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3,284
추천수 :
72
글자수 :
707,785

작성
24.01.19 18:10
조회
20
추천
1
글자
11쪽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DUMMY

1.


남부터미널, 23시 35분.


버스 출발 시간이 5분도 안 남았는데 스나이퍼 박은 아직도다.


“아니, 이 인간은 진짜···.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지금 어디쯤인지 알려는 줘야 할 거 아니야. 전화는 또 왜 이리 안 받아?”


하염없이 울리기만 하는 신호음을 듣다가 신 기자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다음부터는 심야버스라서 한 시간에 한 대뿐이라고, 이 제멋대로 양반아!”


신 기자는 상대가 마치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신 기자는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다.


화가 끝까지 뻗친 신 기자는 매점에서 김밥과 삶은 달걀, 캔 커피를 하나씩 샀다.


“몰라··· 나 혼자 갈 거야!”


그러고는 얼른 출발 직전의 버스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막 버스에 오르려던 찰나였다.


“신 기자!”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스나이퍼 박이었다.


어이없는 한숨을 토하며 돌아보는데 그의 차림새가 묘했다.


검은 선글라스에 눌러쓴 벙거지까지!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얼핏 보면 무슨 접선 하러 나온 간첩 같았다.


신 기자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 헛웃음이 터졌다.


“표는요?”


스나이퍼 박은 손가락에 걸린 버스표를 흔들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표까지 사달라고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버스는 빈자리가 많아서 지정 좌석과 관계없이 앉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누구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죠?”


엔진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신 기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스나이퍼 박은 도리도리.


그러면서 벙거지를 휙 벗는다.


“에구머니나!”


신 기자는 깜짝 놀라면서 얼굴을 뒤로 확 뺐다.


스나이퍼 박은 민망한지 휑한 민머리를 만지작댔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예요?”

“확 다 밀어버렸어.”

“예에? 왜요?”

“말총머리가 눈에 잘 띄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신 기자는 스님처럼 파르스름한 스나이퍼 박의 머리통을 보면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때? 이럼 안 걸리겠지?”

“그럼 그 선글라스도 벗어야죠!”

“아, 그럴까?”


확실히 스나이퍼 박은 눈에 잘 띄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TPO와 잘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는 그렇다 쳐도.


선글라스와 말총머리는 항상 시선을 끌어왔었다.


확실히 긴 머리가 사라지고 선글라스도 벗으니 한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터미널을 벗어난 버스가 시내 도로를 달리다가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교통체증이 없는 늦은 밤의 고속도로를 보자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오후부터 시작된 장맛비에 젖어있는 도로는 연신 뿌연 안개를 피워 올렸다.


그 안개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신 기자의 미래를 자꾸만 생각하게 했다.


“취재차 지리산에 가는데··· 일단 가서 한동안 짱박혔다가 해외로 튈 거예요.”


신 기자는 삶은 달걀 하나를 스나이퍼 박에게 내밀었다.


“해외 어디로?”


달걀을 손에 쥔 스나이퍼 박이 캔 커피도 휙 낚아채 간다.


신 기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스나이퍼 박은 그저 무덤덤한 반응이다.


“일본이나 동남아를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데 어디 또 있어요?”


달걀을 통째로 입 안에 밀어 넣고서 씹던 스나이퍼 박이 캔 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신다.


“블라디보스토크!”


입 안에 들어있던 달걀 파편 몇 조각이 튀어나왔다.


다소 뜬금없는 지명이었다.


신 기자가 눈을 찡그렸다.


“왜요?”

“일본이나 동남아 쪽은 너무 흔해. 남해에서 사라지면 가장 먼저 거길 의심할 거야.”

“그렇긴 하네요.”

“그리고 그런 데는··· 사고 치고 도망가는 한국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경찰 협조도 잘 이루어지는 동네라고.”


예상외로 그럴싸한 분석에 신 기자는 놀라는 기색에 역력했다.


이런 스마트함은 스나이퍼 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인데, 이게 어쩐 일인가.


머리를 밀어서 총명함이 다시 돋아나는 건가.


신 기자는 스나이퍼 박의 민머리를 보면서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요, 뭐···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생각을 좀 해보죠.”

“그냥 거기로 가!”


뭘 믿고 이러는지.


기초적인 정보조차 없는 동네를 밀어붙이는 스나이퍼 박은 마치 신 내린 무당 같았다.


달걀 하나를 다 삼켰는지, 이번에는 그가 김밥의 쿠킹포일을 벗겼다.


“돈은?”


사실, 이 문제로 아까부터 머리가 아팠다.


탈출 계획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세워도 결국 거기서 버틸 돈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스나이퍼 박도 그런 원초적이고도 본능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한테 지급된 취재비가 오십이예요. 신용카드는 연체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풀로 당겨봤자 한 오백 정도···.”


신 기자는 혹시 이 사람이 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어서 그쯤에서 말을 그치고 기다려 보았다.


그런데···.


“은행이라도 털어야 하나?”


그의 말은 황당하기만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이 하나도 없는 건가요?”


신 기자가 설마 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나 같은 보헤미안이 돈 모으면서 사는 거 봤어?”


신 기자는 지끈대는 이마를 한 손으로 짚었다.


망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도 답답해졌다.


고속도로는 안개로 완전히 덮여버렸다.


잘 달리던 버스는 어느 순간부터 속력을 줄이더니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일 정오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 기자는 조금의 긍정적인 구석도 찾아보기 힘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스나이퍼 박이 김밥을 집어 먹다 말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놈을 잡자!”


또 뭔 황당한 소린가.


신 기자는 이 사람이 또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는 것 같아 실눈을 떴다.


“네?”

“그놈 말이야. 지배인!”


신 기자의 눈이 다시 커졌다.


“···김 지배인이요?”

“그래! 정 의원이 그러지 않았어? 그놈이 돈 가지고 사라진 것 같다고?”



2.


검찰청 앞, 자정을 넘긴 시각.


파김치가 된 남자 셋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순식간에 작렬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서 나오던 정 의원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뒤 따라 나오는 박 의원, 서 의원은 먼저 다가온 자신들의 세단에 얼른 올라타 버린다.


정 의원의 차는 무슨 이유에선지 좀 늦는다.


그 덕분에 모든 질문이 정 의원에게로 쏟아졌다.


“의원님, 안에서 무슨 얘기 하셨나요?”

“혐의 전부 인정하신 겁니까?”

“의원직 상실하시면 고향으로 내려가시나요?”


정 의원의 제네시스가 마침내 도착했다.


기자들을 뿌리치고 겨우 차 안에 몸을 들인 정 의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트에 등을 붙이고 눕다시피 하자 온몸에 흐르던 땀이 조금씩 식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끙하는 신음이 새어 나오는데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너무 늦으셔서 기름을 좀 넣고 오는데 그만···.”


정 의원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손을 흔들었다.


운전기사는 평소보다 차를 더 조심해서 몰았다.


자꾸만 백미러로 뒷좌석을 힐끔거리기도 하는 게 평소와는 사뭇 다른 정 의원의 심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수석에 앉은 보좌관도 그 때문에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창 밖으로 검찰청의 풍경이 멀어지고 있었다.


몇몇 기자들은 정 의원의 세단이 멀어지는 것까지 필사적으로 사진에 담고 있었다.


오늘로써 벌써 세 번째 검찰 출두.


물어보는 건 매번 똑같은데 왜 자꾸 불러서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흔히 말하는 검사들의 기술인가 하는 생각에 정 의원은 마음이 울적해졌다.


정 의원은 장맛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창밖을 내다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정 의원의 차가 반포 IC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 던져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못 알아챘을 텐데, 오늘은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서인지 그 진동이 지진처럼 느껴졌다.


정 의원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쥐어 들었다.


화면을 확인하니 땡초였다.


통화 아이콘을 터치한 정 의원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왜?”


그런데 목소리가 긴장된 건 땡초도 마찬가지였다.


- 오늘 종일 통화가 안 되셔서 이제야 보고드립니다··· 불편한 상황이신 건 알지만··· 최대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야외에서 통화 중인 것 같은데 손으로 수화기 부근을 감싸고 있기라도 한지 소리는 꽤 또렷하게 들렸다.


정 의원도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그래, 말해라!”


땡초에게 넘어가는 소리도 깨끗하게 들릴 것이다.


- 지배인 그놈은 지리산 휴게소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오만 원권을 계속 쓰고 있답니다.

“지리산?”

- 네! 놈이 왜 거길 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누굴 붙여놓은 거지?”

- 깡수입니다. 의원님

“그래, 알았다. 또 뭐 다른 할 얘기가 있나?”


정 의원의 물음에 땡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는 선명하게 정 의원의 귀로 파고들었다.


- 저··· 그 기자 놈하고 사진사는 놓쳤습니다.


기어들어 가는 땡초의 목소리가 숨넘어가기 직전의 노인 같았다.


정 의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가뜩이나 피곤한 하루인데 이런 일로 또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정 의원은 앞 좌석의 운전기사와 보좌관을 힐끔 보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알았고, 자세한 얘기는 내일 사무실에서 하자!”


땡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짧게 네, 라고 말한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정 의원이 다시 앞을 보는데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치겠구먼··· 진짜!”


정 의원은 앞 좌석까지 소리가 닿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3.


서울 외곽, 중단된 건설 현장.


정 의원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땡초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파악!


액정이 깨지는 소리가 주변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


그의 뒤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아우 둘이 겁에 질린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땡초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어슬렁대던 신 기자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필 그때, 그 사진사 놈이랑 비슷하게 생긴 놈이 그 앞을 지나갈 줄이야.


그 비슷한 놈에게 신경이 팔리는 사이 기자 놈이 사라져 버렸다.


하필 그때 진짜 사진사를 쫓고 있던 아우들을 철수시켜 버리기까지 했다.


“젠장··· 바보 같이!”


거친 숨을 내쉬던 땡초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아우 하나가 잽싸게 달려들어 담뱃불을 붙여준다.


“애들은 다 모였어?”


필터를 거칠게 두어 모금 빤 땡초가 돌아섰다.


“네, 지금 강남역에 있습니다.”


불을 붙여준 아우가 답했다.


“한강 이남에 있는 지하철역은 싹 다 뒤져. 역사무소마다 들어가서 소매치기당했다고 말하고 CCTV 좀 보자고 해. 반드시 찾아내, 알았지?”


땡초의 말이 끝나자 두 아우는 허리를 90도로 꺾은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굵은 빗줄기가 짓다 만 콘크리트 덩어리를 요란하게 때려댔다.


땡초는 담배 하나가 다 탈 때까지 비가 쏟아지는 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보도사 나가신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7 077. 기다려라, 나찰 1 24.03.30 9 0 11쪽
76 076. BW, 비상사태! 4 24.03.29 7 0 11쪽
75 075. BW, 비상사태! 3 24.03.24 8 0 11쪽
74 074. BW, 비상사태! 2 24.03.23 9 0 11쪽
73 073. BW, 비상사태! 1 24.03.22 9 0 11쪽
72 072. 한 피디 2 24.03.17 8 0 11쪽
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70 070. 나찰을 잡아라 2 24.03.15 9 0 11쪽
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68 068. 동상이몽 2 24.03.09 7 0 12쪽
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3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4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