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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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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359
추천수 :
119
글자수 :
103,787

작성
20.05.13 11:00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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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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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판게아의 중원 (4화)

DUMMY

객잔을 나서는 첸첸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랜만에 맞이한 재대로 갖춰진 잠자리, 묵은 때를 씻어내고 갈아입은 새 옷가지. 딱 하루뿐인 편안함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 결 좋아졌다. 어떤 사명감에 짓눌려 본인조차 몰랐지만, 지난 이십여 일 간의 강행군에 지쳐있었다.


율도 좋아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은 그대로지만 약간의 생기가 머물러 있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율이지만, 첸첸에겐 매순간 전해지는 거리감이 있다. 이질감. 그것의 정체를 첸첸은 외로움이라 생각했다. 무엇과도 같지 않은 존재가, 세상에 홀로 있다.


왜?, 어째서, 그 벽 속에 있던 걸까. 어떤 공간이었을까. 얼마나 있던 건가. 누군가 그 벽을 열기 전까진 율은.. 나올 수도 없던 걸까. ‘그’가 해내고야 말리라는 그 예언은, 율의 의지인가.


율은 대체.. 무엇일까.


환한 거리로 나오자 햇살이 눈부시다. 눈이 시렸는지 찡긋거리는 율의 표정에 미소가 있다. 하얀 도화지엔 희미하게 색채감이 생겼다. 색의 정체가 첸첸 자신임을 느낀다. 그것이 귀인이 행할 숙명에 득일지, 실일지는 알 수 없다. 함부로 해선 안 될 일이지만, 왠지 첸첸은 마음이 동한다. 율에게서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는 색감에, 기분이 좋다. 게다가 날씨마저 좋다. 잠시만이라도 이 일상의 들뜸을 율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인간을 전해주고 싶다.


“율아~. 우선 어제 내가 말 한 곳으로..”


율의 손을 살포시 잡고 이끌어 나서려던 첸첸. 그러나 나아가지 못했다. 돌아보니 율이 우뚝 서있다. 햇살 때문에 여전히 찡긋거리고 있는 율의 표정에 살기가 있다.


“어디.”


역시 율. 간단치는 않다.


“아, 예. 이쪽으로.. 나서시지요.”



[까악- 까악]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까마귀가 동네를 한 바퀴 돌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목적지에 당도한 첸첸은 당황하고 있다.


‘무언가가, 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일의 중차대함으로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맞다. 은밀하게 까진 아니더라도 대놓고 드러내서 좋을 것은 없다. 부족의 가르침으로는 이자들이 무림의 비밀단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무림에서 통용되는 이름마저 밀월단.


헌데 이 장사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첸첸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가옥의 대문에 걸린 현판을 다시금 쳐다봤다.


[천지 소식통 – 밀월단 한양지부]


첸첸이 가진 정보와는 다른 부분이 있으니, 천지 소식통. 그럼에도 첸첸이 맞게 찾아왔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문구 끝자락에 찍혀있는 문양. 새의 족적을 연상시키는 모양.


천지 소식통이라 하니, 세상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언뜻 연관이 있는 것 같은 문양이지만.. 저것의 진실은 새가 아니다.


‘네 개의 손가락. 이곳이 확실하다.’


장원을 빽빽하게 채웠던 줄은 거의 반나절은 지나서야 줄어들어, 첸첸과 율은 드디어 밀월단 한양지부의 실내로 들어섰다. 실내로 들어서는데 느닷없이 여러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첸첸은 화들짝 놀랐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천지 소식통입니다!!]


실내는 제법 넓었다. 넓은 공간에 십여 개의 탁자가 오와 열을 딱 맞춰 자리해 있었는데, 탁자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한 명씩 배치돼있었다, 그들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과 무슨 상담을 진행하는 듯 보였다. 엄청나게 시끌벅적했다.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탁자는 무작위로 자리가 났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자리에 앉아 응대를 받았다. 첸첸은 자신의 준비엔 없는 이 낯선 풍경에 아연실색 하였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실수하지 않으려 이 모든 순서와 과정을 그대로 머리에 때려 박았다.


이윽고 그녀들의 차례가 왔다. 첸첸은 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걸음걸이로 자연스럽게 빈 탁자로 다가가 앉았다.


“접수증이요.”


“네? 무슨 증?”


뭔가를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는 여자가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위압감마저 느끼게 했다.


“고객님. 저희 업체 처음 이용하시죠?”


첸첸이 심히 위축 된 몸짓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저기 저쪽에 [안내]라고 써 있는 탁자 보이시죠? 저쪽으로 가시면 저희 직원이 자세히 안내해 드릴 거예요. 실장님! 여기 고객님 좀요!”



첸첸은 실장이라는 이 남자가 영 미덥지 못하다. 인상부터가 그러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헤헤”


특히 실실 흘리는 저 웃음이. 이 사람한테 이걸 전해도 되는 건가. 이 사람은 지금 알고는 있는 건가.


파멸을 몰고 올 용이 출현했으며, 그로인해 ‘그’가, 현시대에 재림했다는 것을?


남자는 다소 당혹스러웠다. 웬 여인들의 시선이, 자신을 아주 발가벗겨 놓는 것 같다. 특히 더 어려보이는 쪽의 시선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게 했다. 한 줄기 땀이 뺨을 타고 흐른다.


“고, 고객님?”


첸첸은 뭔가가 잘 못 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폭포수 동굴에서 율이 뭔가를 얻지 못했을 때부터. 그 율의 물건이 인간에게 넘어가 있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착오가, 어디선가 뒤틀렸다. 그러나 자신이 뭔가를 바로 잡을 수도 없다. 뒤틀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다. 약속 된 일을 행한다. 다만..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문제는 장소와 상황. 공개 된 장소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다. 허나 그래서, 되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황. 첸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여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기다리는 자로부터 떠나온 자에게로.”


첸첸은 남자의 반응을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남자에게 기대할 것이 이미 없었다. 다만 남기고 간다. 율도 첸첸을 따라 나섰다.




여민은 주변을 슬쩍 살펴봤다. 대낮에 야외. 평소라면 손을 쓰고 싶지 않을 상황이나, 벽도를 떠나오면서부터 뭔가 끓어오른 욕망을 풀지 못했다. 거기다 마침 놈들이 자신을 끌고 온 장소가 또 적당히 으슥했다. 보는 눈도 없고, 개별행동을 하기로 한 이치승의 합류도 다소 시간이 남았다.


‘뭐, 가끔은 괜찮겠지.’


그때.


“잠깐! 거기까지.”


‘저건 또 뭐야?’


이제 막 한 판 벌어지려는 상황을 말로써 중단시키며 다가오는 남자를, 여민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이 너 댓 명의 하룻강아지들이 깍듯해진 것으로 보아..


“견주 쯤 되시려나?‘


“사, 사숙께서.. 어인 일로”


‘사숙이라.. 한양 땅에서 사숙이라 불린다면, 풍림방에서도 배분이 다섯 손가락 안쪽..’


“허허. 풍림방의 이청지라 하오. 혹 우리 아이들이 무슨 결례라도..”


‘이청지.. 쓰읍. 땀 꽤나 흘려야 할 이름이군.“


여민의 얼굴에 아주 잠시 불쾌감이 스쳤다. 인자해 보이는 풍모, 그자체로 무림의 명숙. 딱 그렇게 생긴 인물이, 나이로 보나, 배분으로 보나 누가 봐도 한참 아래가 분명 할 여민에게 먼저 포권을 하며 말을 청한다. 그 하해와도 같은 인품. 더구나 제자들에게 자초지종도 묻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여유.


극심한 불쾌감이 솟구쳤다. 여민답지 않게 순간적으로나마 얼굴에 표시가 날 정도로.. 여민도 곧장 포권을 했다.


“내세울 이름도 없는 말학입니다. 무림명숙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 보기 드문 기재일세. 어디에 적을 둔 분인지 알려 줄 수 없겠는가.”


‘하하악. 이것들은 하나 같이.. 괘씸하면 검이라도 뽑을 것이지..’


여민은 다시 포권을 했다.


“무명의. 무림, 말학. 입니다.”


풍림방의 제자들이 당장에 달려들 듯 나서는 걸 이청지가 한 손으로 막아섰다. 얼굴에 풍모는 이미 지워지고 핏대가 서 있었다. 여민과 이청지는 잠시 동안 눈빛을 마주봤다. 잠시 뒤 여민이 먼저 눈을 거두었다.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잠시 침묵한 뒤 이청지가 말했다.


“천천히 둘러보시게. 한양엔 눈요깃거리가 많으니..”


걸어 나가는 여민의 등 뒤로 이청지의 얼굴이 함께 보인다. 여민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흐른다.




까마귀가 등장했다 사라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여민의 표정이 몹시도 수상쩍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봐?”


“후후, 있을 예정이지.”


“언제? 지금 바로?”


“왜 네가 좋아해? 후후, 그 건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은 여기.”


여민이 지목한 곳을 보았다.


[천지 소식통- 밀월단 한양지부]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그 순간 누가먼저 성큼 걸어 나와 여민일행의 옆을 휙 지나쳤다. 이어 여자아이 하나가 따라 나오는 게 보여서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선 후, 안으로 몇 발짝 걸어 들어간 그때, 여민의 머릿속으로 먼가가 퍼뜩 스쳐갔다. 백옥보다 하얀 얼굴..


여민이 뒤를 돌아보려는데 안쪽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됐다.


“오늘 접수 마감됐습니다.”


웬 묘령의 여인이 어디서 단체로 교육받은 것 같은 미소를 띠고 여민일행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었다. 여민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퍽 곤란한 상황이군. 이보시오 낭자. 그 일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일어난 것이오? 들어오고 나니 벌어진 일이오?”


“전에 마감 됐습니다, 고객님.”


“험험, 내 들어오는 길에, 나오는 사람과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시간이 다소 지체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소만, 그건 귀사의 책임이 아닐는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시고요 고객님. 익일 영업시간에 다시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인의 미소가 방벽과도 같이 느껴졌다. 여민과 이치승은 방도가 없겠느냐고 서로를 쳐다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몸짓만 주고받았다. 잠시 고민해 본 여민은 결단을 내렸다. 이런 장소에서 신분을 밝히는 건 어리석인 짓이지만 헛걸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내가 여씨세가의 여민이라는 사람이오. 찾아보면 거래내역도 여럿차례 있을 터, 아무리 독점적 위치에 있다하나, 기존고객을 이런 식으로 대접해서야 되겠소?”


이때. 먼발치에서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한 남자가, 여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눈을 번뜩였다. 남자는 서서히 다가와 방벽과도 같은 미소를 소유한 여인 옆에 섰다.


“김미영 씨.”


‘김미영! 허허. 심상치 않은 이름이로다.’


“이 고객님 내빈실로 모셔드리세요.”


여인의 안내에 따라 여민일행은 발걸음을 옮겼다. 여민은 이 여인이 어디에선가 반드시 큰일을 낼 사람이라 생각해봤다.



-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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