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938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13 19:54
조회
44
추천
2
글자
10쪽

구조요청

DUMMY

<고붐은 선을 넘었다. 경고를 해야지.>


강계는 긴장하기는 했지만, 그 대답을 예상한 듯 곧바로 대답했다.


“듣지 않을 겁니다. 마찰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를 거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동족은 보호해야 해. 고작 25년도 안 되서 결국 이 사태가 터지는군.>

“25년······하······.”


강계는 이마를 쓸어넘기더니만, 소파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왜, 마음에 안 드냐?>

“25년 동안 평화로웠으면 굉장히 오래 버텼습니다. 당신이야 눈깜짝할 사이였겠지만, 인간한테는 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이니까요. 지금까지 ‘돛대 없는 배’가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건 기적입니다.”

<그 정도인가?>

“예. 전 25년 전 당신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을 때, 당장 그날 저녁에 암살당하는 것도 각오했었습니다.”

<실제로 몇 번 그럴 뻔했지.>


루니의 머릿속에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별로 유쾌한 것들은 아니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평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옥토끼의 힘을 과시해 주어야 고붐처럼 옥토끼를 억류시키거나 그런 생각을 품는 족속들이 설치지 못할 겁니다. 여자 앞에서 알통에 힘주는 남정네 같아서 꼴불견이긴 한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뭘 말하려는지는 알겠어. 흠······.>


‘흠······.’과 비슷하게 해석되는 어떤 파장이 전해졌다. 강계는 루니가 뭘 하는지 지켜보았다. 루니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영상이 그대로 강계에게 전해졌다.


강계는 반죽실에서 일하는 옥토끼가 지원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동족 사이에서 네가 주브만칼리에 파견한 공작대 이야기가 돌고 있어. 그걸 듣고 생각해 봤는데, 우리도 첩자, 뭐 그런걸 파견해 보는 건 어떨까.>


강계는 텔레파시로 전해진 영상을 끝까지 되뇌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요원을 사용하려면 2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신분······예를 들어 관광객이나 외교관으로 위장해 파견하는 것. 그리고 완전히 기밀리에 밀입국시키는 것.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응? 그런 게 있어? 그냥 보내는 게 아니야?>

“예. 전쟁은 무조건 죽이고 죽이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 이제부턴 그런 것도 배워야겠지.>


강계는 책상 밑의 버튼을 눌렀다. 비서가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사장의 부탁을 듣고는 곧 두꺼운 책 몇 권을 가져왔다. 병법서였다. 루니는 가장 위쪽에 놓인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참, 공작대는 뭐 소식이 있나?>


루니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니요, 아직 없습니다.”

<그래? 슬슬 신호가 올 때일 텐데.>

“뭔가 차질이 생겼겠지요.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강계는 다시 사무용 책상에 돌아가 앉았다.

한편 루니의 파장이 조금씩 침울해졌다. 강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냅다 눈쌀부터 찌푸렸다.


<지원이는 참······, 참 좋을 텐데. 평범한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루니, 그 말은 이제 그만 합시다. 주지원은 이제 성인이고, 명백하게 본인이 선택해서 임무에 투입된 겁니다.”


강계는 딱 말을 잘랐다. 그는 단호했다. 사실 반복된 루니의 타령에 짜증을 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루니는 기죽지 않고 받아쳤다.


<글쎄, 나는 아직도 인간사를 잘 모르지만, 지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걸 안다. 물론 그 애는 어쩌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삶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그런 걸 선택지라고 부르지 않아. 똥과 오줌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과 마찬가지야.>

“인생의 모든 갈림길이 꽃길일 수는 없습니다.”


루니는 자리를 벌떡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계를 째려보았다. 루니의 파장이 세차게 높아졌다. 허나 강계는 겁을 먹지 않았다. 그저 똑같이 눈 마주쳐줄 뿐이었다.

이윽고 파장이 이완되었다.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루니는 자신의 몸을 소파 위로 떨어뜨렸다.


강계 역시 의자에 길게 늘어졌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괜찮을 겁니다.”


한참 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누가 뭐랬나?>

“주지원은 이제 침대보다 땅바닥이 더 편하다고 자기 입으로 그러더군요. 몇 년 동안 주브만칼리 대륙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유찬호는 근성이 있어요. 재능이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재시험을 쳐서라도 기어이 최고에 가까운 등급을 받아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기르불 님. 지사리가 경호로 있는데, 누가 그 둘을 죽일 수 있겠어요?”

<그래, 나도 알아.>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강계가 들어오라고 허락하자, 방금 그 비서가 서류 뭉치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왔다. 루니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결제하실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그럼, 난 가봐야겠다.>

“고마워, 구탐가 씨. 루니, 고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십시오.”

<응.>


루니는 그를 지나쳐 나가려 했다. 그가 사장실의 나무 문을 닫았을 때, 문 안에서는 새로운 메뉴에 대한 두 사람의 논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커다란 굉음도 들렸다.


쾅! 소리에 놀란 루니는 곧바로 뒤돌아 문을 열어재꼈다. 문 옆에서 장부를 끄적이던 다른 인간들도 토끼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에서 들렸어요?”

<야! 방금 그거 뭐야?>


루니가 벌컥 문을 열자마자 후끈거리는 연기와 먼지가 모락모락 쏟아져나왔다.

강계 사장과 구탐가 비서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뛰쳐나왔다. 그들은 기침을 하느라 바빠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인간들도 섣불리 사장실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루니는 비서실 직원들이 물고기를 키우기 위해 사두곤 사무실 구석에 처박아둔 빈 어항을 끌어왔다. 그는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염력으로 목둘레에 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었다. 비서실 직원들에게 강계와 구탐가를 맡기고, 루니는 그대로 사장실에 들어갔다.


연기가 눈과 호흡기를 따갑게 하는 것은 막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연기 속에서도 창문 쪽의 서재가 불타는 것이 보였다. 루니는 눈을 찌푸렸다. 비서실 직원들은 대체로 젊어서 괜찮지만, 아마 강계는 한동안 마음 고생 좀 할 것이다.


<선전포고야? 소방 전쟁 다시 하려고?>


연기 속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나왔다. 모르는 인간이 들으면 그냥 타닥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지사리의 언어였다.


“아냐! 내 이름은 기르불, 공격 의도는 없다, 구조를 요청하려고 왔어! 돛대 없는 배에 내 이름을 말하면 알거야. 돛대 없는 배에 연결해줘!”


루니는 이 지사리와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지만, 일단 강계를 도로 불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태양빛이 온 청명한 하늘로 퍼지는 날씨였다. 평범하게 앞을 보는 것조차 눈을 가늘게 떠야할 정도였지만, 지원은 뗏목 끝에 서서 계속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일행의 뗏목은 타카슬이 몰았다. 말이 마차를 끄는 것과 같았지만 마부는 필요 없었다. 그래서 지원은 하늘을 보는 데 집중하고, 찬호는 지붕의 그늘 아래에서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츠카와 기르불은 그 평온함을 즐기지 못했다.

기르불은 자신의 시각을 지원을 향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내리고 빛에 익숙해진 침침한 눈동자를 자신에게 돌렸을 때, 기르불은 동요했다. 지원은 빠르게 그의 심리를 알아챘다.


“불안하십니까?”

“그래. 지원아,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일쯤이면 추적대가 주브만칼리에 귀환할 테고, 그럼 만칼리 정부가 저희 존재를 알게 되겠죠. 최정예 요원들이 저희 위치를 정확히 알고 개떼처럼 몰려올 텐데 다른 방법을 갈구하고 있다간 죽습니다.”

“······알았어.”


기르불은 더 항의하지 않았다.


지원은 그의 긴장을 풀어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요즈음에는 저희 인간들도 화령에 익숙해졌습니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길을 좀 잘못 드셨다고 하더라도 석유를 뿌려대지는 않을 겁니다.”


찬호가 거들었다.


“맞아요. 다른 화령 분들도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제가 방향을 잡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침반이 없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겁니다. 발케노처럼 지사리에게 엄격한 지역에 떨어지면 비자 발급에만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으니, 너무 부담감 느끼지 마시고,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목표는 돛대 없는 배의 본사가 위치한 항구무역도시 서로만이었다.

가나 대륙과 주브만칼리 대륙이 가깝긴 하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만큼 인간의 수단으로는 오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지원은 구조 요청을 미리 보내두기로 했다.


“정말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싸우는 건 타카슬이 대신 해주겠죠 뭐. 그리고 불이야 여기 널린 게 불갈대잖아요. 하지만 이건 기르불 밖에 못하는 일이에요. 그동안 밥먹을 때마다 기르불 얼굴이 눈에 아른거리겠지만······생각해보니 당신은 얼굴이 없네요? 별로 상관 없겠다.”


기르불은 ‘기르불 밖에 못하는 일이에요’란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찬호의 몇 배에 달하는 연륜은 그게 거절을 어렵게 하려고 꺼낸 말이라고 경고했지만, 마음이 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돛대 없는 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입국 22.07.02 19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7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5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3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3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