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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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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최근연재일 :
2024.09.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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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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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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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들판의 배회자 (2)

DUMMY

나는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는 바스티라의 성문이 닫히고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난 출입 시간. 쿠구구. 이내 성문이 완전히 닫히자 주변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익숙한 적막. 나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저 멀리 펼쳐진 숲과 들판.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달빛이 내려앉기 시작한 평원을 지나는 것은 나름 운치 있는 산책이었다.


물론 그 산책의 끝에 마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게 문제긴 했지만.


그렇게 한 시간쯤 이동한 나는 곧 가시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는 들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마물은 아니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 나는 귀를 기울였다. 횃불로 보이는 빛. 그리고 가벼운 욕설과 웃음이 섞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용병인가?’


상대방을 먼저 감지한 나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은 채 계속 걸어갔다. 마물은 아니지만, 경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오 분 정도 걸음을 옮겼을 때. 어느덧 가까워진 거리 때문에 상대방도 뒤늦게나마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잠깐. 뭔가 이쪽으로 오는데?”

“순찰병이 올 곳은 아닌데.”

“횃불 들어봐. 데일.”


낮은 목소리와 함께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횃불의 빛이 내 쪽을 향했다.


스릉.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드는 소리.


횃불과 무기를 든 세 명의 사내가 나에게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위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더욱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내 횃불의 가시거리 내에 드러난 내 모습을 본 세 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각자의 무기를 집어넣었다.


“난 또. 설마 몬스터인가 했네. 이 밤에 횃불도 없이 어디를 가려는 거요?”

“그쪽과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용병들이 향하는 방향 역시 가시나무 들판 쪽임을 확인한 내 대답. 그러자 사내 한 명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쪽으로는 안 가는 게 좋을 거요. 뭐, 괴물을 봤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거든. 반쯤은 헛소리겠지만 흉흉한 소문은 굳이 가까이 할 필요가 없지.”


흉흉한 소문이라. 나에게는 반가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 나는 세 명의 용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당신들은?”


용병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 역시 들판 쪽이었다.


경고의 뜻을 담은 말과는 반대되는 행동. 내 질문에 그들이 으스대듯 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아. 우리는 숙련된 용병들이거든. 이 근방의 지리에 대해 빠삭하기도 하고.”

“멋 모르는 일반인들과는 다르니...가만. 그쪽도 용병이오? 도시에서는 못 보던 얼굴인데.”


횃불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내 복장을 뒤늦게 파악한 한 명이 미심쩍은 듯한 말투로 물었다.


물론 신분 증명은 간단했다. 나는 금패를 꺼내 그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횃불의 빛에 반사된 금색을 본 사내들의 얼굴에 당황과 놀라움이 어렸다.


“이런 제길. 금패?”

“...흠흠. 생각보다 대단한 친구였군.”

“이 근방에 금패 용병도 있었나.”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보는 이들. 혹시라도 자신들이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별달리 기분이 상할 건 없었다. 금패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은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물었다.


“이 야밤에 가시나무 들판은 무슨 일로 가는 건지?”

“아, 카릭 나무 열매 때문이오.”


조금 전과는 달리 곧바로 나오는 대답.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카릭 나무 열매?”

“그렇소. 여러 용도에 요긴하게 쓰이는 재료인데, 그건 밤에 더 찾기 쉽거든.”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약재, 혹은 포션의 재료 중 일부로 쓰이는 작은 열매. 아마 들판 곳곳에 가득한 가시나무의 일부에 섞여 있는 모양.


“한 상인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후한 값을 쳐 준다고 했지. 그래서 이렇게 나와 있는 거고.”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 나는 용병들에게 물었다.


“혹시 그 상인의 이름이 토마스인가?”


내 말에 살짝 놀라는 상대.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맞소. 혹시 그쪽도 제안을 받은 겁니까? 아니, 뭔 금패 용병한테까지─”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토마스라.’


아르젠시아가 잡아낸 상인. 그가 연관되어 있다면 뭔가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카릭 열매라는 구실로 이들을 들판으로 끌어들인 것일 수도 있었다.


‘미끼인가.’


토마스라는 이름의 상인과 이 가시나무 들판의 흉흉한 소문 사이의 연관 관계. 역시 아르젠시아가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나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짧게 고민했다.


다짜고짜 토마스라는 상인이 이미 죽었다고 말하기는 살짝 애매했다. 추가적인 질문, 혹은 쓸데없는 의심들이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


“근처 상인의 말에 의하면 토마스라는 이가 안 보인지 좀 되었다던데.”


다만 이 정도의 경고는 해줄 수 있었다. 물론 행동에 대한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흠. 그렇소? 어쩐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이대로 성으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뭐, 상관없겠지. 카릭 나무 열매는 그자가 아니더라도 살 이들이 많을 테니.”

“지금 시기를 놓치기는 아깝지. 흉흉한 소문 덕택에 이렇게 경쟁자가 없을 때도 흔치 않으니.”


이동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한 모양. 나름의 토론을 마친 그들이 나를 바라보며 작게 헛기침했다.


“흠흠. 동쪽은 우리가 먼저 왔으니 되도록 다른 방향으로 가주셨으면 좋겠소. 물론 강요는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상도덕을─”

“걱정 마시오.”


아직도 나를 열매 경쟁자로 여기는 듯한 말에 가볍게 대꾸한 나는 용병들을 지나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조용한 들판에 무엇이 배회하고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


용병들과 멀어진 나는 빠른 속도로 들판을 가로질렀다. 앙상한 가시나무가 곳곳에 가득한 주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곧바로 눈에 띄는 무언가는 없었다.


오히려 이따금씩 반짝거리는 작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열매.


사방에 가득한 가시나무 사이사이에 열린 카릭 열매였다.


용병들이 자루를 든 채 열심히 찾고 있던 것. 물론 가시나무들을 치우며 굳이 그것들을 따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열매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수색을 한 시간쯤 이어갔을 때.


“...”


희미하게 느껴지는 미묘한 무언가. 주변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여전히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없었기에 그저 기분 탓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여러 번의 능력 흡수를 걸치며 향상된 내 직감은 생각보다도 더 정확했으니까.


‘동쪽?’


희미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방향은 동쪽. 가시나무들이 한결 무성하게 우거진 지역이었다.


타닥. 나는 비전 시야를 켠 후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무언가가...’


높이 솟은 저 멀리의 언덕 위. 어떤 실루엣이 휙 하고 사라지는 것이 언뜻 보였다.


구불구불한 언덕과 가시나무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일반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다.


‘덩치가 조금 컸던 것 같은데. 짐승 종류인가?’


아르젠시아에게 부상을 입힌 놈일 터. 나는 동쪽으로 휙, 하고 사라진 형체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거친 언덕길을 삼십여 분 정도 뛰었을 때.


“─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한 나는 곧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 살려...!”


조금 전 마주쳤던 용병 중 하나. 나는 그의 상태를 살폈다.


거친 가시나무들을 헤치고 뛰어온 탓에 온몸에 나 있는 상처. 하지만 그는 철철 흘러내리는 피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어디에 있지?”

“도, 도망가야 해. 괴물이야. 괴물이 나를 쫓아올 거라고!”


제대로 대화도 통하지 않은 상태. 고개를 젓던 사내는 이내 내가 왔던 쪽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붙잡고 의미 없는 질문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머지 두 명의 행방은 곧바로 찾을 수 있었으니까.


“...”


나무 곳곳에 걸린 형체들.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곳곳에 걸린 형체가 두 명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요란하게도 죽였군.’


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서 눈을 돌리는 대신,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점점 짙어지는 불길한 기운.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발굽 소리. 아르젠시아가 말한 대로 말발굽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거리가 꽤 가깝다는 뜻.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준 채 알카루스 공방의 장갑을 낀 손으로 가시나무를 치우며 걸어나갔다.


그리고 마주칠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 삐죽삐죽한 배경 위에 서늘한 달빛이 내려앉은 곳.


말을 탄 한 명의 사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는 말은 사실 틀린 이야기였다.


기수는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쪽을 향한 몸통. 그가 타고 있는 말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푸르릉. 그리고 들어 올리는 손. 먼 거리였지만, 비전 시야가 켜진 눈에 시커먼 기운이 뭉클거리는 것이 보였다.


검은 기운은 이내 길쭉한 모양을 이루었다.


본능적인 불길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쉬이익!


검은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머리가 없음에도 나를 정확히 인지하고 날린 공격.


눈이 없는 이가 가한 것이라기에는 놀랍도록 세밀한 조준이었다.


타앗.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기습을 당했다면 모를까, 이미 녀석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회피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콰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검은 무언가가 내리꽂힌 곳을 바라보았다.


“...”


완전히 엉망이 된 주변.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창?’


프스스. 나는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있는 물체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머리 없는 기수가 던진 것은 안개로 만들어진 듯한 검은 창이었다.


특이한 모양. 현재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은 양식의 것이었다. 그것도 마법에 가까운 범위와 위력을 가진.


물론 그 공격에 대해 더 분석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언덕 위의 기수가 맹렬한 기세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으니까.


두두두두─


그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지는 거리.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상대를 응시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스으으. 동시에 움켜잡은 검 손잡이의 붉은 보석이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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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들판의 배회자 (4) +10 24.09.08 14,764 450 12쪽
41 들판의 배회자 (3) +20 24.09.07 14,923 493 11쪽
» 들판의 배회자 (2) +20 24.09.06 15,412 473 11쪽
39 들판의 배회자 (1) +11 24.09.05 16,304 464 12쪽
38 영지전 (6) +18 24.09.04 16,069 537 13쪽
37 영지전 (5) +21 24.09.03 15,865 555 11쪽
36 영지전 (4) +13 24.09.02 16,307 503 12쪽
35 영지전 (3) +15 24.09.01 16,391 527 11쪽
34 영지전 (2) +15 24.08.31 16,700 517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7,612 498 12쪽
32 숲의 거미 (2) +24 24.08.29 17,804 513 12쪽
31 숲의 거미 (1) +19 24.08.28 18,536 544 11쪽
30 복귀 +16 24.08.27 19,306 545 12쪽
29 대화 (3) +14 24.08.26 19,192 592 12쪽
28 대화 (2) +10 24.08.25 19,273 548 11쪽
27 대화 (1) +14 24.08.24 20,293 570 12쪽
26 기사의 자격 (3) +17 24.08.23 20,422 562 12쪽
25 기사의 자격 (2) +14 24.08.22 19,798 580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1 24.08.21 20,702 605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273 574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0,811 566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6 24.08.17 21,763 573 10쪽
20 베리드 용병단 (3) +13 24.08.16 21,410 606 11쪽
19 배리드 용병단 (2) +10 24.08.15 21,331 584 11쪽
18 베리드 용병단 (1) +10 24.08.14 22,305 590 11쪽
17 리베르 상회 (3) +11 24.08.13 22,517 603 11쪽
16 리베르 상회 (2) +12 24.08.12 22,924 604 10쪽
15 리베르 상회 (1) +13 24.08.12 24,383 590 11쪽
14 포겔스 마을 (2) +15 24.08.10 23,584 647 11쪽
13 포겔스 마을 (1) +16 24.08.09 24,510 6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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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접촉 (1) +8 24.08.07 24,934 650 11쪽
10 트롤 (3) +13 24.08.06 24,957 662 10쪽
9 트롤 (2) +12 24.08.05 24,999 69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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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전 +15 24.07.29 36,662 68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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