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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의 서재

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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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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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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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2)

DUMMY

유마는 시영이 그랬던 것처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D-Zero가 일어났을 당시,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 그럼에도 별 소용이 없던 것, D-Zero는 자신이 해결한 게 아닌 것, 포우라는 초인이 사실상 D-Zero를 해결한 것과 다름이 없는 현재 상황, 마지막으로 해방기와 스크롤은 원래 이런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물건이 아니라는 것 등.


시영이 실망할 이야기뿐이었지만, 그래도 유마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시영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유마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것은 단지 시영에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막지 못해 피해받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것이었다.


“아뇨, 유마 씨는 D-Zero를 막기 위해 노력했잖아요. 죄송할 건 없어요.”

오히려 시영은 유마를 말렸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저예요.”

“시영 군이?”

유마는 눈을 깜빡거렸다.


“유마 씨는 뭐라도 했겠지만, 저는 아마 아무것도 못 했을 테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유마의 물음에 시영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D-Zero 당시의 기억은 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제가 뭘 해볼 수 있었을까요? 어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다행이죠.”

“시영 군.”

“하지만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건 너무 분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요.”

시영은 이를 바득 갈았다. 그의 생각을 바꾸려던 유마는 오히려 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시영과 상황은 다르지만, 유마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에 후회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을지도 몰랐다.


“시영 군, 만약 기억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기억을 찾을 수 있다고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유마가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뭔가를 조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헬멧 같은 기계가 내려왔다.


“스크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영 군의 기억을 복사해보면 될 것 같군요.”

“복사요?”

“시영 군, 그 기계장치를 머리에 써 주세요.”

“이렇게요?”

시영은 검은 모자를 벗고 기계장치를 머리에 썼다.


“저, 교수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시영 씨의 메모리 스크롤은 벌써 6장이나 있는 것 같은데···”

승혁은 시영이 가지고 온 6장의 메모리 스크롤을 가리켰다. 그가 가져온 스크롤 6장은 전부 테두리가 금색이었다.


“그거 전부 메모리 스크롤입니까?”

유마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모리 스크롤은 평범한 스크롤과는 달리 테두리가 백금색이었는데, 시영이 가져온 건 테두리가 금색이었다.


“저거 제 물건 아니에요. 누구한테 받았는데, 기억은 안 나요.”

기계장치를 쓴 시영이 조금 긴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도, 저 금빛 테두리 메모리 스크롤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아마, 시영 군의 물건은 절대 아닐 겁니다.”

유마는 확신에 차지 못한 말과 함께 시영의 기억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시영 군은 D-Zero 때 기억나는 게 있나요?”

한창 기억을 복사하던 와중, 유마가 시영에게 물었다.


“음, 아마 미소가 아닐까요?”

“미소? 웃는 얼굴을 말하는 겁니까?”

“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제게 미소라고 말했던 건 기억이 나요.”

그때 시영의 기억의 복사가 끝났다. 기계장치에서는 테두리가 백금색인 [제로 메모리 스크롤]이 완성되었다.


“제로?”

유마는 제로라는 말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도대로 만들어진 자신의 발명품이 오류를 일으켰을 리는 없었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 유마는 시영이 벗은 기계장치를 자신의 머리에 썼다.


“한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아, 네.”

갑작스럽게 지목을 받은 승혁은 유마보다는 아니었지만, 나름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했다.


“신기하다.”

시영의 마음에서 툭 튀어나온 진심에 유마와 승혁은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기억을 복사한다는 그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유마를 만났기에 위화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였기에 혜성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뜬금없지만, 시영 군은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의요?”

시영은 평소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정의입니다.”

유마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고, 소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유마가 [정의]에 대해서 묻는 건, 시영처럼 해방기를 가져온 사람들에게만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었다. 소인 역시 소민과 함께 해방기를 가지고 그를 찾아온 날 정의에 대해 대답을 했었다.


물론 시영의 경우에는 해방기를 소지한 사람과는 조금 다른 상황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해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해방기]라는 물건이 주체가 된 만남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시영도 해방기를 가져왔으니 유마는 내심 시영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냥 별생각 없어요.”

정작 시영은 갑작스럽게 묻는 정의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가 정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습니까?”

기대가 무색하게도 그동안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애매모호한 대답을 남겼다. 유마는 스스로가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하고 수긍했다.


“그럼, 시영 군은 자기 물건도 아닌 메모리 스크롤 6장과 누구에게 받았는지도 모를 해방기를 계속 가지고 다닌 이유가 뭡니까?”

“그건, 해방기와 6장의 메모리 스크롤이 잃어버린 D-Zero의 기억에서 유일한 증거와도 같기 때문이에요.”

“유일한 증거?”

유마는 생각보다 깊은 의미에 할 말을 생각했고, 소인은 시영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제게 남은 물건들이었어요. 그,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원래는 메모리 스크롤이 10장이었는데, 제가 4장은···”

“아, 네. 알겠습니다.”

유마는 의도적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더 듣지 않아도 최소한 어떤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때마침, 유마의 기억의 복사가 끝나고, 백금색 테두리의 [매드 판타지 메모리 스크롤]이 완성되었다.


“매드 판타지?”

유마는 [미친 환상]이라는 살벌한 기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기계를 조작하던 승혁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터널과 소인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기계가 잘못된 것 같군요.”

유마는 곤란해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제로라는 의미는 절대 좋지 못했다. 공백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었고,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도 될 수 있었다. 메모리, 즉, 기억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기억이라는 말과도 다름없었기에 기계가 잘못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매드 판타지는 제로와는 조금 다르게 좋지 못했다. 의미 자체가 나쁘고, 더욱 중요한 건 자신의 기억이 나쁘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거야 원···”

유마는 시영의 제로와 자신의 매드 판타지를 번갈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제로라··· 어쩌면 저한테 맞는 기억이네요.”

반면, 시영은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시영 군, 죄송합니다.”

“아녜요. 매드 판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제로는 지금 기억을 잃은 저를 대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만···”

유마는 매드 판타지를 품속에 감춰버렸다.


“뭐, 시영 군은 D-Zero의 진실을 찾아서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유마는 자연스럽게 자리로 돌아가 기계장치를 치워버렸다. 조만간 기계장치를 뜯어볼 작정이었다.


“진실을 찾아서···”

시영은 입을 열었지만,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확신 없는 대답이 마음에서부터 나올 리는 없었다.


“시영 군?”

유마는 기계장치를 다 치울 때까지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의아하게 여겼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요?”

어쩌면 유마는 지금까지 그와 나눈 대화 때문에라도, 시영의 입에서는 망설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D-Zero의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 이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혹시, 기억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시영은 대답하지 않았고, 유마는 그의 마음을 읽었다. 예상과는 달리 그의 마음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유마의 생각으로는 기억을 잃었기에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마는 빨리 의식 불명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시영처럼 좋은 사람이 힘들어한다면 며칠 기다릴 의향은 충분했다. 엄연히 서로가 만족해야 진정한 의뢰라 볼 수 있었고, 유마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정 힘드시다면, 생각을 정리하고···”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잖아요.”

시영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제가 반드시 의식 불명 사건의 원인을 찾아볼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유마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시영은 해방기와 스크롤 6장, 그리고 제로 메모리 스크롤을 챙겼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시영은 유마, 승혁, 이터널에게 차례로 공손하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저 시영이라는 분, 좋은 사람 같습니다.”

승혁이 미소를 지은 채 유마에게 다가갔다.


“네, 요즘에는 보기 드문, 아주 좋은 분입니다.”

유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시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승혁이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 유마는 한순간 시영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도 열심히 살아가는데, 비교적 편하게 생활하는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심호흡한 유마는 고개를 돌려 아직 나가지 않은 소인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망설이는 그의 마음을 읽고는 모른 척 말을 걸었다.


“괜찮은 겁니까?”

“뭐가요.”

소인은 유마를 바라보지 않고 까칠하게 대답했다.


“새벽에 소인 군이 괴인과 싸우던 걸 봤습니다.”

“···어떻게 봤어요?”

“우연히 입수한 영상에서 봤습니다. 그것보다도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는 겁니까?”

“왜 그러냐고요?”

소인은 피식거렸고, 유마는 피비린내 나는 느낌에 몸을 움찔거렸다.


“도, 도움을 요청해도 됩니다. 그것보다도 왜 소민 양은 없던 겁니까? 대체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죠?”

“가볼게요.”

소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터널은 소인을 주시했고, 소인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한숨을 쉬었다.


‘별일 없겠지?’

유마는 소인이 가진 위험한 생각을 읽었지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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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3) 20.07.13 43 0 14쪽
»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2) 20.07.12 38 0 11쪽
10 Episode 01. 묶인 천사-새로운 만남(1) 20.07.12 35 0 12쪽
9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2) 20.07.12 32 0 13쪽
8 Episode 01. 묶인 천사-검은 모자(1) 20.07.11 35 0 16쪽
7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3) 20.07.09 47 0 12쪽
6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2) 20.07.09 45 0 11쪽
5 Episode 01. 묶인 천사-괴물의 마석(1) +2 20.07.08 9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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