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
딸깍,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검지손가락의 짧은 움직임.
로그인, 그 짧은 행위는 또 다른 도피.
지우개 똥만큼 더럽고
부스러진 연필심 가루마냥 까만 내 마음을
이곳에 푹 적신다.
뾰족한 정의와 날카로운 기호들에 찔린 상처를
감히 던져버릴 수 없기에
이곳에 모여 서로에게 입김을 불어주는 것일지도 몰라.
나쁜 것은 아니야.
결코.
언젠가 한 번 쯤 보았을 파란 하늘이
지금은 온종일 회색 천에 가려져있기 때문일 테고
눈시울 붉게 물든 저녁 강 사이로 사라져가는 태양조차
고층 건물에 가려져 보지 못했을 사람들일 텐데
아니야. 부정하면서도 사실은,
눈물과 때에 찌든 구깃구깃한 마음을 숨기고 있을 텐데.
그런데
마우스와 모니터.
이 모든 것 이전에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는 알고 있니?
딸깍.
몇 번의 신호음이 오가고
섬광처럼 반짝이는 창들에 몸을 내맡기고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겠지.
방금, 하루가 지났지만
세상은 아직도 어두운데,
내일 해를 바라면서도
이곳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도망쳐 온 곳과 별로 다르지 않은 도피처.
온갖 악취 나는 진실과
오색의 텍스트가 내 손을 붙잡는데
어디서부터 아침이 올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런데,
텍스트와 기계음.
이 모든 것 이전에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
대답해 줄 수 있니?
전신주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광고지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시간의 일부
나의 주위를 감싼 채 슬금슬금 다가오는 회색 빛
그리고
빛을 발하는 모니터
먼지 섞인 답답한 공기까지
사람들이 사춘기 때의 공허하고 슬픈 가슴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언제쯤 씻겨나갈까.
오늘도 비구름을 바라지만
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
하아.
한숨을 내쉰다.
한숨마저 벽에 막혀 나가지 못하고
모니터 불빛만이 존재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맴돈다.
딸깍.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검지손가락의 짧은 움직임.
하루 종일 돌아가는 본체의 소리.
상처를 숨기기 위해 오늘 하루도 헤드셋을 끼고 음량을 키운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이전에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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