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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dywhack 님의 서재입니다.

먼지 대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Q현
작품등록일 :
2016.03.15 20:10
최근연재일 :
2016.05.07 20:03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4,061
추천수 :
30
글자수 :
16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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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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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0. 철야 (중)

DUMMY

2. 먼지


찬드라 매니저는 통유리창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게 당신이 원하던 것 아닌가요?”


“뭐, 맞습니다. 절반은.”


제렌이 그의 옆에서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절반이라고요? 생각보다 낮을 줄 몰랐어요.”


“아마 그녀 주변 일을 하다가 물들었나 봅니다.


제 생각에 초희 씨는 현장에 능한 타입이라, 이런 일을 잘 할지는 두고 봐야죠.”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당신 회사 임원진들은 환영하겠군요.”


찬드라와 휘트리아 모두 오랑 섬 작전 때 초희의 위험활동을 최대한 배제해 달라고 했다.


다만 휘트리아가 그녀의 활동을 제한한 건 회사의 핵심 자산을 가진 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메네스 교수로 인해 시작된 폭로가 일어나기 전까지.


“글쎄요. 그 교수의 자살 사건, 그 ‘검은 물 게이트’ 때문에 관광업 쪽에서 난리가 났죠.


외국 관광객이 줄어든 것뿐 아니라 이민 준비 때문에 VVIP들이 방 빼겠다 난리였거든요.


황당하지만 그 덕분에 에란 관광지구에서 우리 경쟁 업자 일부가 사업을 철수했어요.”


“그 휘트리아 바로 옆의 미라보 리조트 말씀하시는 거군요?”


“안시르 인들은 과연 정보에 밝군요. 그런데 임원들이 말하는 게 대박입니다.


지금 시기에 되려 사업확장 한다고 그곳 부지를 오늘 매입했습니다. 시세의 125분의 1 정도에요.”


“무슨 자신감이죠?”


“‘검은 물 게이트’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비밀리에 아는 정보가 더 많으니 자신감이 붙은 거겠죠.


오늘 연예계에서 벨리아 스캔들이 터지더니, 검은 물 얘긴 금새 쑥 들어가지 않습니까?


게다가 오랑 섬 구출작전이 성공하자 저희 임원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제렌이 매니저의 말을 집중했다.


“초희 씨를 내세워 휘트리아는 이 재난을 자체해결 가능한 주거 리조트 기업이 되려는 것 같아요.”


“휘트리아 식 경영은 못 당하겠군요. 하지만, CAPI 계획 자체는 아직 극비라서 사기업이 응용할···”


“당연히 아직은 멀었죠. 그런데 휘트리아의 다른 행성 리조트를 보면 놀랄 겁니다.


자체 ‘경비군’이 있어요. 그것도 8륜 전투 장갑차나 지대공 미사일까지 확보하고 있죠.


야심을 추진하는 데 만만한 사람들이 아닐 겁니다.”


찬드라가 통유리를 쳐다보았다. 그 유리는 수직이 아닌, 창 너머를 향해 약간 기울어진 것이었다.


“오늘 초희 군의 교육도 만만한 것 같지 않군요.”


두 사람이 바라보는 창 밖 은 거대한 분자로봇 현장 실험실이었다.


-----


“분자로봇에 대한 이론은 이사벨라 팀장님으로부터 들으셨겠죠? 잠깐 복습 해봅시다.”


초희는 불안불안하게 말을 뗐다. 그녀는 헬멧을 제외한 흰색 방역복을 입었다.


맞은편에는 그녀와 같은 차림의 세 사람이 있었다.


신입 분자로봇 조종자들이었다.


에리크는 왼쪽에, 보다 키가 큰 남성은 가운데에 그리고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안경의 여성이 오른쪽에 있었다.


“흠··· 그건 아까 실험실 수업이면 충분하지 않나, 어린 선배?”


가운데 있던 타보 은베지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는 새벽시간이라서 하품을 연신 했다.


“그렇지만, 이론은 현장에서도 꽤 유용하게 적용됩니다. 저번 오랑 섬 구출 사례에서도 드러나지요. 그게··· 음···”


에리크가 대신 지원사격을 했다.


“제가 증인이잖아요. 그 홍합의 수분 내성 접착 성분을 활용해서 임시 잠수복을 만든 거.”


“아, 그러네. 근데 오랑 섬 구출 작전은 자네가 입이 닳도록 들어서 이젠 감흥이···”


타보 오른쪽에 안경을 고쳐 잡은 히나 맥베스가 손을 들었다.


“이론, 참 중요하죠. 그럼 선배의 크리요-5의 기술 작동원리는 대체 무엇인가요?”


초희는 역습을 당하고 있었다. 히나는 처음부터 초희와 얘기할 때 딴지 거는 질문이 많았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기 중 에너지를 크리요-5가 급속 흡수해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죠.”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걸 제가 묻고 있잖아요?”


집요하군. 아까 실습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초희는 그녀의 평소 버릇을 안 하는 게 나을 뻔했다.


그 버릇이란 게, 남이 자기 뒷담 하는 것을 용케 찾아 듣는 것이다.


초희는 세 사람이 특히 히나가 그녀를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들을 수 있었다.


히나가 방역복 방독 헬멧의 통신 채널을 무심코 켠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래도 세아 초희 저 여자. 휘트리아에서 날아 온 낙하산이야.


<수로 보야주 Suro Voyage>란 관광 잡지에 나온 사진에 저런 붉은 머리 아첸 여자를 본 적 있어.


본인이 대학 안 다녔다는데 이런 연구 프로그램을 무슨 자격으로 들어간 건지.”


에리크가 강변했다.


“하지만··· 제가 그 현장서 구조됐다니까요? 같이 온 빅토르 선배도 군인이었고, 꽤 실력자인 건 분명해요.”


타보가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첸 족이 근성은 있으니까. 뇌가 부족하면 몸이 보완한다잖아. 그리고 오랑 섬은 그만해라, 좀.”


“그렇다 해도, 다른 선배들과의 연구 경력에 비하면 자질에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전자공학은커녕, 반도체 공장도 있지 않은 사람이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분자로봇등을 만드는데 필요하다.)는 어떻게 안 건지···”



휘트리아의 리타가 연구실까지 들어왔군. 하지만 리타와 마찬가지로 화낼 필요는 없다.


초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구의 작가 중에 커트 보네커트 3세라는 사람이 있죠. 저도 연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가 <고양이의 요람>이라는 책에서 아이스-9이라는 물질을 제안했어요.


아이스-9은 물이지만 상온에서도 얼음인 걸 유지하고 심지어 다른 물도 얼음으로 바꾸는 가상물질이에요.”


히나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저도 알죠. 현실상에선 불가능하지만.”


“조금 더 들어봐요. 그런데 초페카 행성에서 작가의 아이디어를 거의 현실화하는 걸 발견했어요.


행성에 골칫거리였던 먼지들이 수증기들을 감싸면서 에너지를 뺏는 것을 응용했죠.


제가 냉동설비기사 자격시험에서 기억하는 게 맞다면, 초페카가 열대기후임에도 도시에서 한시적으로 늦가을 날씨가 되는 현상은 이 때문이라고 했어요.”


히나는 한숨 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쳇,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줄 모르나? 결과적으론 엔트로피만 잔뜩 올리는 일이잖아?”


“지적이 훌륭한 건 아는데, 히나 씨. 선배랑 척 져봤자 좋을 게 없잖아.”


타보의 지적에 일행은 조용해졌다. 덕분에 실습 장비 설명은 별 문제 없이 전개되었다.


“그럼 방역복부터 설명 드리죠. 이건 4중 탄소 복합섬유 차단막으로 되어 있어요.


검은 물 등 병원체를 비롯해 강산-염기, 화학 작용지와 일부 방사선까지 방호가 가능해요.


내부에 자체 공기 순환 장치가 있고 이걸 제한적으로 정화 할 수 있죠.”


셋은 약간 졸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본 초희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거 한 벌이 55만 올이라고 들었어요. 선외우주복처럼 개인 맞춤 제작이라서 제작이 더 까다로우니 소중하게 다뤄주세요.”


에리크는 그 소리에 잠이 깬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들어보았다.


“장갑에 있는 18개의 마디들은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합니다.


헬멧에 표시되는 화면을 조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죠. 직접 착용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사람이 일제히 헬멧을 장착했다. 전원이 들어오고 그들의 전방 유리판에 정보들이 표시됐다.


에리크는 꼼꼼하게 건드려 보았고 타보도 깊게 흥미를 가졌다. 히나는 여전히 신중했다.


“선배, 이건 아무래도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초희가 화면을 잠깐 살펴보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아직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분자로봇이 등록되지 않으면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녀는 자기 방호복 가슴팍에 새겨진 육각형 눈송이 로고를 가리켰다.


“최종적으로 여러분들이 등록하는 분자로봇은 여기 표시됩니다.


나노 페인팅이라서 특기로 받은 로봇 성향이 바뀌면 언제든 변경 가능해요.”


에리크가 물었다.


“저는 그럼 어떤 특성의 분자로봇을 육성할까요?


생물모방이라고 등록했는데, 효소는 이사벨라 선배가 하고, 탄소섬유는 소지로 SH 선배가 하니···”


“MEMS의 한계가 없어진 지 오래잖아요?


다만 투입시기가 당겨져서, 연구 1팀에서 사용하던 걸 쓰면서 개별 연구 시간을 드리겠어요.”


이번엔 타보가 말을 이었다.


“나는 로켓 기동이 가능한 녀석을 설계할 참인데··· 개인 개발 시간은 주겠지?”


“성과가 빠를수록 좋죠. 연구소도 그 정도 시간은 줄 거에요.”


히나가 안경을 고쳐 잡고 참견했다.


“그건 과학자답지 않은 말입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고려하지 않고 성과에 집착하는 건···”


초희가 재빨리 무마시켰다.


“실험도 중요하지만, 사람 목숨이 걸렸다면 시간이 문제가 왜 아니겠어요.”


초희는 문득 신호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맞은편 윗층 유리창을 살펴보았다.


“슬슬 시작하겠구나. 저, 통제실, 괜찮겠어요? 아, 네.”


그녀는 ‘제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헬멧을 쓰고 있지만 저마다 하품하는 통에 김이 서렸다.


문득 초희도 모르게 하품이 쏟아졌다. 새벽 3시였다.


-----


“이 자식들, 다들 확 깰 때가 왔어.”


이사벨라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콘솔 장치 위의 버튼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휴대용 나노파지-2 조종장비’라고 적혀있었다.


폴이 창 밖을 보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거 가혹행위라고 뭐라 하는 거 아니에요? 신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를 텐데?”


“그만 좀 걱정하셔. 초희가 시작하기 전에 공지해주기로 했잖아?


그리고 야간훈련을 위해 네 시간 반이나 미리 재워 줬는데, 알아서 정신 차려야지.


폴, 넌 담수화 공장 훈련 때 사전공지도 없이 달려들었던 거 잊었어? 쟤들은 편하게 가는 거야.”


장난 많은 SH도 오늘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소장님이 허가했다니까 별로 놀랍지도 않네요. 그런데 쟤들 트라우마 생기면 골치 아픈데.”


빅토르가 팔짱 끼고 이사벨라를 두둔했다.


“선배들 자꾸 우습게 보면 한방 먹여놓을 필요가 있긴 하죠.


학력이나, 표지모델 이런 건 신경 쓰고, 냉동설비기사가 대학물리, 수학 없인 되기 어렵다는 건 왜 모를까.”


이사벨라가 대견스럽다는 듯이 빅토르를 보았다.


“훌륭해 빅토르 군. 다음엔 초희 앞에서 그렇게 말해봐.”


“뭐, 동료를 위한 흔한 말일 뿐인데요.”


빅토르는 실험실 내부와 연결되는 무선을 연결했다. 준비됐다는 초희의 응답에 그가 답했다.


“100초 후에 분사 시작할게. 좋아. 다들 잠도 깨기 전에 오줌 지리고 도망가는 일 없게 하라고 해.


방역복에 간이 분뇨처리장치 기능은 설명했지? 넌 정말 괜찮은 거야? 그럼 시작해 보자고.”


제렌 소장이 들어왔다. 그녀도 빅토르 처럼 팔짱 끼고 아래를 둘러보았다.


“이 방법은 안 쓴다면서도 끝내 쓰는군.”


이사벨라가 말했다.


“마주첼리 교수님이 특별히 나노파지 MK2.의 비공격용으로 쓰는 걸 허가했다면서요?”


제렌 소장이 쓴 웃음을 지었다. SH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이거 무허가 살포인가요? 마주첼리 교수 상의 없이?”


“응, 제대로 짚었어. 마주첼리 교수가 우리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보복으로.”


통제실 내 분자로봇 연구원들이 소장을 주목했다.


“여러분. 자율 훈련은 이걸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도록. 방금 마주첼리 교수는 우리 연구소의 자율권을 개척자 위원회에게 양도하러 갔어.”


일동이 침묵했다. 폴이 물었다.


“과니타 연구소는 군이 아니라 자유경제지대 협약 조건에 따라 운영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아까 찬드라 매니저가 다녀갔어. 휘트리아가 자체 방역팀을 꾸리게 기술 공유하지 않으면 지원을 철회한다고 CAPI에 알렸대.


CAPI는 경제지대 협약이 아니라 마리나도 헌법을 따라. 그래서, 자체 운영이 어려운 연구소는 즉시 개척자 위원회에게 양도하는 조항이 있어.


그걸 난 3분전 읽었지. 마주첼리는 그 얘길 지금껏 안 했고.”


일동은 말이 멈춘 사이에, 나노파지가 자동으로 살포되기 시작했다.


-----


“우이씨, 저게 뭐야?”


난데 없는 검은 먼지들이 실험실을 가득 메우자 타보가 기겁했다.


“타보 씨. 제가 말했지만, 저건 훈련용’검은 물’이에요. 그러니. (치직)”


초희가 몇 번이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먼지는 지독하게도 그들을 공격적으로 쫓아왔다.


세 명의 신입들은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었다.


일행은 비상구로 다가갔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봐요! 문 열어!”


“그러기 전에, 저걸 보죠?”


히나는 등 뒤를 가리켰다. 초희는 실험실의 인조 언덕 위에서 검은 먼지 로봇이 휘몰아치는 데도 가만히 있었다.


“저도 모르게 뛰었나 봐요. 그 섬 시절이 생각나서.”


에리크가 머쓱해져서 헬멧 쓴 머리를 긁적였다. 머쓱한 건 타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군 역시 이건 훈련···”


하면서 타보는 자기 장갑 표면을 갉아먹는 ‘훈련용’ 검은 먼지를 쳐다보았다.


“망할, 이게 훈련이라고? 이러다가 진짜 파 먹히겠네!”


에리크도 같은 상황을 접한 모양이었다. 그의 헬멧 화면으로 적색 경보가 끊임없이 울렸다.


‘경고. 미세 물질 침입 중. 작업복 외벽 피해 35%’


“진정하세요! 이건 진짜 검은 물이 아니에요! 20분 뒤면 자동 파괴돼요! 그리고 여러분의···”


초희가 무선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세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이었다.


그녀가 직접 가려고 할 때마다 이사벨라와 빅토르 그리고 제렌이 돌아가며 같은 말로 제지했다.


“쟤들이 어떻게 하는지 직접 두고 보자. 넌 가급적이면 도와주는 척만 해.”


“딱 한 번 눈감고 연기해봐. 신입들도 교관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테니.”


초희는 하는 수 없이 스프레이 건을 꺼내 대충 발사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적은 수의 크리오-5가 공기 중에서 나노파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탈출구를 이리저리 찾던 신입 조종자들은 체념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거야? 저 여자···”


초희는 담담하게 스프레이 건을 발사했다.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초희의 방역복은 멀쩡했다.


“저희가 현장에서 하게 될 건 지금 제가 하는 것들이에요.


물론 이렇게 많은 먼지는 사전에 군이 제거하고, 우리는 사람에게 위해가 되는 잔여분만 없앨 겁니다.”


초희는 ‘결빙’을 명령했다. 분자로봇들이 서로 얼어붙어 파괴되었지만, 신입 눈에는 허연 연기로 보였다.


크리오-5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초희는 들은 대로 더 이상의 조치를 일부러 취하지 않았다.


“이게 끝인가요? 선배?”


초희는 한숨을 쉬며 그렇다고 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것 같아요. 맙소사.”


히나가 외쳤다. 다리를 위에 걸친 조악한 도랑 지형이 보였다.


“일단 저기로 이동하죠. 여러분?”


초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이 뒤로 가고 먼저 일행을 내보냈다. 그리고 진짜 로봇이 없는 듯이 스프레이 건을 던져 놓고 뛰었다.


도랑은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겨우 30 센티미터 정도로만 물이 차 있었다.


“일단 여기서 16분은 버텨야 저게 사라질 거에요. 그전 까지는 나노파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태죠.”


“빌어먹을. 대체 분자 로봇 연구소는 뭐 하는 곳이야? 이런 위험한 걸로 훈련시켜?”


공용 채널로 신호가 들어왔다. 초희가 지시하자, 일행이 모두 그걸 틀었다.


제렌이 이전에 없는 엄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께 반복해서 말하겠지만, 이건 훈련상황이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바로 옆의 교육관도 겪은 것이다.


그땐 내가 실제 상황이라고 속였지만, 초희를 비롯한 선배들은 물러서지 않았지.


이제 14분 12초 지났네. 자네들은 이게 훈련임을 알고도 얼마나 잘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정말 프로로 추천 받았고, 프로라고 생각하면 프로답게 하도록.”


교신은 끊어졌다. 세 사람은 머리가 나올락말락 하면서 도랑에 죽치고 있었다.


초희는 혼자 도랑 밖에 서 있었다 히나가 초희에게 물었다.


“그땐 어떻게 끝났죠? 그 훈련 말이에요.”


초희는 대답대신 연신 허공을 주먹질 했다.


“그땐 검은 물에 감염된 좀비 대역도 있었죠··· 누군가는··· 끌려갔고요···”


초희가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웨어러블 장갑이 전기충격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손바닥을 히나 앞에서 털었다. 뭉친 나노파지가 툭툭 떨어졌다.


“저라면 도랑에만 있지 않겠죠. 한번 잘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해야 할지.”


히나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타보가 외쳤다.


“이거 이상해.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이 훈련용 먼지가 물을 흡수하는 가본데?”


에리크는 초희처럼 밖으로 나왔다. 그의 머리위로 검은 나노 파지들이 은은하게, 그러나 공포스럽게 흩어졌다.


“여기, 스프링클러가 없진 않겠죠?”


그는 자신의 머리에서 약 35m 위에 있는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야... 조건만 좋다면 작동할 거에요. 에리크 군.”


타보와 히나도 결국 물에 있기를 포기했다. 세 사람은 방호복이 벌집이 되어 있었다.


에리크의 말을 계속 듣고 있던 히나가 갑자기 타보를 불렀다.


“지금 여기 습도가 어떻게 되지?”


“아까부터 도랑 물이 빠지면서 계속 주는 것 같아···가 아니라 실제로 줄고 있어.”


“대기 중 수분 상태도 떨어지고 있군. 미스터 타보, 그리고 에리크 군. 잘 들어봐요.”


히나는 세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채널로 급히 바꾸었다. 초희는 바닥의 모래를 차고 있었다.


“열원(Heat Source)가 필요해. 잠깐이지만 한꺼번에 이곳 온도를 올릴 수 있게 말이야.


타보가 의아해서 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프링 클러를 작동시키려 하는 건 알겠지만···. 지금은”


“아니, 우린 그 반대를 할 거야. 공기가 건조해지고 고체 먼지도 풍부하고, 방화복까지 입고 있으니···”


히나의 말에 에리크가 기겁했다. 초희는 어느 새 모래를 장갑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누나, 제정신이겠죠? 설마 ‘분진폭발로’ 이 검은 먼지를 다 없앨 순 있겠지만, 그러면 실험장도 날려버릴 걸요?”


“젠장, 기막힌 타이밍이군. 내가 이러려고 이걸 가져 온 게 아닌데···”


타보가 한숨 쉬면서 방역복 옆 주머니에서 취급 주의 표시가 된 깡통 용기를 꺼냈다.


“알루미늄 분말이야. ‘살짝’ 위험하겠지만, 내일부터 만들 분자로봇 ‘추진체’ 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반출 서약서 까지 썼는데...”


히나가 웃었다.


“일이 풀릴 것만 남았군요. 그럼··· 선배, 선배는 계속 그렇게 모래 장난 쳐 주시겠어요?”


초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나노파지를 향해 모래를 집어 던졌다.


에리크와 타보는 실험장 자동 온도 조절장치를 수동으로 바꾸고, 강제 난방으로 전환했다.


실험장 조명을 모두 켜고 온도만 올릴 수 있다면 필요 없는 실험장 제어장치를 다 켜기 시작했다.


히나는 알루미늄 분말의 반을 쥐고는 허공에 뿌려댔다. 그녀는 시간을 재 보았다. 이제 11분 남아있었다.


“적당히 공기에 먼지가 있잖아? 이제 해보자.”


일행은 일제히 다리 아래로 돌아갔다. 히나는 초희에게 아까 장갑에서 전기 충격을 일으키는 방법을 부탁했다.


“일종의 전압만 갑자기 높이는 충격기일뿐이에요. 장갑 회로를 뽑아서 한다면 다른 얘기가 나오겠지만.”


히나는 55만 올짜리 방역복의 장갑의 동작 인식장비를 뜯었다. 과연 아주 짧지만 쇼트현상이 일어났다.


타보와 에리크도 같은 행동을 취했다. 히나가 외쳤다.


“전류 상승!”


폭발이 코 앞이었다.


쏴아아아아아.


스프링클러가 동작했다. 나노파지는 떨어지는 물의 중력을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쓸렸다.


알루미늄과 모래 가루도 젖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실험장으로 방송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사벨라였다.


“잘했다. 새내기들. 아주 실험장을 날려 버리려 했냐? 기특한 무서운 것들. 수고했다, 훗!”


에리크는 타보와 멍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물을 두 손 벌려 받았다.


히나는 분한 지 진흙이 된 모래를 걷어찼다.


“쳇, 어차피 이럴 거면서···”


초희가 다가왔다.


“이제 분자로봇 안전 농도에 도달했어요. 출구가 열린다는 뜻이니까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해요.”


“그러죠. 선배. 아, 그거 알아요? 선배 연기 더럽게 못하더군요.”


초희가 뜨끔해서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알고··· 있었나요?”


“제 눈을 어떻게 속입니까? 제 방역복은 열심히 갉아 먹히는데 선배 건 멀쩡했잖아요?”


“하나는 알았고, 둘은 몰랐네요··· 오늘 히나 씨가 입은 방역복은 당신 것이 아니었어요.


성능은 99%에 가깝지만, 동료의 분자로봇을 인식하지 못하는 결함 때문에 폐기된 거에요.


결국 훈련용으로는 적합해서 남겼지만.”


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깔끔한 새 방역복은 내일 들어와요. 그걸로 잘 입고, 문제되는 사항은 저와 소장님을 통해서. 그럼 이만.”


초희는 스프레이 건을 챙기고는 출구로 걸어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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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8. D데이 (4/4) +1 16.04.21 169 1 13쪽
22 8. D데이 (3/4) +1 16.04.19 134 1 14쪽
21 8. D데이 (2/4) +1 16.04.16 131 1 14쪽
20 8. D데이 (1/4) +1 16.04.15 156 1 11쪽
19 7. 막간 (하) +1 16.04.14 114 1 11쪽
18 7. 막간 (중) +1 16.04.12 129 1 11쪽
17 7. 막간 (상) +1 16.04.09 82 1 13쪽
16 6. 비번非番 (하) +1 16.04.07 128 1 12쪽
15 6. 비번非番 (중) +1 16.04.05 131 1 15쪽
14 6. 비번非番 (상) +1 16.04.01 147 1 11쪽
13 5. 일상 (하) +1 16.03.31 130 1 13쪽
12 5. 일상 (중) +1 16.03.30 135 1 10쪽
11 5. 일상 (상) +1 16.03.29 171 1 12쪽
10 4. 저녁 (하) +1 16.03.25 138 1 15쪽
9 4. 저녁 (상) +1 16.03.24 116 1 14쪽
8 3. 점심 (하) +1 16.03.23 126 1 13쪽
7 3. 점심 (상) +1 16.03.22 150 1 11쪽
6 2. 아침 (하) +1 16.03.18 173 1 9쪽
5 2. 아침 (중) +1 16.03.18 157 1 12쪽
4 2. 아침 (상) +1 16.03.17 153 1 10쪽
3 1. 달밤 (하) +4 16.03.16 17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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