞발로 화장실 창문을 가리켰다. 작은 창문으로 뾰족한 모양의 화령탑이 가까이 보였다. 밤이라서 화령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날아다니는 지사리들이 휙휙 드나들고 있었다.


“난 화령 일은 처음이란 말이야. 저거랑 높이는 비슷한데 더 두껍길래 여긴 줄 알았지.”


강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이 건물을 여기서 더 높게 지으면 이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나겠네. 그지?>

“나처럼 초보 화령들은 그렇지 않을까?”

“젠장······.”


강계가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욕지거리를 했다. 더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그의 야망이 크나큰 벽에 부딫혔다. 루니가 약간의 비웃음을 담은 파장을 퍼뜨렸다.


<이런, 강계야. 오히려 건물을 더 깎아야 하겠는걸?>

“아니요, 화령탑을 더 높게 지으면 될 일입니다. 타협은 없어요.”


기르불은 루니와 강계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헷갈려했다.


작가의말

가나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고도제한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때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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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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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2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9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 화령 +1 22.06.14 28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5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3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9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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