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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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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2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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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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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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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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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1)

DUMMY

“어제도 달이 붉었지···”

소인은 시인처럼, 혹은 성우처럼 멋지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는 아무리 멋지게 대사를 읊어도 구질구질해 보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6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잠을 잘 여유는 없었다.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인은 한숨을 쉬며 피 묻은 옷을 아무렇게나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를 끝내자 6시 40분 정도가 되었다. 소인은 식사도 대충 컵라면으로 해결하려는 심산이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 기다리는 3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소인은 이 3분 동안 쪽잠을 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로 무척이나 고민했다. 3분이 가까워지자 내린 결론은 지금 잠들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대충대충 살다 보니 밀린 게 상당히 많았다. 집 청소는 물론이고, 설거지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들 전부였다. 원래는 쌍둥이 누나인 소민이와 둘이서 해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소민이는 지금 그런 걸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소인도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소민 말고도 소인에게는 큰형이 한 명 있었다. 하지만 큰형도 할 수 없었다. 큰형인 거인은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안일이 밀린 지금 상황을 그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었다. 소인은 잠을 깨기 위해 억지로 커피를 마시고 이를 닦았다.


휴식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휴식을 취한 소인이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등교였다.



등교하던 소인은 소민과의 일을 추억했다. 쌍둥이 누나인 소민과는 좋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얄미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도 소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소민은 그 녀석 때문에 이상해졌다. 미쳐버렸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소인이 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소민이는 그 녀석 때문에 미쳐버린 채 사람들을 습격했다.


원래대로라면 도움을 요청해야 했지만, 소인은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알릴 수 없었다.


소인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차피 도와달라고 해도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었다. 누군가 도와준다고 해도 소민을 막을 수는 없다. 오직 그 아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우리들의 일에 누군가 간섭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간섭해도 자신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인은 도움을 받는다는 나약한 생각을 버렸고, 그에 따라 소민이 쓰러지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안 돼,”

소인은 좋지 않은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소인!”

그때, 소인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친구들이었다.


“뭔 생각했냐?”

“우리 소인이 야한 생각했구나?”

친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키득거렸고, 소인은 구겨진 얼굴로 그들을 무시하며 걸었다. 마음대로 지껄이라 내버려 두고 싶었다.


“미안, 미안. 근데 무슨 일 있어?”

친구들의 물음, 어쩌면 지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믿음직한 녀석들이지만, 이 녀석들은 지금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 있어 보여.”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그, 그냥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래.”

소인은 대충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을 달래듯 손짓했다.


“잠 깨는 데는 역시 이거지!”

친구들은 각자 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인은 뻑뻑한 눈을 깜빡거렸다.


“설마 지금 스크롤 배틀하자고?”

“소인이 너 게임 잘하잖아?”

이유라고 나온 말은 참 뜬금없었다. 친구들은 헛웃음 짓는 소인을 바라보며 각자 스크롤을 제각기 흔들었다.


“게임이야 잘하긴 하는데, 갑자기 하자고?”

“아니 뭐, 기분도 안 좋아 보이고, 잠도 깰 겸 가볍게 한 판 하자는 거지. 솔직히 이거 언제 해도 재미있잖아?”

“아니 그건 맞는데···”

소인의 친구들이 말하는 스크롤 배틀은 지금 그 어떤 게임보다 유행하는 게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쯤 상용화된 스크롤이란 물건에서 유닛을 꺼내 간단하게 전투를 벌이는 게임, 그것이 [스크롤 배틀]이었다.


스크롤 배틀은 간단한 게임이었다. 유닛을 꺼내고 조종해서 싸우는 것이 끝이다. 이 간단함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행의 비결이다. 길어봐야 3분 안이면 승부가 끝나고, 쓰러진 유닛들은 스크롤 속 코어를 흔드는 것으로 간편하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소인은 게임을 잘했고, 스크롤 배틀도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반면, 친구들은 소인이 할 때까지 보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평소 친구들은 소인을 게임에서 이긴 적이 별로 없었고, 마치 오늘에야말로 소인을 이기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친구들의 의도를 눈치챈 소인은 한숨을 쉬며 [체인 메모리 스크롤]을 꺼냈다.


소인과 친구 세 명의 스크롤 배틀이 시작되려 했다. 얼핏 불리해 보이는 구도였지만, 소인은 대수롭게도 생각하지 않았다.


소인은 천사를, 친구들은 각각 해룡, 유니콘, 오토바이를 꺼내자 스크롤 배틀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소인은 천사를 조종해 간단하게 친구들의 유닛을 제압했다. 친구들이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전술을 사용했기에 잠깐 고전했지만, 이미 수많은 싸움을 경험했던 소인은 천사와의 완벽한 호흡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했다.


“이게 최선이야?”

소인은 피식거리며 도발했지만, 친구 셋은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진짜 못 이기겠다.”

“그럼 덤비지 마.”

콧대가 높아진 소인은 자만했고, 친구들은 그를 물리적으로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았다.


“근데, 소인아.”

“응?”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소인은 천사에게 해룡을 향해 공격을 명령했다.


“소민이는 오늘도 안 나오는 거야?”

그 순간, 소인은 주춤거렸다. 그에 따라 천사도 공격에 실패했고, 빈틈이 생겼다. 그 빈틈은 해룡에게 좋은 기회였고, 수없이 연습한 해룡, 유니콘, 오토바이의 연계가 적중하자 천사는 무력하게 쓰러져버렸다.


소인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천사도 자신의 사슬에 묶여 일어나지 못했다.


친구들은 소인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승리의 기쁨보다도 소인의 상태를 걱정했다. 소인은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자세히 보지 못했던 힘들어하는 소인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소민이는 오늘도 학교 쉴 거야.”

소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뭐해? 등교하자.”

소인은 어지러움에 몸을 심하게 떨었다. 친구들의 도움도 마다하고 혼자서 등교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내 일로 너희들을 곤란하게 할 순 없어.’



1학년 5반, 소인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반장이 다가왔다.


“나소인.”

“어?”

소인은 반장을 바라보았다.


“세정 쌤이 부르던데, 가봐.”

그 순간, 소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마도 어제 학교를 빠진 일 때문에 부르는 것임이 분명했다.


학생들이 교무실로 간다는 건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담임이 좋은 일로 부를 리가 없었다.


소인은 어렵사리 교무실의 문을 열었다. 평소보다 더 공손하게 인사하며 들어갔다. 담임인 세정이 소인을 발견하자 하던 것을 멈추고 의자를 소인의 방향으로 돌렸다.


“왔어? 여기 앉아.”

여분의 의자에 죄인처럼 앉은 소인. 대체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에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소민이가 잘못될지도 몰랐다.


“괜찮아? 안 좋아 보이는데?”

“아, 아녜요.”

“몸 관리 잘하렴.”

“네, 선생님.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아아, 그게 말이지.”

세정의 반응에 소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소민이는 괜찮은 거 맞지?”

“네?”

“소민이는 괜찮은 거 맞지?”

“네, 네! 분명 괜찮을 거예요.”

소인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상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것보다도 소인이, 소민이. 너희들!”

세정은 소인을 노려보았다.


“요즘 자꾸 학교 빠지는 거 모를 줄 알았니? 그러면 안 돼.”

안 나오나 했지만, 역시나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 분위기라면 혼나지 않을 수 있다.


“이거 말하려고 부른 거야.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아, 아하하하. 그, 그래요? 죄, 죄송해요.”

소인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소인이 넌 괜찮겠어?”

세정은 소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높은 것 같은데? 오늘 수업은 받을 수 있겠니?”

“아, 저 그. 솔직히 조금 아픈 것도 같아요.”

“그래?”

소인은 최대한 아픈 척했다. 세정은 그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퇴증을 끊어주었다.


“오늘만이야. 꼭 병원에 가야 해. 알겠지? 그래야 다음 주에는 소민이랑 같이 제대로 수업받을 수 있을 테니까.”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콜록!”

소인은 억지로 헛기침하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세정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 주부턴 소민이도 데려와야 해!”



그 길로 바로 교실로 돌아간 소인은 친구들에게 조퇴증을 보여주며 다시 가방을 멨다.


“뭐야? 아픈 거였어?”

“그냥 오늘 쉬지 그랬어.”

친구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소인은 조퇴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기에 대충 적당히 집에 연락할 사람이 없고, 여러모로 사정이 그렇다는 이유로 얼버무렸다.


평소라면 샘물이 메마를 정도로 캐물을 친구들이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별로 캐묻지 않아 주었다.


소인은 그렇게 운동장으로 나갔다. 이미 시간은 학생들이 대부분 등교를 마쳤기에 운동장에는 지각생들과 소인에게 어디 가냐고 묻는 선생님들 뿐이었다.


선생님들은 소인이 조퇴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몸이 아프다고 판단하였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운동장을 지날 수 있었다.


잠깐의 해프닝으로 긴장이 풀어지자 소인은 자신이 정말 아픈 것만도 같이 느껴졌다.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세정의 말처럼 정말 열이 있었다. 정신은 몽롱했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는 걸 너무나도 늦게 자각했다.


“정말 조퇴해야 했나 보다.”

소인은 차라리 어제처럼 무단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하고 돌아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담임선생님은 병원에 가라고 보내주었지만, 소인에게는 그럴 여유는 없었다.


소민이 이상해진 이유는 괴물의 마석 때문이었고, 며칠 동안 소인이 학교를 빠진 이유는 그녀를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병원에 가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소인이 운동장을 절반쯤 건넜을 때, 그의 옆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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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isode 01. 묶인 천사-후회(2) 20.07.17 43 0 16쪽
17 Episode 01. 묶인 천사-후회(1) 20.07.17 4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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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pisode 01. 묶인 천사-음산한 골목(2) 20.07.15 32 0 15쪽
13 Episode 01. 묶인 천사-음산한 골목(1) 20.07.15 34 0 14쪽
12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3) 20.07.13 44 0 14쪽
11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2) 20.07.12 38 0 11쪽
10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1) 20.07.12 35 0 12쪽
9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2) 20.07.12 33 0 13쪽
8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1) 20.07.11 36 0 16쪽
7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3) 20.07.09 48 0 12쪽
6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2) 20.07.09 45 0 11쪽
»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1) +2 20.07.08 93 1 12쪽
4 Prologue(4) +2 20.07.08 74 1 13쪽
3 Prologue(3) 20.07.07 94 1 13쪽
2 Prologue(2) +2 20.07.07 147 1 12쪽
1 Prologue(1) +4 20.07.06 69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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