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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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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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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19
글자수 :
103,787

작성
20.05.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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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판게아의 중원 (3화)

DUMMY

저 멀리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한양. 이번 여정에서 들르게 될 두 번째 도시이자, 최초의 목적지. 앞전에 경유했던 벽도는 비견 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도시임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마을의 입구가 무려 성문이다. 아마도 사람들로 북적북적 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착오가 생겨선 곤란해. 제발 옷가지만이라도..’


첸첸은 자신의 행색을 살펴봤다. 활동하기 편한 일상복이라곤 하나, 검은 일색. 거기에 얼굴을 좀 가려야 할 듯싶어 두른 검은 복면까지. 멀쩡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긴 여행을 거치며 쌓인 흙먼지 따위로 옷을 아예 떡칠해 놓았다.


‘하아. 수상쩍어.’


자연스럽게 일행에게 눈길을 돌려보니, 여긴 더 가관이다. 아무렇게나 주서 입은 터라 몸에 맞지도 않는 옷차림이, 막대기에 옷을 걸쳐놓은 허수아비를 연상시켰다. 게다가 어찌 할 방도조차 없는 저 새하얀 피부. 그걸 또 어떻게든 가려보겠다고 머리에 널어놓은 넝마를 쳐다보고 있자니, 절로 도리질을 치고 있는 첸첸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어. 처음부터 무엇인가가..’


넝마를 슬쩍 치워내보곤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귀인의 예상 밖 행동을 돌발변수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이런 존재가 세상을 돌아다님으로서 다분히 벌어질 일들, 그래서 우리가 준비 된 것이었어.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냐. 이분을 도달하게 해야 한다. 거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역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해.’


눈을 질끈 감고 각오를 다져보는 첸첸. 여기까지 오면서 생긴 일들을 복기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여정엔 두 번의 돌발 상황이 있었으니..


울창한 숲속의 소로를 지나던 중,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귀인이 경로를 틀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뭔가를 보고 기억을 찾아가는 것처럼.


기이하게 여겨진 첸첸은 묵묵히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산속을 헤매다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 다다랐다.


산 중턱. 저 아래가 뻥 뚫린 시야로 시원하게 내려 보이는 산마루에, 작은 폭포가 있었다. 떨어지는 폭포수 뒤쪽 절벽에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당연히 이곳을 찾아왔겠거니 생각 한 첸첸은 동굴로 들어섰는데, 잠시 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혼자 들어와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귀인은 저 앞쪽에서 뭔가를 만지기도 하고, 빙글빙글 방향전환을 해가며, 서서히 동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기문을 파훼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상한 상황. 이곳엔 어떤 진법이나 결계가 펼쳐져 있지 않았다. 첸첸은 그냥 걸어 들어왔으므로. 귀인의 기억에 저장 된 이 장소엔 그런 것이 있는 건가 생각되기도 했다. 혹은 귀인에게는 보이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는 건가.. 기이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려 다시 동굴로 들어섰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사람의 인영이 어른거렸다. 흠칫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돌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이 서있었다. 이게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는 첸첸을 향해 귀인이 말했다.


“없다.”


이것이 첫째, 없다는 돌발 상황.


그렇게 발길을 돌려 나아가던 중 어느 마을에 도달했다. 첸첸의 지도상에서 첫 번째 보급처로 동그라미 표시 된 마을. 특히, 옷이 절실히 필요했다.


마을 어귀, 장터에 다다를 무렵. 저 앞에서 지체 높아 보이는 한 사람이, 두 명의 호위를 거느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다부진 품새에서 흘러나오는 고강한 경지. 평범하지 않은 인간. 귀인의 이질적인 어떤 기운이라도 감지 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


첸첸은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에, 귀인의 손을 잡아 끌어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나아가지 못했다. 귀인이 우뚝 서서, 범상치 않은 그 인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러시는지 물으려는 첸첸을 향해, 말했다.


“있다.”


이것이 둘째. 있다는 돌발 상황.


이후 이어지는 기억을 떠올려보는 첸첸의 가슴은 지금도 벌벌 떨렸다.


객잔 내, 몇 개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귀인이 대인이라 불리는 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대나무 젓가락을 역수로 쥐고, 먼발치에 있는 사람을 향해 겨누고 있는 채로. 아마도 뒷덜미. 무예에 관한 폭넓은 배움이 없는 첸첸의 눈에도, 젓가락의 궤적이 보일지경이었다.


행색이 행색이라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처지임이 다행스러웠다. 엄청나게 수상쩍은 행동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에 간헐적으로 숨을 뱉어내던 첸첸은, 귀인이 느닷없이 젓가락을 허공에 휘둘렀을 때에 이르러선, 숨이 아예 멈춰버렸다.


재빨리 건너편 상대를 살폈다.


전설에서나 나올 무엇이 젓가락에서 뿜어져 나가 도륙을 내버리는 일은, 천만다행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인은 손에 쥔 젓가락을 갸우뚱 쳐다보고 있었다. 허공을 가른 젓가락은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어쨌거나 일단, 현재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첸첸은 인지했다. 그 순간 숨이 돌아왔다.


[딸-꾹]


다급하게 물 한 모금 마시려는 첸첸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원망스러운 사람은 저쪽으로 다가갔다. 혼자 남은 첸첸이, 마음속으로 죽고 나기를 수차례 겪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귀인이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쇠 젓가락을 손바닥에 가로로 올려놓은 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잠시 뒤엔 눈을 감기까지 했다.


이 장소에 홀로 있는 듯.


얼마간 겪으며 첸첸이 알게 된 건, 저러고 있을 땐 뭔가 중요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첸첸이 죽고 나기를 수차례 겪은 후, 귀인이 손바닥을 오므려 젓가락을 쥐었다. 그리곤 위쪽으로 삐져나와있는 젓가락의 머리 부분을 엄지로 꾹 누르자, 그 부분이 꺾어지며 직각 형태가 됐다. 그러더니 탁자 위에 놓여있던 둥글고 평평한 간장종지를 집어 들어, 정중앙 부분을 젓가락으로 스윽 찌르자 관통이 됐다. 뭔가를 만드는 것 같았다.


종지를 젓가락의 꺾어진 부분까지 밀어 넣자, 종지가 칼날받이가 된 뾰족한 단검 같기도 했다.


물론 첸첸이 무기에 정통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저런 형태의 무기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얼핏 생각해도 단검을 운용하는데 날받이가 필요한 무공은 없을 것이며, 검신이 뾰족하다는 것은 찌르기를 위주로 할진데, 그러기엔 너무 얄팍해보였다.


첸첸으로선 알 수 없는 일. 저것은 축소판일수도, 그저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형상일수도, 혹은 애초에 무기가 아닐 수도 있다. 뭔가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 낸 것으로 미루어, 종래에 저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그랬는데 곧장 그것을 무기로써 사용했다. 눈앞에 서 있던 귀인이 객잔의 출입구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 동선의 중간 어디에선가 대인으로 불리는 자의 옷자락이 잠시 풀썩 거렸다는 것을 느꼈다. 또는 착각했다.


첸첸은 황급히 움직였다. 지나치면서 보니, 뒷덜미 쪽의 옷자락이 잘려있었다.


죽었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려다가, 객잔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 첸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이 빠져나갔고, 들어서던 남자 또한 첸첸을 그냥 보냈다.


그 남자는 객잔 안의 누군가에게 시선이 고정되어있었다.




성문이 가까워지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첸첸은 군중의 무리로 들어서기 이전에 귀인을 잠시 돌려세웠다.


‘귀인이 예언을 행해나감에 있어 봉착할 난관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야. 그런 일은 알아서 능히 해쳐 가실 분. 되레 사소한, 아주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 그렇기에 여기 있는 것이다, 첸첸.’



“감히, 무례를 범하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귀인


“귀인의 목적이 어찌됐든 인간 세상에 있으니, 어느 정도는 섞여 들어갈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저번과 같은 일이 계속 된다면 자칫 큰일을 그르칠까 염려되는 바..”


“그래서?”


“하여, 저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위해서, 우선은 귀인께도 적당한 이름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혹여 기억 속에 떠오르시는 존함은 없으신지요.”


잠시 생각에 빠져들더니 곧 이름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알아듣지 못 할 언어로 쏟아냈다.


“울라우”


“데커드”


“다카하시”


“이율”


“손승찬”


“위시”


“카르나시드”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저 말했다.


“기억 속에 떠다니는 이름, 내 것이 아닌 이름”


쏜살같이 지나간 단어의 나열 속에서, 단 하나가 첸첸의 귀로 날아와 꽂혔다. 이율. 발음상으론 이곳에서도 있을 법한 이름. 갖다대보니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 이름. 이가(李家)의 율. 화색을 띈 첸첸이 손뼉을 짝하고 쳤다.


“이율! 그것으로 하심이 어떠십니까? 혹, 꺼려지시는 것이 아니시라면..”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럼, 이제 다 됐어?”


첸첸이 슬쩍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다 된 것은 아니고, 뭔가 더 중요한 것이 남은 것 같다.


“그러시다면, 이것은 단호하게도 어디까지나. 귀인과 제가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함으로.. 앞으로는 제가, 흠흠. 율이라 편하게 불러야 할 필요가 강력하게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래.”


퉁명스런 투로 허락은 했으나, 첸첸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생각되어 목숨을 걸었다.


“율아?”


다시 첸첸이 죽고 나기를 수차례 겪었을 시간이, 섬광처럼 지난 후


“왜?”


‘!!!’


“허, 허락을 하신 것으로 받아드리겠습니다.”


“나쁘지 않아. 어쩐지 그리운 느낌도 있어. 좋아.”


한 고비가 더 남아있다. 첸첸은 여기서 타협하지 않으리라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허나 방심은 금물. 저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생의 마지막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능히 그러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


“또한 그러시다면. 방금 전 오간 대화는 귀인과 저의 관계가, 설정 상 자매임을 상정한 것으로서.. 제가 ”율아“ 라고 하였을 때, 귀인께선 ”왜?“ 뒤에, 그,. 어, 언니라고 맺음을 하시는 것이 매우 타당하게 자연스럽다 사료되옵니다.”


둘은 손을 잡고 성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무엇보다 절실한 옷 가게를 찾아서,


율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웃고 있다.


“가자. 언니~”


-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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