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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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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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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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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0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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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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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DUMMY

지원은 상황이 거의 정리되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기르불에게 말했다.


“서둘러서 주브만칼리를 빠져나가는 데 집중합시다. 시간이 없습니다. 기르불, 혹시 물 속에 들어가 유속을 빠르게 만드는 건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건 없지!”


기르불은 모처럼의 해방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번 터진 웃음을 멈추지 않으면서 사방에 휘몰아쳤다. 주황색 두꺼운 원통형 불길이 위로 치달았다가 수면을 향해 곤두박칠쳤다. 기르불은 지원과 찬호 아래의 뗏목을 반복해서 지나갔다.


물이 뜨거워지고 빠르게 흘러갔다.


“조금 늦추셔도 됩니다. 저 추적대쪽도 번갈아서 보호해주십시오.”

“달빛 때문에 무괴는 위로 올라올 수 없어. 그리고 이제부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하잖아?”


뗏목의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기르불의 움직임은 마치 물레방아 같았다. 그는 지원의 부탁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지원이 그걸 보고 소리쳤다.


“기르불! 무괴!”

“괜찮아, 괜찮아. 내가 확실히 저지하고 있어.”

“당신 불빛이 달빛을 다 가리고 있습니다! 월광이 아니면 무괴를 완전히 저지할 수 없어요!”


기르불이 그 말에 뭔가를 하기도 전에, 뗏목이 크게 들썩였다. 지원과 찬호는 하늘로 튕겨졌다. 그들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다시 추락했다. 하지만 도로 내려온 자리에는 뗏목이 없었다. 산산히 조각난 대나무 덩어리만 있을 뿐이었다.


간신히 찬호를 붙잡고 수면에 떠 있는 지원에게 기르불이 다가왔다.


“미안! 미안해! 달빛 가려진 걸 생각 못했어.”

“기르불, 옥토끼를 찾아오십시오! 어서!”


기르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잠수했다.


하지만 지원의 명령을 이행할 수 없었다. 타카슬이 일행을 향해 아가리를 쫘악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찬호를 향해 다가갔고, 기르불이 그 앞을 막았다.

지원 또한 잠수했다. 타카슬은 뜨거운 열기가 감각을 가리는 상황에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지원이 따라잡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기르불은 타카슬을 더 몰아내기 위해 그를 따라 내려갔다. 한편 강바닥의 다른 곳에는 츠카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기르불은 그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몸을 늘렸다.


“야, 야! 일어나 봐!”


츠카의 주변에 수류가 일어났다. 기르불이 만들어 낸 수류가 츠카를 감쌌다. 따듯한 물이 그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타카슬은 츠카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건드리지 마!”


도중에 츠카의 의식이 돌아온 것인지, 타카슬의 말은 중간부터 번역되어 기르불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기르불을 쑤욱 지나갔고, 수류 속에서 빙글빙글 돌던 츠카를 낚아챘다. 그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강바닥에 쾅 부딫혔다.


강 속에서 진흙이 사방에 흩날렸다. 진흙이라 해서 흙과 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생물의 시체, 민가에서 떠밀려온 쓰레기, 의태하고 있던 물고기, 그리고 제때 불타지 않고 침전된 약간의 불갈대 조각들 또한 흙을 구성하는 일원이다.


불갈대 조각들이 기르불의 몸에 닿았다. 그것들은 하나 둘 산발적으로 타들어가더니만, 조금씩 주황색 불빛들은 어느 한 지점을 중앙으로 삼아 수렴하기 시작했다.


그때야 기르불은 옥토끼가 체온을 유지하겠답시고 불갈대 줄기들을 끌어모아 바닥에 쳐박아두던 걸 떠올려냈다.


기르불은 토착 생물들에게 일어날 끔찍한 재앙을 예견하고는 부리나케 올라갔다.


“옥토끼가 바닥에 불갈대를 모아놨어!”


지원과 찬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리고 기르불이 ‘폭발할거야, 전부 피해!’라면서 허망하게 외치기도 전에, 망망대강에 피할 곳 없는 하염 강의 모든 생명체가 폭발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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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질식이 뇌 속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찬호는 수류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질식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리의 고통이 정신을 쿡쿡 찌르면서 기절을 막았다.


기르불은 찬호의 곁에 맴돌았다. 지원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둘 모두를 감쌀 수는 없었다. 만일 그런다면 집중력을 잃어 둘 모두를 죽이고 말 것이다.


‘몸 성한 애는 알아서 잘 하겠지!’


그는 지원에게 아예 신경을 끄고 오롯이 찬호에게 집중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어려웠다. 인간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건 해본 적 없었다.


수류는 계속해서 찬호를 아래로 가라앉히려 했다. 기르불은 그것에도 저항하며 찬호를 위로 올려보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때 찬호가 갑자기 수면 위로 붕 떠올랐다. 무괴가 쳤나? 아니, 찬호의 몸은 멀쩡했다. 무괴가 튕겨낸 거라면 몸이 박살났을 것이다.


기르불은 찬호를 들어올린 게 누구인지 바로 찾아냈다. 옥토끼 츠카가 어느새 공중에 둥둥 떠다닌 채로 강에 빠진 인간들을 건져내고 있었다.


기르불은 츠카가 지원에게 시도했던 그것을 찬호에게 저지르려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가 츠카에게 달려들었다.


츠카는 찬호를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기르불은 동료까지 통째로 구워버릴까봐 다가갈 수 없었다. 그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미친놈이 인질을 잡아!”

<인질 아니야.>

“아, 그래? 그럼 당장 내려놔!”

<진심이야? 이 상태로? 저 아래로?>


츠카는 눈짓으로 찬호와 강물을 번갈아 가리켰다. 기르불은 자신이 아주 불리한 처지에 있음을 깨달았다. 찬호는 너무 지쳐 있었으며, 츠카가 그를 놓아버렸다가는 물 속으로 가라앉아 익사해버릴 수도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르불은 자신이 한순간 이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대가로 찬호와 지원이 곤경에 빠졌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감히 자존심과 입장을 내세울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뭘 원하는데. 이제와서 공덕 쌓아보겠답시고 저 많은 인간들을 건져낸 건 아닐 거 아니야.”

<대화가 빨라서 좋네.>

“빨리 말해. 걔 잘못되면 다 죽여버릴 거니까.”


기르불은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굴욕적인 말에 살기를 꾹꾹 눌러담았다. 츠카는 텔레파시를 통해 활짝 열린 기르불의 마음의 문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따라서 여유롭게 대답했다.


<우릴 도와주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나와 타카슬을 가나 대륙까지 데려다 줘.>


기르불은 옥토끼 뒤쪽에 둥둥 떠다니는 찬호를 위해서 참았다.


"뭐? 왜?"

<여기 있기 싫거든. 죽고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왜. 무괴랑 같이 가면 그 정도는 껌일거 아니야. 이젠 너도 괜찮아 보이는데. 네 몸 안에 있던 장치들은 아까 다 태워 놨어.”

<무서워서 그래. 혹시 만칼리가 나한테 심어놓은 게 더 있다면? 마약을 주입하는 쇳조각 같은 게 아니라 내가 상상 못하는 종류의 무언가를 조치해놨다면? 나는 한순간에 미쳐서 타카슬을 죽일 수도 있겠지.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런 건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천만년 동안 달에 있다가 지구에 처음 왔을 때, 마약 같은 끔직한 물건은 없을 거라고 말이야.>


동정을 사기 위한 언질이었다. 기르불의 반응은 조금 바뀌었다.


“무괴를 죽일 수 있다면 인간인 지원이랑 찬호는 저항도 못할 텐데. 내가 뭘 믿고.”


똑같이 냉담했지만, 아까처럼 무작정 거절하는 게 아니라 이유를 든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츠카는 카추샤에게 배웠던, 정확히는 당했던 화법을 사용했다.


<너. 너를 믿는 거지. 지사리는 염력 같은 거로 못 죽이니까. 낌새가 이상하면 네가 날 제압할 수 있을 거야. 만칼리 대륙 어디에서 다시 지사리를 만날 수 있겠어? 널 놓치면 나한테 다시 이런 기회는 없어. 제발······.>

“참 딱하네. 근데 결정권이 나한테 있지 않아. 지원이 안 된다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걔는 아마 안 된다고 할 거고.”

<하지만 그 여자 인간은 지금 여기 없어. 여기에는 너와 저 남자 인간 뿐이야.>


기르불이 중얼거렸다.


“쯧, 지원이 돌아왔을 때 날 무슨 표정으로 볼지 생각하면······.”


지원이 납득한다면 본인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중립 선언이었다.


츠카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뒤돌아보았다. 수십명의 인간들이 강 위에서 허우적대거나 혹은 반쯤 기절한 채 기르불의 빛을 반사시켜 전구처럼 빛났다.


찬호는 그 중에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기르불이 그의 얼굴에 익숙해서도 아니고, 츠카가 옥토끼의 종족 특성을 발휘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다리는 부목이 벗겨지고 이리저리 치여 세수한 뒤 닦은 수건처럼 주름져 있었다.


<내가 염치없는 짓 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뻔뻔해도 도와준 은혜를 모르는 금수는 아니야. 성의를 보여줄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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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입국 22.07.02 20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8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6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6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5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9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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