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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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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최근연재일 :
2024.09.17 00:2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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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2,490

작성
24.07.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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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685
글자
9쪽

특전

DUMMY

용병들이 거칠고 무례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나름의 점잖음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현대인과는 달리 당장이라도 서로의 배때기에 칼을 쑤실 수 있는 환경에서 면전에 대고 도를 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어지간히 멍청하거나 반쯤 정신이 나간 이들이나 할 행동이었으니까.


물론 그 점잖음의 기준이 다소 포괄적이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하는 바였다.


“미친 새끼. 다시 지껄여봐.”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눈앞의 애꾸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병 사이에서는 나름 일반적인 말이었다. 내가 살았던 현대 사회의 언어로 번역하면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는 현대 사회가 아니고, 나 역시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3년간 굴러먹은 용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에 걸맞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좆 까.”


일상적인 대화. 하지만 애꾸 녀석은 내 대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스릉!


곧바로 뽑혀 나온 칼. 싸구려 기름으로 닦은 칼에 여관의 칙칙한 불빛이 비쳐 흔들렸다.


‘이 새끼 봐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겁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약간의 의아함이 느껴졌을 뿐.


용병들은 함부로 칼을 뽑지 않는다. 수준 낮은 음담패설을 지껄이거나 허구한 날 술 처먹고 주먹질을 하기는 해도, 칼밥을 빌어먹고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는 최소한의 태도다.


물론 잘나신 기사놈들이 지껄이는 것처럼 ‘의로운 일이 아니면 무기를 함부로 뽑지 않으며...’하는 등의 헛소리에 해당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 자신이 보이는 행동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정도랄까.


따라서 나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자신 있냐?”


움찔. 애꾸눈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인다.


나와의 실력 차이는 녀석도 잘 알고 있을 터. 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리 판단이 되지 않을 때까지 싸구려 증류주를 퍼마신 건 아니다.


그럼에도 칼을 빼 들었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


벌컥.


아니나 다를까. 나는 여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서는 이들의 수를 확인하고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씨발 많기도 하네.


어림잡아도 열은 가뿐히 넘을 만한 수의 사내들이 그리 넓지 않은 여관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며 무기를 빼든 상황.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들이닥친 것이 분명하다.


‘이건 애초에 나를 죽일 작정을 하고 온 건데.’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사실 녀석이 나에게 품을 수 있는 원한 자체는 많았다.


며칠 전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놈의 면상에 대고 주먹질을 해 코를 부러뜨린 거라던가, 저번 주 카드 게임에서 녀석의 일주일 치 수입을 모조리 털어간 거라던가.


‘그 외에도 몇 개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것으로 의문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런 건 용병판에서 흔히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었거니와, 이 많은 녀석들이 갑자기 한마음 한뜻으로 의기투합했을 리도 없었으니까.


그럼 누군가 사주했다는 건데.


열댓 명은 족히 넘는 용병. 고용하는 데만도 만만찮게 들었을 터.


‘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나?’


물론 내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새끼. 그러니까 귀족 나으리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았어야지.”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건넨 애꾸눈의 말. 그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열흘쯤 전이었나.


이 근방으로 사냥을 나온 귀족 애송이에게 고용된 적이 있었다.


근처 숲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용병 몇몇을 사냥 보조로 고용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난이도에 보상이 나름 짭짤했기에 많은 용병들에게 선호되는 일이기도 했고.


다만 문제는 그 귀족 애송이의 성격이었다.


사냥은커녕 활도 제대로 잡을 줄 모르는 녀석은 숲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나는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그렇게 발발거리며 숲을 돌아다닌 덕인지, 끝내 동물을 마주치기는 했다.


단지 그게 화가 잔뜩 나 이쪽으로 달려오는 커다란 야생 멧돼지였을 뿐.


당연히 녀석은 육중한 몸집의 멧돼지가 달려드는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나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녀석을 자리에서 밀침과 동시에 칼을 뽑아 들었다.


칼의 이가 반쯤 나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멧돼지는 나에게 쓰러졌고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그 잘난 도련님이 자존심이 상했단다.


자신을 밀친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가 용병 나부랭이 앞에서 그런 우스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빌어먹을 애새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멧돼지에게 옆구리가 꿰뚫리도록 그냥 놔두는 건데.


아니다. 그랬으면 뒤늦게 달려온 사병들에게 사냥 보조 실패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 당했으려나.


‘그럼 뭐 어쩌라고.’


앞을 가로막은 채 벌벌 떠는 애송이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제자리에 서서 사납게 달려오는 육중한 멧돼지를 제압해야 한다는 건데.


염병. 그럴 실력이 있었으면 기사를 했지. 용병 나부랭이 따위가 아니라.


“...개인 감정은 없다, 카론. 너도 잘 알겠지.”


상념을 끊으며 들려오는 말. 나는 녀석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얌전히 모가지 내어줄 줄 알았냐?”


스릉. 나는 검을 빼 들으며 이쪽을 포위한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이기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너 명쯤은 데려갈 수 있다.


애초에 이 정도의 인원이 몰려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이래 봬도 나름 나쁘지 않은 실력의 용병이었으니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죽여!”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고함. 동시에 열댓 명의 용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깜빡거리는 시야. 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


머리가 어지러운 데다가, 부서진 집기들과 뒤섞여 있어 정확히 세지는 못했지만 어림잡아도 다섯은 넘는 듯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지독한 새끼.”


앞쪽에서 들려오는 말. 나는 주저앉은 채로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어깨의 상처를 움켜쥔 애꾸눈이 나를 한쪽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녀석에게 남긴 오른팔의 상처가 깊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 원활한 용병 생활은 물 건너간 듯하다.


쌤통이네.


나는 피를 쿨럭거리며 웃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용병들이 질린 표정을 지으며 경계 어린 시선을 보냈다.


“뭐 믿고 있는 구석이라도 있나?”

“돈 모아서 스크롤이나 마력 도구 같은 거라도 산 거 아냐?”

“그런 게 있을 리가. 이미 몸수색은 끝냈다고.”


맞는 말이었다.


의식주를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일반 용병의 급여로는 귀한 마법 스크롤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용했겠지.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놈의, 아니 중세인의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아까부터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으니까.


-조건이 만족되어 잠시 후 특전, ‘운명의 천칭’이 발동됩니다.


내가 미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작동하지 않아 동시에 나를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었던 것.


미래에 대한 정보도 몰랐던 게임 속 세상, 쥐뿔도 없는 빙의와 함께 주어진 유일한 특전.


운명의 천칭.


‘삼 년간 별별 짓을 다 해봤는데.’


그 발동 조건이 죽음이었다니.


허탈함에서 비롯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기대감이 차올랐다.


어쩌면 가장 찾아내기 어렵다고 봐도 무방한 발동 조건을 가졌다는 것은,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으니까.


손발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 힘. 서서히 눈앞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똑똑히 기억했다. 너넨 전부 뒤졌어.”

“...!”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 걸까. 녀석들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악마나 마법, 저주 따위가 실존하는 세상이니 그럴 만할지도.


하지만 이내 죽음을 앞두고 괜한 오기를 부리는 거라 생각했는지 칼을 든 녀석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서서히 빠지는 힘.


하지만 나는 내 말을 반드시 지킬 생각이었다.


용병들이 거칠고 무례한데다, 끈질기기까지 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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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들판의 배회자 (3) +20 24.09.07 14,919 493 11쪽
40 들판의 배회자 (2) +20 24.09.06 15,406 472 11쪽
39 들판의 배회자 (1) +11 24.09.05 16,302 464 12쪽
38 영지전 (6) +18 24.09.04 16,067 537 13쪽
37 영지전 (5) +21 24.09.03 15,862 555 11쪽
36 영지전 (4) +13 24.09.02 16,304 503 12쪽
35 영지전 (3) +15 24.09.01 16,390 527 11쪽
34 영지전 (2) +15 24.08.31 16,698 517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7,608 49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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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기사의 자격 (3) +17 24.08.23 20,421 562 12쪽
25 기사의 자격 (2) +14 24.08.22 19,796 580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1 24.08.21 20,698 605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273 574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0,810 566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6 24.08.17 21,762 573 10쪽
20 베리드 용병단 (3) +13 24.08.16 21,408 606 11쪽
19 배리드 용병단 (2) +10 24.08.15 21,330 58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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