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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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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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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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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7,785

작성
24.01.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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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1. 차가운 남풍 1

DUMMY

1.


줄리의 집, 지하 주차장.


부릉-!


시동을 건 건우가 운전대를 야무지게 쥐었다.


“두고 보세요. 며칠 안에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거라고요!”


기어 풀리는 소리가 들렸고, 차는 천천히 주차장을 미끄러져 나왔다.


“허허! 또 도술을 써서 운전하게? 그게 무슨 베스트 드라이버냐? 네 힘으로 차를 모는 것도 아닌데···.”


앙드레는 입술을 뾰족 내밀면서 구시렁댔다.


건우는 무안한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하지만 핸들을 쥔 손에선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아, 어제는 처음 하는 거니까··· 그리고 불가항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애써 변명했지만, 앙드레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다.


“네 힘으로 해야 너 스스로도 떳떳하지··· 안 그래?”


건우는 오늘도 바지 주머니 안에 몰래 숨겨온 부적 서너 장을 만지작대며 난감해한다.


어떨 때는 얄밉게 톡톡 쏴서 화를 돋우다가도, 또 어떨 땐 자상한 아버지처럼 말하는 앙드레.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우다.


이것도 그의 특유한 게이 성향 중 하나일까.


백미러에 비친 앙드레의 옆얼굴을 힐끔 본 건우는 액셀을 살짝 밟으면서 속력을 올렸다.


“오늘은 올림픽대로 타고 한번 가보자.”


앙드레가 갑자기 코스를 바꿨다.


당황한 건우가 얼굴색이 변하자 앙드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내가 뭐라고 했어? 로드 매니저는 다양한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지? 얼른 차 돌려!”


하지만 차를 돌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유턴도 가능하지 않은 곳!


건우가 계속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자 앙드레가 언성을 높인다.


“그냥, 돌려!”


끼이익-!


세단이 아스팔트 위에 거친 마찰음을 내더니 휙 방향을 틀었다.


반대편 차선으로 U자를 그리며 넘어갈 때 건우는 눈을 질끈 감았던 모양이다.


그러자 앙드레가 건우의 뒤통수를 강타한다.


탁-!


“얌마! 너 운전하는 놈이 눈을 감아?”


잠시 휘청대던 세단은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건우는 한 손으로 뒤통수를 주무르며 눈을 흘겼다.


한편, 뒷좌석에 던져진 채 있던 가방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개미로 변해있는 법사들의 몸이 요동쳤고, 가방 안에 물건들이 위험하게 덮쳐왔다.


하지만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스프링 노트의 스프링 사이에 들어가 겨우 몸을 버티고 있는 철산은 계속 불길한 말을 이어갔다.


“차가운 남풍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반쯤 열린 필통 사이에 몸을 숨긴 운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남풍이 차갑게 부는 건 개기일식 때가 대부분이다. 달이 해를 가려 음기가 성해지는 때, 눌려있던 잡귀들이 잠시 동해서 남풍의 열기가 수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개기일식 기간이 아니지 않으냐?”


가방의 안주머니 속에 있던 정철도 스승의 말을 받으며 거들었다.


“맞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진과 봉인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잡귀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운천은 철산의 안색을 살피며 건강을 걱정한다.


“요 며칠 새 영력을 많이 사용하여 지친 게 아니냐? 몸이 쇠한 데다 지금 이런 환경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철산은 뜻을 굽힐 기세가 아니었다.


“몸이 흔들리지 않으면 천라지망*을 써서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천라지망: 하늘과 땅에 기를 펼쳐 대상의 흔적을 찾는 술법)


운천은 철산이 괜스레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과거 몸의 기운이 바르지 않을 때 판단을 그르친 적이 자주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저 이 눈앞에 닥친 현실이나 제대로 대처하는 게 마땅하거늘.


“그리하라. 하지만 천라지망을 쓰면 영력이 한 번에 많이 소모될 텐데 걱정이구나.”


코너 길을 부드럽게 돈 세단은 서서히 속력을 줄였고, 어느 순간 정지했다.


차가 살짝 한번 흔들렸고, 가방이 기우뚱했다.


한쪽으로 잠시 쏠렸던 법사들이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밖에서 다시 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요? 오늘은 좀 낫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 가방이 휙 하니 들렸다.



2.


천라지망을 펼치던 철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으으으으···.”


열린 가방 틈새로 머리를 내민 채 수업받는 건우를 살피던 운천과 정철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철산의 얼굴에서 불길함을 읽었는지 표정이 밝지 못했다.


철산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쇠통바위에···.”


운천의 눈이 꿈틀했다.


“··· 봉인이 풀렸습니다.”


운천은 정철과 서로 마주 보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딩동댕-!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자~ 수고들 했어요. 뒤에 연습문제는 숙젭니다. 내일 봅시다”


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진동한다.


그러다 건우가 반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틀림없나?”


운천은 굳은 얼굴로 눈가에 주름을 그렸다.


“···틀림없습니다.”


철산의 표정은 진지했다.


눈빛도 흔들림이 없었다.


“차가운 남풍은 바로 놈이 움직이는 흔적입니다.”


철산이 말한 ‘놈’!


그놈은 다름 아니라 ‘악귀나찰’!


운천이 부산까지 쫓아가 잡아서 쇠통바위 밑에 봉인한 바로 그 ‘악귀나찰’이었다.


“아니, 그놈이 어떻게···.”


운천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일부러 오르기 힘든 바위를 골랐고, 독 안에 놈을 가둔 후 부적으로 봉인까지 해서 묻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위를 무지막지한 돌덩이로 눌러두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걸 파내서 여는 건 평범한 범인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


그리고 수련하는 도사라 하더라도 보통의 영력을 가진 자는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정철이 스승 운천을 바라보며 눈이 커졌다.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는다.


“설마··· 일성 그놈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철산이 더듬이를 세웠다.


여전히 기운 없는 모습의 그는 애원하듯 운천에게 말했다.


“차가운 남풍이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여기까지 하루도 안 되어 닿을 듯합니다. 어서 손을 써야 합니다.”


운천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 중 하나를 다시 살려내었다.


여기저기에 혼란, 무질서, 배신, 불신, 불행을 뿌리고 다니던 악귀나찰!


부산까지 가서 겨우 놈을 잡긴 했지만, 세상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후였다.


부자지간은 멀어지고.


부부지간은 파탄 나고.


연인지간은 갈라지고.


친구지간은 원수가 되고.


이웃지간은 복수의 대상이 되니.


잠깐 사이에 온 세상이 악귀들이 좋아하는 아수라가 되어 버린 거였다.


이게 다 사람의 모습을 훔치고 또 똑같이 모방할 줄 아는 놈의 능력 때문이었다.


운천은 고생 끝에 놈을 잡았던 그때를 생각하다 무심결에 수염 밑을 쓰다듬었다.


움푹 들어간 상처가 아직도 만져졌다.


그 상처는 운천이 놈의 귀를 잡아채던 순간 발악하던 놈의 발톱에 긁힌 상처였다.


“우리 셋이면 충분히 막을 만하다.”


운천은 수염에서 손을 떼면서 말했다.


“우리도 이렇게 모습을 감추고 있으니, 놈도 우릴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린 최대한 이런 상태를 유지한 채로 놈을 잡는다.”


철산과 정철이 그래도 불안한 표정을 짓자 운천은 한마디를 더 얹는다.


“놈을 잡을 때는 강술을 써도 좋다.”


그제야 법사들이 조금은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철산은 놈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해라. 그리고 건우···.”


운천은 더운 바람을 뱉은 후 말을 이었다.


“건우, 이놈이 혼자 있는 게 보이면 바로 술을 걸어 영일이 있는 곳에 잠시 놔두도록 하자.”


딩동댕-!


다시 차임벨이 울렸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건우를 사로잡는 게 먼저다. 서둘러야 한다. 건우도 잡지 않은 상태에서 놈까지 닥치면 곤란하다.”



3.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내달리던 나찰이 잠시 속력을 줄였다.


험준한 산세와 숲길이 사라지고, 한동안 평지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인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후후훗! 예상보다 좀 빠르게 도달했군.”


저만치에서 드문드문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이 부옇게 보이자 나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찰은 귓구멍에 넣어두었던 운천의 도포끈 가닥을 꺼냈다.


냄새를 스윽 맡은 후 다시 고개를 들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셔 보았다.


아직은 운천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찰은 확신했다.


바로 이 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 보면 분명히 운천과 마주칠 날이 온다는 것을.


나찰은 운천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운천, 두고 봐라! 이번에는 절대로 그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테다.”


도포끈을 귓구멍에 밀어 넣은 나찰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원 언저리까지 다다른 나찰은 신이 나는지 점점 가속도를 붙이며 전진했다.


나찰이 운천의 흔적을 찾은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난 후였다.


코 끝에 익숙한 냄새가 걸려들자 나찰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조심하자! 놈이 쳐놓은 함정일 수 있다. 지난번처럼 무턱대고 들이받다가는 또 당할 수 있다.”


나찰은 서울에 진입하는 톨게이트 쪽으로 다가서면서 온 신경을 바짝 세웠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30분.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시간이다.


모습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나찰은 천천히 도로로 걸어 나갔다.


멀리서 전조등을 켠 SUV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찰은 다가오는 차를 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바닥에 엎드렸다.


SUV는 브레이크를 세 번에 끊어 밟으면서 천천히 속력을 줄였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오더니 고개가 쑥 나왔다.


여자였다.


서른 초반, 긴 머리, 짙은 화장의 여자!


여자는 도로 위에 웅크린 이상한 물체를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댔다.


“뭐야, 저거···.”


빵-!


하고 경적도 한 번 울린 여자는 그래도 반응이 없자 급기야 차 문을 열고 나온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SUV와는 좀 안 어울리는 차림새인 여자는 또각또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게 뭐지?”


여자는 웅크린 물체 앞에 서서 대체 이게 뭔가 하며 이리저리 살핀다.


여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커지기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엎어져 있던 물체가 꿈틀하자 여자가 깜짝 놀라 한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음.


“으흐으으으···.”


여자는 사람인 줄 알고 다시 다가간다.


“저, 저기요··· 괜찮으세요?”


여자가 고개를 숙이면서 얼굴을 들이대려던 때였다.


벌떡 일어선 나찰이 여자의 머리를 끌어안고 귓구멍에 바람을 훅 불어넣는다.


그리고 곧···.


나찰은 여자의 몸을 장악한다.


“하하하하하하···.”


간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몸이었다.


나찰은 싱싱한 여자의 몸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이곳저곳은 만져본다.


갸름한 얼굴, 풍만한 가슴, 탱탱한 엉덩이, 그리고 매끈한 종아리 살까지.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


나찰은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은지 비틀대는 걸음으로 SUV까지 돌아갔다.


차에 오르자마자 나찰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는 맨발로 운전대를 잡는다.


부릉-!


운전석의 창문을 열어둔 채로 차를 출발시킨 나찰.


단숨에 하이패스 라인을 통과해 서울에 들어선다.


차창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도시의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매연과 유해물질이 섞인 공기였지만, 그래도··· 된장독 안보다는 나았다.


나찰은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서울의 아파트 숲을 바라보면서 서서히 속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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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076. BW, 비상사태! 4 24.03.29 7 0 11쪽
75 075. BW, 비상사태! 3 24.03.24 8 0 11쪽
74 074. BW, 비상사태! 2 24.03.23 9 0 11쪽
73 073. BW, 비상사태! 1 24.03.22 9 0 11쪽
72 072. 한 피디 2 24.03.17 8 0 11쪽
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70 070. 나찰을 잡아라 2 24.03.15 9 0 11쪽
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68 068. 동상이몽 2 24.03.09 7 0 12쪽
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3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3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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