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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자, 고려에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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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작품등록일 :
2024.09.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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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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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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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4화

DUMMY

거란은 압록강 건너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보주성(保州城)을 쌓고자 했고, 고려군은 이를 군세를 동원하여 저지했다.

그리고 일단은 그것이 끝이었다.

당장 확전을 바라지 않는 것은 양쪽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간 거란이 일방적으로 고려를 쉴 새 없이 압박해 오던 상황에서 잠시 숨통이 트였을 뿐, 큰 흐름은 바뀐 것이 없었다.

거란은 여전히 고려를 재정벌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을 것이고 고려도 이런 싸움 한 번으로 그 시기를 늦췄을 뿐, 앞으로 다가올 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내 관여로 인하여 역사의 흐름이 조금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고려사에 아주 밝지 않은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 보자면 고려와 거란 사이에 세 번의 큰 전쟁이 있었고, 그 첫 번째 전쟁에서는 서희가 담판을 통해 강동육주(江東六州)를 확보한 것.

그리고 세 번째 전쟁에서는 강감찬(姜邯贊)이 귀주대첩(龜州大捷)에서 거란군을 크게 격퇴했다는 정도였다.


거기에 더하자면, 지금의 임금, 그러니까 미래에 현종(顯宗)으로 알려진 고려 임금이 썩 명군으로 평가받는다는 정도가 다였다.

나머지는 모두 학부생 시절 고려사 수업 시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내용에 조금 더해서 내가 이 시대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나는 거란군이 쌓으려고 했던 보주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만약 개경으로 파발이 올라가기도 전에 안내창이 내 공적에 대해 판정해 주고 그에 따른 공헌도를 셈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몰랐을 것이다.


「첫 번째 공적:

거란의 보주성(保州城) 축성 저지와 고려의 압록강 유역 수호 (등급: D)


[그레고리력 1014년 12월 3일/歲次 閼逢攝提格(甲寅年) 仲冬(丙子月) 사흘(乙酉日)] 기준으로 당신은 대거란국(大契丹國)의 보주성 건설을 성공적으로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요국(大遼國)으로도 알려진 대거란국은 1014년 고려 변경 흥화진의 침략한 뒤 군대를 물리지 않고 압록강 남쪽에 보주성(保州城)을 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이 성은 고려국의 끊임없는 근심거리가 됩니다.

고려는 대거란국이 여진의 손에 멸망하고 물러난 뒤에야 새롭게 등장한 여진족 국가인 대금국(大金國)과 협의하여 보주성을 다시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성의 이름은 의주(義州)로 개칭된 뒤, 이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려와 조선의 주요한 국경 관문 도시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게 됩니다.

당신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거란이 처음부터 보주성을 완성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공헌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대거란국의 국경을 조금 후퇴시키는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거란이 기획했던 압록강 하구 유역에 대한 완전하고 일방적인 통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방심하지 마십시오.

역사를 복원하는 힘은 대거란국으로 하여금 고려에 대한 그 전략적 이점을 어떠한 식으로든 보상하도록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D 등급 공적 보상: 4,000

개인 기여도: 45%

최종 공헌도: 1,800


D등급 공적에 대한 보상 4,000점 가운데 추정된 당신의 기여도 45%를 감안하여 최종 공헌도 1,800점이 주어집니다.

이로써 당신의 현재 보유 공헌도는 2,000입니다(누적:2,800/사용:800).」


안내창에 따르면 원래 역사에서 거란은 보주성을 쌓는 데 성공하고, 금나라가 요나라를 무너뜨릴 때까지 그 성을 내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어림짐작해 보면 대충 앞으로 100년은 거란이 쥐고 있을 성을 내가 빼앗아 오는 데 기여했다는 이야기였다.


상당한 대군이 동원된 전투에서 45%나 내 몫의 공적으로 계산되었다는 것은 내가 대단히 날뛰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공헌도를 이용해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고서 적 기병의 기습을 대비케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둘 모두 다였을 수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 전투를 기획하거나 결정하지도 않았고, 최종 지휘관도 아니었는데 이 정도 기여도가 산정되었다는 것은 어쨌든 내가 그만큼 전세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기여도가 산정되는지 모르는 이상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D 등급 공적에 대한 보상 4,000점에 기여도를 감안하여 0.45를 곱한 것이, 바로 내게 주어진 최종 공헌도 1,800이었다.

아무래도 공적 등급이 D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F부터 A (어쩌면 S까지) 등급이 체계적으로 부여가 되고, 이에 따라 공적 보상의 상한치도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전 튜토리얼 때는 이런 공적 등급도 따로 없고 그냥 성공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1,000의 공헌도를 던져 주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말 그대로 튜토리얼이고 내 진짜 공적에는 포함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내창에서 이번 공적을 ‘첫 번째 공적’이라고 확실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이 그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공헌도가 철저하게 내가 관여한 일이 얼마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지, 또 그리고 그 일에 내가 얼마나 실질적 기여를 했는지에 따라 계산되어 주어진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공적 등급이 정확히 어디까지 있는지, 그리고 D 등급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그래도 첫 공적이 D 등급에 그 기여가 45% 정도나 된다면 꽤 괜찮은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있었다.


***


압강(鴨江, 압록강) 동쪽으로 침투해 온 거란을 밀어낸 것은 과연 근래에 없던 큰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고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 승리를 거란 쪽에 쏠려 있는 힘의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첫 번째로 고려가 기울인 노력은 이를 핑계 삼아 거란이 큰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송나라와 연계할 시도를 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민관시랑(民官侍郎) 곽원(郭元)이 송나라 변경(汴京)에 다녀왔다.

늘 그랬듯이 송나라는 고려의 도움 요청을 조심스럽게 거절했지만, 중요한 것은 곽원이 송나라에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였다.


이것을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거란에 알린 이상, 거란으로서는 송나라의 동향을 좀 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송나라와 확실하게 연합할 수 있었다면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성과였겠지만, 거란이 고려를 향해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신경 쓸 요소를 하나 만들었다는 것 자체로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그리고 고려가 둘째로 기울인 노력은 20년 전 거란에 의해 멸망한 정안국(定安國)의 잔존 세력 및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과 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개시한 것이다.

특히 정안국의 핵심 세력이 많이 섞여 들어간 올야부(兀惹部)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만약 거란이 고려에 쳐들어오더라도 후방에 잠재적 불안 요소를 하나 안고 들어와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물론 최근에 거란에 연달아 수차례 깨졌던 올야부 입장에서는 고려와 손을 잡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로서도 나름대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 의외로 적극적으로 반응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외교를 통한 거란의 견제 이전에 고려가 반드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압록강 좌안(左岸), 곧 압록강 남쪽의 영역을 완전히 고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고려 조정은 용만원 들판에 거란이 쌓고 있던 보주성(保州城)을 폐하고, 그 자리에 의주(義州)를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를 파견하여 국경 방어의 핵심 요충지로 삼기로 결정했다.

물론 거란이 결국 다 쌓지 못한 성은 고려가 이어 받아서 축성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은 일이다.

조정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다가올 거란과의 전쟁에서 몇 수가 뒤처지는 가운데 적어도 한 수 정도는 뒤집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 개인만 놓고 보자면 이 일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이번 의주 점령전에서 전공을 논공(論功)하는 과정에서 나는 더 품계가 오르지는 못했다.


물론 그에 대한 불만이 있진 않았다.

애초에 품계를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품계는 올리지 않으면서 보상을 준답시고 내 관직만 승차(陞差)해서 올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5품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관직만 중랑장에서 본래 정4품 관직이어야 할 장군(將軍)으로 올랐다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나는 서북면(西北面)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군이 되었으면 좋은 일이지. 작년까지 별장이었던 사람이 한 해 만에 장군까지 오르는 일이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적어도 나는 그런 일을 들어 본 적도 없네.”


정신용 장군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영전을 축하했지만, 나는 이걸 영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는 예전부터 거란놈들을 상대하는 것을 평생을 바칠 과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군(京軍)에 들어 궐에 입시(入侍)하라는 성상의 명도 감히 사양하고 북변(北邊)에 남기를 자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북면에서 물러나 동북면으로 가라니요. 저로서는 쉬이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네가 싫다 한들 어쩌겠나. 가라면 가야지.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게. 자네 없다고 무너질 국경이었으면 진즉 무너지지 않았겠나. 물론 나도 자네 같은 용장 하나가 떠나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그곳에서도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걸세. 요즘 동해안에서는 여진구(女眞寇)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지 않은가.”

“하오나······.”

“나한테 자꾸 이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경은 내게 맡기고 맘 편히 출발토록 하게.”


정신용 장군의 말에 나는 더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무관직을 때려치우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지시받은 대로 동북면으로 향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번에 거란군을 압록강 북쪽으로 완전히 격퇴한 일에 대한 전공을 논공(論功)하는 과정에서 내 전공이 특히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개 중랑장이 거란군의 주력 철갑 기병 일백을 반쯤은 혼자 힘으로 격파했다고 하는 내용이 올라온 탓에, 개경의 지체 높으나 상상력은 부족한 어르신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입에 거품부터 물고 본 것이다.

고작 몇 달 전에 별장에서 중랑장까지 직급이 오르고 거기에다가 공신전까지 받은 나였다.


그런데 여기에 또 이 보고를 그대로 신용해서 품계를 올리고 장군에 임명하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진급에 반대하는 신료들의 주요 논리였다.

무관이 무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때마다 어떻게 공적을 계속 가산해 주냐는 일면 타당해 보이는 논리를 앞세워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군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조정에서는 일전 김훈과 최질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내세웠던 이유가 무관에 대한 차별적 대우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문반과 무반 사이의 엄격한 구분과 차별적 대우 자체를 없앤다는 생각 자체는 개경의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삼한갑족(三韓甲族) 어르신들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그러나 무관에 대해 기존의 대우를 좀 더 잘해 주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더군다나 거란과의 전쟁이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다소 과해 보이는 인사라도 무관들에게 보여 주는 본보기 형식으로라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둘째로, 보고를 받은 임금이 그 보고를 문자 그대로 신용하고 적극적으로 나에 대한 포상을 명해 온 것이었다.

물론 임금이 서경에서 내가 벌이는 난장판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으니, 내가 이번에 얻은 공적을 그대로 믿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걸 임금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포상하라고 주문한 것은 좀 다른 이야기였다.

다른 무관들을 제쳐 놓고 나를 딱 꼬집어서 공적을 셈해 주는 데 아쉬움이 없게 하라고 말했다지 않은가.

임금의 이런 명령은, 몇몇 어르신들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임금이기에 관철되었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진급만 하면 좋은 일이었겠지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나는 나이 스물다섯에, 어쨌든 장군이 되었으니 세간에 말이 이래저래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전에 얻은 중랑장이라는 직책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일반적인 변경 주진(州鎭)의 주진군(州鎭軍)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한 마디로 그 주(州)나 진(鎭)에 주둔한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이천 가량의 병사들을 책임지고 이끄는 중직을 맡게 되는 직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고작 스물다섯인 어린 무관을 그런 자리로 진급시킨 것도 찝찝한데, 거기에 더해서 관직은 한 단계 높은 장군(將軍)이다.

장담컨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고려사를 통틀어 보아도 이 나이에 여기까지 관직이 오른 무관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일종의 타협점으로 승진은 시키되, 품계는 올리지 않고, 또 기존에 활약하던 곳에서 떼 놓겠다는 것이 조정의 중론이었던 모양이다.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거란군과 부딪힐 일이 없는 곳으로 보내 공적을 더 쌓는 것을 막고, 나중에는 그걸 핑계 삼아 내 평가도 깎아내릴 심산인 것이다.

솔직히 내가 이따위 대우를 받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려가 유난히 썩어 빠진 나라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에는 어디나 권력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정치질이 있는 법이다.

이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갑작스럽게 체급이 커지게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성상께서 자네를 아주 좋게 보신 모양인데, 그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이제부터는 잠시 어깨를 낮추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게. 어차피 전쟁은 곧 닥쳐올 것이고, 나라 전체가 또다시 전화(戰禍)에 휩싸인다면 자네 같은 맹장을 어디 놀릴 수 있겠는가.”


정신용 장군의 말이 옳았다.

다만 장군이 정론을 이야기해 주었음에도, 왜인지 내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


“아, 팔자가 사나워서 평생 장군만 따라다니다가 볼일 다 보게 생겼습니다. 이제 슬슬 장가도 가야 되는데, 이거 원······.”


흥화진을 떠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정신용 장군은 나름 나를 배려한답시고 임억을 내게 붙여 주었던 것이다.

물론 임억의 경우에도 그 공적에 따로 치사가 있었다.

녀석도 낭장(郎將)으로 승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언제는 내 옆에만 붙어 있으면 안 될 일도 척척 잘 된다더니 말이 이랬다저랬다 하는구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장군께서 가시면 저도 따라가야지요.”

“말이나 못하면······.”


여러 해를 꼬박 보낸 흥화진을 내 의사에 반해서 떠나는 것이니, 이곳을 떠나며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임억이 있어서 조금은 그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기는 했다.


옆에서 조잘조잘 쓸 데 없는 소리를 떠들어 대는 걸 듣기 싫어도 듣고 있다 보면, 복잡한 생각 따위는 잠시 잊게 되는 것이다.

물론 쓸데없는 소리도 듣다 보면 꼭 정도를 더하는 법이다.

임억이 말하는 것이 항상 그런 식이었다.


“이번에 동북면 가시면 또 몇 달 되지 않아 대장군이 되시는 거 아닙니까? 나이 서른도 안 된 장수가 장군의 관직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 봤는데, 대장군까지 되면 이거 그야말로 놀랄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승차(陞差)한 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그리고 더 올라간다고 좋은 일도 아니니 괜한 말은 꺼내지도 말아라.”

“그래도 한 번에 일천 기병을 때려잡은 맹장이신데, 젊다는 이유로 장군을 못 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요.”

“내가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게 아닌 걸 잘 알지 않느냐? 그리고 언제 내가 일천 기병을 때려잡았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아이고, 수십 척 화양루 누각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하시는 분이 일천 기병 때려잡는 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제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하지요. 거기다가 동북면에 가면 상대할 게 그 독한 거란 놈들도 아니고 여진이잖습니까. 그럼 천명이 아니라 만 명도 대적(對敵)하시지요.”

“그만해라.”


임억과 대화를 오래 하다 보면 말이 꼭 허튼 방향으로 빠지며 헛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만다.

그래도 녀석이 진지해질 때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임지로 바로 가지 않고 황도(皇都)에 들리는 이유는 뭡니까? 무슨 심각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성상께서 직접 고명(誥命)을 내리신다고 하셨으니 일단 서울에 가야지.”


이 시절 서울이라고 하면 당연히 개경(開京)을 말한다.

나는 장군(將軍)의 직을 받아 명실상부하게 고관(高官) ― 어디까지나 문관.

실직(實職)은 아니고 변방 무관이므로 ― 비슷한 것이 되었으니, 임금이 직접 고명을 내려 임명을 하는 것이다.


따지자면 고명이란 것은 황제가 제후를 책봉(冊封)하거나 5품 이상의 고위 관료를 임명할 때 내리는 것이니 일종의 특수한 사령장(辭令狀) 내지 임명장인 셈이다.

더군다나 급하게 임명을 내려야 하는 상황도 아니니, 그걸 받으러 굳이 개경에 오라는 것이 이상한 요구는 아니었다.


“가시면 처신을 잘하셔야 합니다. 가끔 중랑장께서는 너무 주변을 생각지도 않고 움직이실 때가 있어서 제가 걱정이 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임억은 갑자기 얼굴을 진지하게 굳히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녀석에게까지 충고를 들어야 할 정도로 행동거지를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녀석도 중세 고려의 난도 높은 사회생활에는 나름 달통(達通)해 있는 녀석이다.

고도로 개인화되고 도시화 된 현대 선진 국가에서는 복잡한 사회 시스템이 인간 간의 거래, 갈등, 협력 따위를 중개하고 조율하지만, 중세 국가에서는 말 그대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한 사회 내에서 인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오로지 암묵적인 지식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건 사회 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다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누구는 남들보다 그런 일에 더 뛰어난 법이다.

내가 보기에는 임억이 그랬다.


“걱정하지 마라. 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무슨 화라도 입기야 하겠느냐.”

“그러니까 제가 여쭙는 말씀은, 장군의 그런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는 충언이올시다.”


임억은 못내 걱정인 모양이었지만, 나도 내 나름의 방식이 있다.

굳이 뻣뻣하게 굴다가 부러질 생각은 없었지만, 이리 휘고 저리 휘고 하며 남의 비위를 맞추고 돌아다니는 것은 내 성질머리에 맞지 않는다.

멸망에서 혼자 살아남아 돌아온 나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기억이 거의 모두 융합된 이 몸의 삶, 그러니까 고의신의 삶도 그래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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