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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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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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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1.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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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40. 인사발령 2

DUMMY

3.


‘가만있자··· 지리산이라고 했지.’


신 기자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정말로 무서운 건 직장에서의 좌천이니, 사회적인 지탄이니, 이런 것보다도···.


정 의원의 칼침이었다.


정 의원은 분명히 말했었다.


죽인다고!


‘정 의원을 엿먹인 것도 그렇지만, 사라진 돈이 삼십억이다. 삼십만 원도 아니고, 자그마치 삼십억!’


신 기자는 여기서 이렇게 잠수 타는 것만으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고 결론 내린다.


‘도망가자! 멀리···.’


목울대가 꿀렁이면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래, 취재하는 척 거기서 한동안 개기다가 남해 쪽으로 빠져서 배를 타고 동남아나 일본으로 튀는 거야.’


머릿속에서 지도를 펼친 후 탈출 루트도 그려보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혹시 나한테 붙여놓은 꼬리도 따돌릴 수 있을 테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거저거를 검색하던 신 기자는 옷가지와 소지품 몇 개, 그리고 여권을 챙기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겁지겁 사무실을 벗어나는 그의 모습에 기자들의 시선이 잠시 쏠렸다.


지이잉~ 지이잉~


스나이퍼 박에게 전화가 온 건 지하철역을 막 들어서려던 때였다.


“아니, 이 인간이···.”


신 기자는 욕이 터져 나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탑승구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30초 정도 신호가 흐르게 놔두자 거칠던 호흡이 진정되었다.


통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 신 기자···.

“지금 어디예요?”


스나이퍼 박은 물어보는 건 대답 안 하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 너무 무서워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

“누군 지금 안 무서워요? 어디 숨기 전에 나한테 미리 얘기는 해야죠. 그렇게 혼자만 대책 없이 잠수 타면 어떡해요?”

- 우리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신 기자는 생각했다.


스나이퍼 박과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까, 아니면 버리고 가는 게 좋을까?


버리고 혼자만 가면 저 인간, 언젠간 붙들릴 것이다.


붙들리면 역시, 지난번처럼 땅에 묻히는 걸로 안 끝나겠지.


정 의원은 신 기자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별짓을 다 할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을 자르고, 귀를 자르고 코를 베는 고문은 기본.


그렇게 알아낸 주변 사람들도 하나하나 찾아가서 협박과 폭행을 가할 것이다.


자기 목숨 하나 살리자고 부모, 친척, 친구들까지 곤경에 빠지는 꼴이라니.


일찍 이혼해서 처자식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못 할 짓이었다.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던 신 기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열한 시까지 남부터미널로 와요.”


신 기자는 흩어져서 도망 다니다가 각개격파 당하느니, 같이 있으면서 리스크라도 줄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 남부터미널? 거긴 왜?


스나이퍼 박은 잔뜩 기대에 부푼 듯 되물었다.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해요.”


긴말은 만나서 하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올 때 여권 챙겨와요!”

- 여권? 왜?

“살고 싶으면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요.”


통화를 마친 신 기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끄러운 탑승구 안이었기에 누군가 통화를 엿듣는 건 불가능했다.


쭈뼛거리면서 주위를 살피는 자기 모습이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사건을 추적하는 입장이었다가 이제는 오히려 쫓기는 꼴이라니.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멘트가 요란하게 울렸다.


신 기자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후 객차 안에 몸을 실었다.



4.


지리산 주유소.


“만 원어치··· 아, 아니··· 그냥 만땅 채워주세요!”


김 지배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주유소 직원을 보고 활짝 웃었다.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말에도 타이트한 예산에 맞춰 살아온 자신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버리니 말이다.


글러브 박스에서 오만 원권 한 뭉치를 꺼내면서 김 지배인은 생각했다.


그럼, 한동안 돈 걱정 없이 살다 보면 그간 몸에 밴 궁상맞은 습관이 사라질까?


그 사라진 자리에는 멋들어진 재벌 습관이 들어앉게 되는 건가?


거지 같은 ‘만 원어치’ 습관이 럭셔리한 ‘만땅’ 습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건가?


기름이 채워졌고, 차창 밖으로 오만 원권을 세 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직원이 김 지배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직원은 후다닥 달려가 거스름돈과 티슈, 그리고 생수를 들고 돌아왔다.


수수하고, 청순하고, 싱그러운 모습!


뛰어올 때 흩날리는 긴 머리에선 산뜻한 풀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까 옛날 미연이가 생각났다.


김 지배인의 ‘만 원어치’ 습관에 아직은 지치지 않았던 시절의 미연이.


그때의 미연이는 여러모로 사랑스러웠다.


미연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자신을 버리고 택한 그 PD라는 놈하고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걸까?


김 지배인은 잠시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였다.


주유소에서 막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뱃속이 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요동치면서 식도가 싸하니 아파져 왔다.


“가만 보니까 오늘 온종일 아무것도 먹질 않았네.”


김 지배인은 다시 차를 돌려 주유소 옆에 붙은 지리산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주차 공간은 넉넉했다.


식당 코너에서 키오스크로 국밥을 한 그릇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식당 손님들의 시선은 전부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들 넋을 잃고 숨까지 죽인 모습이 신기했기에 김 지배인도 고개를 돌려보았다.


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기에 그러는 걸까.


그런데···


“어···!?”


화면 속 남자!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신 기자님 아니야?”


김 지배인은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만 보니 화면에는 며칠 전 시끄러웠던 무슨 폭로 관련 인터뷰 재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는 유치하기도 하고, 관심도 없고 해서 화면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었는데.


그 화면의 주인공이 신 기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화면 속 신 기자는 뭔가 움직임이 이상했다.


“왜 저러지···!?”


잠에서 막 깨어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술에 취해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한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화면에 뜨는 자막에 이어 그가 하는 말은 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김 지배인 옆 테이블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말도 귀에 들어왔다.


“어머··· 저거 그때 그 사람들이지? 다시 봐도 황당하네. 쯧쯧쯧···.”

“미쳤나 봐, 세상에···.”


또 한곳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지기도 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배에 바람이 들어간 듯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김 지배인은 그저 멍할 뿐이었다.


김 지배인은 그간 신 기자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와 지금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잘 매칭이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자꾸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신 기자님이 게이라고?”


김 지배인의 입에서 실소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보니 회사에서 보낸 문자였다.


경험상 이렇게 일과 중에 회사에서 날아온 문자는 안 좋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발령 공지>라는 제목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사람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화면을 스크롤 해 내려가니 드디어 맨 마지막 줄에 의미심장한 글귀가 보였다.


··· 호텔 폐업으로 상기 인원을 모두 정리해고함.


“쳇···!”


별로 기대는 안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결과를 맞닥뜨리니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언제는 책임지고 주변 다른 호텔에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고 하더니만···.”


김 지배인은 과거 인사팀장이 했던 말이 생각나자 더 기분이 상했다.


뱀처럼 웃던 그의 얼굴까지 떠오르자 몸서리를 치며 핸드폰 화면을 확 뒤집는다.


주문한 국밥이 나왔다.


간도 보지 않고 테이블 위에 소금을 한 수저 푹 떠서 넣었다.


휘휘 국밥을 저어서 두어 수저 입 안에 밀어 넣는데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자꾸만 정리해고자 명단에 걸린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잠깐··· 아니지!”


김 지배인은 순간 잊고 있던 자신의 큰 행운을 떠올리며 헤벌쭉 웃는다.


국밥을 다시 퍼먹으며 휴게소 밖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보았다.


찌그러진 YF 소나타.


정확히는 트렁크였다.


그 트렁크 안에 고이 실려있는 큰 행운!


갑자기 웃음이 터진 김 지배인은 씹고 있던 국밥을 내뿜으며 크게 웃었다.


“캬하하하하하하하!”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다들 고개를 돌렸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하는 표정들이었다.



5.


검은 세단 안의 남자는 선글라스를 살짝 추켜올리더니 휴게소 안을 살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상대는 급한 성격인가 보다.


신호음이 한번 울렸는데 냉큼 전화를 받았다.


“네, 지금 지리산 휴게소입니다. 차에 기름 넣고, 밥 먹고 있습니다. 오만 원권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전화를 하면서도 눈은 휴게소 안을 계속 주시한다.


“네, 계속 따라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남자는 핸드폰을 보조석에 던지더니 양 허벅지 사이에 끼워둔 햄버거를 집어 들었다.


반쯤 남은 햄버거에서 새어 나온 소스가 그의 정장 바지에 떨어졌다.


“씨발-!”


남자는 움켜쥔 오른쪽 주먹으로 글러브 박스를 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글러브 박스의 문이 열리면서 물티슈가 조수석 바닥에 떨어졌다.


“아이, 씨발 진짜-!”


거친 욕이 계속 이어졌다.


남자는 “끙-!”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 후 조수석 아래에 떨어진 물티슈를 주웠다.


고개를 숙일 때 그의 목뒤 문신이 슬쩍 드러났다.


용의 머리!


그가 한때 몸담았던 조직의 상징은 용이었다.


‘무기력하게 꾸물대는 지렁이 같은 인생이 아닌 세상을 휘어 감는 용의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


가슴이 뜨거웠던 십 대 후반.


남자는 이 마법 같은 슬로건에 이끌려 ‘용천파(龍天派)’에 가입했다.


그리고 거기서 운명처럼 땡초 형님을 만났다.


사시미 칼빵을 나누고, 피를 나누고, 또 인생을 나누면서 두 사람은 뜨거운 사이가 되었다.


범죄와의 전쟁 때 조직이 박살 나면서 보스가 총에 맞아 죽었고, 두 사람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고 이젠 나이도 제법 먹었지만, 세상을 휘어 감으면서 살겠다는 초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 확고부동한 신념과 결기 때문인지 지금도 전국구 칼잡이를 꼽을 때 그의 이름 ‘깡수’는 가장 먼저 언급된다.


깡수는 남은 햄버거를 입 안에 다 밀어 넣고 물티슈로 손을 슥슥 닦았다.


휴게소 안에서 밥을 먹던 남자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한 손에 커피를 든 채로 실실 웃으면서 어기적어기적 걷는 남자.


남자는 뭐가 좋은지 하늘을 보면서 자꾸만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에든 커피를 쓰레기통에 던지더니 차에 올라탄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덜거리던 남자의 차가 슬금슬금 움직이면서 휴게소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깡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빼 입을 닦은 후 시동을 걸었다.


바로 그의 뒤를 따르는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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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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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4. 안 보이나 느껴지는 1 24.01.17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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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 인사발령 2 24.01.12 1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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