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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동굴

종이 쪼가리

웹소설 > 자유연재 > 시·수필, 중·단편

도깨비눈썹
작품등록일 :
2014.03.26 13:42
최근연재일 :
2017.06.26 11:19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3,829
추천수 :
274
글자수 :
17,506

작성
14.04.30 23:16
조회
662
추천
7
글자
3쪽

도피처

DUMMY

딸깍,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검지손가락의 짧은 움직임.

로그인, 그 짧은 행위는 또 다른 도피.


지우개 똥만큼 더럽고

부스러진 연필심 가루마냥 까만 내 마음을

이곳에 푹 적신다.


뾰족한 정의와 날카로운 기호들에 찔린 상처를

감히 던져버릴 수 없기에

이곳에 모여 서로에게 입김을 불어주는 것일지도 몰라.


나쁜 것은 아니야.

결코.


언젠가 한 번 쯤 보았을 파란 하늘이

지금은 온종일 회색 천에 가려져있기 때문일 테고


눈시울 붉게 물든 저녁 강 사이로 사라져가는 태양조차

고층 건물에 가려져 보지 못했을 사람들일 텐데


아니야. 부정하면서도 사실은,

눈물과 때에 찌든 구깃구깃한 마음을 숨기고 있을 텐데.


그런데

마우스와 모니터.

이 모든 것 이전에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는 알고 있니?






딸깍.


몇 번의 신호음이 오가고

섬광처럼 반짝이는 창들에 몸을 내맡기고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겠지.


방금, 하루가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어두운데,


내일 해를 바라면서도

이곳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도망쳐 온 곳과 별로 다르지 않은 도피처.


온갖 악취 나는 진실과

오색의 텍스트가 내 손을 붙잡는데


어디서부터 아침이 올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런데,

텍스트와 기계음.

이 모든 것 이전에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


대답해 줄 수 있니?






전신주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광고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시간의 일부

나의 주위를 감싼 채 슬금슬금 다가오는 회색 빛


그리고

빛을 발하는 모니터

먼지 섞인 답답한 공기까지


사람들이 사춘기 때의 공허하고 슬픈 가슴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언제쯤 씻겨나갈까.


오늘도 비구름을 바라지만

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


하아.

한숨을 내쉰다.


한숨마저 벽에 막혀 나가지 못하고

모니터 불빛만이 존재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맴돈다.






딸깍.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검지손가락의 짧은 움직임.

하루 종일 돌아가는 본체의 소리.

상처를 숨기기 위해 오늘 하루도 헤드셋을 끼고 음량을 키운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이전에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30 외기인
    작성일
    14.04.30 23:21
    No. 1

    음~과거를 생각하기에는 지금 처한 현실이 막막한 건 가요?
    그래서 과거가 기억날수도...믄 소리야+!
    지송! 저도 지금은 과거를 잊고 있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도깨비눈썹
    작성일
    14.05.03 02:25
    No. 2

    처한 현실이 막막해 보였었죠. 실제론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부기우
    작성일
    14.05.03 00:46
    No. 3

    참 표현이 좋으시네요. 내용과 상관없이 감탄하게 만드는 표현이 많이 있네요. 우울한 내용이지만 감탄하는 제가 이상하게 보일정도로여.. 그리고 읽고나면 여운처럼 저도 같이 우울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좋은 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도깨비눈썹
    작성일
    14.05.03 02:22
    No. 4

    올리는 시들이 대체로 우울하네요. ㅠㅠ 실은, 지금까지 올라온 글의 절반은 중고등학생때 어느 게임관련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들이어요. 그 때는 진짜 게임 중독이라고 생각할 만큼 게임에만 빠져있었는데, (잘하진 못했지만.. :P) 자주하던 게임과 관련된 인터넷 카페에 소설게시판이 있더라구요. 거기서 눌러앉아 활동하면서 몇가지 시를 쓰게 됬어요. 평소에 하루 종일 앉아 게임만 하던 자신이 한심했던진 몰라도.. 이런 시들이 나왔네요. ㅋㅋㅋㅋ 안타깝게도 그 사이트는 지금 거의 유령마을 같은 상태에요. 그래서 혹시 모르는 사이 사이트가 통째로 사라질까 두려워서 일일이 검색해서 올리는 중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5.03 13:25
    No. 5

    으아 도깨비님 시는 너무 좋아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부럽기도 하지만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마냥 헤실 헤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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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별이 빛나는 밤 +2 14.05.06 599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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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로등 +5 14.04.13 612 10 1쪽
5 모니터 +7 14.04.10 879 9 2쪽
4 그래도 아직 +2 14.04.08 748 15 1쪽
3 USB +2 14.04.04 769 1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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