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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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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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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DUMMY

4.


오전 6시 30분.


해가 뜰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 밖은 여전히 뿌옜다.


“하, 이놈의 안개는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워.”


버스 기사의 푸념이 뒷자리까지 들려왔다.


바깥의 전경을 확인할 수 없으니 도대체 어디쯤인지 감이 없었다.


옆에서는 스나이퍼 박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시야가 제한되어 느끼는 답답함.


거기다 청각적인 고통까지.


신 기자는 죽을 맛이었다.


힐끔 돌아보니 스나이퍼 박의 얼굴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신 기자는 스나이퍼 박과 밤새 나눴던 대화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환전은요?’

‘환전은 문제없어!’

‘한두 푼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해요?’

‘내가 잘 아는 조선족 사설 환전상이 있는데, 몇 푼 쥐여 주면 스위스 은행에, 무기명 채권에, 카지노 칩에, 보석에, 다양한 방법으로 세탁해 줄 거야.’


우리는 한동안, 마치 그 돈이 우리 수중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근처에 루스키섬은 관광지인데 아직 인프라와 교통이 불편한 편이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끔 여기로 나와 관광객들 상대로 중고차를 대여해 주면서 돈을 벌 수도 있어.’

‘숨어지내는 사람이 경제활동을 한다고요? 그것도 그렇게 얼굴을 드러낸 채로?’


야무진 걸 넘어 황당할 정도로 대범한 스나이퍼 박의 이주계획!


드라마에서나 봤음 직한 아름답고도 낭만적인 그의 얘기에 잠시 정신이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만다.


‘그러니까 김 지배인 그 친구를 어디서 어떻게 찾냐고요?’


바로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블라디보스토크니, 돈세탁이니, 이런 건 다 망상이 되고 만다.


‘예스패치 후배 기자들한테 좀 알아보라고 하면 되잖아?’

‘아니, 지난번 블라인드 인터뷰 사고 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면서 그런 소릴 해요? 다들 날 투명인간 취급한다고요.’


하지만 확실히, 김 지배인이 갖고 튀었다는 30억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김 지배인 그 친구도 눈치가 있다면 벌써 짐작했을 것이다.


그 정도 사이즈의 현찰이 사과박스에 담겨 폐업 직전의 호텔 분리수거장에서 발견되었다!


수상쩍은 돈!


아마도 정치권 비자금?


어쩌면 범죄조직의 검은돈?


그런 돈은 배송사고가 나도 눈물을 삼키고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아챘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대범하게 들고 튀었겠지.


그 후 우리의 대화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끊어지고 말았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기어가던 버스가 드디어 제 속력을 내는지 진동이 심해졌다.


버스 기사는 그간 뒤처졌던 걸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액셀을 밟아댔다.



5.


중산리 하차지점에 도착하니 시간은 8시였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은 곧장 탐방안내소로 향하는 등산객들을 지켜보다 택시를 잡아탔다.


국장이 말해준 지역신문사는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인적 드문 도로변에 위치한 허름한 단층 건물.


신문사 간판이 없었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뻔했을 만큼 볼품없는 건물이었다.


신문사는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아직 출근 전인가?”


신 기자가 건물 주위를 돌며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자 누군가가 어슬렁대며 다가왔다.


“누구세요?”


뜨끔 놀라 돌아보니 곰처럼 우락부락한 중년의 남자가 째려보고 있었다.


놀란 신 기자는 머리를 긁으며 쭈뼛쭈뼛 대답한다.


“아, 서울에 에스패치에서 왔습니다. 국장님이···.”


그러자 경직된 그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아, 안녕하세요!”


한 기자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이 국장과 막역한 사이라고 했다.


“여기 동향에,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죠. 그 친구 신참 때 제가 이 지역 연예인들 사건ㆍ사고도 자주 물어주고 그랬어요.”


열 평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사무실에 책상 두 개가 전부인 신문사.


신 기자는 이런 언론사는 대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가 궁금했다.


스나이퍼 박도 좁고 초라한 공간이 신문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저··· 국장님이 말씀하신 그 사건 말인데요···.”


괜한 말이 길어지면 피곤할 것 같아서 얼른 취재 얘기로 돌려버렸다.


한 기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취재했던 자료들입니다. 우리 신문에는 짧게 단신으로만 냈는데, 거기서 조금 더 파보면 또 모르죠. 뭐 더 재미있는 게 나올지··· 하하!”


신 기자는 봉투를 슬쩍 열어보았다.


두툼한 종이 뭉치와 사진이 제법 가득 들어있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이런 아날로그 방식으로 취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친군 언제부터 이런 데 관심이 있었죠? 맨날 연예인 물고 뜯고 빠는 게 전부 아니었나?”

“저희가 조직개편을 좀···.”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젊은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기자나 직원인 모양이었다.


여자는 우리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


“저, 혹시··· 남해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려면 어떻게 가면 되죠?”


스나이퍼 박이 여자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에 한 기자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배요? 흐음··· 목포, 완도, 통영··· 보통 이리로들 가죠. 해외로 나가는 건 포항이 배가 많나?”


스나이퍼 박과 신 기자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왜요?”


한 기자가 다시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 아니요. 혹시 이 사건 관련된 범인이 배를 타고 사라진 건 아닌가 해서요.”


신 기자가 능청스럽게 둘러대자 그제야 한 기자가 씨익 웃는다.


“아이··· 아직 뭐 뚜렷하게 나온 건 없어요. 말 그대로 미스터리! 관할 경찰서에서도 도무지 모르겠다는 마당인데.”

“아하! 네에···.”

“원하시면 경찰 한 번 만나 볼래요? 내가 연락을···.”


경찰 소리가 들리자 신 기자는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만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았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이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일어서는데 여직원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여직원은 눈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빙그레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맞죠? 그때 블라인드 인터뷰 때···.”


젠장!


신 기자는 얼른 한 기자에게 인사를 하고 신문사를 빠져나왔다.


스나이퍼 박도 벙거지를 푹 눌러쓰면서 신 기자를 뒤따랐다.


그제야 한 기자도 얼굴을 알아봤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기 시작한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은 둘은 얼른 올라타면서 십 년 감수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 가까운 렌터카 영업소 가주세요.”


신 기자는 일단 차를 빌리고 나서 아침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택시 뒷좌석에서 홍보 전단 하나를 뽑아 들었다.


‘지리산 바비큐’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6.


지리산 계곡 호텔


안내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는 김 지배인은 얼굴이 밝아졌다.


“아, 옛날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했어!”


미연이와의 추억.


아름다웠던 그때의 시간이 살아나는지 김 지배인은 자꾸만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그때 여기 앞마당에서 오리백숙을 먹었는데.”


자기가 앉았던 자리, 그리고 미연이 앉았던 자리에 차례로 앉아본 김 지배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쏟아져서 백숙을 먹다 말고 황급히 객실로 뛰어 들어갔었다.


여기저기 비가 만들어 놓은 작은 웅덩이를 피해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프런트 직원이 인사를 했다.


“네, 방 하나 주세요.”


직원은 단말기 화면을 보면서 빈 객실을 살핀다.


그때 김 지배인이 갑자기 다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303호실 가능할까요?”

“예전에 방문하신 적 있으신가요?”

“네, 좀 오래전이긴 한데···.”

“아, 네! 잠시만요.”


직원이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러고는 곧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비어있네요. 재방문 감사합니다. 저희가 재방문 고객님께 바비큐 식당 할인권을 선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식당은 여기서 차로 5분 거리입니다. 간판이 커서 찾는데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직원은 할인권을 내밀면서 좀 전보다 더 밝게 웃었다.


김 지배인은 주머니에서 오만 원권 여러 장을 꺼내 객실료를 지불했다.


303호실!


미연이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방.


비록 그때는 숙맥이었던 때라 큰일까지는 치르지 못했지만.


미연이가 자고 있을 때 몰래 키스까지 하는 데는 성공했었다.


303호실의 문을 열자 그때의 냄새와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김 지배인의 얼굴이 뜨거워졌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다시 호텔 밖으로 나온 그는 차에 올랐다.


휴게소에서 대충 먹은 국밥이 금방 꺼졌는지 시장기가 돌았다.


주머니에서 아까 받은 할인권을 다시 꺼내 보았다.


“지리산 바비큐!”


부릉!


김 지배인의 YF 소나타가 호텔 진입로를 빠져나왔다.



7.


땡초의 사무실.


밤잠을 설친 땡초가 핸드폰을 들더니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딱 한 번 울렸다.


- 네, 형님!


깡수의 목소리를 확인하자 땡초는 담배를 빼 물었다.


불을 붙이는 그의 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떨렸다.


“작업하자!”


정적이 흘렀고, 잠시 후 다시 깡수의 음성이 들렸다.


- 네, 알겠습니다.


전화는 끊어졌다.


땡초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정 의원을 모시면서 이렇게 오더를 거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 저지른 일을 만회하려면 이 방법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밤새 지하철역을 다 뒤졌지만, 놈들은 귀신같이 사라져 버렸다.


조금 있으면 정 의원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대체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아직 죽이지 말고 따라다니라고만 했는데··· 어쩔 수가 없어. 이렇게라도 해서 성과를 만들어야 해!”


신중하던 땡초도 한 번의 큰 실책에 흔들리고 있었다.


땡초의 손에 들린 담배가 빠르게 타들어 갔다.


한편 땡초의 오더를 받은 깡수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나온다!”


호텔에서 체크인한 지배인이 다시 나와 차에 오르는 게 보였다.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자신이 쫓고 있던 YF 소나타만은 선명하게 보이는 깡수.


꼬리에 따라붙은 깡수는 한동안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갑자기 액셀을 확 밟으며 앞차를 들이받는다.


쿠웅!


돌발 추돌에 놀란 YF 소나타가 급정거했지만, 깡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계속 밀어버린다.


부우우웅-!

쿵-!

끼이이이익-!


운전석에서 당황하는 지배인의 얼굴이 보였다.


겁에 질린 얼굴.


깡수는 그 모습을 즐기며 점점 더 거세게 몰아붙였다.


YF 소나타의 시동이 다시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이라도 가려는 걸까.


이어지는 추돌에서 막 벗어난 YF 소나타가 속력을 내면서 좌우로 거세게 핸들을 꺾었다.


뒤따르는 세단은 꽁무니를 계속 미친 듯이 따라붙는다.


속도 방지턱 하나를 넘고 급커브길 두어 개를 지나자 <지리산 바비큐>라는 큰 간판이 나왔다.


그 간판을 막 지나칠 때쯤이었다.


갑자기 앞에서 나타난 아반떼 한 대가 두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급정거한다.


끼이이이이이익-!


놀란 지배인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빗길에 제동은 쉽지 않았다.


결국 충돌을 피하지 못한다.


쿵-!


그 뒤를 따르던 세단도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추돌한다.


끼이이익-!

쿠우웅-!


그런데 세단은 갓길 쪽으로 튕기더니 비탈로 굴러떨어져 버린다.


차체가 묵직하게 처박히는 소리가 진동했다.


잠시 후 아반떼 안에서 두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괜찮아요?”

“가슴팍이 너무 아파. 벨트 안 했으면 죽었을 거야. 신 기자, 너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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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9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1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2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3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5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3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4 1 12쪽
»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0 1 11쪽
45 045. 안 보이나 느껴지는 2 24.01.18 20 1 12쪽
44 044. 안 보이나 느껴지는 1 24.01.17 19 1 11쪽
43 043. 차가운 남풍 3 24.01.16 20 1 11쪽
42 042. 차가운 남풍 2 24.01.15 15 1 12쪽
41 041. 차가운 남풍 1 24.01.13 1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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