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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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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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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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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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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구조대

DUMMY

그때 루니의 귀가 쫑긋 일어났다. 그는 화장실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란을 감지했다.


<경찰이 왔네.>

“일단 경호원들이 시간을 벌어줄 겁니다. 그 사이에 기르불, 더 할 이야기 없습니까?”


문 밖의 소리가 기르불과 강계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경찰입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다치신 분은 어디있습니까? 지사리는요?”

“네, 선생님,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천만다행이도요. 엉망이 된 사람은 있지만, 일단 여기 앉으시지요. 올라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에헤이, 앉으라니까요.”


경찰로 추정되는 인간들과 비서와 경호원으로 추정되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들은 쑥대밭이 된 사장실의 전모를 파헤치려는 부류와 감추려는 부류로 나뉘어 옥신각신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경찰들이 화장실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강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당신을 변호하면 그렇게 심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최대한 편의를 봐드릴 테니 일단은 조사에 응하시는 게······.”

“강계 사장, 내가 정말 미안하고, 명백한 내 잘못이라는 건 알지만, 지원이랑 찬호를 주브만칼리에 내버려두고 그 편의를 누릴 수는 없어. 오늘 구조대에 나를 끼워서 출발시켜줘. 부탁할게. 왕제의 이름으로.”


강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시다면야······. 하지만 전 그저 기업가라서 정부를 기만하는 짓은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죠.”


루니는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성으로도.


<그래. 옥토끼의 일탈이라면 강계가 어떻게 할 수 없겠지. 내가 뭘 어떻게 해줄까?>


강계는 창문 밖의 화령탑을 가리켰다.


루니는 이해했고, 창문을 삐꺽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높은 곳의 세차고 차가운 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밀려들어왔다. 기르불은 하마타면 촛불 심지를 놓칠 뻔했다.


“저 옥토끼한테 뭘 하라고 한 거야?”

“제가 명령하거나 부탁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알고 계셔주세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시간이 지나자 경찰들이 임원진 전용 화장실을 수상하게 여기고, 곧 화장실 문은 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몸싸움 때문에 덜컹거리게 되었다. 기르불이 강계가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킨 건 자신더러 저 밖으로 도망치란 뜻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되었을 쯤, 루니는 돌아왔다.


그의 뒤로 기르불이 붙은 것과 똑같은 촛대가 둥실둥실 따라들어왔다. 그 촛대에는 지사리가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은 왜 데리고 왔어?”


기르불이 물었다 그 지사리는 기르불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잠깐, 기르불 왕제님? 왕제님이 왜 여기 계시는 거죠?”


두 지사리 모두 서로의 존재를 의아해 했다. 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루니는 기르불이 있던 자리에 자신이 데려온 지사리를 놓았다. 기르불의 촛대는 루니의 염력에 붙들렸다.


<설명은 차차 해 드리지. 이플레, 내가 부탁한 대로만 해.>


추가적인 대답이나 질문이 오가기도 전에, 루니는 다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기르불은 염력에 이끌려 창문으로 빨려들어가듯 따라갔다. 그는 강계와 이플레라고 하는 그 지사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는 걸 보았다.


----------------------------------------------------------------------------


루니는 돛대 없는 배의 건물 벽면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기르불에게 자신이 한 일을 설명했다.


<어차피 인간은 서로 다른 지사리를 구분하지 못해. 대충 대타를 내세우면 될 일이지. 이플레라는 저 지사리가 대충 거짓말만 해 주면 다 알아서 풀릴 거야.>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었네. 누명을 씌우는 것 같은 기분이긴 한데······.”

<강계가 변호해 줄거야. 보수도 두둑히 줄 거고.>

“보수에 쓰일 돈은 나한테 나중에 청구해.”


기르불은 루니와 대화하면서 서로만의 경치를 감상했다.

돛대 없는 배는 서로만에서 화령탑과 함께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고, 덕분에 기르불은 서로만의 경치를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서로만은 본래 큰 도시가 아니었다. 바다와 맞닿는 곳이고, 항구를 짓기에 알맞는 지리이며 큰 강까지 끼고 있었지만 화산 지대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소방 전쟁의 주요 격전지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적강일에 수많은 옥토끼가 강림하여 싸움을 중재한 땅이기도 했다.


옥토끼들은 소방 전쟁이 끝난 다음 이 땅에 다시 모여 강계, 김옥희 등의 인간들과 함께 돛대 없는 배를 창설했다. 옥토끼들은 인간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달떡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큰 돈에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게 해서 서로만은 소방 전쟁이 끝나자 유래 없는 번영을 맞았다.


루니와 기르불은 30년 전만 해도 서로만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야경을 감상했다. 땅에서는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이 찬란해 달과 가장 밝은 별 몇 개만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 허전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화령탑을 중심으로 휙휙 날아가는 지사리들 덕분이었다.


서로만은 인간과 옥토끼와 지사리가 융합하여 살아가는 곳이었다.


야경을 감상하던 기르불의 시야에 돛대 없는 배 1층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게 잡혔다. 방금 전의 소동으로 돛대 없는 배 건물을 탈출하려는 직원, 고객들과 건물에 진입하려는 경찰, 소방대가 서로 뒤섞여 무질서한 인간 격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밑에서는 난리가 났네.”

<저기로는 안 갈거야.>


루니는 기르불을 돛대 없는 배의 창문을 바깥에서 열고 들어갔다.

건물 안은 대피하는 사람들과 조사 및 구조를 위해 최상층으로 뛰어올라가는 사람들로 인해 아주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루니는 태연하게 그들의 시선을 피해 어떤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비밀통로는 지하수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하수로는 항구로 연결되어 끝부분이 바다를 향해 탁 트인 구조였다. 그들은 항구 근처에서 느릿느릿 오가는 배들을 볼 수 있었다.


도심의 소란과 무관하게 항구는 쉬지 않았다. 화령은 하늘의 문제여서 바다와는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소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평소처럼 서로만에 정박된 수많은 배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기르불은 어떤 배에서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했다. 작은 조각배에서부터 으리으리한 화물선까지 다양한 크기의 배를 지나쳤다. 인간들도 키와 너비가 제각각이었고, 간혹 옥토끼도 있었다.


루니는 항구 근처의 건물로 들어가 관리인을 불렀다. 그는 루니를 보더니 아무 말없이 바로 나와 항구의 구석진 곳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열쇠를 인도받았고, 루니는 그걸 거기에 정박된 배에 끼워서 작동시켰다.


그리곤 바로 출항했다. 기르불은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질문했다.


“잠깐, 구조대는? 여기서 만난다면서?”

<만났잖아? 내가 구조대야.>


루니는 인간 두 명 정도가 들어올 수 있는 크기의 조종실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키를 조종했다. 그는 기르불을 촛불에서 램프등으로 옮겼고, 기르불이 잘 모르는 스위치를 딸깍딸깍 눌렀다.


“너? 다른 인간들은 없어?”

<그냥 데려오기만 하면 되잖아. 괜찮아, 길은 알아. 처음 주지원을 주브만칼리에 데려다준게 나거든.>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너만 보내? 넌 옥토끼잖아. 싸울 일이 생기면······.”

<살인을 망설여서 민폐를 끼칠 거다?>


루니는 분주하게 조종실을 오가던 걸 멈추고 램프등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말을 하려고 했어?>

“응.”


루니는 빙긋 웃었다.


<츠카와 협력했었다고 했지. 같이 싸웠던 건가?>

“추적대와 만났었어. 가만히 놔둬도 물에 빠져 죽을 것들을 하나하나 건져줬지.”

<지원이는 뭐라고 했어?>

“잘했단다. 걔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는데.”

<츠카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주지원?>

“둘 다.”


루니는 몸을 돌려서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그래도 투덜대는 걸 보면 걔 말을 들어주기는 했나보네. 잘했어.>

“대장 말을 무시하면 개판나는 거니까. 그래서 대답이나 해봐. 사람 죽일 수 있어?”

<응.>


기르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신뢰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바로 납득할 수는 없었다.


“말은 쉽지.”

<쉬운 말이 있고 어려운 말이 있어. 쉬운 대답을 했으니, 어려운 대답도 해줄게.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어디······20년 전부터 시작해볼까.>


작은 조각배가 서로만을 오가는 다양한 선박 사이를 유유히 항해하며 나아갔다. 기르불은 ‘그래 어디 한 번 말해봐라’라는 마음가짐으로, 하지만 어쨌든 루니의 말을 경청했다.


소방 전쟁은 30년 전에 끝났지만, 루니가 말하는 20년 전 역시 혼란의 시대였다. 지사리와의 전쟁이 끝나고 인간은 수천년 동안 억눌러두었던 인간 사이의 갈등을 마주하게 되었다


루니는 그들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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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입국 22.07.02 19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35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7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5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3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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