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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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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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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
추천수 :
119
글자수 :
103,787

작성
20.05.22 00:01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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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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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판게아의 중원 (11화)

DUMMY

[슈우우-]


율이 타고 있는 얇은 반 구형 원판이, 가벼운 바람을 주변에 흩날리며 바닥에 내려와 멈췄다. 바닥에 내려와서 멈췄는데..


첸첸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허리를 꺾어 원판의 바닥을 보았다. 다시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 지점을 몇 번 찌르듯이 강조하여 지목했고, 옆에 나란히 서있는 손무혁과, 손가람도 허리를 꺾었다.


예언의 귀인. 그것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지금 이 무지몽매한 자들의 눈앞에 전설상에서나 구전되는 공중부양이, 그것도 이물동화라는 입신의 경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원판은 앞으로 미끄러지듯 물웅덩이 쪽으로 움직여 내려앉았다. 그렇게 되니 물웅덩이는 완전히 막혔다. 한 가운데 서있는 율이 무지몽매한 자들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떠, 떠나온 자의 일원 손가람은, 예언의 귀인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야, 타!”


“예?.. 예!”


모두가 원판에 오르고, 잠시 뒤.


[슈오오오-]


“으어어어?”


첸첸이 저 아래에 심장, 또는 내장기관 몇 부위를 두고 온 느낌을 떨치지 못 하고 있을 때. 모두를 싣고 올라 온 원판이, 아래에서 본 발판에 도달에 멈췄다. 발판은 굴로 들어가는 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 그 물이 떨어지며 나는 소리, 어떤 장치들이 구동하며 내는 소리 등이 굉장히 시끄럽게 울리던 철로 된 좁은 통로를 지나, 벽. 막다른 지점에 도착했다.


다들 잠시 멈춰서서 벽을 보았다. 첸첸은 이 벽이 열리는 구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벽으로 다가가 틈이 있는지 손으로 짚어보았는데.


그때.


“소저!”


손무혁의 다급한 외침에 첸첸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첸첸 만큼이나 놀란 표정이 된 손무혁.


“괘, 괜찮소? 방금 소저의 목덜미를. 빨간 선이, 아니 빛이.. 정말 괜찮은 것이오?”


첸첸은 목덜미를 만져보았다. 아무 일도, 아무 감각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근데 뭘 보신 것인가요?”


손무혁이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고선 말했다.


“그, 글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런 얘기가 오가는 중에 율이 스윽 걸어가 벽을 마주보며 섰다. 그 순간 정말로 율의 목덜미에 생전 처음 보는 빨간 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첸첸도 보았다.


“저게 뭐지. 율, 괜찮아?”


율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품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서 손바닥에 붙이듯이 들고는 허공에 내밀었다. 여근추에게서 잘라 온 귀인의 갑주. 그 조각을.


물론 율이 이런 쓰임을 알고 잘라 온 것인지는 확인 할 길이 없지만..


잠시 뒤, 철로 된 막다른 벽에 녹색의 빛을 발하는 고대의 언어가 나타난 후, 벽이 뒤로 밀려 틈이 벌어지며 문이 되었다.


[user authentication pass]


[추우우-웅]



벽이 옆으로 밀리며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빛. 이 굴속에, 눈이 아파 제대로 뜰 수조차 없게 하는 강렬한 빛이 퍼져 나왔다. 율을 제외한 모두가 소매를 들어올려 눈을 가렸다.


율이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율을 따라 들어와 빛이 눈에 익을 때쯤, 첸첸은 네모반듯한 공간에 들어섰음을 파악했다. 너무 환해 새하얀 공간은, 뭔지 알 수 없는 쇠로 된 장치들이 벽면을 빙 둘러 채워져 있었다. 빛을 발산하기도 하고, 어떤 악기로 내는 건지 알 수도 없는 음율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신비의 세계에 들어 선 기분이 들었다.


그 네모반듯한 공간의 중앙에, 다시 네모의 형태로 사면을 둘러막고 천장까지 뻗어있는 투명한 벽이 있었다. 벽인데 투명했다. 너무 투명해서 안의 공간이 바깥에서 그대로 보이는 지경. 모두가 다가와 벽면에 손을 대어보았다. 매끈한 면에 손이 흡착되어 살짝 달라붙은 느낌이 들었다.


첸첸에게 신비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그 벽의 안쪽은,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설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 장식도 없는 네모의 단상 위에, 얼핏 보기에 단지 같은 물건이 올려져 있었다. 위로 손잡이 형태가, 앞으로 주둥이가 나와 있어, 흡사 술 단지 같은 용도를 연상케 했지만, 재질과 화려하고 기이한 형태 모두 처음 보는 것. 이세상의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사면의 벽 중 한쪽 면에, 고대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 IN ]


율이 문자가 새겨진 벽으로 다가서자 예의 그 빨간 빛이 율의 전신을 위 아래로 훑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사람 목소리로 큰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 무슨 주술 같기도 한 말이 첸첸의 귀에 들리기엔..


[도게일리이리 도게이리일리 도개오게도게 독에기마!]


그런 후 율의 앞쪽 투명한 벽면이 위로 올라가며 공간이 열렸다. 모두에게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시 첸첸을 바라 본 율이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은 다시 내려와 이쪽과 저쪽의 공간을 분리시켰다. 율이 안으로 들어가자 고대의 단지는 빛을 발산했다. 단지의 앞면에 마치 사람의 눈동자 같은 것이 빛으로 만들어졌다.


첸첸은 긴장과 걱정을 모두 담은 표정으로 율과, 그리고 율이 마주 한 고대의 단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단지의 주둥이에 가려져 발견하지 못했던 희미한 문자가 아래쪽에 있음이 보였다.


[Tondekeman Limited Edition]


이제 모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며 지켜볼 뿐.



율은 잠시서서 숨을 골랐다. 느낌상 이곳은 아주 중요한 장소. 매우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단지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사람의 음성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어딘지 장난기가 느껴지는 남자 아이의 목소리 같은 것이..


“삐.. 치익- 후후. 드디어 온 거야? 이번엔 정말 오래 걸렸어. 것 봐 내 말이 맞지? 힘든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왔으니 넘어가줄게. 바로 시작하자고.”


눈앞의 단지가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단지가 직접 말을 하는 건 아닌 이상한 상황.


“넌 누구지?”


잠시 음성이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어졌는데 목소리가 거친 남성으로 바뀌었다.


“그런가. 한 대(代)가 끊긴 터울이 만든 부작용으로 보이네. 기억은 어디까지 있는 거지? 상태는? 신체에 뭔가 결함은 없어? 음속돌파 시뮬레이션 테스트는 통과했으니 일단 합격점. 근 골격 부담은 어느 정도였어?”


율이 좀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한 마디로 전부 대답한 거 같은데. 너. 누구냐고.”


[치익-]


이상한 잡음 같은 게 잠시 들려온 후, 목소리가 나이든 여성으로 바뀌었다. 율은 정신 사나워 짜증이 좀 났다.


“저번은 의지박약 상태로 일을 그르치더니, 이번은 아예 축적 데이터에도 없는 멍청이가 돼버렸네. 이래서야 여기까지 올 수나 있을런지.”


“위시. 니가 위시야?”


경쾌한 음율이 흘러나왔다.


“딩동댕. 잘했어. 그래 난 위시. 지구 대 사멸의 마지막 생존자. 더 기억나는 건?”


잠시 간 율의 침묵. 깊은 생각을 하고 난 후 대화를 이어갔다.


“생존자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 넌 생명체가 아니야.”


“그건 기억? 아니면 느낌?


“확실하네. 왜 부쉈다는 말을 남겼는지 이제 알겠어.”


갑자기 수십 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내는 웃음소리가 혼란스럽게 흘러나왔다. 한참이나. 그런 후.


“멍청이가 마지막까지 엉뚱한 짓을 했었나보군. 그래 부쉈지. 그래서 지금 이 만남이 백년 넘게 늦어진 거고. 그래서 어떻게 됐지? 지난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렸을 뿐이야. 스물일곱 번. 자그마치 삼천 백년! 그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었단 말야. 잘 들어. 지난번의 넌 완전히 실패였어. 길을 잃어 못 오는 케이스는 있었어도, 시스템을 치러 온건 최초, 최악의 케이스였다고.”


“하지만 실패였나 보네. 근데 왜 부쉈다고 한 거지. 넌 지금 있잖아?”


“눈앞의 깡통 따위 부숴봐야 아무 의미 없어. AI니까. 알면서도 그런 거야. 파괴했다고 전했어? 그게 뭐겠어, 의미 없으니까 다신 하지 말라는 경고잖아! 떠올려내. 애초에 이 모든 건 네 의지로 시작 된 거였어, 네 선택이었다고. 어긋나지 않고 카르나시드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원한 건 처음부터 너였고!.. 난 조력자일 뿐인 거야.”


율이 눈을 감고 기억 속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시 후엔 뭔가가 정리 된 듯 표정이 편해져 있었다. 율이 눈을 뜨자, 이내 여성의 목소리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장소를 왜 만들어 놨는지 기억났어?”


“응. 뭘 해야 하는지는 일단 알겠어.”


“좋아, 그럼 연다. 하필 최악의 대(代)를 거친 이후 처음이라 데이터가 없어, 안 그래도 불완전한 상태인 너한테 다른 영향은 없을지 불안하네. 그럼 시작한다.”


“응.”


율이 단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솨아아아]



첸첸은 경악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투명의 벽 너머의 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뭔가 말을 계속 하는 것 같던 율이 고대의 단지로 손을 뻗은 것 까지 보았는데, 갑자기 단지의 덮개 같은 부분이 벌컥 열리더니 하얀 냉기 같은 게 뿜어져 나와 삽시간에 율이 있는 공간을 채웠다.


“율!!”


냉기로 가득 차 안쪽의 상황이 보이지 않게 된 벽에 손을 댔다. 순식간에 엄청나게 차가워진 벽에 손이 쩍 달라붙었다. 첸첸이 손을 뜯어냈더니 살갗이 조금 벗겨졌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율!! 율아!”


[쾅. 쾅. 쾅.. 쾅!]


첸첸이 주먹으로 투명의 벽을 마구 두드렸다.


율의 시선이 잠시 어떤 충격파가 전해지는 방향을 향했다가, 뚜껑이 열려, 속이 드러나 있는 단지를 주시했다.


율이 손을 넣어 안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냈다. 손가락보다 조금 더 긴 쇠로 된 길쭉한 관. 손에 쥐자, 바늘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율은 그 바늘을 목에 찔렀다. 그러자 그 안에 든 내용물이 바늘을 타고 율의 신체로 들어갔다.


잠시 간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후우우우-”


율이 다시 눈을 떴다. 율은 단지에 쇠관을 넣고, 다시 새로운 관을 꺼냈다. 그런 후 검지를 붙잡고 당겼다. 우드득 소리가 나며 뼈가 분리되어 뽑혀 나왔다. 그런 후 손가락을 쇠관에 넣고, 그 관을 다시 단지에 넣었다. 단지의 뚜껑은 소리 없이 닫혔다. 불빛도 사라졌다.


“어때? 혹시 모를 부작용 같은 건 없어?”


“하하. 그런 것이군. 태고부터의 내가, 이렇게 나에게 전승되어 왔었군.”


“소실 된 유전자 정보가 상당할 거야. 어차피 몇 번 더 해야 완전한 기억이 돌아오겠지. 더구나 대가 한 번 끊겼던 건 정말 염려 돼.”


율이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HI”


“키키~. 그래 어서와. 키워드를 기억 하는 걸 보니 아주 불완전한 상태는 아닌 모양이네.”


“근데. 원래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트리나나이트 스트로우 소드. 준비 못 한 거야?”


수많은 언어로, 수많은 사람들의, 아무 의미 없는 말소리가 혼란스럽게 울렸다. 나름의 감정 표현이었다.


“네 탓이잖아. 지금 이 정도 가동도 간신히 하고 있다고. 영상처리 기반도 없어서 지금 네 모습을 볼 수조차 없는 지경이야.”


“뭘 어떻게 해 놨는데?”


“지구 메인 시스템을 아예 파괴했어. 정말 끝나는 줄 알았다고. 어쨌건 스트로우 소드는 손을 써두긴 했는데. 그건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밀월단을 통해 그쪽에서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인과 연결 될 수도 있을 거야. 형태. 무게, 균형, 질감, 전부 기억나지?”


“왜? 어디에 갖다놨는데?”


“갖다 놓은 게 아니라 누가 가지고 갔어. 안 찾는 게 좋을 거야. 지난번 네가 이상하게 변한 것도 다 그놈 탓이니까.”


“그게 누군데?”


“서무제. 너와 최종지까지 도달했던 인간. 근데 어차피 인간의 기대수명을 생각하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거야. 그러니 그건 그냥 잊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


[솨아아]


벽이 올라가며 분리 된 공간이 하나로 연결됐다. 율은 밖으로 나가며 한 마디를 남겼다.


“서무제.”



율은 하얀 냉기 막을 뚫고 나왔다. 첸첸이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다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율은 키가 훌쩍 자라있었다. 정확히는 근 골격의 근본이 바뀌어있다.


얼추 첸첸과 동갑 정도의 얼굴이 된 율의 몸은, 무의 궁극이 그 안에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 12화에 계속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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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4 척추요정
    작성일
    20.05.22 00:14
    No. 1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선호작, 추천 박고 갑니다.
    시간 남으시면 제 소설도 한번만 놀러와 주세요.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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