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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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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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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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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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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1)

DUMMY

머리가 박살이 난 채 무너진 흑마법사의 시체. 그리고 그곳에서 스며 나오는 빛.


이번에는 확실한 죽음이었다. 팔다리와는 달리, 머리까지 박살 난 것까지 다시 이어 붙이지는 못하는 모양.


“...후.”


전투가 끝났음을 확인한 나는 검을 역수로 쥔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 전체가 욱신거렸다.


엄청난 압력을 가했던, 보이지 않는 손아귀부터 마지막에 날아든 수십 개의 칼날들까지.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검은 칼날에 의해 몸 곳곳이 베인 상처가 꽤 쓰라렸다.


스슷. 트롤의 재생력에 의해 곳곳에 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속도는 평소와 비교해 조금 느렸다. 전투를 치르며 대부분의 마나를 소모한 것에 더해, 칼날이 마기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별다른 후유증이 남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마기 대한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별다른 흉터 없이 아무는 상처들.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했다. 나와 흑마법사 간의 전투가 휩쓴 이곳에서 살아남은 건 나 혼자.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옅은 빛들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감사관 댈러스부터 십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시체까지.


물론 그 모두를 흡수할 수는 없었다.


가장 처음 특전을 각성한 이후로 며칠간 확인한 것처럼,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며칠이고 시체의 빛이 유지되는 시간은 하루였으니까.


오로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물론 그리 어려운 고민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스윽. 시선을 돌린 곳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가장 처참한 모습의 흑마법사 시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는 나머지 시체들과는 달리, 녀석에게서는 꽤 밝은 빛이 비쳐나오고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었음을 확인한 나는 장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 후 흑마법사의 시체 근처에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자.


화아악!


-비전 주문, ‘베르자트의 손아귀’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였습니다.

-비전 주문, ‘삭월 칼날’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였습니다.

-아라하드의 전승 이론, ‘네크로폴리스의 중간 사제 지침법’에 대한 지식 일부를 흡수하였습니다.

-지옥 언어, 마구르잔에 대한 지식 일부를 흡수하였습니다.


흘러들어오는 지식들. 낯선 지식들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놈의 모든 것을 흡수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흡수한 것은 녀석이 익히고 있는 마법의 일부일 터였고, 그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네크로폴리스의 정식 일원인 흑마법사의 색다른 지식 체계는 처음 접하는 범주의 것이었으니.


물론 아쉽지는 않았다. 이제 막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의 흑마법사 하나를 처리했을 뿐이었으니까.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이미 길을 터놓은 상태에서 다음번에 비슷한 부류의 지식을 또다시 흡수하게 된다면 보다 더 깊은 지식에 대해서도 흡수가 가능할 터.


나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수통 중 하나를 열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곧바로 시험해볼 것은 두 가지 비전 주문. 나는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익힐 수 없는 흑마법. 아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사악한 인물임을 드러내는 증거와도 같은 힘.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지난 번 머리 없는 기사가 사용했던 ‘폭발하는 투창’이 푸른빛을 띠었던 것처럼, 이제 내가 흡수한 이 주문의 원료는 마기가 아닌 마나였으니까.


스으으.


모여드는 기운. 아직 마나가 충분히 회복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탈력감이 느껴졌지만, 시험 삼아 가볍게 시전할 여력은 되었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함께 손에 모여드는 푸른 기운. 나는 그 마나를 정해진 술식과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흑마법사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터득했을 해당 지식은, 완벽하게 내 것이 되었으니까.


예를 들면, ‘베르자트의 손아귀’ 주문에서 베르자트라는 것이 지옥의 하급 악마 중 하나의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마치 수십, 수백 번 사용해본 것과 같은 익숙함. 곧 완성된 마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베르자트의 손아귀.’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아귀. 경지 높은 마법사가 아니라면 볼 수 없을 듯한 손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마치 투명한 거인의 손을 조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굳이 더 마나를 소모하지는 않았다. 위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직접 몸으로 겪어보기도 했고.


다음은 ‘삭월 칼날.’ 흑마법사가 마지막에 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던 주문이었다.


베르자트의 손아귀를 천천히 꺼뜨린 나는 남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푸른 칼날.


물론 마법을 끝까지 완성시키지는 않았다.


두 가지 주문을 직접 써본 것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뿐, 실제로 전투에서 어떤 쓰임새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대략적인 구상을 마쳤으니까.


‘쓸 만하겠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의 변칙성에 도움을 줄 만한 두 가지 마법에 대한 만족감.


물론 네크로폴리스 사제의 행동 지침이나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지옥의 언어와 같은 이론적인 것들도 쓸데없는 지식인 건 아니었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는 앞선 두 주문보다도 훨씬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든 점검을 마친 나는 다시금 마차 옆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물론 그 적막이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그닥, 다그닥.


저 멀리에서, 순찰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이쪽의 참혹한 현장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굳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딱히 변명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정찰병의 선두에 선 인물은,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애초에 내가 탄 마차는 헤리튼 백작의 본성으로 향하고 있던 길. 이곳은 이미 헤리튼 백작의 영지 안쪽이었다.


다그닥. 이내 앞쪽에서 멈춰선 말. 나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케프먼 경.”

“...맙소사. 카론?”


투구의 안면 덮개를 들어 올리자 드러난 당황한 얼굴. 나는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헤리튼 백작과의 만남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원래와는 달리 감사관은 도착하지 못했지만.


“맙소사.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그 역시 감사관 댈러스가 자신의 영지를 방문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흑마법사라.”


딱딱하게 굳은 얼굴. 헤리튼 백작은 나에게 들은 설명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역시, 곳곳에서 떠돌던 불길한 소문들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점점 심해지는 왕위 쟁탈전.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나는 불길한 소문들.


“일전에 자네가 처리해 주었던 몽마 역시 놈들의 소행이었을 가능성이 크겠군.”

“네. 높은 확률로 그럴 테죠.”


무덤가의 구울, 몽마, 머리 없는 기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쩍은 일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성격이 달랐다.


“아무리 자신들을 방해했던 자네를 노린 것이라지만, 흑마법사가 대놓고 왕국의 감사관을 공격했다라...”


물론 모두를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거나 회수해 목격자를 남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직감은 무언가가 더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놈의 행동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이제는 발각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자신의 작품인 머리 없는 기수를 소멸시킨 나에 대한 분노가 불러온, 개인의 일탈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일의 진행이 과거보다 더 빠르다.’


변수야 차고 넘쳤다. 애초에 과거와는 달리 놈들의 일을 벌써 몇 번이나 방해한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침착하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 왕국에 한정해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이 어긋난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소식이다.


하지만.


‘일의 진행이 과거보다 빨라지는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이곳 왕국의 일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못했을뿐더러, 놈들이 예정보다 일을 빨리 벌인다는 건 그만큼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설마 2 왕자님 쪽에서.”


그때 들려오는 헤리튼 백작의 말.


나는 그의 말에 생략된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애초에 나와 아르젠시아 역시 곧바로 의심한 것이 그쪽이었으니까.


비교적 약한 기반 세력을 갖춘 2 왕자. 누군가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를 끌어들였다면, 그쪽일 가능성이 컸다.


반대로, 지금 나와 헤리튼 백작을 포섭하기 위해 왔다가 죽음을 맞이한 감사관은 1 왕자 쪽 인물이 아니던가.


“그쪽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헤리튼 백작의 말. 나는 그를 바라보며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섣불리 답을 내린 채 행동하는 건 좋지 않을 듯합니다. 2 왕자 쪽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아직 확실해진 것은 아니니까요.”


내 말에 백작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그럼 나는 일단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지. 어차피 결국 중앙에 소식이 전해진다면, 이쪽에서 먼저 정리해 보고하는 편이 나을 테니.”


그가 감사관의 사망에 대한 뒤처리를 맡아준다면 나로서는 안심이었다. 지방에서 나름 명망 높은 백작인 헤리튼은 이런 종류의 일에서 나보다 훨씬 안성맞춤인 인물이었으니.


“자네는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낫겠어. 혹시 모를 의심을 살지도 모르니 말일세.”


조심스럽게 건네진 말. 그것으로 헤리튼 백작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본성을 나섰다.


***


나는 카블락으로 돌아와 버나드, 그리고 두 명의 의원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흑마법사. 왕위 쟁탈전. 심상찮은 기류.


어쩌면 왕국 전체에 지금보다도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곧바로 대비를 시작했다.


만약의 상황이 닥쳐 도시의 문을 걸어 잠그고 봉쇄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물자들을 비축해두는 것과 같은.


물론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헤리튼 백작이 감사관 사건을 빌미로 1 왕자를 만나 그를 떠보는 동안, 나는 2 왕자 쪽을 살펴볼 계획이었다.


가만 놔두면 왕국 전역을 집어삼킬 불길이 번지기 전에, 그 불씨를 제거해야 한다.


물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향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현재 가장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 그리고 무언가 일이 일어났을 때 왕국 전체를 장악하거나 혼란에 빠뜨리기에 가장 좋은 곳.


따라서 높은 확률로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의 주된 음모가 꾸며지고 있을 곳.


바로 이곳 바이메르 왕국의 수도, 바이에르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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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1) +15 24.09.11 13,945 455 11쪽
44 흑마법사 +24 24.09.10 13,962 509 12쪽
43 수도의 감사관 +14 24.09.09 14,378 449 12쪽
42 들판의 배회자 (4) +10 24.09.08 14,761 450 12쪽
41 들판의 배회자 (3) +20 24.09.07 14,919 493 11쪽
40 들판의 배회자 (2) +20 24.09.06 15,406 472 11쪽
39 들판의 배회자 (1) +11 24.09.05 16,302 464 12쪽
38 영지전 (6) +18 24.09.04 16,067 537 13쪽
37 영지전 (5) +21 24.09.03 15,862 555 11쪽
36 영지전 (4) +13 24.09.02 16,304 503 12쪽
35 영지전 (3) +15 24.09.01 16,390 527 11쪽
34 영지전 (2) +15 24.08.31 16,698 517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7,608 498 12쪽
32 숲의 거미 (2) +24 24.08.29 17,802 513 12쪽
31 숲의 거미 (1) +19 24.08.28 18,532 544 11쪽
30 복귀 +16 24.08.27 19,305 545 12쪽
29 대화 (3) +14 24.08.26 19,192 592 12쪽
28 대화 (2) +10 24.08.25 19,272 548 11쪽
27 대화 (1) +14 24.08.24 20,290 570 12쪽
26 기사의 자격 (3) +17 24.08.23 20,420 562 12쪽
25 기사의 자격 (2) +14 24.08.22 19,796 580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1 24.08.21 20,696 605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273 574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0,810 566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6 24.08.17 21,762 57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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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접촉 (1) +8 24.08.07 24,931 64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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