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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dywhack 님의 서재입니다.

먼지 대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Q현
작품등록일 :
2016.03.15 20:10
최근연재일 :
2016.05.07 20:03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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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수 :
16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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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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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번非番 (상)

DUMMY

과니타 분자로봇 연구소는 반산스 시의 외딴 섬에 자리잡았다.


섬에서 연구원들을 모으고 실험을 시작한 건 겨우 5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제렌 아쉬 소장도 연구소와 삶을 함께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ㅁ’자 모양 건물로 가운데에 텅 빈 중정이 있었다.


중정이 바라보이는 가장 높은 층의 방이 소장실이었다.


그곳이 그녀의 일터이자 집이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동안, 연구소에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렌은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서류들을 읽었다.


그것은 연구원들의 현황 목록이었다.


옆의 사진과 함께 대략의 정보가 있었다.


‘이사벨라 로드리게스. (32).

과니타 농무부 공무원.

사용 분자로봇: 아그리Agri-6; 특수효소 사용.

가족: 배우자1, 자녀 2

CAPI 훈련 상태: 극한 일을 회피하는 걸 제외하면 양호’



제렌 소장에게 이사벨라는 각별한 연구원이었다. 가장 먼저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래 위험을 피하는 타입이었지만, 맞벌이 형편상 지원했다고 했다.


아이 가진 부모들이 사실은 겁이 없다던가? 제렌은 그 아이러니를 떠올렸다.



‘폴 맥두걸. (28).

통신회사 ‘옵티카’직원.

사용 분자로봇: 럭시Luxi-3; 고 에너지 용접.

가족: 부모 2, 형제1

CAPI 훈련 상태: 양호’


폴은 가장 일반적인 타입의 남자 연구원이었다.


가장 정상적인 가정의 정상적인 교육을 거쳐 지금 연구소까지 왔다.


하지만 아래 연구원과 죽이 잘 맞으면서 제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재였다.



‘소지로-헤론 ‘SH’ 웨이. (28).

반산스 국립대학 신소재 공학 대학원생.

사용 분자로봇 옵시드Obsid-7; 단분자 절단.

가족: 배우자 1

CAPI 훈련 상태: 유머와 돌발행동을 제외하면 양호’


SH는 아마 여기 오지 않았다면, 대학원이 질려 개그맨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장난 중에도 실험하고 실험 중에도 장난하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항상 최우수 분자로봇 연구원으로 만들었다.



‘빅토르 나젠코프. (26).

전직 해군 부사관 음파 탐지병. 현재 음향공학 대학생

사용 분자로봇: 소노Sono-2; 초음파 공명.

가족: 부모 2

CAPI 훈련 상태: 경력상 매우 양호‘


빅토르는 잠수함에서 근무한 적 있는 덩치 좋은 사내였다.


그 경험 덕분인지, CAPI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였다.


소장은 한숨을 쉬고 다시 커피를 들었다. 그 다음 인물이 그녀의 씨름 대상이기 때문이다.



‘세아 초희 (26).

휘트리아 레지던스 공기조절장치 직원.

사용 분자로봇: 크리요Cryo-5; 공기 냉각.

가족: 형제 2

CAPI 훈련 상태: 보류(3일 경과)’


전화가 울렸다. 소장은 홀로그램 파일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방어 훈련 담당 교관이시군요. 아, 네. 네. 상황이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통화는 금방 끝났다. 제렌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설상가상이구나.”



-----


“어우, 남편 다루듯이 살살 해줘요.”


SH가 힘겹게 말했다. 그의 다리를 세게 싸매면서 이사벨라가 말했다.


“그건 자네 와이프한테나 받아. 그리고 난 공무원이지 의사가 아니걸랑.”


빅토르가 농담을 건넸다.


“SH 형, 이 정도는 잠수함에서 깁스도 안 채워줘요. 알아서 나으라고···”


“흥, 이 몸이 너 같았으면, 지금 나이에는 별 달았어. 임마.”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은 연구원들의 복장이 이상한 걸 신경 쓰지도 않았다.


SH는 부목을 두 다리에 채워 넣고 들것에 누웠다. 폴이 물었다.


“아픈가, SH?”


“좀 따끔하지만, 이걸로 휴가 벌었다고 생각해야지. 이상 훈련 잘 받도록 제군들!”


마지막까지 SH는 농담을 던지며 구급차에 탑승했다.


환자를 떠나 보내며 폴이 중얼거렸다.


“바보인지 천재인지 알 수 가 없다니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글쎄요. 우리 SH 형만한 사람이 있을까? 매일 한 건씩 터뜨린다니까요?”


그런 빅토르를 향해 이사벨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무 심하게 터뜨려도 안 돼지. 한 방에 당분간 못 보게 되었으니.”


“그리고 마리나도를 지킬 사람이 하나 더 줄었죠.”


폴의 말에 세 사람은 공터 외곽에 떨어진 나무를 쳐다 보았다.


그 나무 아래서 초희는 일반 옷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바람결에 머리를 휘날리며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임시 연습장을 쳐다보았다.


사실 SH가 다친 상황에선 거의 웃을 수도 있었다.



-----


SH가 부상당한 것은 지겨운 강하 훈련을 하기 전이었다.


세 연구원은 20m짜리 새로 지은 모형 탑 위에 서 있었다.


마침 훈련 교관이 늦어지자 SH가 말했다.


“우릴 라틴어로 뭐라는 줄 알아, 폴?”


“또 시작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그건 인간 전부고, 기술자들에겐 한정해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해야 하는 거야!”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SH는 탑 모서리 소화기 상자 뒤에 숨겨 놓았던 흰색 공구가방을 꺼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지. 지금은 20m지만 만약 200m 넘는 곳에서 낙하해야 한다면?”


“뭘 하려는 거야?”


모두가 안전한 작업복을 입은 걸 확인한 SH는 그 자리에서 스프레이 건을 장전했다.


“어젯밤 여기 남아서 실험을 좀 했지. 이게 완성되면 중력이 엄마 품 같아 보일 거다.”


그는 탑 아래 공터를 향해 분자로봇을 뿌렸다.


벌통이 열린 듯이 알갱이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었다.


곧이어 연보라색의 먼지구름은 거대한 나노 실뭉치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차력쇼 해? 아님 저 나노 크기 일본도의 숲에 뛰어들어 죽을 일 있어?”


폴의 걱정에 SH가 검지손가락을 절레절레 휘저었다.


“그 반대를 연구했거든. 미세한 탄소섬유끼리 이어서 고탄력 보호막을 형성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어떤 높이에서 낙하해도 로봇 스웜 보호막에 의해 안전 착지가 가능하지.”


빅토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거 사전 실험은 충분히 했어요?”


“지우개, 머그컵, 난초 화분까지는 통과. 이젠 인간만 하면 돼.”


이사벨라가 SH 못지 않은 장난기를 드러냈다.


“이봐 스파이더맨 나리, 나 같으면 이걸 먼저 실험하겠는데?”


그녀는 SH의 분자로봇용 작업상자를 뺏어 탑 아래로 던졌다.


어차피 그들의 공구상자는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물건이었다.


그런데 SH의 상자는 연보라 구름에 아주 부드럽게 착지한 다음, 천천히 바닥에 닿았다.


반동으로 튀어 오르지도 않았다.


“오~”


모두가 감탄하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으쓱해진 SH가 바로 탑에서 뛰어내렸다.


“좋아, 그럼 보라구! 이 역사적인 순간을···.”


우지직.


모두가 탑 아래를 내려다 보자, SH는 힘겹게 서 있었다.


“괜찮은 거야 SH?”


폴의 교신에 SH가 고통을 느끼며 엉덩방아를 찧기 전 답했다.


“탈옥수들 하는 말 있잖아? 젠장, 줄이 짧아. 으으으.”




그렇게 훈련할 사람은 이제 3명 남았다.


초희는 그들이 이후에도 훈련 하는 것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CAPI에 불참 경위서를 써서 소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는 동료들에게 짐짓 저번 담수화 공장 훈련 중 받은 충격 때문이라고 훈련을 빠졌다.


그런 상태로 동료를 보는 초희는 심드렁했다.


휴대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연구소로 들어갔다.



-----


“이젠 좀 나아졌어?”


들어오는 초희에게 제렌 소장은 직접 맞아들였다. 초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커피 마실래?”


“괜찮습니다.”


초희는 통보만 받고 돌아갈 참이었다.


그러나 제렌 소장은 뜸 들이는 것 같았다.


“미안, 나 이거 조금만 보고.”


그녀는 안경을 쓴 뒤, 지구의 구식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초희는 소장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소장을 언급하면 항상 붙어 다니는 이름, 바로 안시르 였다.


우주의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종족, 하지만 다르게 보면 제일 장난기 많은 종족.


어떨 때는 결례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놀라운 통찰력으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사람들.


안시르의 키는 거인 족인 아첸보다 한참 작지만, 마치 초능력이라도 쓰듯 인재가 많았다.


CAPI 에 참여하기 전까지 초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소장님, 결정을···”


“나도 아네. 초희 군. 지금 답을 듣고 싶어?”


그 말에 초희는 긴장하였다.


“이건, <바가바드 기타>라고 하는 지구 책인데, <기타> 즉 경전이라고도 하지.


지구의 인도라는 나라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수록된 거야. 책 속의 책이랄까?”


그 뜬금없는 답변에 초희는 실망했다.


“무슨 뜻이죠?”


“이 책의 내용을 아는지?”


초희가 그 내용을 알 리가 없었다. 제렌은 분명 또 그녀를 상대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소장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쳤다.


“<바가바드 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5왕자 중 하나인 아르주나 왕자와 크리슈나 왕의 대화집이야.


아르주나는 형제들과 함께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크리슈나와 손잡고 전쟁에 나섰지.


활을 잘 쏘는 아르주나는 크리슈나를 마부로 삼아 함께 전차를 타고 적과 마주하러 갔어.


그런데 적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한때 자신의 형제, 친척 그리고 지인들이었지.


아르주나는 절망했어. ‘내가 이 사람들과 싸워 이긴 들 무슨 소용 입니까?’


그러자 크리슈나가 설득했고, 아르주나는 다시 용기를 얻어 싸우러 가는 게 책의 주 내용이야.


하지만 아르주나의 고뇌를 풀기 위해 크리슈나는 삶과 우주의 철학을 가르쳤고,


<바가바드 기타>는 고민 상담에서 졸지에 추앙 받는 경전이 되었지.”


그 이야기를 들은 초희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장은 에둘러 말하고 있었다.


초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소장님은 절 CAPI에서 빼고 싶지 않군요?”


“그래. 지금은 곤란해. 아주.”


사실이 확인사살 되었다.


“하지만, 전 그 왕자가 아닙니다. 소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전 전쟁 피난민이었을 뿐이에요.”


“나 역시 크리슈나만큼 지혜롭지 않지. 하지만 난 아첸 인들이 어떤 비극을 겪었는지 알아.”


초희는 그 말에 살짝 화가 났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전 마리나도에서 피난 온지 얼마 안 되어 상담을 받았어요.


전후 외상 스트레스성 장애(PTSD). ‘검은 물’처럼 그것도 완치 불가능하다 구요.


소장님은 진짜 사람이 죽은 걸 보셨나요? 갑자기 사람이 끌려가는 것도요?


전 소장님께서 분자로봇 연구가 실은 CAPI의 일환이라고 속이신 건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담수화 공장 훈련은···”


초희는 최근 연구소와의 안 좋은 기억을 계속 떠오르자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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