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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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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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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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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3)

DUMMY

시영은 나가기 전, 같은 층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경직되었던 몸이 한순간에 풀어지자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손을 씻을 때, 승혁이 다가왔다.


“시영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시영은 승혁에게도 유마와 똑같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몇 분 전 작별 인사를 했음에도 공손함은 변하지 않았다. 승혁은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저는 고유마 교수님의 조수인 한승혁이라 합니다.”

승혁은 손을 내밀었다. 시영은 급하게 물기가 있는 손을 털었다. 승혁은 그 모습에 개의치 않고 그의 손을 직접 잡았다.


“반갑습니다, 시영 님.”

“저도 반가워요, 승혁 씨.”

시영의 미소에 승혁도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아뇨, 모르겠어요. 뭐 때문에 찾아오셨죠?”

승혁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새삼 꼼꼼하게 확인하는 모습에 시영은 묘한 영감을 받았다.


그렇게 승혁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시영 님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이요?”

시영은 당황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닙니다. 오컬트와 관련된 시영 님이기에 더더욱 걱정하는 겁니다.”

시영은 오컬트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승혁 씨는 오컬트에 대해 잘 아시나요?”

“아, 아뇨. 잘은 모릅니다.”

순간적으로 시영은 의문이 들었다. 오컬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승혁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는데, 절 어떻게 걱정해요?”

“그야, 오컬트가 관련된 일은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아하.”

시영은 저런 이유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을 걱정하는 승혁에게 감사했다.


“더군다나 시영 씨는 기억을 잃었다고 했죠? 그게 아니어도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괜히 걱정되더군요. 그 오컬트 슬레이어라 불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라면 최대한 오컬트와 관련되는 일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승혁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오컬트 슬레이어···? 하아.”

미소가 어울리는 시영의 미간은 급격하게 찌푸려졌다.


“저,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한 건가요?”

“저는 그 별명이 싫어요.”

“아, 죄송합니다.”

승혁은 즉시 사과했지만, 한 번 구겨진 시영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쨌든 시영 님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받아들여 주시길 바랍니다.”

승혁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시영은 여전히 텁텁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오컬트 슬레이어라는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정작 잊고 싶은 기억 대신 중요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 시영을 소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사람의 모습에 시영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같이 가려고?”

“시영이 형.”

소인은 시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와는 다른 친근한 호칭에 텁텁한 기분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소인은 방금 전, 시영의 힘겨운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 그럼 같이 걸을까?”


한참 동안, 같이 걷는 게 무색하게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인이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는 시영도 그렇고, 정작 이야기하자고 한 소인도 마찬가지였다.


시영은 단지 소인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하는 차원에서 입을 다물었지만, 막상 소인은 계속해서 망설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을 상황이었다. 소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시영에 대해서 궁금해진 자신의 호기심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에게 명령해 시영을 찾은 소인은 그와 함께 미르 코퍼레이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목적대로 시영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해방기 소지자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나 예의 바른 모습, 유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모습에 소인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유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가끔 허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중 하나였다. 사람의 기억을 복사할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든 건 그가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증거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소인은 유마의 말을 믿는 시영을 가식적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표정으로 드러나는 탓에 가식이라 하기에도 무안했다. 저 표정이 가식이라면 최고의 거짓말쟁이와 다름없겠지만, 최소한 소인은 시영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부자라도 걱정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힘든 일은 있다. 그건 유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소인도 소민의 일 때문에 고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을 잃었다는 상황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기억이 자신이 찾고 싶은 상황에 관련되었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소인은 자신이 소민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몸은 편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후회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영은 유마를 도와주기로 했다. D-Zero의 진실이라는, 유마도 모를 불확실한 목적을 위해서···.


“오컬트와 관련이 있다는 거 진짜예요?”

그랬기에 소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공원에 다다랐을 때였다.


“음, 나는 잘 모르겠어. 조사해봐야지 않을까?”

“그럼, 시영이 형은 오컬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요?”

“그건 아냐. 아까도 말했지만, 남들보다는 많이, 하지만 전문가 수준은 아니야.”

“그렇군요.”

소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기억을 잃었다고 했죠?”

“어? 어···”

시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 정도 잃은 거예요?”

소인은 개인적으로는 그 범위가 넓지 않길 바랐다.


“D-Zero와 관련된 대부분?”

하지만 항상 이런 마음은 배신하기 마련이었다.


“솔직히, 기억을 모두 잃으면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그거 관련된 기억만 잃었어.”

소인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두 번 끄덕거렸다.


“유마 교수님이 말하는 거, 믿어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거?”

“네.”

“그럼, 당연하지.”

예상은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확신에 찬 말에 소인은 시영을 바라보았다.


“어쩜 그렇게 귀신같이 속마음을 읽었는지 모르겠어.”

“거,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진짜 거짓말이야?”

“그건 몰라요.”

소인은 시영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시영은 여전히 소인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유마 씨는 날 믿고 의뢰를 부탁했잖아. 그 말은 날 믿고 있다는 말이지. 그럼 그런 사람이 거짓말을 할까? 뭐,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이유 없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요?”

“그럼~ 날 믿어주는 사람을 나도 믿고 싶어.”

시영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확신에 찬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밤하늘처럼 검은 눈동자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당신은 미워할 수 없어.”

소인의 어두운 말투에 시영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느꼈을 땐, 이미 그의 주먹이 시영의 복부를 가격한 후였다.


시영은 소인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고통은 말문 자체를 막아버렸다. 충격으로 시영의 재킷에서 6장의 금빛 테두리 메모리 스크롤이 한 장씩 떨어져 나왔다.


“시영이 형, 형 같은 사람이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나한테 맡기고 기억이나 찾도록 해요.”

소인은 시영이 괴로워할 동안 6장의 스크롤을 챙겨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검은 모자. 시영은 오른손으로는 복부를 움켜쥐었고, 왼손으로는 모자를 움켜쥐며 무거운 걸음걸이로 걷는 소인을 바라보았다. 곧, 모자를 쥔 외손을 소인을 향해 뻗었지만, 닿을 수 없는 공허함만을 느끼며 고통을 삼켜야만 했다.


“오늘의 달도··· 붉네.”

한숨을 쉰 소인은 시영을 미안한 눈길로 곁눈질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시영은 음수대로 다가가며 소인의 행동을 생각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도움이 필요한 눈빛이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공격만이 반겨주었다.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노바에게 맞았었기에 아픔은 더욱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세정이 누나였다.


“여보세요?”

“시영아, 너 돌아왔었어?”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영은 헛기침하고 말을 이어갔다.


“으, 응. 오늘 새벽에.”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얼마나 있다가 갈지 몰라서, 전화 못 한 건 미안해.”

“아냐, 괜찮아. 그것보다도 지금 집에 올 수 있지?”

“사무소?”

“아니, 우리 집.”

세정이 말하는 집은 시영의 누나와 동생이 사는 아파트를 말했다.


“지금 갈게.”

“어딘지는 알지?”

“그런 건 안 까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어.”

그렇게 전화는 끊겼고, 시영은 의문을 뒤로한 채 아파트로 향했다.



“오빠, 왔어?”

오랜만에 돌아온 시영을 반겨주는 건 여동생 세라였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나름대로?”

“거짓말.”

세라는 시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아서일까, 최소한 오빠의 6개월 여행이 순탄치 않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거, 거짓말이라니.”

“시영이는 거짓말 진짜 못하니까.”

세정이 다가왔다.


“누나···”

“어서 와, 시영아.”

세정과 세라는 시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식사를 마친 시영은 아직 식사하지 않은 누나와 동생을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집에서 하는 요리였지만 능숙하게 두 사람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비빔밥을 만들었다.


학생 신분인 세라는 밥을 먹고 공부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고, 선생님인 세정은 거실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보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잘 지내지는 못했지?”

“아냐, 괜찮게 지냈어.”

“집이 편해? 아니면 여행이 편해?”

“그건 당연히 집이지.”

시영은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에 피식거렸다.


“어쨌든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다.”

“나도 그래, 누나.”

세정과 시영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정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세정은 자신도 모르게 쉰 한숨을 애써 얼버무리려 했지만, 시영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여행으로 인해 피곤해할 동생을 위해 말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역으로 그 동생이 집요하게 물어보는 탓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반 제자인데 조금 어려운 상황이야.”

“무슨 일인데?”

“쌍둥이 남매인데, 요즘 둘 다 안 하던 짓을 해.”

“안 하던 짓이라니? 어떤 애들인데?”

“그게···”

세정은 대답을 망설였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성실한 애들이야, 수업도 잘 듣고 착한 애들이지, 이런 애들이 최근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고, 나와도 금방 돌아가 버리거든.”

“이름이 뭐야?”

“넌 모르는 애들이야.”

세정은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동생의 배려한 것이었지만, 시영은 괜찮다며 계속해서 이름을 물었다.


“소인이랑 소민이라고 해.”

“소인?”

시영은 의외의 이름에 눈을 크게 떴다. 누나를 힘들게 하는 애들이 궁금했을 뿐, 소인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는 애야?”

“아, 아냐.”

왼손으로 입을 가린 시영은 오른손을 저었다.


“미안해, 너도 힘들 텐데 괜히 이런 이야기 해서.”

“아냐, 난 괜찮아.”

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게?”

“사무소.”

“조금만 더 있어, 오랜만에 왔잖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시영은 붉은 달 아래, 소인의 무거운 발걸음을 생각했다.


“쉬러 온 건 아니잖아, 누나도 여러 가지로 걱정 많은 것 같고.”

“알겠어.”

세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운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미안해, 누나.”

“아니야, 괜찮아.”

“대신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몰라.”

“무슨 소식?”

“그건 기다리면 알아.”

시영은 세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행동은 삼가.”

“알겠어.”

시영은 그렇게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보는 붉은 달, 아마 지금 상황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중 단연 최고는 저것일 것이다.


붉은 달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시영은 어디선가 같은 달을 보고 있을 소인을 생각하며 심호흡했다.


“나도 위험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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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isode 01. 묶인 천사-후회(2) 20.07.17 43 0 16쪽
17 Episode 01. 묶인 천사-후회(1) 20.07.17 4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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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pisode 01. 묶인 천사-음산한 골목(2) 20.07.15 32 0 15쪽
13 Episode 01. 묶인 천사-음산한 골목(1) 20.07.15 34 0 14쪽
»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3) 20.07.13 4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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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2) 20.07.12 32 0 13쪽
8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1) 20.07.11 36 0 16쪽
7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3) 20.07.09 48 0 12쪽
6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2) 20.07.09 45 0 11쪽
5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1) +2 20.07.08 92 1 12쪽
4 Prologue(4) +2 20.07.08 74 1 13쪽
3 Prologue(3) 20.07.07 9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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