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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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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최근연재일 :
2024.09.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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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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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접촉 (1)

DUMMY

가장 먼저 들른 장소는 대장간이었다.


목적은 단순했다. 이제껏 낡은 천으로 감싼 채 들고 다녔던, 숨겨진 기능 따위도 없이 화려하기만 한 검집을 처분하기 위함이었다.


귀족이나 기사가 들기에는 나름 소박하지만, 용병이 들고 다니기에는 상당히 튀는 검집이 쓸데없는 관심이나 의심을 불러오는 것은 시간문제.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다른 노출이 되지 않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깔끔하게 처분하는 것이 현명했다.


거기에 더해 이곳 카블락은 내가 처음 검을 발견한 평원과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고.


“막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는데.”


해가 거의 질 무렵. 나를 발견한 대장간의 직공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들어오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간단한 의뢰에 더해 물건을 팔러 왔거든.”


내 대답에 대장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들어오시오.”


대장간에 물건을 파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동료의 죽음을 자주 목격하는 용병에게는 더더욱.


물론 용병들이 대장간에 싸게 넘기는 것들은 대부분 별다른 질 낮은 물건들이었다.


눈앞의 대장장이 역시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하품을 하며 대장간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하암. 어디 꺼내 보시오. 기본적으로 무게당 가격을 받기는 하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것은─”


스륵.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검집을 감싸고 있었던 천을 풀었다.


지저분한 천이 벗겨지며 드러난 화려함. 말을 멈춘 대장장이의 눈이 커졌다.


“이걸 녹여서 똑같은 크기의 평범한 검집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데.”

“흔한 길거리 대장간의 기성품이 아니로군. 기술 자체는 평범하지만 꽤나 값진...뭐요?”


내 말에 놀란 얼굴을 한 대장장이가 되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리 어려운 주문은 아닌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건넨 나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한 대장장이가 검집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뭐, 어렵진 않지. 달리 마법이 걸려 있거나 한 것도 아니니.”

“재료가 추가로 필요하지는 않을 테고, 남은 장식품들은 그쪽에게 팔지.”

“으음...”


내 말에 대장장이가 계산을 하는 듯 생각에 잠겼다.


작업을 마치고 남을, 검집에 달린 미세한 은 세공줄이나 매우 자그마한 보석 알갱이 따위의 가격을 매기는 듯했다.


“남는 값이 꽤 될 텐데. 일단 작업 비용을 제외하고...”


대략적인 계산을 끝낸 듯한 대장장이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3골드쯤은 남겠군. 가지고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야겠어. 잠시 실례하겠소.”


안쪽에서 동화와 은화로 가득 찬 주머니를 꺼내 온 그가 액수를 세어 본 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길. 그래도 모자라군. 잠깐만 기다려 보시오.”


주머니를 나에게 통째로 넘긴 사내가 대장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물건 몇 개를 대신 가져다주려는 모양.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대장간은 대도시 카블락의 용병 길드와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엄청난 이득을 보며 팔지는 못해도, 최소한 뒤통수 맞을 걱정은 없었다.


이내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어 나온 대장장이. 그가 가져온 것들은 용병들이 많이 사용하는 물건들이었다.


“이 정도면 얼추 맞을 거요.”


잘 드는 손도끼. 날카로운 단검 몇 자루. 거기에 옷 속에 입는 가벼운 사슬 갑옷까지.


뭐.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못해도, 챙겨놓을 만한 소모품들이었다.


“작업은 이틀쯤 걸릴 거요. 그때까지는 이걸 사용하시오. 그냥 챙겨드리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임시 검집을 받아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도시의 깊숙한 장소. 술집과 여관들이 줄지어 늘어선 거리의 뒤쪽이었다.


대장간은 간단한 장비 처리를 위해 들른 곳. 진짜 볼일은 여기에 있었다.


‘기억 그대로군.’


나는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숨을 거두기 전. 그러니까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간신히 살아남으며 보낸 3년은 마지막까지 처절함에 가까웠다.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나름의 경험이 쌓였다고는 해도. 은패 용병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난리도 아니었지.’


욕심에 눈이 먼 채 여전히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소수의 귀족들과 대륙을 뒤덮은 크고 작은 전쟁. 그 사이에서 피어나 문명 세계 곳곳에 마수를 뻗는 단체와 존재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일개 용병이었던 나조차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이름이나 특징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왕국들이 불에 타고 무너진,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이제 막 넘었었던 시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쟁의 징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세상은 조용하다.


물론 겉으로는.


“...”


허름한 외관의 건물에 도착한 나는 오래된 나무 문을 두드렸다. 빠르게 세 번. 그리고 두 번의 숨을 내쉴 정도의 시간을 기다린 후에 다시 두 번.


쿵쿵쿵. 쿵쿵.


끼이익. 그러자 살짝 열리는 문.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밀어젖힌 후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내부. 하지만 내 날카로운 감각은 서너 명의 인물이 쇠뇌를 든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손님 대우가 영 엉망인데.”


담담하게 뱉은 말. 앞쪽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글쎄. 손님인지 불청객인지는 두고 봐야겠지.”


지금껏 꽤 다양한 종류의 시체에게서 각각의 능력들을 흡수하며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평범한 다수보다는, 특별한 하나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


어제 트롤에게서 흡수한 능력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기사의 시체를 찾아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대규모로 벌어지는 전쟁터에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뿐더러, 혹시나 살아있는 기사나 병력 무리를 만나게 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처음 깨어난 장소가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던 셈.


다수의 기사들이 벌이는 전쟁. 언젠간 도달하게 될 지점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확실한 길은 하나.


바로 고유의 특수한 성질이나 능력을 가진 상대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마물이나 고위급 몬스터와 같은.


물론 용병 길드 소속으로 트롤 의뢰를 수행하긴 했지만 보통 그런 건 매우 드물다.


당장 며칠 전 확인했던 것처럼 게시판에 적혀 있는 것들은 대부분이 오크나 코볼트, 붉은 늑대 갈기, 혹은 상단 호위와 같은 단순 반복 의뢰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곳은 따로 있었다.


보다 깊숙하고 은밀한 곳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곳.


바로 이곳. 정보 길드.


“정체와 용건이 뭔지 빨리 이야기하는 게 그쪽 안전에 좋을 거야.”


여전히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올바르게 노크하지 않은 채 들어섰더라면 곧바로 날카로운 쇠뇌들이 나를 향해 발사되었을 터였다.


물론 트롤에게서 흡수한 단단한 피부와 재생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겠지만.


“...”


나는 양쪽 길을 모두 열어둘 생각이었다.


용병 길드의 게시판이나 전쟁의 동향도 틈틈이 보면서 정보 길드와 접촉하는 것이 현재로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방식일 터.


“그냥 평범한 용병이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의 인기척들을 느끼며 옅게 웃었다.


“정보 길드에 용건이랄게 하나 말고 더 있을까.”

“...”


여전히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보를 사러 왔다.”


짧게 이어진 침묵. 이내 주변에 희미한 불이 커졌다.


그리고 드러난 사내의 얼굴. 낯선 얼굴. 길드장은 아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우리는 아무나와 거래하지 않는데. 그쪽에게 그 정도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군.”


정보 길드다운 반응이었다. 애초에 비밀스러운 정보라는 것은 개나 소나 다 이용할 수 있으면 그 희소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법이었으니까.


형식적인 절차만을 거치는 용병 길드와는 달리, 이 녀석들은 거래할 상대의 자격 조건을 철저히 따졌다.


그래. 처음부터 길드장을 곧바로 대면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물론, 먼저 던져 줄 먹이는 있었다. 그것도 매우 따끈따끈한 것으로.


“알카루스 공방이 타로스 숲의 트롤 사냥에 성공했다. 백 년도 넘게 묵은 놈으로, 목을 깔끔하게 날린 덕분에 상당한 양의 피를 추출했지.”


아마 늦어도 내일 오후쯤이면 길드를 통해 빠르게 퍼질 소문. 하지만 지금 당장은 소수의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는 내용.


그리 귀중하지는 않으면서도, 내 자격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정보. 의뢰가 끝나자마자 휴식을 취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이곳으로 온 이유였다.


“...흠.”


내 말에 반응하는 사내.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사실관계를 알아볼 시간은 하루면 되겠지? 기다리겠다.”


아마 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트롤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린 내 실력에 대한 이야기들도 알게 될 터.


트롤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릴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동패 용병. 정보 길드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조건이었다.


“다음번에는 길드 마스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


마지막으로 짧게 말을 던진 나는, 놀람과 당황으로 살짝 굳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건물 밖을 나왔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나를 조준하고 있는 쇠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미끼는 던졌으니, 이제 기다릴 시간이었다. 나는 어두워진 거리를 지나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정보 길드가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생각보다도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는, 반나절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다.


도시 외곽에 외치한 여관. 2층의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가.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확인은 해보았나?”

“...생각 이상이군.”


그러자 들려오는 대답. 건물에서 마주했던 사내의 목소리였다.


벌써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했나. 만족스러운 정보 수집 능력이었다.


“듣기로는 마나를 사용했다던데. 그것도 동패 용병이 말이야.”


스윽.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피식. 가볍게 웃은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이제 좀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나?”“...당신 뭐야?”


완전히 가져온 주도권.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하러 갈 차례였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말했잖나. 그냥 용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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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영지전 (4) +13 24.09.02 16,308 503 12쪽
35 영지전 (3) +15 24.09.01 16,391 527 11쪽
34 영지전 (2) +15 24.08.31 16,702 517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7,614 498 12쪽
32 숲의 거미 (2) +24 24.08.29 17,807 513 12쪽
31 숲의 거미 (1) +19 24.08.28 18,536 544 11쪽
30 복귀 +16 24.08.27 19,306 5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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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대화 (2) +10 24.08.25 19,274 548 11쪽
27 대화 (1) +14 24.08.24 20,294 57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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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기사의 자격 (2) +14 24.08.22 19,801 580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1 24.08.21 20,704 605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274 574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0,812 566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6 24.08.17 21,766 573 10쪽
20 베리드 용병단 (3) +13 24.08.16 21,410 606 11쪽
19 배리드 용병단 (2) +10 24.08.15 21,332 584 11쪽
18 베리드 용병단 (1) +10 24.08.14 22,305 590 11쪽
17 리베르 상회 (3) +11 24.08.13 22,519 603 11쪽
16 리베르 상회 (2) +12 24.08.12 22,926 604 10쪽
15 리베르 상회 (1) +13 24.08.12 24,383 590 11쪽
14 포겔스 마을 (2) +15 24.08.10 23,584 6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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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접촉 (2) +17 24.08.08 25,129 655 11쪽
» 접촉 (1) +8 24.08.07 24,937 650 11쪽
10 트롤 (3) +13 24.08.06 24,957 662 10쪽
9 트롤 (2) +12 24.08.05 25,001 695 10쪽
8 트롤 (1) +12 24.08.04 25,944 682 10쪽
7 대도시 카블락 +23 24.08.03 26,128 690 12쪽
6 이동 (2) +20 24.08.02 26,785 729 10쪽
5 이동 (1) +22 24.08.01 27,587 726 11쪽
4 마땅한 값 (2) +24 24.07.31 28,163 754 13쪽
3 마땅한 값 (1) +13 24.07.30 29,563 745 9쪽
2 기사 +23 24.07.29 31,680 762 10쪽
1 특전 +15 24.07.29 36,663 68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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