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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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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6.2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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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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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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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DUMMY

지원의 말은 타당했다.


자신과 동족의 힘 앞에서 저 배는 종이배와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일행은 언제 무괴들의 싸움에 휘말릴 지 모르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 게다가 베카린의 복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타카슬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결국 타카슬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지원이 말했다.


타카슬은 배의 후미로 이동하여, 그곳에 머리를 대고 꼬리지느러미를 움직였다.


세찬 파도가 일어났고, 배가 둥실거리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루니는 배의 엔진을 가동했다. 더 큰 가속도가 붙었다. 일행은 저 멀리에서 아직도 석유에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조금씩 멀어지는 걸 잘 볼 수 있었다.


배가 평소의 항해 속도를 되찾자, 지원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무괴들이 타카슬을 향해 달려들지, 또 그 수많은 무괴들과의 전투에서 어떻게 타카슬의 이성을 유지시킬지, 또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그 여파에서 어떻게 이 연약한 배를 지켜낼지 산더미같은 걱정 또한 밀려왔다.


지원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고, 기르불은 석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츠카와 찬호 때문에 램프 속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으며, 루니는 조종실에서 키를 잡고 있었다. 츠카는 타카슬의 주의를 전투의 물결에서 떼어놓기 위해 그와 끊임없이 텔레파시를 나누고 있었다.


오직 찬호만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격전이 일어나는 장소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그는 석유의 불빛 속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알아챘다.


찬호는 지원에게 자신이 본 것을 보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격전지에서 빠져나온 그 형상은 일행을 향해 아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찬호는 직감적으로 지금은 자신의 행동에 일일히 허락을 받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신호탄을 하나 더 발사했다.


신호탄의 경로는 그 불빛으로 환하게 비추어졌다. 찬호는 무괴 하나가 격전지에서 벗어나 일행을 향해 헤엄쳐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쪽으로 온다!”


찬호가 소리쳤다. 지원은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다.


“망할······.”


그녀의 예감대로, 타카슬은 배를 내팽겨치고 무괴를 향해 맞돌격했다.


그들은 일행의 배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벌였다. 츠카는 놀라서 기르불을 바닥에 내려놓고 타카슬을 말리기 위해 날아갔다.


그때 싸움이 만들어낸 불규칙적인 파도가 배를 기울였다.

기르불의 램프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기르불은 별로 알아듣고 싶지 않은 지사리 언어로 욕설을 마구마구 내뱉었다. 그는 자신이 갑판의 구석에 놓인 연료통을 향해 미끄러지거나, 반대로 연료통이 자신을 향해 굴러올 것만 같았다.


지원은 몸을 던져서 기르불의 램프를 잡아채 품에 안았다. 하지만 곧 그녀 또한 아무런 지지대 없이 갑판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었다.


지원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연료통에 머리를 쾅 박았을 때, 기르불은 황급하게 루니를 불렀다.


“루니! 루니! 조종할 때가 아니니까 당장 튀어나와!”


루니 또한 지금이 여유롭게 키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는 너무 오랫동안 발동했던 염력을 잠깐 집어넣고 쉬고 있다가 배가 기우뚱거리면서 지원처럼 조종실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느라 재빨리 튀어나오지 못했다.


루니는 정신을 차리고는 조종실 문을 박차고 열어 갑판 위로 나갔다. 그는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지원과 기르불을 잡아 난간 쪽으로 옮겨주었다. 지원은 다시 균형을 잃기 전에 간신히 난간을 잡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루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루니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타카슬의 텔레파시가 감지되지 않자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아, 결국 안 풀렸나 보네.>

“무괴들이 제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더군요. 제 실책이니, 제가 책임져보겠습니다. 루니, 기르불을 조종실 안으로 넣어 주세요.”

<그래, 잠깐만 이 안에 얌전히 있어라?>


루니는 기르불을 염력으로 들어올려 조종실 천장 위에 걸었다. 기르불은 걱정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일행에게 도움보다는 방해를 더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조종실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이제 어떡하려고? 기르불 없으면 고작 한 치 앞 밖에 못 보잖아.>

“신호탄이 남아 있습니다. 그걸 사용하면 됩니다.”

<그거 얼마나 있다고 그래? 정말 괜찮겠어?>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전속결로 끝날 겁니다. 신호탄 한 개만 소모하면 됩니다. 하지만 기르불의 도움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저 무괴는 석유를 뒤집어쓰고 있을 테니까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 도와주긴 할게. 어떻게 할 거냐고.>


하지만 지원이 자신의 계획을 말하자 루니는 이미 뱉은 말을 번복했다.


<못 도와주겠는데,>

“당신은 안전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내 문제를 말하는 걸로 들리냐? 그거 자살행위야, 지원아.>


하지만 지원은 자신만만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미 한 번 해본 적 있습니다.”


지원은 난간을 붙잡고 배의 후미로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찬호는 그곳에서 뭘 해야할 지 몰라하면서 왼손에는 신호탄이 든 보따리, 오른손에는 신호탄 발사기를 꽉 쥔 채 다리로 기둥을 붙잡고 있었다.


“찬호, 신호탄 하나 주십시오. 발사형 말고 막대형으로.”


찬호는 발사기를 벨트에 집어넣고 보따리를 뒤적거려 손에 쥐고 사용하는 막대형 신호탄을 지원에게 건넸다.


지원은 신호탄의 뚜껑을 열고 뚜껑과 신호탄을 세게 비벼 신호탄에 불을 붙였다. 눈이 부실 정도의 강렬한 빨간색 빛이 타올랐다.


“그걸로 뭘 하시려고요?”

“싸움을 말릴 겁니다. 찬호, 만일 제가 죽으면 망설이지 말고 츠카와 타카슬을 버린 채 가나 대륙으로 떠나십시오.”

“에? 말려요? 죽어요?”


찬호는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되물었지만 지원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루니는 지원을 떠받혀주면서 함께 바다로 나아갔다.


지원과 루니는 타카슬에게 필사적으로 텔레파시를 걸고 있는 츠카에게 다가갔다. 그는 타카슬에게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타카슬은 이미 눈이 훼까닥 뒤집혀서 츠카의 텔레파시는 듣지도 않았다.


<타카슬! 나와! 배로 돌아가야지. 베카린을 생각해!>


타카슬은 계속 싸웠다.

베카린의 이름을 언급했음에도 타카슬이 무시하자, 츠카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타카슬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넌 거기서 그러고 있어.>


그는 뒤늦게 루니와 지원의 존재를 알아챈 것처럼 보였다.


츠카는 지원이 손에 들고 있는 불꽃이 펑펑 튀는 신호탄과 ‘평화’를 보고도 찬호처럼 무슨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이제 됐어. 그리고·····미안해.>


츠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배를 향해 돌아가버렸다.

루니와 지원은 그를 말리지도 않았고 위로하지도 않았다.


루니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원이 들고 있는 신호탄의 빛에 두 무괴가 회오리치며 서로를 향해 대가리를 밀어붙이는 모습이 비쳤다.


루니는 그 둘 중 누가 타카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무괴의 생김새에 익숙하지 않았고, 텔레파시가 마구 뒤섞여 서로를 죽이고 싶어하는 본능의 색채만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누가 타카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할거야?>

“예, 지금.”


루니는 별 수 없이 지원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로 했다. 그는 뒤섞여 있는 파장들을 열어재꼈다.


지원은 평화를 들어올려 루니의 코에 겨누었다. 그녀가 루니의 코에 힘껏 칼을 꽂았다.


루니를 중심으로 고통의 파장이 휘몰아쳤다.


지원은 콧잔등이 아릿하고 따끔거리는 환상통을 느꼈다. 다른 두 무괴도 마찬가지였다. 루니와 텔레파시를 공유하고 있는 지원, 타카슬, 타카슬과 싸우고 있는 무괴는 모두 환상통에 휩싸였다.


하지만 코에 칼빵을 맞은 적 없는 지원과 이름 모를 무괴는 잠깐 주춤하는 데에 그쳤다.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건 타카슬이었다. 타카슬은 지원과 기르불에 의해 코에 물구멍이 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두 무괴는 잠시나마 서로 떨어지게 되었고, 지원은 그 둘 중 누가 타카슬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신호탄을 앞뒤로 흔들어 루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루니는 지원을 붙들고 있던 염력을 풀었다. 그녀는 무괴들이 드글거리는 바다로 곧장 떨어졌다.


작가의말

여러분의 댓글 한 마디와 조회수 하나, 추천 하나가 모두 저에게 힘이 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는 거의 매일 업로드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작품 머리에 설정된 연재일처럼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업로드를 쉬게 될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을 끝까지 이끌고 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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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 없는 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입국 22.07.02 19 2 10쪽
36 윈스반 22.07.01 18 2 9쪽
» 폭력을 중재하기 위한 폭력 22.06.28 18 2 9쪽
34 무괴의 본능, 본성 +2 22.06.27 26 2 9쪽
33 달빛 없는 밤 22.06.26 21 3 9쪽
32 이름을 모르는 무괴 22.06.25 15 2 11쪽
31 거짓말 22.06.24 19 2 9쪽
30 4형제의 배 이야기 +1 22.06.22 35 3 9쪽
29 왕검 코츠불 22.06.21 17 2 10쪽
28 평화 22.06.21 24 2 13쪽
27 도마뱀 꼬리 +3 22.06.19 38 2 11쪽
26 추적대, 공작대, 구출대 22.06.19 22 2 10쪽
25 공중지원 요청폭격 +2 22.06.18 34 2 11쪽
24 주브만칼리의 상식 22.06.17 21 2 11쪽
23 살기 22.06.16 24 2 11쪽
22 달콤한 휴식 22.06.15 18 2 9쪽
21 구조대 +1 22.06.14 24 3 10쪽
20 화령 +1 22.06.14 27 2 11쪽
19 구조요청 +2 22.06.13 45 2 10쪽
18 서로만, 옥토끼와 인간의 도시 22.06.13 23 2 10쪽
17 우물 안에는 개구리, 아루신 안에는 옥토끼 22.06.12 19 2 10쪽
16 오월동주 22.06.12 30 4 9쪽
15 옥토끼의 본능, 본성 22.06.11 20 3 11쪽
14 적과의 동행 22.06.10 26 4 10쪽
13 영원에 고립된 옥토끼 22.06.09 24 4 9쪽
12 협박, 작은 보복 22.06.07 22 4 11쪽
11 제 3의 세력 22.06.07 22 4 11쪽
10 실패는 결말이 아니다 +2 22.06.06 28 3 11쪽
9 사상검증 +1 22.06.05 29 5 10쪽
8 임무 실패 22.06.04 23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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