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upus Tenebris

확보, 격리, 보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tenebris
작품등록일 :
2020.08.18 03:51
최근연재일 :
2021.01.27 06: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9,554
추천수 :
346
글자수 :
356,098

작성
20.11.23 06:00
조회
93
추천
3
글자
10쪽

52. 늙은이-9

DUMMY

다시 한 번 교차로를 빠져나오니 펼쳐진 것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넓은 회색 방이었다.


이전에 들어갔던 감옥처럼 비명소리가 들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텅 빈 공간으로부터의 스산한 분위기가 몸을 짓눌렀다.


아니, 실제로 몸이 짓눌리고 있었다.


-몸이 무겁군.


조슈아 요원이 손발을 몇 번 움직였다.


확실히 관절이 뻐근하고 근육이 딱딱한 것이, 온몸의 뼈에 마리오네트처럼 실을 묶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치 길이 열리듯, 조슈아의 정면을 비추는 광원이 좌우에서 밝혀졌다.


그 앞에 흔히 옥좌라 불리는 커다란 의자가 한 개 놓여있고, 그 위에 앉아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SCP-106이었다.


SCP-106이 앉아있는 모습은 또 처음 보는 것이라 위화감이 들었지만, 저렇게 왕이라도 된 것처럼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정체는.


-놈의 방인가.


SCP-106의 방이었다.


정면에 마주앉은 SCP-106이 조슈아를 정면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치 왕을 알현하는 것 같은 구도로 내려다보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곳은 놈의 공간.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나으리란 생각이 들어, 조슈아는 목석처럼 서서 106의 썩어가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106이 조슈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꿇어라.]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한층 강해졌다.


SCP-106이 말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무거운 바위에 짓눌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숨이 거칠어진 조슈아가 안간힘을 다해 힘에 저항했지만, 점점 무거워지는 힘에 결국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변칙성인가? 아니면 이 공간 안에서만?


외부에서 이런 힘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었으니 아마도 이 공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옥좌에 앉아 거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던 106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힘겹게 목을 돌리는 조슈아를 쳐다보았다.


놈은 조슈아를 조롱하고 있었다.


아니, 조롱이 아니다.


마치 귀족이 천민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듯, SCP-106은 자신의 발밑에서 무게에 끙끙대는 조슈아를 보며 만족하고 있었다.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박사들은 그렇게 추정하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틀렸다.


SCP-106은 본래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인간에 대해 잘 알 리 없지 않은가.


놈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채우고 있었다.


이런 존재가 외계에서 왔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사람들을 공포로 휘어잡으려는 존재는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겪은 적이 있다.


-그렇기에 힘을 얻게 된 지금 과시하려는 것이겠지.


물론 이는 전부 억측이고, 실제로 106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박사들의 말대로 106이 외계에서 온 존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악마거나, 상상 외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존재건, 자만심과 허영심에 가득 차 사람을 깔보는 자를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는, 그에게 아부하여 구슬리는 것.


조슈아의 성격에 그런 건 맞지 않았다. 기각.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방법은.


“더 강한 힘으로 굴복시키는 거지.”


매는 훌륭한 약이다.


조슈아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무게를 의지와 근력으로 떠받치며, 천천히 몸을 들어올리자 썩어 문드러진 106의 표정이 차차 일그러져가는 것이 보였다.


놈에게 표정이 있다는 것도 지금 안 사실이었지만, 처음으로 보는 표정이 저런 똥 씹은 표정이라는 사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프란시스 요원은 밖으로 나갔을 확률이 높다는 거로군.


최소 50%다.


어쩌면 그는 유능한 요원이니 자신의 방을 빠져나와 마지막 남은 출구로 향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소리다.


온몸에 핏줄이 불거진 조슈아가 일어나며 힘겹게 웃었다.


전에 스스로 쐈던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서서 106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겨우 이게 네놈의 전부냐?”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듯, 느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떼며 천근같은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슈아는 허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 썩어빠진 낯짝으로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거로군. 안 그래?”


무슨 자신감인지, 죽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106의 속을 긁어댔다.


점점 가까이 다가갔지만, 옥좌에 앉은 106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조슈아의 움직임을 좇아 시선을 아래로 내릴 뿐이었다.


마침내 옥좌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을 때. 가까이에서 본 106의 얼굴은.


“몸이 좀 무거운 것 가지고 내가 네놈에게 굴복할 것 같······.”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고 있었다.


【꿇어라.】


양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바닥이 부서졌다.


무릎을 이루고 있는 뼈들이 산산조각나, 근육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


고통에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절대적인 존재가 손바닥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게 106의 짓이라면, 실제로 조슈아를 누르고 있는 것은 이 공간 안의 절대자인 106의 힘이다.


마치 조금 전에 가했던 힘은 어린아이의 장난 정도라는 듯, 106이 진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아니면 이것마저도 봐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짓눌러 터뜨리기엔 아깝다고,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조슈아가 무릎을 꿇자, SCP-106이 옥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식성 액체가 뚝뚝 떨어지는 그 흉측한 손을 뻗어, 조슈아의 얼굴을 덮었다.


얼굴이 녹아내렸다.


그러나 그때 엄습한 것은 신체적인 고통이 아닌, 온몸이 산산이 분해되어 가루로 변한 채 물에 섞여 흘러가는 것과 같은, 존재가 흩어져 희미해지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얼굴에서 시작하여 온몸이 녹아내리고, 마침내 한 점의 살점이나 뼛조각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텅 빈 알현실의 안에서 SCP-106이 다시 옥좌로 돌아가 앉았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몸이 가루가 되어 물과 함께 이곳저곳을 흐르다 어느 순간 다시 뭉쳐지는 느낌이었다.


육체를 잃은 영혼의 방황이 끝남과 동시에 평생 느껴봤던 것 중 두 번째로 무서웠던 경험 역시 끝났다.


스스로의 존재가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죽음에서 벗어난 조슈아가 다시 나타난 곳은 좀전의 콘크리트 방과는 전혀 다른, 흙으로 된 공간이었다.


-여긴?


SCP-106이 자신을 어째서 여기로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역시 SCP-106의 주머니 차원 내부라는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마치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를 연상케 하는 구덩이 한복판에 떨어진 조슈아가 평소 습관대로 주변을 살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를 재현해놓은 것인지, 구조가 상당히 유사했다.


바닥은 오물로 가득 차있었고, 중간중간 방으로 보이는 구멍이 파있기도 했으며, 녹슨 철조망 역시 눈에 띄었다.


생명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이전 공간들과는 달리 쥐 몇 마리가 참호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참호와 참호 사이를 건널 수 있도록 한 것인지, 아니면 그늘을 만들기 위해 놓은 것인지 의도가 불분명한 나무판자들이 머리 위쪽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조슈아는 그 판자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


하늘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붉은 빛을 땅으로 내리쬐며, 마치 바닷속을 떠도는 가오리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 같기도 한 움직임에, 조슈아가 본능적으로 나무판자 아래로 몸을 숨겼다.


붉은 빛이 조슈아가 있던 근방을 훑고 지나가자, 흙더미 주변을 돌아다니던 작은 쥐들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닿으면 죽는다.


빛이 사라질 때까지 숨소리마저 죽인 조슈아가 오물로 뒤덮인 참호 밑바닥을 기었다.


하늘을 떠도는 거대한 것은 한 개가 아니었으며, 그것이 생물인지, 아니면 거대한 기계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붉은 빛을 피해야 한다는 정보 하나만으로 몸을 그늘에 숨겨가며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자, 자신이 향하고 있는 참호의 끝에 철로 된 작은 문 하나가 보였다.


-출구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듯 직감이 말했다.


저기까지만 기어가면 살 수 있다.


희망이 보이자, 몸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조슈아가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마침내 철문에 다다른 순간, 머리 위쪽에 붉은 빛이 내리쬐었다.


“끄으윽······!!”


온몸의 털이 불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녹고, 살점이 통째로 구워지는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철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이것을 놓을 수는 없었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슈아가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3 g6******..
    작성일
    20.11.23 12:07
    No. 1

    조슈아는 변칙성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tenebris
    작성일
    20.11.23 23:19
    No. 2

    모든 변칙성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주로 정신조작 및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에만 그렇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확보, 격리, 보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0 49. 늙은이-6 20.11.17 61 4 9쪽
49 48. 늙은이-5 +2 20.11.16 60 5 11쪽
48 47. 늙은이-4 +1 20.11.13 53 5 9쪽
47 46. 늙은이-3 +1 20.11.12 87 4 9쪽
46 45. 늙은이-2 +2 20.11.11 90 4 9쪽
45 44. 늙은이-1 +1 20.11.10 82 3 10쪽
44 43. 요원-5 20.11.09 63 4 9쪽
43 42. 요원-4 20.10.30 62 4 10쪽
42 41. 요원-3 20.10.29 69 5 10쪽
41 40. 요원-2 20.10.28 64 5 9쪽
40 39. 요원-1 20.10.27 75 4 10쪽
39 38. 휴식 20.10.26 79 6 10쪽
38 37. D계급-10 20.10.23 82 4 9쪽
37 36. D계급-9 +1 20.10.22 73 4 10쪽
36 35. D계급-8 20.10.21 68 4 10쪽
35 34. D계급-7 20.10.20 77 4 9쪽
34 33.D계급-6 20.10.19 80 4 10쪽
33 32. D계급-5 20.10.16 81 5 10쪽
32 31. D계급-4 +1 20.10.15 85 6 9쪽
31 30. D계급-3 20.10.14 89 4 10쪽
30 29. D계급-2 20.10.13 112 5 10쪽
29 28. D계급-1 20.10.12 137 5 9쪽
28 27. 판도라의 상자-2 20.10.09 99 6 10쪽
27 26. 판도라의 상자-1 +1 20.10.08 111 7 10쪽
26 25. 격리 실패-5 +1 20.10.07 103 4 10쪽
25 24. 격리 실패-4 +3 20.10.06 106 6 10쪽
24 23. 격리 실패-3 +1 20.10.05 115 6 10쪽
23 22. 격리 실패-2 +1 20.09.30 115 8 9쪽
22 21. 격리 실패-1 +1 20.09.29 114 5 9쪽
21 20. 실험-5 20.09.28 119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