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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판게아의 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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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0.06.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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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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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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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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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판게아의 중원 (14화)

DUMMY

[투~~~우웅]


첸첸이 손에 들고 있는 활의 시위를 가볍게 튕겼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숨을 깊게 마셔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결연한 표정.


까무러칠 듯 놀란 표정이 된 모두의 앞에서, 첸첸이 활을 쏘게 된 건, 손가람이 그녀의 어마어마한 시력에 놀란 일을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기다리는 자 일족은 하늘을 보고 방향과 위치를 알아내는 감각을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 그것은 길을 떠나야 하기에 익혀온 전통.


위치가 변하지 않는 하늘의 사좌성.


각각 북사좌, 좌사성, 우사성. 그리고 중심의 별인 궁.


방위를 파악할 수 있는 이 고정좌를 통해 지리, 거리, 위치를 파악해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훈련을 수십 대에 걸쳐 해오는 동안에, 어느 때부터 시력이 함께 발달해 온 것이라 전해진다고 첸첸은 말했다.


“대낮에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만 했다. 시력도 시력이지만, 하늘을 보고 현재 지도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하는 얘기이지, 실제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하여 목적지의 방향과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말엔 다들 적잖이 놀랐다. 거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다리는 자의 일족은 수십 대 이전부터 하늘을 보는 법을 알고 있었단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자 모두에게 첸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언의 귀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함께 있기에 재대로 볼 수 없었을 뿐, 이 처자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원은커녕, 세상 자체에 처음 나와 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지도라는 종이쪼가리 몇 장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다. 우도는? 누가 우도에 이르는 길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던가? 낙원성을 기준으로 방향만을 묻고 정확히 찾아왔다.


요상한 나라의 첸첸.


기다리는 자. 그 요상하고 아름다운 땅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특히 오늘 이 자리에서 첸첸을 처음 보게 된 밀월단원들에겐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감을 뿜어냈다. 더, 뭔가 더 색다른 면모를 갈망하는 군중의 눈빛을 바라보며 첸첸은 말했다.


“아무래도 전통적인 수렵생활을 하는 터라, 무림의 고수들 앞에 내보이기 민망할 수준이나 활은 나름 다룰 줄 압니다.”


여기에 율이 말을 보탰다.


“그래. 맞는 말이야. 내가 아는 첸첸의 일족은 모두다 활의 대가였어. 어마어마한 궁사들이었지. 내가 산증인이야.”


그러자 여기에 손무혁이 약간의 의구심을 보탰다.


“헌데, 소저께선 그럼 어째서 처음 길을 나설 때 활을 안 챙기셨는지?”


첸첸은 매우 뻘쭘하여


“사냥을 하기 위해 나선 길이 아닌지라.. 또한 들고 있었다 한들 아직까진 쏠 일도 없었을..”


어처구니없는 개소리. 아니 그런 사람이 이 여정을 떠나면서 처음부터 활을 안가지고 나섰다고!?. 이건 검의 고수가, 적이 쳐들어왔는데 너무도 급한 마음에 그만 맨손으로 뛰쳐나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 너무 급조 된 전개 같기만 하였으나, 좌우지간 이 세계의 절대적 존재인 작.. 아니 귀인이. 현재 시점까지 밝혀진 것만 따져도, 무려 삼천 년의 기억을 가진 예언의 귀인이 증인이라고 나선 터.


저절로 믿어지는 상황이 됐다.


그리하여 딱 여기서부터 첸첸은 모두의 앞에서 ’사실은 비범한 궁사‘라는 것으로 거듭났다. 아닌 게 아니라 활을 들고 있는 모습부터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그리하여 궁사로써의 능력을 선보이게 된 첸첸. 귀인의 증언에 다들 기대감이 부풀었다.


과녁에 꽂혀 있는 화살을, 다시 쏜 화살로 맞춰 쪼개는 것은 놀랍긴 하였으나, 그 정도는 풍문에도 있는 수준. 하늘 위의 새가 화살에 맞아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아주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지만, 그 또한 보거나 들은 얘기. 약간 실망한 기운이 느껴지자 어떤 욕구가 발동한 첸첸.


율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한참 후에 대나무를 반으로 가른 작대기를 들고 나타났다.


“이것을 제 고향에선 ‘덧살’이라고 부르는데, 활을 쏘는데 여러 가지로 응용 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런 후 율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율이 십여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작은 원을 그려 표적을 만들었다. 이제 첸첸이 표적을 겨누면 됐는데, ‘덧살’이라 부른 물건 속에, 만들어 온 작은 화살을 끼워 넣고는 시위에 걸어 당겼다. 그러더니 엉뚱하게 머리 위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다.


[퓨-웅]


‘에?!’


저 하늘의 별이라도 될 것처럼 날아가 버린 화살.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잠시 후


[퍼어-억]


하늘에서 화살이 떨어져내려 정확히 원 안에 꽂혔다. 아니, 꽂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가 버렸다.


“이것을 이용하면 화살의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어, 파괴력과 관통력을 크게 올릴 수 있습니다. 또한, 곡사라는 기술을 쓸 수도 있게 되는데..”


아니 관통력이고 뭐고, 하늘을 겨냥하여 땅의 표적을 맞췄다는 것이 더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하며 다들 입이 떡 벌어지도록 놀라있을 때. 첸첸이 한 사람에게 활을 한 발 쏴줄 것을 부탁하며 나란히 섰다. 그리고..


[투~~우웅]


빈 시위를 한 번 당겨본 첸첸이, 하늘을 올려보며 숨을 골랐다. 그런 후 미약한 내공을 끌어올렸다. 결연한 표정.


부탁을 받은 사람은 첸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지정해준 방향의 하늘을 겨냥하여 활시위를 당겼는데, 첸첸은 오른쪽 사선으로 몸을 틀어 또 엉뚱한 방향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탁을 받은 사람의 활에서 먼저 화살이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그 뒤에 첸첸이 활시위를 놓았다.


그런데, 첸첸은 ‘덧살’이라고 했던 물건을 화살이 빠져나가기 직전에, 활을 들고 있는 왼손을 바깥방향으로 확 휘둘렀다.


사람들의 눈앞에서, 마치 독수리가 공중에서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먼저 날아간 화살을 향해, 첸첸이 쏘아 날린 화살이 옆에서부터 큰 원호를 그리며 휘어져 들어와, 공중에서 박살을 내며 떨어뜨렸다.


곡사.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사람은, 적어도 여기에는 없었다. 율을 제외하면 그랬다.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하여, 좌중이 고요 속에 빠져 있을 때, 율이 첸첸에게 다가왔다.


“사우는 여기에 공력을 실어 날리는 기공궁이라는 독전절기를 완성했었어. 십리 밖의 목표물도 맞췄었지. 또한 아예 살을 걸지 않고도 강기를 화살처럼 쏘았다. 그것이 제 4장 탄궁포. 하지만, 역시 실전되었겠지?”


사우라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귀인과 함께 길을 떠났던 옛 선조. 첸첸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율과 첸첸은 화살이 날아가는 원리. 비상체가 목표물에 도달하기까지 일어나는 작용들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밀원단원이 대화의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곤, 그 깊은 오의를 자기도 모르게 받아 적었다.


아주아주 먼 훗날. 까마득히 먼 미래에, 이 기록문은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한다. 특히 그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하나의 놀이가 되어, 선풍적인 학구열을 일으킨 학문의 사조가 되기에 이르니. 그 학문을 훗날 ‘탠도학’이라.. 에헴.



*****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장백산을 향하기로 하고 잠을 청하려던 밤에, 단주와 손무혁이 율과 첸첸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안내 받아 함께 이동했다. 각 거대문파들의 본타에 하나씩 있다는 지하 연공실이나, 비밀스런 지하 장소. 으레 소문으로 전해지는 ‘그런 곳’.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한참 걸어 내려가니, 석문이 하나 나왔다.


“이곳이오.”


단주가 뭔가의 장치들을 조작하자 문이 열렸다. 들어서기도 전에 우선 제일 먼저 보인 건 글귀 하나.


[멸문지화]


첸첸이 쳐다보자 단주가 설명했다.


“역대 단주들에게 내려오는 격언이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일족을 이끄는 것이 과업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지. 원랜 무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격언인데, 어쩌다보니 크게 나서버렸소.”


어딘지 회한이 느껴지기도 하는 미소를 지어보인 단주가 먼저 석실로 들어서고, 다들 따라 들어갔다. 내실엔 사각의 벽을 빙 둘러 위패들이 모셔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역대 단주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구에서 들어오면 정면에 있는 벽에 단이 마려되어 있어, 단주와 손무혁이 잠시 예를 올렸다.


“어?”


첸첸의 입에서 나온 소리. 첸첸은 단이 있는 벽에 붙어 있는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해와 달. 별자리. 천문의 움직임을 기록 한 금속성 원판. 아주 오래 된 고대의 유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첸첸을 단주가 보며 입을 열었다.


“소저의 일족에게 전해진다는 ‘하늘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원판’이 이것이오?”


“다르긴 합니다. 새겨진 내용은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만, 같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같은 물건입니다.”


“음. 그렇다면 원래는 우리에게도 전해졌던 것이로군. 아니면 함께 전해졌거나. 확실한 건 소저와 우리는 애초 하나였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오.”


그러면서 단주는 율에게 시선을 보냈다.


“왜 갈라지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오. 허나 이제와 우리는 이게 그런 걸 기록한 것인지도 잊었구려. 왠지 소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던 첸첸이 율에게 물었다. 벽화에서 본 그림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것은 철의 왕에게서 전해진 것. 혹시 이것에 대한 기억이 있어?”


율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sky disc. 함께는 아니고, 위시가 두 부족에게 각각 넘겨준 물건. 하늘의 흐름을 기다리는 자에게, 그것의 규칙을 떠나온 자에게.”


율이 잠시 말을 멈추고, 지금 여기에 자리한 두 일족을 뚜렷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늘의 해를 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태양도 달도 모두 별일 뿐임을, 그 주기를. 지금은 모두가 알아 체계를 정립하기에 이른. 일 년, 한 달. 하루. 그 모든 것을 너희들의 선조들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한 물건. 그 유산.”


가슴이 벅차올랐다. 왠지 모르게 그런 감정이 끓어올랐다. 첸첸의 눈시울이 붉어지려는데 율이 첸첸과 단주를 모두 보며 쌩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걸 전해준 건 나였잖아!?”


단주와 손무혁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기에, 율과 그동안 많은 이야길 나눈 첸첸만이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하늘의 해를 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그 모든 것이 전부 본인이었다던 율.’


현실감을 아득히 초월해 버린, 너무도 동떨어진 거리감. 흐르려던 눈물이 말라붙었다. 율은 율이 아니다.


예언의 귀인이다. 언제부턴가 첸첸은 그런 것이 싫었다.



- 1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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