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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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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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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
추천수 :
119
글자수 :
103,787

작성
20.05.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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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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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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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판게아의 중원 (9화)

DUMMY

그리하여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도 세 번이나.


첸첸은 여민과 이치승을 잠시 살펴봤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두 무인. 이들이 밀월단의 손무혁이 말했던 추적자일 것이었다. 당연히 율이 잘라 온 그걸 돌려받자고 여기까지 추적해 왔을 리는 없고, 복수. 그것도 아버지의 원수.


그런 자를 무슨 수로 자신이 설득해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하필 지금의 율은 마음이 급하다. 발에 걸리는 돌멩이 따위 눈길조차 주지 않고 걷어 차 버릴 것이다.


첸첸은 말을 걸어 온 여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죽겠구나. 그럼, 그 후엔. 또 무엇이 따라붙는 것일까.’


여민 또한 첸첸과 율을 살펴보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처자와, 경단을 빨아 먹고 있는 소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치승에게 말을 걸 듯 입을 열었다. 농을 던지듯이.


“아마도 세외무림이지 않을까 했었지?”


“그랬지. 그쪽으로 생각되는 게 자연스러웠지.”


여민이 다시 한 번 첸첸과 율을 지그시 살펴봤다. 아래위로 훑는 눈길이 불쾌함을 유발했다.


“헌데, 두 분께선 아예 무림인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는 건 손을 쓴 자는 따로 있다는 뜻이 되려나.”


율이 고개를 치켜 올리는 것이 첸첸에게 보였다. 경단을 꿴 꼬챙이를 어느새 역수로 쥐고 있었다. 이 남자의 얼굴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바로 다음 순간에 보게 될 장면일 수도 있음에, 첸첸은 주먹을 꽉 틀어쥐며 긴장했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소. 우리는 그저 소저들께서 관여하신 그 물건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오. 아직까지는 확실히 그렇소..”


첸첸은 이 남자의 말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상대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조심스레 눈을 떠 보았는데 모가지는 아직 붙어있었다.


어떤 효과를 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여민은,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가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그저 무슨 일이, 왜 일어난 건지만 차근히 설명해 주시면 그뿐이오.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이 정도면 싼값 아니오? 피차 험한 꼴 볼 필요는 없잖소. 어차피 소저들께선 그저 어쩌다보니 관여..”


문득 무언가가 느껴져 율을 보게 된 여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을 느꼈다. 이 소녀에게선 어떤 준동도 없다. 그저 쏘아 볼 뿐인데, 여태껏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기운이 전해졌다. 그것도 갑자기.


‘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으려......... 뭐!!’


[슈악-]


날아들었다고 느꼈다. 직전에 잠시나마 혹시 모를 일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간신히 반응을 했다. 급하게 목을 뒤로 젖혔다. 처음의 하나에 목살을 베였고, 이후에 피부가 베였고, 마지막 하나가 솜털을 자르고 지나갔다.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여민의 턱 밑을 지나갔다.


여민은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린 탓에 기혈이 들끓었다. 그런데 그 순간.


[콰악]


뜬금없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나무기둥에 무언가가 날아가 박히며 소리가 났다. 여민의 눈에 나무에 박혀있는 물체가 보였다. 경단을 꿰고 있던 나무꼬챙이. 그리고 그 보다 더 여민을 경악하게 한 것이, 그 나무보다 좀 더 나아간 자리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에 손에는 반쯤 남아있는 나무꼬챙이가 쥐어져 있다.


‘날아간 조각보다 먼저 가 있다? 논 할 도리가 없는 신기. 허나, 그런 가당치도 않는 속도로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게다가 무기는 이미 부러져 한 뼘도 안 되는 꼬챙이. 이미 한 번 피해냈다. 이젠 그 보다 더 간단하다. 반응만 할 수 있으면..’


한 발 옆에 서 있던 이치승이 내력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민은 그러지 않았다. 강력한 일격 따위 필요도 없다. 저기서부터 일직선으로 온다. 그때, 검을 그저 내민다. 그것만으로도 된다.


여민은 내공을 올리는 대신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검을 꽉 틀어쥐었다. 움직임이 시작되는 그 순간의 전조. 소리. 땅을 딛을 때 흙이 튀며, 몸이 움직일 때 옷자락이 펄럭이며. 뭐든 좋았다. 필연적으로 먼저 온다. 그 어떤 동체도 음의 파동보다 빨리 올수는 없다. 그것이 섭리.


여민은 오감을 다 열었다. 이제 여민의 모든 감각엔, 저 멀리 서있는 소녀만이 존재했다.


‘경탄할만한 존재다.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다. 외관은..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반로환동. 세상은 무섭도록 넓구나!’


소녀가 천천히 움직였다. 한발을 뒤로 빼고 몸을 지면으로 잔뜩 낮춰 웅크리곤, 이쪽을 노려보고있다. 그 순간.


[휘오오오-]


그 어떤 과정도 없이 소녀는 거대한 내공을 끌어올려 몸 안의 한 점에 응축시켰다. 고요하던 주변의 공기가 소녀를 중심으로 빨려 들어와 크게 요동쳤다.


“이런 미친!!”


숨도 쉴 수 없는 압박감이 여민과 이치승을 덮쳤다. 이대로 돌진해 베어버릴 것이다. 아예 대놓고 엄포를 놓고 있다. 너무나도 확실한 상대의 다음 수. 그래서 더 커지는 두려움.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이치승이 먼저 움직였다. 선수를 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는 검을 앞으로 찌르며 검기를 날리는 자신의 필생의 절기. 일점검기를 시전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가며 검을 든 팔을 뒤로 쭉 뽑았다.


“하아-앗!”


기합성을 지르며 이치승이 움직인 찰나의 순간. 여민의 고개가 이치승을 향해 돌아가려던 그 순간.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움직임들이 여민의 청각에 순차적으로 날아들었다.


[휙]


[슥슥슥-]


‘....?’


[파아아-앙!]


‘!!!’


열려있는 여민의 오감에 섬뜩함을 남기고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슈아아아-]


표정이 굳어있는 여민을 향해 엄청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며 몸을 휘청이게 했다. 부릅뜬 눈 위의 흩어진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나부꼈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지가 요동치는 소리를 일으키곤,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와서 베고 지나갔다...’


[털썩]


이치승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목을 틀어 쥔 양손의 손가락 틈을 타고,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표정으로 보건데, 무엇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았다. 여민이 먼저 몸을 돌려 소녀를 향했고, 이치승도 소녀를 마주했다.


무기를 쥐고 있던 소녀의 오른 손은, 새끼손가락부터 두어 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부러진 나무 조각이 손바닥을 뚫고 손등으로 튀어나왔다.


소녀는 천천히 다가왔다.


발치까지 다가 온 소녀가 물끄러미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존재. 압도당한 여민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이치승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가가 부들거리다, 붙들고 있던 내력이 다 했는지 크게 베인 목이 뒤로 확 꺾였다.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졌다.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소녀가 이치승이 떨어뜨린 검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여민을 향해 겨누려다 검을 떨어뜨렸다. 소녀는 손바닥을 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손을 뚫고 나온 나무 조각을 이빨로 물어 뽑았다. 이내 몸을 굽혀 검을 집으려 뻗은 손을 누군가가 말리듯이 잡았다.


“율.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율. 이름은 율인가..’


두 사람이 여민의 눈앞에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율이라 불린 자가 걸어갔다.


‘하아, 하아..’


남아 있는 한 명은 여민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귀인의 출현이 당신의 일가에겐 흉이 되었으나, 그 또한 하늘이 정한 일. 애초에 귀인의 신물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당신들이 함께 얻은 업보입니다. 부디 하늘이 인도하시길..”


이제 둘 다 떠나갔다. 아니 셋 다.


‘하아, 하아... 율. 귀인이라 칭하는, 율.. 하아.’



땅거미가 지고, 주변 사위가 어둑어둑 해지도록 여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어느 때에 다시 여민 앞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눈앞에 서서 자신을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한 무리의 사내들을 여민은 마주했다.


“이, 있다! 이 개자식이 여기 있다!”


‘크흐흐.. 젠장.’


정신을 잃은 여민이 풀썩 쓰러졌다.



[촤아-악]


“푸웁! 허억.”


정신을 잃고 있던 여민은 한 바가지 찬물 세례를 받곤 깨어났다. 손발이 구속구에 의해 제압당해 있음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운기를 해보았으나, 역시 기혈도 제압해두었다.


“후- 얼마나 지난 거지?”


“나흘.”


여민이 고개를 조금 들어 두 남자를 보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혀를 내밀어 핥았다.


“뉘신지 고맙군. 친절하기도 하셔라.”


“내가 누군지 아는가?”


자신을 굽어보고 있는 남자가 물었다. 이미 보내버린 이청지와 비슷비슷한 외관. 여민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크흐. 흐. 글쎄올시다. 그런 것엔 영 관심이 없어놔서. 풍림방의 대빵 쯤 되시나보오.”


[푹!]


“크악!”


풍림방주 이관수 옆에 서있는 젊은 남자가 여민의 허벅지를 검으로 찔렀다. 여민이 고개를 들어 서로 노려보았다.


“후욱. 크크. 독기가 잔뜩 올라 있는 걸 보니 이청지의 아들 놈 쯤 되나보군. 크크크.”


남자가 허벅지에서 검을 빼내 치켜들었다.


“그래. 내가 그분의 아들이자 풍림방의 일대제자 이수다. 오늘 널 죽일 자의 이름이니 새기고 가라..... 후아악!”


[덥썩!]


풍림방주가 검을 휘두르는 팔을 낚아채 잡았다. 이수는 방주를 쏘아보다가 고개를 획 돌렸다.




“조금 더 참아라. 맹주가 거의 다 왔다고 하니..”


“이런 제기랄!”


오가는 말을 듣고 있던 여민이 고개를 숙인 채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쿡쿡. 내가 왜 아직 살아있나 했더니만, 맹주셨군. 헌데 왜지? 맹주가 나를 친히 보살 필 이유가 없을 텐데?”


“그건 맹주께 있어야겠지. 이 나를 포함한 풍림방 전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요청한 것이니. 헌데, 이상한 일이군. 그만한 사정을 본인인 네 놈이 모를 수가 있나?”


“글쎄. 친히 주살하셔야 할 은원이 있을 수도 있겠지. 워낙에 그런 걸 생각 안하고 다녔던지라.”


풍림방주가 피식 웃으며 여민을 쳐다봤다. 그리고 의미 있는 눈빛으로 잠시 더 여민을 바라봤다.


“여씨세가의 소가주 여민. 듣던 대로 괴이한 놈이로군. 한 가지만 묻지. 우리 풍림방도 생각을 안 한 거였나? 네 놈의 방랑생활에 지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 자명한데 말이야. 사제를 무슨 수법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묻지 않겠다. 다만 왜. 왜 그랬는지는 무척 궁금해지는군. 얘기는 들었다만, 고작 그깟 일로 그랬을 리가 없잖은가.”


실실 웃고 있던 여민이 정말로 심각한 표정이 되어 이관수를 바라봤다.


“고작이라니. 심각성이 안 느껴지시나? 그런 건 안 참아지는 법이야. 그랬다간 자다가도 홧병이 도져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보고 있기조차 힘들어지는군. 넌 정말 이상한 놈이다 여민. 왜 그렇게 사나? 모든 무림인이 부러워 할 만 한 자질을 가지고도, 능히 무림의 역사에 이름을 올릴 실력을 갖추고도. 왜..”


“크흐. 당신도 알게 되면 그까짓 무림역사 따위 다 시시해 질 거야. 자기들끼리 천하제일이 어쩌고 놀고들 있지만, 밖에서 들어온 옷 쪼가리 하나에도 그 천하는 흔들렸어. 왜 이렇게 사냐고? 글쎄. 중원 따위 한 점에 불과할 만큼 세상이 넓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이려나. 크큭.”


여민을 남겨두고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공을 폐할 것이다. 남은여생 네 놈이 그토록 좋아하는 방랑이나 하며 보낼 수는 있게 해주마.”


이윽고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다.


“크흐.흐. 하하하핫..”


“흐....흐흑.”




-10화에 계속


작가의말


실수로 공지한 시간보다 빨리 올려버렸습니다.


되도록 시간은 철저히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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