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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자, 고려에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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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김경록
작품등록일 :
2024.09.02 16: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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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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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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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5화

DUMMY

궐에서 물러 나온 나는 지채문 상장군의 저택으로 돌아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퀘스트 업데이트도 더는 없었고 일단은 여기서 더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조정에서 거란군을 압수 밖으로 완전히 몰아내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좋든 싫든 그곳에서 큰 싸움에 얽히게 될 터였다.

아마도 퀘스트는 그곳에서 진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짐을 꾸리던 나는 예기치 않게 다시 지채문 상장군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그를 찾아가니, 그곳에는 아까 편전에서 보았던 문관 하나가 앉아 있었다.

병부시랑 이자림이라는 자였다.


“이리와 앉게. 이쪽은 병부시랑 이자림이네. 아까 편전에서 보았겠지.”


지채문 상장군의 말에 나는 공손하게 예를 갖추어 이자림에게 인사했다.


“흥화진 별장 고의신입니다.”

“이자림일세. 아까 편전에서 담담히 국경의 정황을 고해 준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네.”


무엇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이자림은 얼굴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지채문 상장군은 그런 이자림과 나를 한 번씩 흘끔 쳐다보고서는, 내게 술잔을 채워 주며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흥화진으로 가는 길이 매우 급한가? 가복(家僕)들에게 듣자니 벌써 돌아가려고 짐을 싸고 있다고 하던데.”

“국경의 장수가 제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별장이라는 별 것 아닌 직책이라고는 하더라도, 국경에서 제가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차피 서북면의 군대를 흥화진에 집결시켜서 거란과 싸움을 하게 될 걸세. 그러니 돌아가더라도 그 싸움 전까지만 돌아가면 되지 않겠나?”


그 말은 나보고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지채문이 준 술을 고개를 돌려 한 입 마신 다음, 조심스럽게 그에게 되물었다.


“혹 제게 따로 분부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음······.”


지채문은 내 말에 혼자서 술잔을 조용히 기울이고 있는 이자림을 다시 한 번 쳐다본 다음, 이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직접 서경으로 행차키로 결정하신 것은 오늘 들어서 알고 있을 걸세. 이제 여기 있는 병부시랑 이 공이 임시로 서경유수(西京留守)의 직책을 맡아서 서경에 먼저 나아가 폐하의 순행(巡幸)을 준비할걸세. 그때 자네가 이 공을 모시고 서경으로 가서 일을 좀 도와줬으면 하네.”

“제가 말씀이옵니까?”

“그렇네. 다만 가서 돕게 될 일이 별일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이 공, 실례가 아니라면 고 별장에게 말을 좀 해 주어도 좋겠소?”


지채문은 그렇게 말하더니, 이자림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허락을 구했다.

이자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낙을 해 왔다.

이자림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지채문은 더 망설일 것이 없다는 듯, 눈에 안광을 틔우며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성상께서 서경에 당도하시면 그곳에서 역적 김훈에게 부월(斧鉞)을 내리고 서북면 군대를 모두 모아 압록강을 넘어온 거란을 치는 일을 맡기실 걸세. 그리고 그를 핑계로 큰 연회를 열 것이네. 우리의 목적은 그 자리에서 김훈이 살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네.”


거기까지 말한 지채문은 품에서 장도(粧刀) 하나를 꺼내서 내 앞에 탁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들었으면 자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뿐일세. 역적을 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자네 힘을 거들든지, 아니면 여기서 우리 둘의 혀를 끊어 놓고 김훈에게 고변하러 가든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고작 변방의 별장이다.

그렇기에 지채문이 내게 이렇게까지 강요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고작 한미한 지위에 있는 무관일 뿐입니다. 어째서 저와 이런 거사(巨事)를 논하려 하십니까?”

“······.”


지채문이 내 말에 잠시 응답이 없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자림이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솔직히 말함세. 우리는 사석(死石)이 하나 필요하네. 자네, 바둑을 좀 둘 줄 아는가?”


이자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끄럽지만 바둑은 잘 알지 못합니다.”

“바둑에서 사석이란 어떻게 두어도 상대편에게 잡힐 수밖에 없어서 죽게 될 돌을 말하네. 비록 상대에게 돌을 가져다 버리는 셈이지만, 대국(大局)을 보자면 그 사석에 상대의 주의를 돌리는 것도 큰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네. 달리 말하자면······.”


거기까지 말하던 이자림은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마저 털어 놓고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고 일이 틀어지면 버리고 나올 수 있는 사석 하나가 필요하단 말일세.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네에게 그 사석이 되어 주기를 청하는 것이고 말이야.”


솔직하게 진실을 밝히는 이자림의 말에 나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중요한 사람을 버리는 패로 쓸 수는 없으니, 나를 가져다 쓰겠다는 것은 이해했다. 물론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 됨됨이나 행동거지를 다소 눈여겨 지켜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석으로 버리겠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일이 잘 풀릴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내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눈앞에서 갱신된 퀘스트 창 때문이었다.


「튜토리얼 퀘스트 (진행중):

- 강림(降臨) (완료)

- 흥화진 진장(鎭將) 정용신 장군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기 (완료)

- 개경에서 지채문(智蔡文) 상장군을 찾아가 보고하기 (완료)

- 이자림(李子琳)을 수행하여 서경에서 연회를 준비하기 (미완료)」


퀘스트 창이 이미 이자림을 도우라는 임무를 띄운 이상, 내게는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퀘스트로 주어질 정도라면, 애초에 지금 지채문과 이자림이 꾸미고 있는 작전 자체가 실패해서 내가 사석으로 버려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이어질지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유를 불문하고 이 작전을 함께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일이 실패했을 때 내가 잘못될 일을 논하기 보다는, 성공했을 때 내가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인지를 논하는 것이 나았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만약 일이 성공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말에 이자림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 헛웃음은 이내 껄껄거리는 큰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난 다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도 정난공신(定難功臣)이 되는 것이지.”


***


이자림을 따라 내가 서경에 온 것은 그로부터 약 보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이자림은 내 역할을 명확하게 일러 주었다.


“우리는 김훈과 최질의 북정(北征)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그들을 잡아들일 작정이네. 순순히 잡히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야겠지. 당연히 무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고 그 무력을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네.”


이자림의 말은 나보고 그 연회에서 반란자들의 생포를 맡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꼬리를 내 선에서 자르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실패할 거라 상정해서 좋을 것 없다만,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에 결단코 그 화가 성상 폐하까지 미쳐서는 아니 될 걸세. 혹시라도 김훈과 최질이 그 자리에서 운 좋게 살아 나올 경우, 누가 그 배후에 있는지 속히 추궁하여 자신에게 반대되는 자들을 다 잡아들이고 참람하게도 성상 폐하까지 폐위하려는 수작을 부릴 수 있네.”

“일이 잘못되면 제가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를 바라시는군요.”


내 말에 이자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한테 매우 미안한 말인 것을 알고 있네. 그리고 말이 자네를 사석으로 쓴다는 것이지, 김훈과 최질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뒤에 누군가 있다고 심증을 가지고 어떻게든 죄를 자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 뒤집어씌우고자 할 걸세. 그러니까 이쪽에서도 이건 만에 하나를 위한 대비에 불과하지. 일이 잘못될 경우, 그 화를 온전히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자네를 버리는 패로 쓰려는 것이 아니네. 여차하면 그들이 자네를 국문(鞫問)하여 이 모든 일을 토설하게 할 수도 있겠지. 우리는 극렬히 그것을 부정하겠지만, 권력이 여전히 김훈과 최질에게 머물러 있는 이상 누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이 결정하게 될 걸세.”


그렇게 말하는 이자림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내게 단단히 당부했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실패는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설령 성상 폐하께서 보위를 지키신다고 하더라도, 그 옆을 보좌할 충신들 가운데 상당수는 목숨을 보전치 못할 수도 있네. 그러니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할 상황이네. 자네가 사석으로 쓰인다고 너무 섭섭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일세. 이미 우리에게는 어쩌면 다 같이 죽거나 다 같이 살아 남거나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을지도 모르네.”

“이미 마음을 먹은 일이니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자림을 똑바로 보았다.


“괜한 말이 길었군. 그대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면 그걸로 된 일이지. 괜히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아마도 자네보다 내가 더 불안했던 모양이네.”


이자림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서경에 온 이후로 피로감이 매우 심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서경에서 이루어질 출정 준비를 맡는다는 명목에서였다.

그 와중에 김훈과 최질을 잡아들일 계획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그 뒤에 구체적으로 내게 해야 할 일들을 일러 주기 시작했다.


“곧 가을이 되면, 폐하께서 예정대로 서경에 행차하실 것이네. 그곳에서 서북면 행영(行營)을 세우고 김훈을 상원수(上元帥)로 최질을 원수(元帥)로 임명하여 2만의 군단을 이끌고 거란군 토벌을 하도록 명하실 것일세. 당연히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이유일 뿐, 모두가 역적들을 서경까지 끌어내기 위해서네. 자네도 알다시피 개경 내에서는 그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두 상장군(上將軍)이 개경의 경군(京軍)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궐부터 개경 저잣거리까지 지금은 그들의 손에 놓여 있다고 봐도 좋을 걸세. 일이 우리 뜻대로 잘 풀린다면, 행영은 김훈과 최질 대신에 지채문 상장군이 이끄시게 될 걸세.”


이자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은 성상께서 서경에 오시면, 이를 명목으로 연회가 열릴 것일세. 그리고 군대를 움직여 싸우기 전에 일단 그 연회에서 두 역적과 그를 따르는 무관들을 제압하는 게 좋을 것일세. 성상께서 친림(親臨)하신 연회장에 감히 무기를 갖추고 들어올 수는 없을 터이니, 이는 아무리 지금 천하에 무서운 게 없다는 두 상장군도 예외는 아닐 것이네. 최악의 경우에는 행영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서경에 결집시켜 놓은 군대를 움직여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연회장에서 두 역적을 만취하게 한 다음에 사로잡는 것이 우선의 목표일세.”

“그럼 그곳에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자네 혹시 두 역적이 완전히 취한다면, 역적들을 맨몸으로 사로잡을 수 있겠는가? 저들이 함께 온 경군을 움직이기 전에 순식간에 끝낼 수 있어야 할 걸세.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놈들이 경군을 움직이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경군과 경군 사이의 싸움이 불가피하게 될 걸세.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준비한 무력이 저들을 압도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이자림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잠시 손에 힘을 살짝 주면서 그 악력을 가늠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놀랄 정도의 힘이었다.

무관으로서 꽤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 정도의 힘은 겉으로 보이는 근육의 양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솔직한 말로 일반적인 인간의 영역을 확실하게 넘어섰다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문득 패수(浿水)에서 만난 노인이 던지고 갔던 말이 떠올랐다.

노인은 내가 이 기이한 신체 능력을 믿고 써야 할 일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자림이 말하는 일이 그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맨몸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설령 저들이 무기를 들고 있어도 가능합니다.”


내 무덤덤하면서도 확신에 찬 말에 이자림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정말로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표정에서 놀란 기색을 빠르게 감추었다.


“그것 잘 되었군. 믿어 봄세.”


***


이자림은 고의신을 내보낸 뒤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채문이 쓸 만한 무관 하나가 있으니 계획에 끼워 넣는 것을 고려해 보라 했을 뿐이었고, 고민 끝에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뿐이다.

지난 세월 흥화진에서 서경을 거쳐 올라간 장계를 검토하고, 개경에도 바쁘게 연통을 넣어 알아보니 인물이 나쁘지 않기도 했다.

이용하기에 따라서 일에 도움이 되게 만들 수 있어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자림이 무슨 냉혈한이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그 별장에게 가진 감정은 지금으로서는 호감에 가까웠다.


‘어쨌든 그 용태(容態)는 참으로 감탄스럽기는 하다.’


북방에서 수차례 이상 전투를 치렀을 무관이니 체격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단정한 용모를 가진 것은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말이나 품행 거지에 경박함이 일절 없고 단정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인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이자림은 고의신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만 그는 그런 인상에서 느낀 바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중요한 거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번 일에 실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꾸민 일이었다.

무관들이 갑자기 칼을 거꾸로 쥐고 달려와 조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면서 이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은밀히 중추원(中樞院) 일직(日直) 김맹(金猛)을 은근한 말로 떠보았다.

그가 한 말은 단순히 “상(上)께서는 어찌 운몽지유(雲夢之遊)를 본받지 않으시는가?”라는 물음이 전부였지만, 그 의미는 각별했다.

운몽지유란 바로 한(漢) 고조(高祖) 유방이 공신이었던 초왕(楚王) 한신(韓信)을 숙청하기 위해 계책을 짠 고사를 말한다.

강력한 이성제후(異姓諸侯)인 한신을 공개적으로 제압하려고 하면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니 유방이 직접 초나라 땅에 속하는 운몽(雲夢)으로 유람을 핑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회를 벌인다고 하면, 한신은 그 땅을 다스리는 제후된 자로서 황제를 접대하러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한신을 체포하면 되는 것이다.

일직 김맹은 이 말을 은밀히 임금에게 올렸고, 임금은 운몽지유의 고사가 가진 의미를 깨닫고서는, 이를 다시 지채문 등과 상의했다.

그때부터 지채문은 김훈과 최질을 개경 밖으로 끌어낼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고의신이 거란군을 압수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는 좋은 명분을 가져온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계획이 원정을 독려한다는 핑계로 임금이 서경(西京)으로 거동한 다음, 원정을 맡기로 된 김훈과 최질 등의 무관을 모두 붙잡아 주살(誅殺)하는 것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니 때마침 거란이 또 흥화진을 쳐들어오고, 압수를 넘어와 성까지 쌓기 시작하는 일이 생긴 것은, 이 계획만 놓고 보았을 때는 도리어 잘된 일이었다.

임금이 서북면의 군사를 위무하고 국경을 안정케 한다는 명목으로 서경으로 움직일 핑계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잘될 것이다.’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곧 가을이 오면 임금은 이곳 서경으로 거동할 것이고, 그 후에는 준비된 계획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긴장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렇게 이자림은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속으로 되뇌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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