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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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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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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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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잠입 1

DUMMY

1.


줄리 한의 집 근처.


“저 집 안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철산의 말에 정철은 다시 한번 고개를 길게 내빼보았다.


가정집이라기보다는 무슨 궁전 같은 곳이었다.


허름한 청운당 초가에 오래 살다 보니 그게 사람이 사는 전부인 줄 알았건만.


저렇게 호화롭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확인하자 위화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정철은 저택 위를 선회하며 건우가 어떻게 저 집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건우, 이놈!”


정철은 당장이라도 들이닥쳐 건우를 끌어내고 싶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지만, 그 아이가 친 사고를 생각하면 괘씸하기 그지없다.


영민하고, 약삭빠르고, 방어진도 치고 변신술까지 할 줄 아는 아이다.


게다가 부적을 삼백 장 가까이나 들고 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 운천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일단 저 집안에 몰래 잠입하도록 한다. 그런데··· 주의 사항이 있다! 지금부터는 영력의 파장이 큰 도술은 사용을 금하겠다. 가까운 거리에선, 건우 그놈이 알아챌 수 있다.”


운천은 담장 너머를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상대를 다치게 하는 도술도 안 된다. 아무리 말썽꾸러기여도 아직 어린아이다.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저놈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쳐서도 안 된다.”


정철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게 타일러도 계속 버티거나 저항하면 그땐 미혼술이나 수각술*을 써서 데리고 가면 된다. 거듭 말하지만, 절대로 다치게는 해서는 안 된다.”


(* 수각술(囚殼術): 벌레로 만들어서 단단한 과실이나 그 껍질 안에 가두는 도술)


심각한 얼굴을 다소 누그러뜨린 운천은 다시 철산을 돌아보았다.


“철산은 일단 저 집 안으로 들어갈 길을 좀 찾아보게나.”


운천의 말이 떨어지자 철산은 바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르는 제비의 모습이 날렵했다.


철산은 그의 시야에 건물 배치가 다 들어올 정도의 높이까지 이르자 날갯짓을 멈췄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한동안 그 자리를 천천히 맴돌았다.


근처를 지나던 제비 하나가 동족인 줄 알고 철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다시 멀어지고 만다.


철산은 다시 급강하하며 집의 옥상 근처에 다가갔다.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창문, 전기시설, 배수시설을 둘러보았고, 건물의 골조, 이음새, 틈새 등도 자세히 살폈다.


그렇게 한 오 분여가 흘렀을 때였다.


마침내 철산의 눈에 잠입하기 좋은 한 곳이 들어왔다.



2.


세 마리의 바퀴벌레가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서로 간의 간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굵은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리도 많아서 한 번에 후다닥 내달리면 금세 내려갈 법도 한데···.


이들은 마치 제식훈련 하는 군인처럼 내딛는 발까지 맞춰가며 천천히 움직인다.


“이보시오 철산! 바퀴벌레의 몸이 작고 가벼워 좋긴 한데, 더듬이에만 의지해서 미끄럽고 컴컴한 공간을 걷는 건 쉽지 않소이다.”


맨 앞에선 정철이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줘 걸으며 말했다.


사실, 정철은 이런 어이없는 미물로 변신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금방 적응하실 거요. 바퀴벌레가 원래 어둠에 친숙한 종족인 데다 움직임이 빠른 게, 몰래 잠입하는데 이만한 게 없소이다.”


정철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던 철산.


심기가 불편한 정철을 그저 시큰둥하게 대한다.


“그런데 이거 지금, 경사가 거의 수직이 아니오?”


정철은 머리에 피가 쏠릴 때마다 자꾸만 멈칫멈칫하였다.


자신이 가장 선두인데, 만약에라도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그래 봤자 바퀴벌레의 몸이라 사람일 때처럼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을 테지만.


“곧 완만한 구간이 나올 것이오. 조금만 참으시오. 그나저나 건물의 2층 맨 끝 쪽에서 경면주사 향이 강하게 나는 게, 그곳에 부적과 건우가 있는 것 같소이다.”


철산은 더듬이로 주변을 부지런히 탐지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더듬이로만 더듬어 길을 찾는 게 영 답답하네.”


맨 뒤에서 묵묵히 따르던 운천이 돌연 피로함을 내비쳤다.


일흔다섯 노구에 지친 몸인 운천.


정철의 불평은 퉁명스레 넘겼던 철산이지만, 스승 운천의 반응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철산은 마침내 행군을 잠시 멈추고는 스승 운천의 몸 상태를 살폈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운천은 말없이 더듬이를 떨구더니 가는 숨을 느리게 내쉬었다.


“정 답답하시면 지금부턴 제가 앞장서서 빨리 길을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철산은 자신이 앞장서면서 정철을 맨 뒤로 보냈다.


아무래도 스승 운천을 가운데 두어야 제대로 살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십여 분 정도를 더 걷자 배수관의 경사가 완만해지는 구간에 접어들었다.


철산은 다시 한번 행군을 멈추고는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앞쪽에서 뭔가가 빠른 속력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보폭이 짧은 발걸음 소리였다.


딛고 있는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자 법사들이 놀라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시야가 제한된 공간에서의 공포는 더 가중되는 법.


우선 다가오는 것의 정체를 빨리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물러들 나십시오!”


역시 무리 중 감지력이 가장 뛰어난 철산이 나섰다.


더듬이를 앞으로 쭉 빼서 안테나처럼 빳빳하게 내밀었다.


또 눈을 부릅뜨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온 정신을 집중하는데 다가오던 발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배수관이 울리는 것도 잦아들었다.


적막한 공간을 채우던 소리가 사라지자 그 빈 곳은 금세 다른 것으로 채워졌다.


냄새였다.


철산 뒤에 있던 정철과 운천은 경계심에 몇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이제 오직 철산만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단독으로 맞선 상황!


익숙하지 않은 소리만큼이나 낯선 냄새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냄새일까?’


철산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최대한 활용했다.


‘짐승의 냄새 같기도 한데···.’


그렇다!


지금 자신과 같은 곤충들은 이런 역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아, 코가 마비되는 것 같다. 머리도 아프고···.’


게다가···.


후욱-! 후욱-!


하는 짧은 바람 소리!


‘이건··· 어쩌면, 짐승일지도 모를 놈의 호흡 소리인지도···. 아, 무··· 무섭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물론 있다.


뻗고 있는 더듬이로 과감하게 놈의 몸을 건드려 보는 것이다.


하지만 철산은 감히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후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공포에까지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그 반응은 그대로 몸에 나타났다.


덜덜덜!


그의 더듬이, 옆구리, 여러 쌍의 발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아··· 이런···.’



3.


그때 뒤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정철이 앞으로 나섰다.


정철은 철산에게 다가서더니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철산은 잠시 주저했다.


혹시, 스승님의 명을 어기고 무리하게 강술(强術)*을 쓰려는 걸까?


(*강술(强術): 상대에 타격을 주거나 해를 입힐 수 있는 도술. 반대는 경술(輕術))


일단, 위기는 넘기고 보려고?


정철의 의도는 알겠으나, 상대를 제대로 파악도 안 한 상태였다.


섣부르게 도술을 쓰다가 화라도 입으면 어쩐단 말인가?


자칫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정철의 의지는 단호했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시간만 죽이고 있어도 화를 입는 건 마찬가지라고 무언의 항변이라도 하는 듯했다.


정철은 주저하는 철산을 더듬이로 밀어내더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역시나···!


정철은 앞으로 나서자마자 대뜸 양 더듬이를 붙이면서 과감하게 수인을 맺었다.


어둠 속에서 꾸물대는 그의 움직임에 이어···.


콰지지잌-!


하는 불빛과 바람이 그들 앞에서 퍼졌다.


풍전술*이었다!


(* 풍전술(風電術): 바람과 천둥을 일으켜 상대를 놀라게 하는 방어 도술)


불빛이 번쩍이는 그 짧은 순간.


어둠에 가려있던 공포의 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찌이이이이이잌- 찌익- 찍-!


어둠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검은 털에, 반짝이는 작은 눈, 뾰족하게 튀어나온 주둥이 하며···.


그 위에는 제법 실해 보이는 여러 가닥의 수염까지 달린 놈!


짐승은 바로, 쥐였다.


풍전술에 놀란 쥐는 그 좁은 공간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법사들을 가로질러 도망치던 쥐는 이어지는 배수관이 옥상으로 향하게끔 꺾인 걸 확인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몸을 돌린 놈이 법사들을 밀쳐내면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왔다.


그사이 세 법사들은 나동그라지고 만다.


철산은 쥐의 꼬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기절해 버렸다.


또한 정철은 놈이 지나갈 때 허리를 밟혔는지 한동안 엎어져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다행인지, 그나마 운천만이 몸을 보존한 듯했다.


바닥을 더듬대던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은가? 다친 곳은 없는가?”


어둠 속에서 “으···.”하는 신음만이 답으로 돌아왔다.


운천은 가까스로 기어 온 정철을 향해 호통을 쳤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강술은 쓰지 말라고!”


비틀대는 정철은 그 와중에도 대답은 빠릿빠릿했다.


“풍전술이었습니다. 강술은 아닙니다. 그저 잠깐 놀라게 하려던 거뿐이었는데···.”


하지만 운천은 심기가 불편한지 계속 식식댄다.


“철산은 어디 있느냐? 어서 찾아라!”



4.


줄리 한의 집, 2층 복도.


바닥과 벽면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 바퀴벌레 세 마리가 걷고 있다.


선두는 철산!


쥐꼬리에 맞아 기절했다 깨어난 이후로 머리는 계속 띵한 상태다.


아깐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리로 나오는 길을 찾았소이까? 철산 법사는 정말 대단하시오!”


뒤에 선 정철이 철산에게 찬사를 보냈다.


조금 전 자신의 풍전술 때문에 흉한 일을 당한 철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더욱 호들갑을 떠는 거였다.


하지만 철산은 화가 난 듯 아무 말이 없다가, 어느 순간 넌지시 고개를 돌렸다.


“가만히 보면 건물 사이마다 은근히 구멍이 많소이다. 난 그 사이로 지나는 공기의 흐름을 느꼈을 뿐이오.”


정철은 기름걸레질이 되어있는 마룻바닥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연신 그 번쩍거림에 탄성을 연발했고 자신의 얼굴도 자꾸 비추어 보았다.


경면주사 향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철산은 향이 밀려 나오는 복도의 끝을 바라보다가 운천을 불렀다.


“스승님, 아마 저 복도의 끝 방인 것 같습니다.”


조용히 제자들의 뒤를 따르고 있던 운천은 건우와 마주칠 시간이 다가오자 불안해졌다.


“건우, 이놈이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온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만···.”


앞서가던 정철이 그 말에 잠시 속도를 늦추고선 운천을 돌아보았다.


“스승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강술을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운천은 단호했다.


“안 된다! 안전이 우선이다. 앞서 얘기한 미혼술이나 수각술 외엔 사용할 수 없다. 우리의 모습도 결정적인 순간 전까지 결코 드러내선 안 된다.”


정철은 땅을 보고 긴 한숨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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