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upus Tenebris

확보, 격리, 보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tenebris
작품등록일 :
2020.08.18 03:51
최근연재일 :
2021.01.27 06: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9,280
추천수 :
346
글자수 :
356,098

작성
20.10.27 06:00
조회
73
추천
4
글자
10쪽

39. 요원-1

DUMMY

SCP 재단 제 17 연구기지 내부 요원 훈련소.


특정한 임무를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기존의 요원을 훈련시키는 장소였지만,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신입.


그것도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D계급이었던, 평범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전직이 전직인 만큼 기초적인 체력이나 신체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


산소마저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자리를 피한 것인지, 진공상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D계급에게 지급되는 주황색 죄수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던 조슈아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다.


“저기······.”


“일단 호칭부터 정리하지.”


선수를 친 클레프 요원이 조슈아의 말을 가로막았다.


“난 여기서 클레프 요원이라 불리니 계속 그렇게 부르고, 현 시간부로 본 요원을 조슈아 요원이라고 칭하겠다. 이의 있나?”


“······없어.”


“사적인 대화는 최소한으로 하겠다. 군 집단에서 나이는 의미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테니 존칭을 쓰란 말은 하지 않겠지만 알아서 처신하도록.”


이곳에서 가족 간의 정이라는 것은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물론 클레프가 엄격한 상하관계나 존칭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대충 알아들은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스케줄은 전부 짜 놓았으니 우선은 이론 교육부터다.”


클레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올렉세이 박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구면인 것 같은데.”


173의 격리실을 청소할 때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 들은 건 목소리뿐이었으므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D계급이 재단의 별이라니, 놀랄 일이긴 합니다만. D계급 출신 요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잘 할 거라고 믿습니다.”


또다시 D계급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테니까. 라는 말이 생략된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올렉세이 박사가 들고 있던 둔기로 사용하면 좋을 법한 두께의 책을 내려놓았다.


-법학과 전공책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올렉세이 박사가 그 책을 조슈아에게로 내밀었다.


“17연구기지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SCP들을 기록 및 정리해놓은 파일입니다.”


즉, 현재까지 알려진 SCP들의 정보의 총합이라는 소리였다.


“외부로 반출될 경우 즉시 사살되니 조심하시고, 오늘부터 이걸 외우는 걸 주 교육으로 할 겁니다.”


“······이걸 다요?”


올렉세이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다닌 적은 있지만 책과 친한 편은 아니었고, 저 정도 두께의 책을 실제로 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외우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고.


절망 비슷한 것에 빠진 조슈아를 보고 클레프 요원이 말했다.


“물론 시험도 본다.”


절망이 조금 더 짙어졌다.


물론 이만한 책을 한 번에 외우는 것도. 시험까지 보는 것도 그만한 이유는 있다.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현대전은 곧 정보전이라는 말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상대를 더 많이 알수록 대응하기 쉬워지고, 생존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말하면, 정보가 적을수록 대응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SCP 재단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는 사람들의 피로써 쟁취해낸 전리품이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해질 유산이다.


그리고, 요원이란 그 유산을 계승하는 자.


정보를 바탕으로 SCP에 대응하여, 그것들을 확보, 격리, 보호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그곳에서 쓰러지면 그 요원이 남긴 정보는 유산이 되어 후대에 전해진다.


마치 SCP-1983 안에서 쓰러진 버클레이 요원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정보라 할지라도 SCP라는 미지의 존재를 상대할 때에는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모든 요원은 기본적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SCP들에 대한 정보를 숙지해야 하고, 각각의 대처법까지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정보 하나하나가 전부 생존으로 직결된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그거나 계속 읽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클레프 요원이 최고의 요원이라 불리는 것도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보와, 각각의 대응법,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실전을 치른 그의 경험 때문이다.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 그는 재단에서 인정한 최고의 요원이라는 증거다.


클레프 요원이 밖으로 나가며 조슈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생하라는 의미였다.


“그럼 시작해보죠.”


어쩐지 기쁜 표정의 올렉세이 박사가 책을 펼쳤다.




몇 시간 후.


반쯤 녹초가 된 조슈아가 휴게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본래 요원 및 중요 인물들에게만 개방된 공간이었지만, 어차피 수습 요원이니 별로 상관 없으리라.


아마도.


클레프 요원이 안으로 들어오자 누워있던 조슈아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아. 그냥 쉬어도 돼. 직원 전용 공간이거든.”


괜한 걱정이 사라지자 조슈아가 마음 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딘가에 다녀온 듯한 클레프가 특유의 카우보이모자를 벗어서 걸어놓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래. 들을 만 하던가?”


“······나름 재밌긴 하더군.”


무슨 괴기 소설이나 괴담같은 곳에서 등장할 법한 괴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양이 좀. 많이 많았을 뿐이다.


“살고 싶으면 외워. 오늘은 아마 17 연구기지에 있는 것 정도만 했을 텐데. 언젠간 다른 기지로 파견을 나가야 할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러시아라던가, 이탈리아일 수도 있고, 한국이나 중국일 수도 있다.


어쨌든, 파견을 나가게 된다면 사전에 브리핑이 있을 테니 정보는 그렇게 습득하도록 하고 지금 확인할 것은, 조슈아가 그러한 정보를 사용할 신체능력 및 정신력이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 푹 쉬어둬.”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마침 오는군.”


“부르셨습니까. ······그쪽은?”


“재단 일에 관심 좀 가지는 게 어떤가, 데이나 요원.”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슈트를 입은 데이나 요원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인형같은 눈으로 조슈아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조슈아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D계급이었던 자신이 재단에서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을 받았다는 모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데이나 요원을 제외하고는.


“······요원에게 정보가 곧 생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임무 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거든.”


확실히 그래 보이긴 했다.


몸매가 드러나는 슈트를 입어서 나타나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매력보다는 살인기계로서의 전투력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색 동공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동안에도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클레프 요원이 킥킥 웃으며 데이나 요원에게 말했다.


“후배 앞이라 긴장한 거냐?”


데이나 요원의 눈이 미묘하게 한 번 흔들렸다.


-긴장한 거였나.


생각보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여기 있는 데이나 요원이 앞으로 체력을 비롯한 신체능력 강화 훈련을 담당할 거다.”


데이나 요원이 처음 듣는다는 듯 클레프를 쳐다보았다.


“······제가 말입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보통 저런 말은 개인의 기량은 뛰어나나 가르치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무술의 영역일 경우, 이런 뜻이 된다.


“그냥 패라고.”


데이나 요원이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요원 훈련장.


“커억!!”


배를 맞고 쓰러진 조슈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니킥이 얼마나 세게 꽂혔는지 명치에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물론 데이나 요원은 슈트가 아닌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바닥을 구르는 조슈아를 약간 걱정스러운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던 데이나가 클레프 요원쪽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더 해도 되는 거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상관없어. 계속해.”


피도 눈물도 없는 데이나 요원이었지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사람을 때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지, 주먹에 조금 망설임이 실렸다.


그래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지만.


퍼억.


오른쪽 뺨에 훅이 정통으로 꽂혔다.


망설이는 척 하면서 훅이라니.


어쩐지 배신감이 들었지만, 데이나 요원 역시 훈련받은 대로 몸이 나간 것이리라.


마우스피스가 없었더라면 이가 나갔을 것만 같은 충격을 딛고 일어서자, 정면에 주먹이 있었다.


천장이 보였다.


-아.


뒤통수에 바닥이 닿는 감촉과 함께,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맷집 하나는 괜찮군.”


평범한 사람들, 아니, 다른 요원들이었어도 데이나의 킥과 펀치를 정통으로 몇 대나 맞고도 멀쩡히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한 라운드 내내 얻어맞고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조슈아의 맷집은 칭찬할 만한 요소였다.


그러나, 맞기만 해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다음 라운드에는 반격을 시도라도 해 보라고.”


벌써 시간이 지난 것인지, 아니면 클레프 요원이 멋대로 누른 것인지, 다시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예 기절시켜서 끝낼 생각인지, 마음을 다잡은듯한 데이나 요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염병할.


데이나 요원이 달려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확보, 격리, 보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0 49. 늙은이-6 20.11.17 58 4 9쪽
49 48. 늙은이-5 +2 20.11.16 59 5 11쪽
48 47. 늙은이-4 +1 20.11.13 52 5 9쪽
47 46. 늙은이-3 +1 20.11.12 84 4 9쪽
46 45. 늙은이-2 +2 20.11.11 87 4 9쪽
45 44. 늙은이-1 +1 20.11.10 81 3 10쪽
44 43. 요원-5 20.11.09 61 4 9쪽
43 42. 요원-4 20.10.30 61 4 10쪽
42 41. 요원-3 20.10.29 68 5 10쪽
41 40. 요원-2 20.10.28 63 5 9쪽
» 39. 요원-1 20.10.27 74 4 10쪽
39 38. 휴식 20.10.26 79 6 10쪽
38 37. D계급-10 20.10.23 79 4 9쪽
37 36. D계급-9 +1 20.10.22 72 4 10쪽
36 35. D계급-8 20.10.21 68 4 10쪽
35 34. D계급-7 20.10.20 75 4 9쪽
34 33.D계급-6 20.10.19 80 4 10쪽
33 32. D계급-5 20.10.16 80 5 10쪽
32 31. D계급-4 +1 20.10.15 84 6 9쪽
31 30. D계급-3 20.10.14 86 4 10쪽
30 29. D계급-2 20.10.13 109 5 10쪽
29 28. D계급-1 20.10.12 133 5 9쪽
28 27. 판도라의 상자-2 20.10.09 97 6 10쪽
27 26. 판도라의 상자-1 +1 20.10.08 110 7 10쪽
26 25. 격리 실패-5 +1 20.10.07 102 4 10쪽
25 24. 격리 실패-4 +3 20.10.06 106 6 10쪽
24 23. 격리 실패-3 +1 20.10.05 113 6 10쪽
23 22. 격리 실패-2 +1 20.09.30 114 8 9쪽
22 21. 격리 실패-1 +1 20.09.29 112 5 9쪽
21 20. 실험-5 20.09.28 119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