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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자, 고려에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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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김경록
작품등록일 :
2024.09.02 16: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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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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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0화

DUMMY

“방금 노인장께서 인도자라고 하셨소?”


나는 노인을 방 안으로 안내한 다음, 방문을 단단히 틀어 닫으며 물었다.

노인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자리를 찾아 앉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에 대해서 대답을 해 왔다.


“일곱 하늘을 다스리는 성좌께서 그대를 도전자로 삼아 이 시대에 강림시키시고 불멸의 인(印)을 찍으셨지 않소. 모든 도전자에게는 그를 간접적으로 도울 인도자가 붙는 법이지 ― 물론 인도자라고는 해도, 내가 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바는 사실 제한되어 있소. 성좌조차 거스를 수 없는 법칙에 따라 나는 그대의 길을 알려 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수는 없소. 다만 그대가 가고자 하는 길을 밝혀 줄 수 있는 등롱(燈籠) 정도는 되어 줄 수 있겠지.”


노인의 말에 나는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졌다.

애초에 성좌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목소리를 일컫는다는 추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인이 말하는 치천의 성좌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내 머릿속을 노인은 마치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많은 의문이 들 것이오. 대체 성좌란 무엇인지, 또 그 성좌조차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란 무엇인지. 왜 치천의 성좌라는 이가 그대를 택하였는지, 또 왜 세상의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그대가 천 년이라는 세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는지······. 하지만 그런 질문들은 일단 내려놓는 것이 좋겠소. 그런 것들은 때가 되면, 그대가 자격이 될 때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 이상한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과 나는 우리가 있던 방이 아니라 완전히 어둡고 사방의 경계가 없는 공간으로 옮겨 와 있었다.


“······!”

“놀랄 것 없소. 그저 대화하기 편하도록 우리 둘을 잠시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은닉(隱匿)시켰을 뿐.”

“일단 지금까지 그대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쳐 놓았던 금제부터 푸는 것이 좋겠소. 지금 보니 그걸 풀더라도 어떻게든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오. 생각보다 대단한 자질이올시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무언가 수인을 맺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노인이 그 입에서 뭐라고 구결을 뱉는 것을 멈춘 그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하얗게 되며 멍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느낌은 순간에 불과했다.

정확한 감상을 말하자면 정신이 멍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충격을 받아서 잠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 둑이 터진 듯, 그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던 감정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아를 얼어붙은 땅 속에 묻으면서 느꼈던 비참함과 고통, 슬픔이 다시 나를 강타하고, 그 힘겨운 감정 위에 시간을 이동하며 느꼈어야 마땅했던 경이와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다시 쏟아져 흘러 내렸다.

도대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천년도 더 전의 과거로 흘러들어 와서, 그것도 남의 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밀 듯이 내 정신을 잠식해 들어온 것은, 내가 차지한 몸 ― 그러니까 고의신의 과거 기억들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기억들을 그저 단조롭게 책을 읽듯이 관조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 기억들이 내 영혼에 하나가 되어 엉겨 붙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겪었던 일들만이 아니라, 그 일들에서 겪었던 감정들이 한데 모여 내 영혼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도저히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나는 그런 감정들이 제멋대로 흘러들어와 엉키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나 덧붙여 말하자면, 그대가 엉뚱한 이의 삶을 대신해서 차지한 것이 아니니 그 점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좋소. 분명 그 생김새가 본래의 그대 모습과 너무나도 같아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오. 다만 그 신체는 과거로 올 그대를 위해 안배된 신체이며, 그가 살았던 인생은 바로 그대가 직접 살았던 인생이오.”

“내가······?”


이 몸에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감정적으로 버거워서 뭐라고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노인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을 이어 나갔다.


“당신은 한 번에 미래에서 이 시대로 이동해 온 것이 아니고, 먼저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고의신으로서 이 과거에서 한 번 또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오. 그리고 지금은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졌기에 두 삶의 기억을 함께 뭉치는 것뿐이고.”

“내가 고의신 자신이었다고······.”


애석하게도 그 말은 내게 큰 위안이 되어 주지는 못했다.

고의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감정마저도 또다시 온전히 내 것으로 끌어안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또한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살아온 이가 아니었다.

특히 온 가족을 거란군의 손에 잃어야 했던 참척(慘慽)의 고통이 그를 얽어매고 있었다.

그의 아름답던 아내는 거란군에게 겁간을 당할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고작 세 살 난 딸과 한 살짜리 아들은 그 아내의 손에 먼저 목숨이 끊겼다.

모두 군문(軍門)에 출사해서 거란군과 싸우겠답시고 나가 있던 동안 고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물며 아내와 자식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 역시 모두 거란군의 손에 죽었고, 일가친척 가운데에서도 죽은 이가 수두룩했다.

거의 멸문(滅門) 직전까지 몰려 갔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고의신의 기억이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어 그 감정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지금, 나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전에 지아를 땅에 묻은 것으로 내 고통은 충분하지 않았나? 왜 과거로까지 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또 겪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저주스러워졌다.

말갛게 웃던 나 ― 그리고 고의신 ― 의 어린 딸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고통에 꺽꺽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아니, 그건 울음이라기보다는 마치 짐승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런······. 생각보다 더 과한 감정적 반응이로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정신 줄을 놓으려고 하는 내 어깨를 콱 틀어잡고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내 영혼을 갉아먹듯이 몰려들던 감정의 파도가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람은 시련 가운데 성장한다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겠소. 다만 그대의 본래 영혼이 이런 고통스러움도 이겨 낼 정도로 강인하다는 점은 꼭 상기시켜 주고 싶소이다.”


노인의 말에 나는 피눈물을 쏟아내며 되물었다.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은 지금도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잖소.”

“그건 어디까지나 그 ‘금제’ 덕분이겠지요.”

“멸망하는 세상에서 불쌍한 어린아이를 직접 두 손으로 묻어 떠나보내고, 그 절망감 가운데에서 과거로 보내지는 것을 수락한 뒤, 어떤 알지 못하는 이의 몸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다음에 바로 ‘튜토리얼 퀘스트’라는 것을 받았는데, 아무리 정신이 올곧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찌 그런 상황을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행동할 수 있겠소. 그건 어떤 강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보호를 받아야만 한 일이었소.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심지어 초월자들조차도 그런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나는······,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당신은 불멸의 존재로서 앞으로 긴 세월을 인간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업적들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운명이 지워졌소. 그대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을 보통 사람의 정신으로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소? 모든 삶과 모든 죽음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말이오? 물론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겠지. 그간 막아 두었던 모든 감정이 한 번에 물밀 듯이 밀려왔을 테니까.”

“······.”

“그러나 성좌께서는 그러할 영혼의 그릇이 되지 않는 자에게 이러한 일을 맡기지 않으셨을 것이오. 그저 지금은 내가 당신을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당신을 선택하신 성좌의 판단을 믿는다고 해 두겠소. 그러니 당신도 성좌의 판단을 믿으시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고, 당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감당할 능력이 있으며, 결국에는 능히 그렇게 해낼 것이라고 말이오.”


노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울음을 마저 토해 냈다.

그러고 나자 이상하게도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노인이 불어 넣은 기운 덕분인지, 아니면 노인의 위로 섞인 말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가 이러한 것들을 이겨 낼 영혼의 그릇이 되어서인지, 나로서는 지금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감정의 폭풍이 점점 물러나고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노인은 내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 이윽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잘했소. 사람이 그 감정을 버리는 순간 괴물이 되어 버리기에,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다 버려서는 안 되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대는 그 감정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소. 그러니 부디 그 타오르는 감정들을 잘 갈무리해서 마음에 묻어 두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영원을 살기 위한 원동력으로서 천천히 태우시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인도자로서의 첫 번째 조언이오.”


***


내가 완전히 감정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고 나서야, 노인은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일러 주기 시작했다.


“튜토리얼 퀘스트가 끝났을 때 제 신분이 도전자로 전환되었다고 했습니다. 대체 도전자는 무엇이고 초월이 다 무엇입니까?”

“지금으로서는 모든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서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말을 해 줄 수밖에 없소. 도전자는 그러한 벗어남의 길 위에 들어서는 것을 허락받은 자이고, 그러한 자격은 오로지 이미 벗어난 자인 성좌들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소. 이것이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전부요.”

“그럼 그런 도전이 도대체 역사의 종말을 바꾸는 일과 관련이 어째서 있는 겁니까?”


내 말에 노인은 씁쓸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일종의 도전자가 자격을 증명하는 수단인 셈이지. 한 세계는 정해진 운명과 섭리에 따라서 정해진 역사의 궤도를 흘러가게 되어 있소. 어떠한 개입이 없으면 인류의 탄생부터 종말까지 정해진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밟아 가게 되어 있는 일종의 관성(慣性)이라고 해 두지. 그리고 그러한 관성 자체는 이 우주의 어떠한 강대한 존재도 마음대로 고쳐 쓸 수 없소.”


노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관성에 감히 덤빌 존재를 뽑아내어 시험할 수는 있겠지. 내가 앞서 역사의 흐름에는 ‘관성’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것은 일종의 거스를 수 없는 법칙과도 같아서 그대가 역사를 다시 쓰려고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상응하는 반작용을 돌려줄 것이오. 역사를 조금 틀어 놓으면, 그것을 다시 복원하고자 하는 힘이 그만큼을 작용하려 할 것이고, 역사를 많이 틀어 놓으면, 그에 상응하는 큰 힘이 다시 작용하겠지. 이미 그대는 불멸하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런 이질성은 그 크기만큼 이미 반작용을 불러왔을 것이오. 역사는 그대에게 맞설 수 있는 영웅들을 일으켜 세울 것이고, 그들 가운데는 심지어는 그대처럼 불멸하는 능력까지 허락받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대체 내가 무슨 수로 그렇게 거대한 힘에 대적해서 역사를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무슨 수로 정해진 멸망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그건 어려운 일이 될 것이오. 그래도 그 길을 걸어야겠지. 그렇다고 성좌께서 그대를 위한 안배를 전혀 해 두지 않은 것은 아니오.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대를 도울 수는 없지만, 사실 성좌들은 우주의 섭리를 유용하는 법을 찾아내는 데는 도가 텄소. 이제 더는 튜토리얼 퀘스트 같은 직접적인 안내도 없을 것이지만, 그대가 역사를 바꾸는 정도만큼 그에 따르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오. 그 보상 없이는 그대 혼자 힘으로 역사라는 대적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보상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대는 앞서 튜토리얼 퀘스트가 끝났을 때 공헌도라는 것이 산정된 것을 봤을 것이오. 그 공헌도가 그대가 역사를 바꾸었다고 인정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주어질 것이고, 그 공헌도를 최대한 잘 활용해서 ‘역사의 복원력’을 계속해서 저지시켜야 할 것이오. 설령 역사가 이미 많이 뒤틀렸다고 하더라도 안심해서는 안 되오. 그것은 결정된 멸망으로 가는 것만큼은 타협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세상의 시계를 멈추고자 할 것이오. 그것이 마치 의지를 가진 무엇처럼 말하는 것은 그릇된 묘사와도 같지만······. 어쨌든 그렇소.”

“그 공헌도를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것은 지금부터 알려 줄 참이었소. 지금부터 당신에게 ‘인터페이스’를 개방해 주려고 하는데, 동의하시오?”


나는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내 동의를 확인하고서 뭐라고 진언(眞言)같은 것을 외우더니, 손 위에 기이한 푸른 문양을 띄웠다.

그러더니 내게 그 문양에 손을 올리도록 했다.


***


노인은 내게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수 있는 법을 대략 알려 준 다음에 홀연히 떠나갔다.

그가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다시 확인해 봤을 때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이 간 뒤에 나는 다시 한번 노도(怒濤)처럼 밀려들어 오는 감정의 파도를 다시 밀어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감정을 갈무리하는 데 시간을 쓰고 나서야, 나는 노인이 알려 준 인터페이스의 기능들을 확인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인터페이스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시스템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를 강하게 품으면, 그 순간 주변의 시공간이 잠시 멈추고 나는 인터페이스가 구현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편의상 공간이라고 했지만, 일종의 군함(軍艦)이나 우주선의 함교(艦橋)와 같은 곳으로 삼차원으로 투영된 거대한 화면 아래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튼 그곳에 앉아서 보게 되는 화면이 바로 ‘인터페이스’의 실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일반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정보들, 예컨대 고려의 인구수라든지, 경작 가능한 농지와 토질에 대한 정보라든지, 아니면 지금 서경성에 모여 있는 군대의 숫자와 무장 상태와 같은 것들에 접근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이러한 정보는 어디까지나 내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한정되는 영역에 대해서만 얻을 수 있었는데, 예컨대 나는 아무리 화면에 떠오르는 삼차원 지도를 확대하고 살펴보아도 거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접근할 수 없는 정보들은 나중에 내가 그곳에 영향력을 갖게 되거나, 혹은 첩보 체계를 침투시키게 되면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영향력을 잃으면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정보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내가 멸망 전에 즐기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내 감상을 들은 노인은 ‘도전자’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 말에서 나는 지금까지 나뿐 아니라 또 다른 도전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이 성좌(어쩌면 성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방식은 다양할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또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표방한 만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 외에 인터페이스의 진짜 기능이 따로 있었다.

인터페이스의 핵심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계획을 세우고 그 결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보고 그에 알맞은 공헌도를 대가로 내어놓으면, 인터페이스는 역사에 간접적으로 개입해서 그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안내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 주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바로 공헌도의 의미요. 일종의 좋은 의미에서의 업보(業報)라고 해 두겠소. 역사의 흐름을 바꾼 만큼 업을 쌓게 되고, 그 업만큼 곧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지분을 얻게 되는 셈이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딱 공헌도를 지불한 만큼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요컨대 인터페이스에서 지불한 공헌도 이상의 결과를 내어 더 많은 공헌도를 얻어 내고, 그것을 다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활용하는 선순환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오.”


노인은 인터페이스에 대해 그렇게 말했었다.

그 말은 예컨대 인터페이스가 1,000의 공헌도를 소모하는 계획으로 판정하더라도, 내가 하기 따라서 그 결과로 500의 공헌도만을 다시 벌어들이거나, 혹은 반대로 소모된 공헌도를 훌쩍 넘어서는 2,000의 공헌도를 벌어들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곧 다가오는 전투에서 한 번 시험 삼아 이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조언은 이것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내게는 튜토리얼 퀘스트의 보상으로 주어진 1,000의 공헌도가 있었다.

나는 한참을 인터페이스 앞에 앉아서 그 공헌도를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당장은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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