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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dywhack 님의 서재입니다.

먼지 대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현대판타지

Q현
작품등록일 :
2016.03.15 20:10
최근연재일 :
2016.05.07 20:03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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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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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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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비번非番 (하)

DUMMY

제렌은 눈앞의 초희를 보고 직감했다. 한계가 왔구나.


그녀는 말 없이 초희 손을 잡았다. 초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계속··· 할까요?”


“지금 초희 군은 어디에 있지?


“···당연히 연구소 그 중에도 소장님 방이죠.”


“다행이야. 일단 8년 전 아첸의 어느 냉동창고가 아니니까.”


제렌이 계속 이어 말했다.


“인지행동 치료 방법 중 하나야. 그 일이 떠오르더라도 지금 너가 그곳에 있지 않고,


그 일을 다시 겪지 않는 걸 계속 상기 시켜서 트라우마에 벗어나게 하는 거야.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계속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면 나아지겠지.”


초희는 한숨을 쉬었다.


“아주 조금은 위안이 되네요. 그럼···.”



-----


그날 밤 의무병이 이상하게 창고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으니 확인해보라고 했죠.


전 무선기사 수험서를 방패 삼아 내려갔어요. 대범해지고 싶었거든요.


무모하게도 전 돌아서 가지 않고 시체가방들 사이를 지름길로 지났습니다.


과연 냉매가 관으로 전달되고 있지 않았죠. 전 수리까지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순간, 하필 등화관제 때문에 창고가 깜깜해졌어요.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몇 발짝 뗐는데···


전 소스라치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왼쪽발목이 무언가에 잡힌 것 같았으니까요.


그게 너무 꽉 잡혀서 이상하게 벗어날 수 없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발목은 꼼짝도 않았죠.


순간 전날 의무병들끼리 하던 불길한 얘기가 기억났어요.


그들에 의하면 그 창고 말고 다른 곳에도 혈액을 채취하는 곳이 있었답니다.


그곳 사람들이 어느 날 안치된 전사자들 가운데 ‘엄마···’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과연 중상자가 피투성이로 신음하고 있었죠. 하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안락사 당했대요.


그런 얘기가 기억나자 갑자기 창고 안에서 ‘엄마··· 살려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 암기하던 무선장비 명칭들은 그 상황에 아무 쓸모가 없었어요.


전 오직 비상등 불만 찾아서 달렸어요. 오, 부디 시신들을 밟지 않았기를.


간신히 빠져 나와 보니, 잡혔던 왼발이 장화가 벗겨져 맨발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비번이라서 쉬는 바람에 사라진 장화가 어찌 됐는지 끝내 알지 못했어요.


-----


제렌은 두 눈을 감았다. 침묵 끝에 그녀가 창문을 보며 말했다.


“담수화 공장에서 있었던 일은 다시 사과할게.


난, 아첸의 학생 기술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어.


다들 아첸 족의 자네 또래들은 단순히 폭격이나 피난 중에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


나도 모르게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줄이야.”


초희도 상기된 얼굴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오후의 태양이 비스듬히 그녀 얼굴을 비추었다.


“당연히 전 그 두 개도 겪었죠”



-----


그 후론 창고 안에 무슨 일 하러 가기가 정말 싫었죠.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어요.


한달 후, 혈액공장이 되었던 냉동창고에 군인들이 철수했어요.


인류연합은 아첸인들이 회복능력으로 계속 저항하는 걸 알고 ‘드라큘라’라는 무기를 썼죠.


그건 아첸 족의 피를 극초단파로 증폭시켜 터뜨리는 전기 폭탄이라고 들었습니다.


더 이상 추출할 혈액이 없는 희생자들이 나오자, 냉동창고는 다시 비게 되었습니다.


창고가 비는 동안 저는 국가에서 시킨 대로 무선 기사 자격을 따냈습니다.


그렇게 저와 리야 두 사람은 징집을 피한 대신 창고 내부 설비를 계속 맡아야 했어요.


얼마 후 냉동창고는 재난 복구용 자재들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가끔 이곳으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근무를 서던 어느 날에도 두 사람이 들어왔죠.


쫓겨온 두 남자는 저보다 두 살 많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꽤 심각했습니다. 여기 저기 찢기고 긁힌 상처가 많았죠.


“이봐 아가씨, 제발 우릴 숨겨줘.”


“무슨 일인데요?”


“놈들이··· 놈들이 우릴 쫓고 있어 제발!”


그래서 저는 밖에서 냉동실로 바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들어가고 바로 저는 외벽 문까지 닫아 그들이 들어온 것 같지 않게 만들었죠.


과언 얼마 지나지 않아 수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머리에 띠를 둘렀고 거기에는 ‘결사항전’ ‘투쟁’등의 말이 적혀 있더군요.


다들 무기를 들고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두 젊은이를 보지 못했냐고.


저는 못 봤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창고를 멋대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왜 그러세요?”


우두머리는 절 거칠게 멱살 잡더군요.


“거짓말 마. 여기서 걔들 나오면 너도 끝장일 줄 알아!”


저도 겁 없이 맞섰습니다. 관리 허가증까지 꺼내며 말했죠.


“전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여길 관리하고 있어요. 시설에 손대면 큰일나는데 누굴 어떻게 숨겨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창고에 워낙 자재를 아무렇게나 쌓아둬서 들어가기 쉽지 않았거든요.


그들은 짜증을 내며 돌아갔습니다. 한 명은 제 앞에서 침을 뱉으며 말했죠.


“깜찍한 년. 언젠가 두고 봐.”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본 다음에야 저는 창고로 돌아갔습니다.


둘은 어떻게 올라갔는지 천장에 있더군요. 그들에게 전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두 청년을 쫓던 건 ‘징집감시관’이라는 자경단이었답니다.


원래는 전쟁에서 징집이 면제된 대학생들이었지만, 상황이 급해지자 차출 되기 시작했죠.


그 중 부모 인맥이 좋은 사람들은 전장대신 집안 단속하는 일에 동원됐습니다.


동족 중 징집 기피자들을 찾아내 전선으로 보내는 일이었죠.


전 그런 사람들을 처음 봤습니다. 그만큼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두 남자는 계속 그렇게 숨다가 동이 틀 때쯤 다시 도망쳤습니다.


저에겐 고맙다는 말만 짤막하게 남겼지요.


이번엔 또 다른 두 남자들이 도망쳐 왔습니다. 바로 제 남동생 초진과 일파였어요.


저희 부모님께선 일을 하는 저에게 걱정이 많으셨죠.


하지만 똑같이 저보다 네 살 어린 남동생들은 아직 한창 뛰어 놀 나이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고, 제가 살던 도시에도 공습이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제 동생들이 놀러 왔었어요. 전기가 거의 끊긴 마을은 푹푹 쪘거든요.


그래서 냉동창고가 서늘하다는 걸 알던 동생들이 제가 일하던 날, 찾아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 동생들과 그늘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두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곤 ‘쿵’하는 소리에 다시 깼죠.


공습이었습니다.


창고는 공습 받기 좋은 큰 건물인걸 나중에 알았지만, 전 동생들을 선반 밑에 숨겼습니다.


자재와 천장에서 가루와 파편들이 떨어지지만 도저히 밖에 나갈 수가 없었죠.


기적인지, 창고에 떨어진 폭탄은 불발탄이었습니다.


도시는 아니었죠. 전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제 고향을 동생들과 봐야 했습니다.


문득 부모님이 걱정되어 달려갔죠. 그리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저희 동네를 봐야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그날도 집에 먼저 들어오셨다고 살아남은 이웃이 전하더군요.


그렇게 시신도 찾지 못하고 부모님을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바로 통곡했지만, 폭격에 대한 충격이 가시고 나서 다음날에야 전 눈물을 흘렀죠.


-----


제렌이 마지막 남은 커피를 비웠다.


“가호가 있었구나.”


“정말 운이 좋았죠. 하지만, 폭격을 겪고 난 후 모든 자신감을 잃었어요.


친구 리야도 부모님을 잃었죠. 혼란의 연속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후로 탈출했겠구나, 안 그렇니?”


“그걸 어떻게···?”


“너가 말한 여름 폭격이 끝나자, 아첸 정부는 붕괴했고, 그때부터 난민들이 탈출하기 시작했거든.”


초희는 잠시 일어나도 좋겠냐고 했다. 거인족과 작은 천재가 나란히 중정을 바라보았다.


“전 리야와 상의 끝에 중립국 행 화물 우주선에 오르기로 결심했죠.”


-----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소문이 돌았어요


‘인류연합군이 들어오면 우린 노예가 된다.’ ‘다 죽는다’ 등으로요.


전 별로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정말 그렇게 되기 싫어서 떠나기로 했어요.


다행히 우주기구의 인권위원회는 루머와는 달리 인도적인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들에게 중립국으로 피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 주었죠.


표는 제가 창고 점검하면서 얻은 약간의 수당과 예전의 저금을 털었습니다.


집이 없다 보니 챙겨올 물건이 없어서 움직이기는 편했죠.


문제는 징집감시관들이었죠. 그들은 정부가 붕괴되자 더 날뛰었습니다.


군대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아무 장정들을 배신자로 몰아 죽였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도피자금을 위해 피난민의 재물을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아첸은 내륙국이라서 오직 우주선으로만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 남은 우주공항에는 사람들이 만원이었죠.


멀리서 포성이 들렸어요. 저는 애들에게 오직 앞의 수송선만 보고 걸어라고 했습니다.


과연 징집 감시관들이 여기 저기서 행패를 부렸습니다.


누구는 숨겨둔 보석을, 또 누구는 현금을 뜯겼죠.


전 더 잃을 것도 없어서 동생들을 거느리고 덤덤하게 걸어갔어요.


“너네 거기 셋. 멈춰.”


제 동생 초진은 그 때 겨우 열 넷이었지만 꽤 큰 아이였습니다.


감시관들의 눈에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지요.


“얘 나이 몇이야?”


“열 넷, 여기 이 아이도 열넷, 저는 열 여덟입니다. 모두 징집대상 아니에요.”


제가 당당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정말 수상하게 쳐다보았죠.


“내버려둬, 걔들은 아냐.”


누군가가 그 말을 했어요. 그리고 그 상처투성이 얼굴은 제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숨겨줬던 청년 중 하나인 그 사람은 결국 징집 감시관원이 되어 있었죠.


하지만 그는 우리를 보내 주며, 저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이걸로 전에 빚 갚을게.’


그 틈에 감시관에게 걸린 한 젊은 청년이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죠.


타타탕!


좌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불쌍한 청년의 뒤통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습니다.


제가 두 동생의 눈을 가릴 틈도 없이요. 제일 연약한 일파는 그 바람에 오줌을 지렸어요.


우린 그렇게 탈출했지만, 목적지인 엔테른은 난민을 더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렇게 저는 제일 전쟁과는 상관없는 중립국으로 변방에 있던 마리나도를 택했죠.


-----


제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을 자꾸 탁자에 두들겼다.


그녀의 손가락 신호는 연구소의 어느 방에서 그녀 비서 인공지능 ‘요릭’에게 전송되었다.


요릭은 지금까지 초희의 대화를 감청하고 있었다.


제렌은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안경 테에 묻혔다.


먼지는 해석기관이 장착된 분자로봇이었다.


그것은 초희의 정신분석 결과를 정리해 소장의 안경알에 표시했다.


‘심리상태는 대체로 양호. 다만, 특정 행동에 대한 민감한 행동장애와 뇌파변화 확인.


다각적인 심리 치료를 적용할 필요 유.’


인공지능의 심리진단은 아직 불완전하지만, 요릭은 사람 감정을 진단하는데 최적화된 컴퓨터였다.


제렌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일단 심리 치료 과정을 소개해 줄게.”


“그 다음에는요?”


“장기적으로는 법도 개정하고, 자네들이 안전하게 활동하게 기술력도 향상해야지.”


“아직 실현되려면 멀었다면서요?”


제렌은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말했다.


“네 말이 옳아. 이번 출장의 목표는 분자로봇 관련 국제 규제를 완화시켜 달란 거였어.


물론 그들이 수긍해도 우리에게 혜택이 돌아가려면 몇 개월, 몇 년이 걸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 전에 마리나도가 끝장나면 안되잖아? 해서, 연구소 자원을 100% 활용할 수 밖에.


일단 일 주일 간 SH의 공석을 부탁할게. 정신치료를 우선하면서 훈련을 함께 하고.


초희나 조종자 일동에게 위험이 가는 상황을 최대한 제할게. 이건 장난이 아니야.


이후의 상황은 추가로 의논하자.”


초희는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고민 끝에 그녀가 말했다.


“휴, 결국 소장님이 오늘 크리슈나였군요. 제가 그 일주일 해보고 생각하겠습니다···”


“모든 게 이제 시작이야. 아르주나여.”




(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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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 비번非番 (상) +1 16.04.01 14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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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5. 일상 (중) +1 16.03.30 135 1 10쪽
11 5. 일상 (상) +1 16.03.29 17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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