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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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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2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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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수 :
1,72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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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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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2)

DUMMY

“이상 세계 현상?”

소인은 본능적으로 무너지는 공간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이상 세계 현상이라 불리는 이 재해는 6개월 전 일어난 D-Zero라는 사건의 남은 잔재다. 공간이 무너지는 현상이 재해로 불리는 이유는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지진, 해일 같은 재해는 전조가 있거나,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지만, 이상 세계 현상은 그런 것도 없었다. 안 위험한 재해는 없지만, 이상 세계 현상은 그런 것마저 없었기에 어쩌면 그것들보다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시적으로나마 이 현상을 없애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블랭크 스크롤]을 사용하는 것이다. 블랭크 스크롤은 이름처럼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스크롤으로, 스크롤의 특징인 성분을 흡수하는 것으로 이상 세계 현상을 없앨 수 있었다.


스크롤이 3개월 전쯤 상용화가 된 이유도 이 이상 세계 현상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인은 품속에 손을 넣고 블랭크 스크롤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버렸다. 지금 소인은 블랭크 스크롤이 없었고, 오직 [체인 메모리 스크롤]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해방기라는 이름의 기계장치도 이상 세계 현상을 없앨 수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지금 소민이 가지고 있었다.


소인은 뒷걸음질과 함께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점점 커지는 이상 세계 현상을 막는 방법은 소인에게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소인은 긴장감과 함께 침을 삼켰다. 손에는 체인 메모리 스크롤이 들려 있었다. 이미 사슬의 천사의 힘이 봉인되었기에 이상 세계 현상을 없앨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점점 커지는 현상에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소인은 이끌리는 느낌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곳으로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고속?”

그는 정보상으로 이름은 고속이었다. 소인은 저 사람을 알고 있었다. 고속은 도착하자마자 해방기라 불리는 흑색의 기계장치를 꺼냈다.


“내가 근처를 지나서 망정이었지, 큰일 날 뻔했네.”

고속은 겁도 없이 무너지는 공간을 향해 다가갔다. 해방기를 뻗은 손 덕분에 무너지는 공간은 천천히 수복되고 있었다.


“이것도 써볼까?”

고속은 조심스럽게 블랭크 스크롤을 꺼냈다. 그 직후 아무것도 들지 않은 무색의 스크롤을 이상 세계 현상을 향해 던졌다. 이상 세계 현상은 블랭크 스크롤에 흡수되었고, 곧, 블랭크 스크롤에는 ‘그림자’가 흡수되어, 그림자 스크롤이 되었다.


공간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평화로워진 운동장, 고속은 천천히 소인을 바라보았고, 소인 역시 고속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가서는 일은 없었다. 고속은 방금 일어난 재해의 증거인 그림자 스크롤을 회수하지 않고, 소인을 주시하며 자리를 떠났다.


“얘야, 괜찮니?”

근처를 지나던 학교 경비원이 소인에게 다가왔다. 소인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저 사람 무슨 기계장치를 꺼냈는데, 저게 뭔지 알고 있니?”

정황상 그가 말하는 기계장치는 해방기였다. 소인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림자 스크롤을 줍고 교문을 나섰다.



소인은 그림자 스크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길을 걸었다. 방금 전 일어난 상황을 이 한 장으로 대변할 수 있다는 현실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 상황에서 고속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씁쓸하기만 했다.


현재로서 이상 세계 현상의 해결책은 두 가지가 있다. 앞서 말한 블랭크 스크롤과 해방기였다. 블랭크 스크롤의 경우에는 누구나 아는 해결책이었지만, 해방기의 경우 그것과는 반대로 소인을 비롯한 소수만이 존재를 알고 있는 해결책이었다.


어느 쪽이나 이상 세계 현상을 해결하는 데 있어 훌륭한 발명품이다. 소인은 두 가지 모두 고유마라는 과학자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유마를 좋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래서일까 위기를 해결한 그와 비교하니 방금 전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계속해서 그림자 스크롤을 주시하던 소인은 자판기 앞에 멈췄다. 마침 음료수가 마시고 싶었기에 자연스럽게 지갑에서 형이 준 카드를 쓰려 했다.


“아, 스크롤 전용이네.”

아이러니하게도 카드 투입구가 아닌 스크롤 투입구였다. 스크롤이 신용카드 정도의 크기였기에 소인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이 종종 하는 실수였다.


혜성의 거리를 돌아다니면 이런 자판기가 꽤 있었다. 스크롤이 상용화되며 변한 일상과도 같았다. 소인은 앞으로는 이런 기계가 더 많아진다는 뉴스를 봤었다. 스크롤만을 이용한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하필이면 스크롤이었기에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시선도 겸했다.


소인은 그림자 스크롤을 넣고 녹차를 눌렀다. 평소 녹차 대신 탄산음료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걸 고르고 싶었다. 덜컹거리며 자판기에서 나온 건, 녹차 맛 단백질 블록이었다.


돈 대신 스크롤을 사용하는 건 흥미로웠지만, 음료가 아닌 단백질 블록이 나오는 건 별로였다. 맛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맛도 별로였다. 녹차의 맛이 느껴지긴 했지만, 가루만 조금 넣은 밍밍한 양갱을 먹는 것 같았다.


소인은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자판기의 설문 조사지에 녹차가 맛이 없다는 내용을 적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자마자 소인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지금은 1교시가 한창 진행될 시간,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누워있는 건 생각조차 못 했겠지만, 너무나 피곤한 지금 상황에서는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생긴 여유에도 소인은 밀린 사소한 집안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은 온통 소민이를 막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피곤에 절여지다시피 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체인 메모리 스크롤을 들고 있는 팔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소인은 천천히 스크롤을 흔들어 천사를 불러냈다.


순백의 천사, 초원을 보는 것만 같은 녹안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방금 전 스크롤 배틀의 영향으로 소인과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고귀한 기품만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해방한 소인에게 충성스럽게 인사를 전했다.


“괜찮아?”

소인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천사를 바라보았다.


“소인님이 힘들어하는데, 제가 힘들어할 수 있나요. 전 괜찮습니다.”

천사는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다.


“난 힘들어하지 않았어.”

소인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말과는 달리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고, 천사는 미소를 싱긋 지으며 소인에게로 다가가 이마를 만졌다.


“열이 있는걸요? 잠깐이라도 쉬세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소민이가 언제 날뛸지 몰라.”

소인은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고, 천사는 그런 무모한 그를 껴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무릎베개라도 해드릴게요. 잠깐이라도 좋으니 쉬어주세요.”

“그럴 시간 없다고!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소인은 화를 냈다. 예민해졌기 때문일까, 평소 천사에게는 화를 내지 않았다는 걸 자각하며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소인님, 그럼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그 정도 여유는 가져도 괜찮잖아요.”

그럼에도 천사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따스하게 말했고, 잠깐 생각하던 소인은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소인이 천사의 허벅지에 머리를 가져가고, 천사는 엄마처럼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 스크롤 배틀에서 제가 공격에 실패한 이유를 알고 계세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기고 있었잖아. 네가 마지막에 공격에 실패해서 지고 말았고··· 대체 왜 그런 거야?”

“저는 사슬의 기억에서 해방된 존재.”

천사는 자신이 해방된 체인 메모리 스크롤을 들었다.


“이 기억에는 소인님의 기억이 담겼죠. 즉, 소인님의 정신과 제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는 말과도 같아요. 똑똑한 소인님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내가 소민이의 문제로 흔들려서 공격에 실패했다는 거지?”

“맞아요. 그러니까 소인님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소민님을 막을 수 있고, 저도 잘 싸울 수 있어요.”

“정말··· 쉴 시간도 아까운데.”

소인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개를 더욱 천사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럼, 제가 나가서 소민님을 찾아볼게요.”

“아냐, 잠깐만 이대로 있어 줘.”

소인은 눈을 감았고, 천사는 대답 대신 그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도 몰랐다. 그때까지도 소인을 돌보던 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궁금하세요?”

“만약 내가 이대로 소민이를 모른 척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소인은 고개를 돌려 그림자 스크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세요.”

천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소인은 그림자 스크롤을 놓쳐버렸다.


“두 분은 서로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예요. 두 분을 가까이서 본 저니까 말할 수 있어요. 소인님, 왜 그렇게 무서운 생각을 하는 건가요?”

“미안해.”

소인은 몸을 일으켰다.


“잠깐, 피곤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나 봐.”

소인은 그림자 스크롤을 멀리 밀어버렸다. 천사는 초원과도 같은 눈동자로 소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소인님은 소민님의 그림자가 아니에요.”

“누, 누가 뭐래?”

소인은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에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겠지.”

“소인님.”

천사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눈을 깜빡거렸다. 소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쓸쓸하게나마 미소를 지었지만, 소인과 연결된 존재인 천사는 농담으로라도 미소 지을 수 없었다.


“충분히 쉬었어. 나가자.”

소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몸의 긴장을 풀었다. 천사는 당연히 그가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명령은 그녀에게 있어 절대적이었다. 어느 정도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완전한 거역은 불가능했다.


방을 나서는 소인, 천사는 입을 열었다.


“그림자로만 남을 생각인가요?”

문고리를 잡은 소인은 움찔거렸다.


“소인님은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소인은 고개를 돌려 천사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괴물의 마석도 찾지 못했어. 더군다나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제가 찾아볼게요.”

“아니, 소민이를 찾아줘.”

소인은 단호했다. 천사는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보다 소민이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걸 막는 게 우선이야.”

그 길로 천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인에게로 다가왔다.


“알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소인은 옅은 미소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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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1) 20.07.11 36 0 16쪽
7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3) 20.07.09 48 0 12쪽
»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2) 20.07.09 46 0 11쪽
5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1) +2 20.07.08 9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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