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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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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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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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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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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판게아의 중원 (10화)

DUMMY

첸첸은 분명 깊은 산속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눈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낭떠러지 지형이 드러나 깜짝 놀랐다. 산의 중턱이 잘라 낸 것처럼 갑자기 끝나있었다.


율이 낭떠러지 끝에 서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첸첸이 다가가 내려다보니 까마득히 아래에 호수가 있었다. 서있는 곳에서 보이는 시야에, 호수의 물줄기가 아래로 유유히 빠져나가 드넓은 장강에 도달하는 경치까지 보였다.


산꼭대기에서 발원한 물 한줄기가 산을 타고 흘러내려와 첸첸의 눈앞에서 아래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가 바람에 흩날리며 비처럼 흩뿌렸다.


사시사철 비가 내리는 장강의 수원지. 여기서 내려 보니 우도는 땅이 아니라 호수를 말했던 것임을 첸첸은 알아차렸다. 호수가 주변의 땅위에 섬처럼 있어서가 아니었다.


너무도 깨끗해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에 첸첸은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역시.. 딱 맞아떨어졌다. 첸첸은 벅차올랐다. 아직은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쓰임이.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호수 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서 있는 뒤쪽의 절벽이 인위적인 느낌을 들게 했다. 예의 그 벽으로 된 문은 아니었으나, 이곳을 들어가야 한 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듬성듬성 쇠가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첸첸은 아까 저 위에서 입구를 눈으로 확인해뒀다.


첸첸과 율이 다가오고 있는 걸 본 밀월단의 무리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섰다. 대열에서 손무혁의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이, 다가오는 그녀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섰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보이기 시작하는 노인. 얼굴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주름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장구한 세월을 느끼게 했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 이르자 앞으로 나선 노인이 그녀들을 향해 무릎 꿇었다. 연이어 밀월단의 모두가 그렇게 했다. 첸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가 무릎 꿇어 예를 보이는 대상은 율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곧, 앞에 나와 있는 노인이 중후한 내공을 발하여 일갈하자, 뒤의 모두가 머리를 숙였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는 지형의 특수성이 더해져 큰 울림을 만들었다.


“떠나온 자는! 후대에 남김으로 전하려 함이니, 기다린 자여, 기다려온 자여. 떠나온 자는 여기서 끝내 돌아가지 못하였으니, 먼 시간을 넘어 찾아 올 기다린 자의 후대에 고한다. 때가 이르러 돌아갈 곳 있음을, 기다릴 것 있음을. 전하고, 전하여서. 남김이다.”


노인이 만들어 낸 큰 울림이 첸첸에게 날아와, 저 깊은 곳에 파장을 일으켰다.


잠시 후, 내력을 갈무리하며 일어선 노인이 고개를 돌려 밀월단의 대열을 보자, 그 가운데에서 매우 젊고 인상이 깨끗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노인과 사내가 곧 첸첸과 율의 앞으로 다가왔다.


다가 온 둘은 율에게 예를 올렸다. 그 과정에서 첸첸은 노인이 밀월단의 현 단주이며, 이 젊은 사내가, 노인의 표현으론 ‘길을 나설 자.’ 손가람이란 것을 알게 됐다.


율에게 예를 마친 두 사람이 첸첸을 향하려 할 때, 율이 말을 꺼냈다.


“흑월이 사라진 밤에.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노인이 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참 그러다 입을 열었다.


“역시 그 문장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게 맞았군. 귀인께 결례가 안 된다면 그 문장의 다른 의미를 알려 줄 수는 없는지 이 노인이 청하고 싶소..”


이후 밀월단 측인 노인과 단주 손가람이 설명한 그들의 기록에 남아 있는 문장의 사연은 이러했다.


전대의 원정을 함께 떠났던 밀월단의 대표는, 몇 년이 지나 반 쯤 미쳐서 돌아왔다. 그때까지 전해진 바로, 떠났다 돌아 온 자는 처음이었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 그자에게서 이런 말이 남겨졌다.


[귀인은 철갑의 왕을 죽였다. 귀인이 온다. 용을 타고 그자가 온다.]


그러나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미치광이의 전언은 잊혀졌는데,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귀인임을 증명한 자가 밀월단을 찾아와, 다음에 올 귀인에게 함께 전하라며, 뒤에 붙일 문장을 남기고 떠났다. 그 후 여러 차례 문장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했다.


“실제로 요 며칠 우리도 관찰하였으나, 흑월이 사라지는 밤에 이곳엔 아무 현상도 일어나지 않더군. 문자 그대로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뜻. 아마도 오직 귀인만이 알 수 있는 무엇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노인은 율에게서 나올 어떤 답을 기대하며 말끝을 흐렸다. 허나 율은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생각에 빠진 모습으로 방향이 없는 걸음을 몇 발짝 옮겨나갔다.


노인이 저 뒤의 대열에 손짓을 했다. 그제야 무릎을 꿇고 있던 모두가 일어났고, 그 중 손무혁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의 시선은 이내 첸첸을 향했다. 가까이서 마주보니 노인의 얼굴 주름은 대단했다. 거대한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선친께서 말씀하셨지. 이 세상 어딘가에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다, 거기서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네. 모든 것을 잊을뻔 한 우리를, 아무 것도 잊지 않고 찾아 와 준, 기다리는 자의 후예여.”


“우리는 왜 기다리는 자인지.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아까의 전언은 언제부터 있어 온 것입니까?”


노인의 표정은 아무 변화가 없는데 웃어 보였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묻는 소저와 일족은 언제부터 기다려온 것일까.”


“글쎄요. 저로서는..... 아!”


“후. 이제 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게 된 것이지. 그럼에도 전해져왔다. 왜 기다리는 것인지, 무엇으로부터 떠나온 것인지. 전해지지 못했으니 알 수 없게 된 것.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만은 어떻게든 전하였다.”


노인이 손을 뻗어 손가람을 가까이 오게 했다. 그런 후 어깨를 감싸 어루만졌다.


“소저의 일족이 기다려야 했던 건 무엇일까. 용의 출현? 하늘의 계시? 귀인의 재림? 혹은 떠나온 자들의 귀향. 무엇일 수도 있겠지. 혹은 그 모든 것일 수도. 때에 이르러 돌아올 자가 기다린 자에게 도달한다. 남겨서 전해진 것은 이것 뿐.”


결국 무엇도 알 수 없다는 말 같았다. 때가 이르도록 기다리는 것 뿐. 왜 기다리는지를 잊더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않고.


왜인지 첸첸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알 수는 없는 것이군요. 무엇이,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도래하는 것인지는.”


노인의 눈길이 저 멀리까지 가있는 율에게 닿아, 이제 막 다가온 손무혁을 포함한 네 명의 시선이 율에게 머물렀다.


“알 수 있는 것도 있지. 용과 예언의 귀인. 그 반복되는 역사에, 우리는 길잡이로 안배 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후후. 어쨌거나 소저의 말대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 그저 우리에게 전해진 사명을 이행할 뿐. 그것이 끝내 어딘가에 가 닿는 것이겠지.”


첸첸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상쾌해 보였다. 그것이 표정인지, 다른 무엇인지는 첸첸만이 알 일이지만. 그녀는 율을 향해 팔을 크게 흔들어 보이며 불렀다.


“율! 이제 이리로 와!”


그 순간. 노인에게 처음으로 표정이 보였다. 그것은 당혹.


‘이, 이름이 있었던가. 저렇게 귀인을 부른 것은 이 처자가 처음일까. 아니면 기록에는 없는 걸까. 흠.’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리는 시간을 보낸 후, 이제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야 할 시간. 첸첸은 자신 있게 나섰는데.


‘뭔가 잘 못 됐어. 우우웁..’


모두가 숨죽여 주목하는 가운데 첸첸이 호수위로 떠올랐다. 상당히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첸첸은 폭포의 꼭대기에서 호수를 확인했었다. 처음 율을 만난 함몰된 협곡과 같은 모양의 지형이 호수의 밑바닥에 있었고, 그 쇠 벽면의 위치에 뭔가가 있음을 확인했었다. 그랬는데. 자신 있게 호수로 잠수해 들어 간 첸첸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 오직 자신만이 열 수 있는 문. 혹은 장벽. 여하지간 있어야 할 어떤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했다.


구멍. 시커먼 구멍이 물속에 있었다. 누구라도 들어 갈 수 있었다. 다만 첸첸은 들어가지 않았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밀월단, 또는 율과 상의 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간 그래서 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호흡곤란 때문은 아니었고, 두려움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 부분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소. 일단 들어가 보는 것이 옳은 듯 하오.”


손무혁의 말이다.


그리하여, 율과 첸첸. 밀월단의 손가람과 손무혁이 함께 호수로 들어가, 그 호수의 구멍에 도달했다.


물속이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거침없이 들어가는 율을 선두로 모두가 따라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자 곧 돌이었던 지형이 쇠로 바뀌었다. 커다란 원통형 쇠 속을 잠영하게 되었다. 보기에도 신기한 구조물을 첸첸이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뭔가 웅웅하는 진동이 쇠 통을 타고 전해졌다. 다행이라면 길을 찾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다소 지체한 첸첸은 죽지 않기 위해 직선으로 나아갔다.


“푸하-악”


물에 떠올라 차오른 호흡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율이 제일 먼저 지면에 올라섰다. 율은 고개를 끝까지 들어 올려 위를 쳐다봤다.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 된 첸첸도 주변을 파악했다. 호수의 구멍에 왜 접근을 막아서는 장치가 없는지를 바로 이해했다. 물에서 올라 선 원형의 공동은 곡면의 벽이 모두 쇠였다. 이음새조차 없는 쇠 곡면 그뿐,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어떤 전설상의 고수가 이곳에 온다 해도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올라서라는 듯 발판 같은 것이 있었다.


사각의 발판 테두리에,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둘러져 있었다. 불이 아닌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율이 곡면을 관찰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페인 자국들이 있었다. 아마도 발을 디뎌 생겼을 터. 율이 곧장 뛰어올랐다.


[텅]


[터-엉]


[텅..텅.......터-엉]


벽면과 맞은 편 벽면 사이를 번갈아 도약하여 올라갔다. 모두를 기절초풍하게 만들며 어느덧 거의 꼭대기까지 도달한 율이, 발판을 향해 마지막 도약을 했는데..


[촤아아아-]


발판과의 중간지점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뭔가에 막혀 율이 추락했다.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지켜보는 첸첸의 시선 속에서, 율이 젖은 몸을 털어내며 다시 지면으로 올라섰다.


잠시 뭔가 생각을 하던 율. 다시 도약을 했다.


[텅]


[텅...터-엉]


이제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그 찰나의 순간. 모두의 시야에서 율이 사라졌다. 야외에서 들을 때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쇠 벽을 때리며 요동쳤다.


[파아아아-앙!]


율이 지나간 허공에서 뭔가가 녹아 증발하며 날아간 항로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율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쿵]


[위이이-잉]


꼭대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 후. 동그란 원판이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바닥에 거의 다다를 즈음에야 그 원판 위에 율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1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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