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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자, 고려에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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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작품등록일 :
2024.09.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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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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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DUMMY

“적의 본대 일부가 강을 건너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의신과 함께 고려군 좌군이 전장에 나타난 적의 철기병을 들이치는 동안, 고려군 중군과 우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반대 방향에서 성을 감싸듯이 안고 돌아가 적 기병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고전적 의미에서 망치와 모루 전술과 유사한 방식으로 거란군을 공격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에는 늘 주의할 점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전략은 모루가 튼튼하지 않거나, 또는 망치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쉽게 깨질 수 있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적이 이걸 뚫어 낼 정도로 충분히 기강이 잡혀 있고 강하다면 의미가 없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전투에서는 고려군에 유리한 요건이 몇 가지 맞아 들어갔다.

먼저, 모루는 충분하게 튼튼했다.

병력 대부분이 중군과 우군에 편성되어 움직이고 있던 덕분이다.


비록 서북(西北) 여기저기서 끌고 와서 급조한 군대이긴 했지만, 이 병력의 상당수는 몇 년 전에 전쟁을 실제로 겪고 단련된 병사들이다.

단순히 머릿수만 채운 병력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병력을 1만 넘게 때려 박았으니 충분히 모루가 단단하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또, 비록 고려군의 동태가 수상함을 감지하고 매복까지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지금 거란군은 상정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온 고려의 습격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항상 습격하거나 기동전을 벌이는 것은 거란군의 몫이었지 고려군이 하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전쟁이 소강상태로 국경 지역에서 단발성 충돌만 계속되는 요즘에는 더욱 그랬다.

요사이의 전형적인 전투는 거란군이 군대를 끌고 압록강을 건너온 다음에, 흥화진을 비롯해 강동육주 성채들을 한 번 순시하듯이 두드리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고려군은 항상 방비를 하는 쪽이었지 먼저 작정하고 들이치는 쪽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거란군이 내심 느슨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꼭 그들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번에는 고려가 해묵은 반복을 깨고 역수(逆手)를 잡은 것이 그들을 당혹하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상원수 지채문에게는, 이 두 이유 모두 마지막 이유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그것은 망치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지나치게 강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병 전력의 상당수를 좌군에 몰아넣고 기동력으로 적을 몰아세우겠다는 전략 자체는, 어느 정도 기병들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세운 전략이기는 했다.


다만, 채 모루가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대부분이 철갑 기병으로 이루어진 적의 매복 병력 대열이 무너지고 힘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자 처음에는 생각이 잠시 멎어 버렸던 지채문이었지만, 이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고 있던 적의 철갑 기병들이 한 사람의 손에 분쇄되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철퇴에 맞아 나동그라지고, 들려서 던져지고 있었다(정말 철갑 기병이 사람 힘으로 들려져서 멀리 던져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채문은 처음 알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싸워 보려는 적들도 있었으나, 거란군을 말 그대로 일기당천(一騎當千)으로 격파하고 있는 무관의 뒤를 따르는 다른 기병들에 의해 금방 에워싸져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철갑 기병들도 아닌 일반 보병들은 이미 강물로 뛰어들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육편(肉片)이 되어서 박살이 나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서경에서 김훈과 최질을 때려잡을 때도 보통이 아닌 신력을 보였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다만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정말로 믿기지가 않습니다.”


지채문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에서 들린 대장군(大將軍) 강민첨(姜民瞻)의 말에 정신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장수로서 뼈가 굵은 그였다.

어떠한 당황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상황 판단을 잘 내려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가는 것이 그가 할 일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확실히 기운 것 같았지만 말이다.


“원래 저 정도로 용력이 뛰어났나? 아니, 말 위에 두 발로 버티고 앉은 채로, 중무장한 적 기병과 엇갈리는 사이에 그걸 잡아채서 던진다는 건 살면서 들어 본 적이 없네. 애초에 그런 기술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심지어 철갑으로 몸을 칭칭 에워싼 사람을 들어서 내던져 버리다니.”

“글쎄요······. 예전부터 남들은 들지도 못하는 무게의 철퇴를 흔들면서 적의 기병들 머리를 투구 채로 박살 내 버리곤 했다고 정용신 장군에게 들었습니다만.”

“허. 이거야 원. 서경에서 있었던 일을 내 듣기는 했지만······. 그것도 확실히 과장이 아니었겠군.”

“아마 그럴 겁니다. 저 모습을 보니 적어도 소문이 과장된 것 같지는 않군요.”

“허······.”


그런 대화를 하는 중에도 지채문의 눈은 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멀리서 보이는 고의신의 무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적의 퇴로를 막는 모루가 완성이 잘 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비록 망치가 너무 빠르고 강했던 탓에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도망치는 적이 저절로 갈려 나가기에 충분한 모루가 이제 슬슬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압수에 놓인 다리는 불타고 있으니 적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도망치려면 이제 오직 강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는데, 도주하는 적들은 이제 강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목숨을 운에 맞기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전군! 적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아라! 내원성에서 원군이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라!”


북을 울려 명을 하달하고 진영을 갖추자, 무너지기 시작한 적의 철갑 기병들이 모루를 향해 점점 밀려오기 시작했다.

워낙 좌군의 공세가 드세다 보니 거란 기병들이 예상외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동력을 잃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미 적의 기세는 이미 완전히 꺾인 모양이었다.


좌군과 중군은 그렇게 이쪽으로 점점 밀려오는 적 기병을 향해서 방패를 치켜들고 창을 세워 내밀었다.

여기서 저들의 퇴로를 막고 잘 받아 내는 한 좌군은 충분히 적의 남은 전력을 분쇄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이대로 내원성까지 들이치실 생각은 없습니까?”


성공적으로 풀려 가고 있는 전투에 고무된 부장(副將)들 가운데 한 명이 기세 좋게 물어 왔지만, 지채문은 분위기에 취해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목표만 달성하고 여기서 싸움을 끝낸다. 강 한복판에 있는 내원성은 어찌 공략할 것이며, 그걸 공략한다고 하더라도 또 강 너머에 있는 정원성에서 원군이 더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리고 내원성은 예로부터 거란이 점유하고 있던 땅인데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우리는 여기 용만원 들판에서 거란을 몰아내는 것으로 출정에 나선 목적을 이미 이뤘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채문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지금 적의 남은 기병들을 추격하며 철퇴를 휘두르고 있는 고의신이 혹시라도 제멋대로 내원성까지 돌격하지 않을지 말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휴······.”


마지막으로 도망치려던 거란병 하나의 머리를 마저 까부숴 버리고 나자, 나는 그제야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머리끝까지 뜨겁게 몰렸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반쯤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에 이미 용만원 들판으로 나와 있던 거란군의 진형은 완전히 형체 없이 무너져 있었고, 그들이 쌓고 있던 성도 고려군 손에 반쯤 떨어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너무 흥분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얼굴과 갑옷은 말 그대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이게 온전히 적의 피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싸움 중에 나도 적잖이 다쳤을 것인데, 상처가 나고 아무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내가 전투에 몰입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이유는 전투 중에 신체를 완전히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고무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초인적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부정적 감정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도 않고, 오로지 전투의 혈기에 취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만 눈에 보이는 상태.

그런 상태가 어느 순간 찾아오더니, 나도 모르게 과하게 흥분을 한 것이다.


“아니, 저한테는 흥분하지 말고 조심하라더니 이게 대체 뭡니까? 게다가 분명히 화살을 맞으시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임억은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아주 다친 것도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렇지 못했다.

미친 듯이 흥분해서 거란군 머리를 때려 부수는 사이에 몇 차례나 눈먼 화살을 맞았고, 그것을 직접 손으로 뽑아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분명히 화살이 남겨야 했을 상처들은 순식간에 아물었다.

워낙 정신없는 전장이라 그것을 남의 눈에 고스란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를 신경 쓰고 있던 임억은 내가 화살을 맞았다가 다시 뽑아내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괜찮다. 갑옷 안쪽까지 틀어박힌 것은 없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화살 하나는 볼을 크게 스치고 지나가서 피가 순간적으로 철철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물론 그 상처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정말······. 그리고 괜찮으시다니 하는 말입니다만, 그런 신위는 살면서 처음 봤습니다. 세상에, 거란군 목을 두 손으로 몸에서 뽑아내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도대체······.”


확실히 흥분해서 지나치게 행동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임억도 약간 질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그런 장면을 두 눈으로 보았다면 그럴 만도 했다.

워낙 흥분해 있던 상태라 나도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투 중에 내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건······ 못 본 것으로 해 두어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제야 평소의 중랑장님 같습니다.”


임억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성을 살짝 잃고 날뛰었던 것을 새삼 반성했다.


***


“도대체 이걸 어떻게 조정에 상신해야 할지 모르겠군. 자네 공적을 그대로 써서 올려 보내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거짓 전공을 썼다고 말이 나올 걸세. 매복해 있다가 들이닥친 거란군 철갑 기병을 사실상 혼자서 돌파하고 그 가운데 일백을 때려죽였다고?”


그러나 막상 전투가 끝난 후 상원수 지채문이 나를 찾아 불렀을 때, 나는 역시 내가 너무 흥분해서 앞뒤 없이 움직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 뭐라고 질책을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세. 대관절 어느 정신머리 없는 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공적을 세운 장수를 나무라겠는가? 내 말은, 워낙에 자네 무용(武勇)이 보통이 아니라서 이걸 누가 선뜻 보아도 믿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는 이야기일세. 거 참······.”


지채문 상원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리며 눈을 끔뻑였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엔 확실히 과한 측면이 있었다.

미디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장수들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 전면에 나서서 수백의 적을 상대하거나 혹은 적장과 일기토로 승부를 보거나 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는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실제의 싸움과는 한참 벗어난 것이다.


물론 나는 장군도 아니고 아직 중랑장(中郎將)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 역할은 싸움에서 계획대로 부대가 잘 움직이게 하는 데에 있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 한 가운데로 나가서 일기당천의 무용을 보여 주며 적을 때려잡는 데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보통은 그런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아무리 잘난 무장이라고 하더라도 수십, 수백의 적을 혼자서 상대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니 내가 이번 싸움에서 보여 준 것은 이 시대 사람들 기준에서도 과히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일단은 내 적절히 내용을 다듬어서 잘 올리도록 하겠네. 다행히 일전에 성상께서 자네의 무재를 보시고 훌륭하다 상찬하신 바 있으니 어지간한 내용이라면 다 알아서 살펴 주실 걸세. 그러나 내 한 마디 꼭 당부함세. 너무 모난 돌은 정(釘) 맞기 마련일세.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훌륭한 자질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으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되겠지만, 세상에는 항상 그런 빼어남을 질시하고 미워하며 어떻게든 욕을 주려는 자들이 있네. 부디 그런 것들을 항상 조심하시게나.”

“유념하겠습니다.”


지채문이 하는 말이 괜한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도 항상 신경을 쓰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이 능력이 지금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돋보이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다는 것까지 알려지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단순히 겸손하고 능력을 깎아 내세우는 것만으로 세상의 포폄(褒貶)을 피해 갈 수 있을까? ― 나는 여기에 대해서 뚜렷한 대답을 아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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