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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pus Tenebris

확보, 격리, 보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tenebris
작품등록일 :
2020.08.18 03:51
최근연재일 :
2021.01.27 06: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9,339
추천수 :
346
글자수 :
356,098

작성
20.11.16 06:00
조회
59
추천
5
글자
11쪽

48. 늙은이-5

DUMMY

6배율 스코프에 놈의 얼굴이 가득 찼다.


주변의 피부가 검게 썩어들어가는 와중에도 그 눈만큼은 본래 색을 유지하고 있어 상당히 공포스러운 낯짝이었다.


등줄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본능적으로 총에서 손을 떼고 바닥을 굴러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총을 버리고 나서야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무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서 나타난 손이 총열을 붙잡자, 검은 액체가 묻은 금속 부분이 순식간에 부식되어 일그러졌다.


총열이 구부러져 바닥을 향했으니, 혹여 다시 잡을 수 있더라도 다시 발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썩을.


아무리 총이 큰 타격이 없다고 할지라도 손에 무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정신적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계획에 없던 긴급 작전인 터라 제대로 된 무장을 가지고 왔을 리 없었고, 그나마 있는 무기마저도 망가지고 잃어버렸다.


-놈이 노리는 게 이거군.


생각해보면 아무리 뒷주머니에 넣어놨다고 하더라도 바닥을 구른 정도로 권총이 떨어졌을 리 없다.


라미레즈의 예상대로, 조금 멀리 떨어져있던 권총이 부식된 채로 원형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앞부분이 거의 다 녹은 저격소총이 바닥에 쓰러지고, 상반신 위쪽까지 모습을 드러낸 106이 라미레즈 소령을 지그시 쳐다봤다.


“하.”


-도망치라는 건가.


놈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상대하기 마련이다.


라미레즈 소령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서있는 106을 살폈다.


미세하지만, 좀 전에 저격소총에 맞은 오른쪽 무릎이 무게를 지탱하기 힘든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탄두가 부식되긴 했지만, 어떻게든 데미지를 줬다는 뜻이었다.


아마 놈은 그걸 더 잘 알고 있을 터였고, 그렇기에 위협이 될 만한 가시들을 먼저 제거한 것이었다.


-지금 가만히 있는 것도 다리의 부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겠지.


위협을 줄 것이라면 가만히 서있는 것보다 천천히라도 다가오는 편이 더 확실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다리의 부상을 들키지 않고 싶거나, 아니면 걸어서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어쨌든 놈의 이동능력마저도 상실한 것은 아닐 테니, 무한정 가만히 있는 것은 이쪽도 위험하다.


그 의견에 동조라도 하듯, 106이 빠르게 바닥 속으로 사라져갔다.


공간이동의 전조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바닥이 검은 액체와 함께 썩으며, 106의 손바닥이 드러났다.


라미레즈 소령이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2m정도 거리를 벌렸다.


완전히 출현한다고 해도 제자리에선 닿지 않고, 설령 움직인다고 해도 반응하고 피할 수 있을 만한 거리.


그리고, 기특부가 도착했을 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 만한 거리.


그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해야 했다.


-놈이 나를 타겟으로 인지한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벌어야 해.


시간을 벌 때 중요한 것은, 106에게 최대한 ‘맛있는 먹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


거리를 유지하되, 놈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선 안 된다.


각오를 굳히고, 라미레즈 소령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적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지만, 106은 총같은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접촉만 하지 않으면 괜찮으므로, 도망친 라미레즈 소령이 힐끔 뒤를 돌아보자, 어쩐지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하진 않군.


출현 가능 장소가 많은 벽면이 많은 곳으로 도망치면 안 된다.


가능하면 개활지나 넓은 도로. 벽면과 먼 곳으로.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놈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아마도 출현 예상 장소는.


-역시.


달리고 있는 진로의 바로 앞.


일부러 벽 근처로 달리고 있던 라미레즈 소령이 벽에서 신체의 일부만 출현한 106을 보고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일부러 속도를 줄였으니 급하게 꺾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넓은 도로 옆에 늘어선 벽으로 달렸으니, 달리 도망칠 곳은 많았다.


사냥감이 도망치다 지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즐기는 녀석이니,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 판단.


라미레즈 역시 적당히 거리가 멀어졌다 싶으면 속도를 줄여 처음 있던 개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놈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는 것.


가로수 근처에 멈추자, 가로수 위쪽에서 106의 상반신이 튀어나왔다.


급속도로 썩어나간 가로수가 부러져 106의 머리 위로 쓰러졌지만, 쓰러지는 나무마저도 부식액에 녹아 사라졌다.


닿지 않으면 괜찮지만, 닿으면 저렇게 된다.


라미레즈 소령이 대로 주변을 달리길 약 15분.


체력이 서서히 떨어져가는 것이 느껴질 무렵,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106이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신체의 일부만 출현시키는가 싶더니, 출현 빈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30초정도만 뛰어도 나타나던 녀석이 1분째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출현하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달리던 라미레즈 소령이 공터에 멈춰 숨을 골랐다.


공터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서, SCP-106이 라미레즈 소령을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눈치 챈 건가?


15분 정도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했을 테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놈이라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슬슬 시간이 되었지.


라미레즈 소령이 엄폐물에 몸을 숨기자, 높은 곳에서 라미레즈 소령을 내려다보고 있던 106이 라미레즈 소령의 근처에 출현했다.


그러나, 즉각 반응하기엔 체력이 없었다.


“크윽!!”


바닥에서 출현한 106이 라미레즈 소령의 발목을 붙잡았다.


부식액이 피부에 닿자마자 급속도로 썩는 것이 느껴져, 고통이 엄습했다.


-하필이면 다리가.


무전기도 없고, 저쪽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연락할 수단은 없었지만, 태곳적부터 사용했던 방법이 있었다.


라미레즈 소령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빨간 색 3층 건물 기준 맞은편 도로 3번 가로수!!!”


“목표 확인!!”


그에 호응하듯, 사방에서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라미레즈 소령이 숨어있던 가로수의 사방에서 레이저와 비슷한 형태의 선이 정육면체의 구조물을 만들어, 106을 그 정 가운데에 위치시켰다.


“대 SCP용 현실 고정 함정 전개 완료!!”


대(對) SCP용 현실 고정 함정.


SCP 재단이 보유한 기술의 정수이며, 일시적으로 SCP의 변칙성을 무효화하여 통상적인 물리법칙에 속박시키는 함정이다.


막대한 에너지가 한순간에 소비되고 에너지의 영향으로 장치가 금방 손상되기 때문에 장기간 운영이 불가능하여 격리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었지만, 한 순간의 격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빛의 막에 둘러싸인 106이 다시 주머니 차원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함정의 역할이었다.


함정이 정상적으로 작동됐는지, 106이 사라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다리를 부상당한 라미레즈 소령이 당황하고 있는 106과 눈을 마주쳤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움직임에 제약까지 더해지니 거의 멈춰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눈치가 너무 느려.”


애초에 50구경짜리 대물 저격소총을 길거리에서 쐈는데 사람이 한 명도 반응하지 않았을 때부터 수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그만큼 임기응변이 훌륭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함정이 작동됨과 동시에 106을 포획하기 위한 구속구도 헬기에 매달린 채 하늘에 도착했다.


“SCP-106 변칙성 일시적 무력화 확인!!”


“SCP-106 포획용 구속구 준비 완료!!”


“부상자가 근처에 있다!! 일단 대기!!”


SCP의 변칙성을 무효화한다 해도 신체능력까지 무력화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물리적인 제약 역시 가해진다.


하필이면 라미레즈 소령이 그 안에 있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구출하겠습니다!!”


총을 놓고 내려가려던 대원의 옆에서 등반용 로프가 던져졌다.


“조슈아 요원?!”


로프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로프에 몸을 연결한 조슈아 요원이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바닥을 보며 벽면을 두 번 도약하자, 순식간에 땅에 닿은 조슈아 요원이 권총 한 자루만 가지고 라미레즈 소령에게 달려갔다.


파지직.


함정을 이루던 각 부품들이 불안한 소리를 내며 스파크가 튀었다.


“구속 억제 약화!!”


“즉시 구속해야 합니다!”


작전을 지휘하던 미하엘 소령이 손에 땀을 쥐었다.


-아직 라미레즈 소령이 구출되지 않았다.


함정이 사라지는 순간 놈은 곧바로 라미레즈 소령을 자신의 주머니 차원으로 끌고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구출할 수 없다.


먹이로 삼기 위한 표적은 최대한 훼손을 막기 위해 106 스스로가 부식을 억제시키지만, 그렇게 주머니 차원으로 끌고 들어간 사람은 구출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고, 구출한다고 하더라도 살아있기 힘들다.


일전에 106이 일부러 풀어준 요원을 통해 알아낸 정보였다.


-조슈아 요원. 제발.


파지직.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함정에서 스파크가 튀며, 빛의 장막이 사라졌다.


“구속 해제!!”


미하엘 소령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구속해!!”


라미레즈 소령이 땅바닥으로 끌려들어가려던 차, 조슈아 요원이 라미레즈 소령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망설임없이 권총을 꺼내 라미레즈 소령의 발목을 쥐고 있던 106의 엄지손가락 관절을 쐈다.


엄지손가락에서 힘이 풀린 106이 라미레즈 소령을 놓쳤다.


손을 잡고 있던 조슈아가 라미레즈 소령을 멀리 던져버리고, 자신도 몸을 날렸다.


대원들이 신호를 보내자, 하늘에서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가 떨어졌다.


쿠우웅!!


납을 덧댄 강철판으로 만든 미로의 축소판.


SCP-106의 격리실을 규모만 축소시켜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바닥 닫아!!”


아래에 깔려있는 106을 미로의 가운데로 잡아 올리는 갈고리가 작동되었다.


그러나.


“106 반응 사라졌습니다!!”


“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놈이 자신의 차원으로 이동했다면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썩을, 대체 어디에?!


대원들이 흩어져 주변을 수색했지만, 어디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슈아 요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9 gf***
    작성일
    20.11.17 03:28
    No. 1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이만한 scp관련 소설은 얼마 없는데 오랜만에 관련소설을 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건필하시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tenebris
    작성일
    20.11.17 05:25
    No. 2

    흔치 않지만 팬층이 확실한 장르라 쓰면서 걱정했는데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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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 판도라의 상자-2 20.10.09 97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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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 격리 실패-2 +1 20.09.30 11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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