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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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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948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07 23:49
조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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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협박, 작은 보복

DUMMY

어찌나 다급했던지 그 파장에 지원은 두통까지 느꼈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감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츠카는 재빨리 자초지종을 쏟아놓았다.


<너희 해칠 생각 없어! 제발 타카슬을 살려줘!>

“뭐라고?”


지원이 여전히 표정을 구긴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당혹감은 일행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츠카는 상대가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고 따발총처럼 텔레파시를 갈겼다.


<타카슬이 죽을 거야. 난 다시 끌려갈거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

“죄송하지만, 저는 제 동료의 위험을 감수해서까지 당신과 저 무괴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지원이 매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등 뒤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찬호는 가방을 던져주었다. 칼 대신 기르불을 담은 대나무통이 츠카의 목을 겨누게 되었다.


“돌아가십시오.”

“너도 참 급했구나. 안타깝네.”


지원은 츠카를 짓누르던 손을 풀었다. 하지만 츠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옥토끼가 언제나 발산하는 미세한 텔레파시 파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츠카는 여전히 숨을 쉬고, 눈꺼풀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상태를 이해한 지원은 가방 속을 긁어 하얀 가루를 손가락에 묻혀 츠카의 입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의식이 돌아왔다.


<나, 나는······. 나를 도와줘야 너희한테도 좋아.>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너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면 어쩌려고?>


지원은 츠카의 목을 짓누르면서 그를 째려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츠카를 완전히 놓아주었다.


“외통수군요.”

“지원, 도와주게?”

“나혈구 때문에 저희가 데리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죽여서 입막을 수도 없고. 손발 묶어서 숲 속에 버려둬도 염력으로 풀어버리겠죠. 사실 이렇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찬호는 츠카가 좀 비겁하게 군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비난하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그럼 왜 겁박한 거예요?”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츠카, 저는 당신과 무괴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걸 명심해두십시오.”


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은 옥토끼가 인간의 몸짓을 하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기 위해 츠카를 등 뒤로 휙 던졌다. 얼굴이 안 보이게 되니 훨 나았다.


“찬호, 뗏목에 탑시다. 기르불, 당신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뭐, 정말로?”

“하지만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기르불은 답답해했다.


“그럼 저놈들이 우리 존재를 주브만칼리 정부에 일러바칠 텐데 뭐하러 그런 위험한 짓을 해? 그냥 옥토끼가 다 불게 하지.”

“다릅니다. 불갈대밭에 간첩이 숨어 있다는 걸 알면 저들은 저희를 통채로 태워버리겠죠. 화재의 위험보다 간첩의 위험이 더 크니까요. 찬호를 데리고 은신처에 돌아가기에는 늦었습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는 강으로 배를 띄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여야 한다니까?”

“우려하시는 바는 이해하겠지만, 생각처럼 저들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빠르게 추적대를 재파견해도 저희가 주브만칼리를 빠져나가는 시간이 더 빠를 겁니다.”


기르불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간신히 자제심을 발휘했다.


“좋아, 일단 네 말에 따를게. 시간이 없으니까 더 말해봤자 우리 둘 다 손해지. 대신 나중에 내가 따지는 질문에 다 대답해야 할 거다. 알았어?”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찬호, 일어납시다.”


찬호는 상체만 돌려서 츠카가 떨어져 쳐박힌 곳을 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는 지원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이제 한 쪽 다리만으로 일어서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였다.


일행은 뗏목에 올라탔고 지원은 강 한가운데로 뗏목을 몰았다. 찬호는 불갈대밭과 충분한 거리가 벌어졌을 때 기르불을 뗏목 위에 모닥불로 만들어 풀었다.


“아까보다 훨 잘 보이네. 좀 더 커져도 되지?”

“바닥 태우지 않게 하세요. 그을리면 안 돼요. 근데 지원, 총 지원이 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은······.”


찬호는 추적대 쪽을 주시하며 허리에 찬 총을 만지작거렸다.

지원은 손을 들어 찬호를 침묵시키고 계속 노를 저었다. 그녀도 계속해서 추적대를 주시했다. 기르불은 그녀와 찬호와 추적대 그리고 불갈대밭 전부를 비췄다.

그녀는 가방을 양 어깨에 단단히 맸다. 그리고 기계장치가 든 보자기도 손에 들었다.


추적대는 여전히 강바닥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몇몇이 일행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당기며 일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지원은 허리를 굽혀 모닥불에서 한창 불타던 막대기 하나를 집어들었다.


“기르불, 여기 타십시오.”


기르불은 그렇게 했다. 일행이 준비한 땔감은 연료로는 부적절했기 때문에, 지사리의 강제력이 사라지자 모닥불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대신 지원이 손에 든 막대기에서는 기르불이 활활 불타올랐다.


추적대는 하염 강 한가운데에서 불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작살이 무괴를 떠나 지원을 향했다. 지원은 강변으로 기르불을 던졌다.


“잠수!”


그녀는 강에 뛰어들었다. 찬호도 뒤로 넘어가듯이 풍덩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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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대부분을 보지 못했다. 보름달밤이라곤 하나 밤이라 어두웠고, 자신과 지원의 코와 입에서 뿜어지는 공기방울이 시각과 청각을 모조리 차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지원과 찬호가 수면 아래, 그들의 뗏목 밑으로 숨어들어가자마자 사방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달빛 몇 조각만 너울거리던 하염강 수면은 이제 햇빛 아래 보석처럼 마음껏 빛을 부서뜨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숨을 참아야 하나 괴로움에 다리의 고통마저 지워질 무렵, 지원은 찬호의 멱살을 잡고 그를 수면 위로 내보냈다. 찬호는 숨을 한가득 들이켰고, 물에 젖은 눈꺼풀이 떠지기도 전에 타는 냄새와 공기가 요동치는 화르륵 소리가 상황을 알려주었다.


불갈대밭이 불타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빨갛고 주황색 불꽃이었다. 찬호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몸을 돌려 반대쪽을 보아도 풍경이 변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움직이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찬호는 멀미를 느꼈다.


지원이 소리쳤다.


“기르불! 추적대 쪽 시야만 틉시다!”


그때 불이 양 옆으로 쫙 갈라지면서 강의 상류 쪽이 보였다. 그제야 찬호는 기르불이 그와 지원의 주위를 토네이도처럼 돌면서 불똥이 그들에게 튀지 않게 외부로 튕겨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한편 추적대들은 역시 강 속에 뛰어든 채로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패닉에 빠진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그들은 지원과 찬호와 달리 기르불이 자신들을 공격할까 봐 겁먹고 있었다.


기르불은 불갈대를 바탕삼은 자신의 막대한 화력을 믿고 물 속까지도 자유롭게 오갔다. 그는 타카슬이 지원과 찬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그리고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대장님 분부니까 겸사겸사 추적대들도 지켜줬다.


지원은 보따리를 뗏목 위로 던져올린 후에 낑낑거리며 다시 올라탔다. 그리곤 찬호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뗏목에는 추적대가 발사한 작살들이 박혀 있었다. 지원은 찬호가 누울 공간만 치워두고는 서둘러 그를 눕혔다. 그녀는 부목을 해체하고, 바지를 벗겼다.


“다리를 말려야 합니다. 항생제 하나 꺼내드십시오.”


찬호는 그렇게 했다. 퉁퉁 부은 다리에 공기가 통하자, 그는 기분좋은 시원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긴장했다. 지원이 다리를 건드릴까 겁이 났다.


지원은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둔 잘 타는 장작 하나를 꺼내 머리 위에 휘둘렀다.

기르불은 인간들 주위를 돌다가 지원의 신호를 받고는 그녀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장작에 불이 붙었고, 지원은 그걸로 찬호의 다리에 온기를 쬐였다.


“기르불, 상황 보고!”

“별 이상 없어. 죽은 사람 없고, 죽은 무괴 없고, 옥토끼는······뭐 신경 안써도 되겠지. 그래도 일단 받아봐.”


불길이 뱀처럼 둥글고 길쭉한 모양으로 뻗어나와 뗏목 위로 고개를 숙였다. 지원은 찬호에게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며 머리 위의 기르불을 보았다.


잿가루가 조금씩 흩날리다가 어느 순간 덩어리진 숯이 한 덩어리 떨어졌다. 찬호는 그걸 손으로 만졌다. 그는 이것의 정체를 직감하면서도 손을 떼지 못했다.


숯은 조금씩 두터워지더니만 곧 축축해졌고 주변에서 날리던 먼지와 재가 그 위로 모였다. 찬호는 손 위에 가해지는 무게감에 놀라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숯 덩어리의 윗쪽이 파스스 부서졌다. 찬호는 갑자기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앗! 뜨거워!”


그는 손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뜨거움이 가시질 않았다. 안 식은 재 때문이 아니었다. 찬호는 강물에 손을 담갔다 뺐다. 그의 손에는 녹았다 굳은 금속이 묻어 있었다.


“어, 금속? 어디서 나온 거지?”

“총알 아닙니까? 당신이 쏜 게 지금까지 박혀 있던 것 같습니다.”


숯 덩어리는 이제 옥토끼의 형태를 갖추었다.


“탄약에 쓰이는 금속 냄새가 아닌데······. 그리고 그땐 관통됐었어요.”

“그 옥토끼는 위험합니다. 나혈구는 여전히 건재할 거예요. 추적대의 주의가 분산되도록 멀리 버립시다.”


지원은 찬호의 손에서 이제 막 여기저기 새살이 돋고 있는 츠카를 뺏었다. 그녀는 강변 쪽으로 츠카를 던졌다. 츠카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강물에 빠졌다.


“옥토끼한테 안 좋은 감정 있으신가요?”


찬호가 물었다. 지원은 명죽림의 동물을 사냥할 때도 사냥감이 고통받는 걸 몹시 싫어했었다. 근데 츠카는 저렇게 험하게 다루니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지원은 멍하니 찬호의 다리를 말리다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뭐······그런 건 아닙니다. 옥토끼는 저래도 안 죽으니까 그런 겁니다.”

“내가 맞춰볼까?”


기르불이 하늘에서 끼어들었다.


“너 쟤가 너한테 카추샤의 졸개라고 말한 거 때문에 그러지?”


지원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르불은 인간과는 다른 웃음소리를 내뿜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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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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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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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5 4 9쪽
»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3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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