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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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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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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102
추천수 :
119
글자수 :
103,821

작성
20.05.18 11:00
조회
63
추천
5
글자
13쪽

판게아의 중원 (7화)

DUMMY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율이 스스로 먼저 나서 서찰을 보고 있었기에, 남은 모두는 그저 기다렸다. 그러다 율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율을 바라보는 첸첸의 호흡이 잠시 멈추며 동공이 커졌다. 율은 어딘가의 시간 속을 보고 있으리라..


남자도 동공이 커지며 숨을 죽였다. 색동옷이 곧잘 어울리던 소녀는 이제 없다. 아직 절차 상 확정 된 것은 아니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예언의 귀인. 그저 거기에 있는 것으로도 전혀 다른 존재감이 전해졌다.


잠시 뒤, 다시 눈을 뜬 율은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첸첸에게 답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첸첸은 그저 살며시 웃어 보일 뿐이다. 남자는 율을 의식하는 듯 목소리를 낮춰 첸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소저. 혹 저분께서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리라 짐작하시오?”


“물론입니다.”


남자의 얼굴이 다소 화색을 띄었다.


“그렇다면 혹시, 소저께서도 아시오?”


“물론. 알지 못합니다. 추측컨대 문자. 옛 예언에 등장하는 철의 왕. 그 시대의 문자일 것으로 상상할 뿐입니다.”


남자는 다소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그토록 궁금했다. ‘귀인에게 답을 얻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무의식적으로 율에게 시선을 향했는데, 율이 이미 자신을 넌지시 보고 있다. 뜨끔 놀란 남자의 눈에, 율의 입이 벙긋 거리는 것이 보였다.


“missing link”


‘!!..’


남자는 왜인지 모르게 전율했다. 대단히 이질적인 기이한 음율. 정보에 관한한 중원 제일이라 자부하는 자신이 단언컨대, 세상에 없는 말.


율이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승찬. 손승찬의 손바닥에 새겨 준 글.. 쇠로 된 손이?..”


‘손? 승찬?’


‘쇠로 된?..’


그러고는 율은 다시 말이 없다. 뭔가를 떠올렸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 거리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그런 율을 잠시 지켜보던 첸첸이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어찌됩니까? 또 무엇을?”


남자도 첸첸에게 시선을 돌렸다.


“흐흠. 그건 나도 아직 모르오. 내가 가진 기록은, 나와 함께 온 저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첸첸은 남자와 함께 온 여 검객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여 검객은 언젠가부터 한 발 물러선 위치에서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소상히 기록하는 것 같았다.


“과거 기록해 두었던 것과 같은 일이, 오늘 여기서도 있었음을 내가 본단에 확인해주면 되오. 소저에게선 기록 된 모든 것과 같은 일이 있었소. 다만 하나가 일치하지 않는데..”


남자가 율을 바라보았다.


“귀인을 알아보는 방법은 외관식별이 아닌 것 같소. 이번엔 성별마저 다른 모습으로 오셨으니. 하여, 어떠한 것으로 귀인임을 증명하였다. 되어 있소.”


첸첸은 이것이 뜻하는 바를 단박에 알아챘다. 그래서 몹시도 곤란해졌다.


남자도 사실 곤란했다. 상황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더구나 기록에 의하면 배꼽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 되는데, 뭘 의미하는지를 떠나 이것은 큰 결례가 아닌가. 자신들에게 귀인이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이유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절차라는 것이 전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손가락이 네 개인 사람이 찾아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뭘 더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같은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거나, 혹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목적을 갖는 것이려나..’


잠시 간의 침묵을 깨고 첸첸이 먼저 말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말로도 가능할 듯싶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그것은..”


[부우-욱]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율이 상의를 찢어내고 서 있었다. 그리하여 증명하였다.


손무혁은 다소 전율했다. 반드시 있어야 할 배꼽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이질적인 느낌을 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이 사람은 정녕 어떤 존재인 건가?..‘


남자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율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는데, 어째선지 첸첸이 먼저 부복을 했다. 이어 남자가 첸첸을 따라 서둘러 부복했다.


남자는 이제 이해했다. 귀인이 어째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지를. 일말의 의구심마저 사라졌다. 자신의 일족은 이것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이제와 모두에게서 잊혀진 거짓말은 사실이었다.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을 파멸로 이끌 흑안의 용이. 그것을 멸해온 귀인이 이곳에 존재하므로.


“떠나온 자의 일족 손무혁이 예언의 귀인을 뵙습니다. 부디 길의 끝에 다다르시길 비원하옵니다.”


손무혁이라 자신을 밝힌 남자의 목소리가 이제까지와는 달라져있었다. 다소간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율은 그런 손무혁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손무혁이 천천히 일어나 첸첸에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소저께 올려야 할 예는 저 혼자의 몫이 아니니, 우리 일족과 조우하면 갖출 예정이오.”


“제게? 무엇을 말씀입니까?”


“나로써도 합류하기 전까진 모르오. 우선은 이 모든 사실을 단주께 통보하겠소. 잠시 기다리면 회답이 올 것이오.”


손무혁이 여 검객에게 무언가를 눈빛으로 지시했다. 곧 여 검객은 창가로 다가가 품에서 작은 대롱 같은 것을 꺼내 창밖을 향해 불기 시작했다. 짧지 않은 길이를 여러 번 나누어 불었는데, 첸첸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특정한 음을 들을 수 있도록 훈련 된 자들만 들을 수 있다는 그것이라 생각됐다. 약속된 신호를 지근거리에 재빠르고 기밀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고안 된 방법. 잠시 후면 회신을 받을 수 있는 거리. 그렇다는 것은..


“제가 아는 바로 밀월단의 본단은 낙원성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루 이틀 사이에 닿을 거리가 아닐 텐데요..”


첸첸이 율과 함께 밀월단을 찾아갔던 일이 이틀 전. 사람걸음으로 족히 나흘은 걸리는 낙원성에서 단주가 이곳에 와 있을 수는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밀월단의 단주는 애초에 한양지부에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 첫 번 째, 밀월단의 단주는 원래부터 본단이 아닌 이곳 한양에 자리하도록 되어있다. 최고 결정권자가 본진에 없도록 되어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작금의 이 일에 대한 안배. 사안을 생각하면 그 정도 특단의 조치가 되어 있는 것은 당연 할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면 첸첸과 율이 처음 밀월단을 찾아갔을 때부터 어떤 준비 된 절차가 있었어야 옳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 왔었으니.


그렇다면 두 번 째, 우연히 단주가 여기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손무혁이라는 남자는 대화 중간에 어떤 말을 했었다. 첸첸은 그것이 문득 떠올랐다.


[하필 이런 우연한 상황에 때맞춰 왔다는 것은, 필연일지.. 기연인지.]


어느 쪽으로 생각해봐도 뭔가 잘 못 됐다. 이 여정 속에서 첸첸에게 지속적으로 감지되는 틀어짐이 이번에도 있다. 다행이라면 어긋나진 않았다는 점. 닿긴 닿았다.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마침 단주라는 분께서 가까운 곳에 있는 듯 하니 말입니다.”


손무혁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단주께선 본단에 계시오. 소저의 말씀은 마치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오만?”


“아, 아니. 저는 회답이 올 거라기에.. 그럼 낙원성으로부터 온다는, 아니. 그 이전에 회답이 온다는 것은, 본단까지 이미 뭔가 전달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무슨 수로.”


“그거야 우리가 전문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이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오. 천지 소식통을 보셨잖소. 더구나 지금은 긴급을 요하는 상황. 본단과의 직통 연계망을 통했으니, 곧 올 것이오.”


첸첸은 그저, 중원은 이런 게 가능한가보다 싶었다. 그럼 손무혁이 말 한, ‘때가 맞았다는 우연한 상황’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허면, 우리가 찾아 온 때가 우연한 상황이라 하셨던 건 무슨 뜻이었는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내 상황을 말 한 것이었소. 허허. 내가 한양지부에 있게 된 우연한 상황.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신기할 뿐이오.”


손무혁은 웃었다. 생각할수록 희한한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조사해 본 바. 귀인께서 찾아오시는 일이 약간의 규칙성이 있었더이다.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대략 백 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을 두고 있어왔소.”


“그랬습니까? 그건 몰랐습니다.”


“그랬더이다. 헌데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저와 귀인께서 이번에 오신 일은 마지막 기록으로부터 이백 오십년이 지났소.”


손무혁의 말을 들은 율은, 처음의 장소, 그 공동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 안에 있던 시체. 벽에 글귀를 남기고 죽어있던 자.


첸첸은 율의 작은 변이를 느꼈지만, 손무혁이 말을 계속 이어갔기에 주목하진 않았다.


“그러다보니 찾아오지 않는 귀인과 예언을 우리는 점차 잊고 지냈소. 본디 한양지부가 왜 존재했었는지, 그마저도 잊었소. 언제부턴가 귀인이 올 것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채로. 그저 날로 번창해가는 사업의 지부로만 사용된 것이오. 내가 며칠 전에 좌천되어오기 전까지 말이오.”


“불과 며칠 전.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진정 필연인지, 기연인지.”


“그게 다가 아니오.”


첸첸이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연이 또 있습니까?”


“그렇소이다. 내부의 일이라 세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어쨌든 나는 이곳에 좌천되어 온 것이오. 그러려면 나를 밀어낸 자들에게 명목상의 구실이 있어야 했소.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구실이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오.”


“이 일이라 하심은. 귀인이 찾아오는 예언의 때?”


“바로 그거요. 잊혀진 정도가 아니라 우리세대에겐 전해지지도 않았던 일족의 소명을, 나를 단의 핵심에서 밀어내기 위해 찾아냈던 것이오. 그제야 우리가 뭘 잊고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이오. 그랬는데.. 곧장 여근추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소. 그리곤 실제로 오신 것이오. 이걸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을지.. 놀라울 뿐이오.”


첸첸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어차피 인간의 섭리로 헤아릴 수 없을 일. 필연도 기연도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예정 되어 있던 일이라 생각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벌어지도록. 그리하여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행하는 일임을 인간이 경각하도록.


첸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첸첸을 제외한 모두가 창밖의 어떤 것에 반응하며 귀를 꿈틀 거렸다. 율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손무혁은 눈을 감고 집중했으며, 여 검객이 재빨리 창가로 다가가 예의 작은 대롱을 꺼내 불었다.


첸첸을 제외한 모두가 반응했다.


첸첸이 상황변화를 눈치 채고 여 검객을 보았다, 그녀는 손에 네모반듯한 나무판 같은 것을 들고, 거기에 첸첸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받아 적고 있었다.


잠시 뒤, 여 검객이 손무혁에게 다가와 나무판을 건넸다.


첸첸에게 나무판 위에 적힌 것이 언뜻 보였다. 점, 또는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연결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밀월단의 암호문일 것이었다.


손무혁이 판독을 하고 있었는데, 율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닷새 뒤 장강 상류, 우도에서. 흑월이 사라진 밤에.”


밀월단 관계자인 두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율을 쳐다봤다. 하지만 곧, 손무혁은 점차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랬군. 귀인께서 아신다는 것은.. 이것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로군요.”


율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morse code”


‘!?’


“길을 잃었을 때를 위해 ‘Wish’가 준비해 둔 것. 너희에게 전해 준 것. Wish? 이게 뭐였지?”


손무혁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본디 어떤 초월자가 예언의 귀인을 위해 마련해 둔 것이었던가.. 그것도 만일을 위한 대비. 그걸로 배때지를 불려온 우린, 천벌이라도 받게 되는 것이려나.’


손무혁의 자책의 시간은 곧 끝났다. 율이 불렀으므로.


“단주라는 사람이 보냈어? 그 사람 있어?, 우도로 가면?”


“그럴 것입니다만, 헌데 그것은 왜 갑자기?”


대답 따위 하지 않는 율은 느닷없이 걸어 나갔다. 그 뒤를 첸첸이 서둘러 따라붙었다.


-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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