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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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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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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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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7,785

작성
24.01.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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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45. 안 보이나 느껴지는 2

DUMMY

5.


빗속을 달리는 나찰은 조금 전의 성과가 만족스러웠다.


분명 차분하던 영기 셋이 갑자기 혼비백산하며 흩어지는 걸 똑똑히 확인했다.


잘게 부서지는 유리 파편에 그 작은 미물들이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리 중 하나는 지금 자신을 따라오기까지 하고 있다.


“후훗··· 첫 기습치고는 성공이야!”


나찰은 일성이 말한 대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림과 동시에 흩어지게 하는 걸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


이제 계속 이렇게 적당히 치고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일성이 올 때를 기다리면 된다.


절대 붙잡히지 않고, 약을 올리면서 말이다.


남자의 몸은 움직임이 만족스러웠다.


균형 잡힌 체형, 적당한 골격, 탄탄한 근육 때문일까.


달릴 때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은 마치 없는 것처럼 흩어졌다.


하이힐을 신고 뒤뚱대던 얼마 전을 생각하니 나찰은 자신이 한심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부터 남자의 몸을 취할 걸 그랬나?”


나찰은 씁쓸한 생각을 삼키며 잠시 숨을 골랐다.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에 입고 있던 정장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어디 잠깐 비를 피할 곳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주택가가 이어지는 골목길인지라 마땅한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나찰은 이미 이마에 깻잎처럼 붙어버린 머리카락 위로 두 손을 올리고서 한참을 더 뛰었다.


그리고 골목의 끝에서 막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아···!”


다행히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나찰은 축축한 몸을 대충 털어내며 정류장의 지붕 밑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의자에 앉은 할머니와 여고생은 버스를 기다리며 빗줄기를 보고 있었다.


나찰이 들어오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혀를 찼다.


“쯧쯧··· 저걸 어째. 홀딱 젖었네그려.”


나찰은 머리를 털면서 빙그레 웃었다.


“우산 가지고 나오는 걸 잊어버렸어요, 하하!”


무선이어폰을 낀 여고생은 나찰을 힐끔 본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버스정류장 안내 단말기에 찍힌 표시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버스 번호마다 ‘지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폭우로 시내 도로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얼른 버스를 타고 이 동네를 떴으면 했던 나찰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쫓던 그 도사가 조만간 여기까지 들이닥칠 것 같아서였다.


한적하고 인적도 드문 길목.


보는 눈이 적기에 상대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나찰 자신을 쫓는 도사가 하나가 아니라 만일 여럿이면 더 골치 아파진다.


싸움이 커질 테고, 그렇게 커진 싸움을 혼자서 감당하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니까.


그럼 일성이 말한 ‘혼란’과 ‘분열’ 작전은 그르치게 된다.


나찰은 여기서 버스가 올 때까지 상대를 막을 방법은 옆에 두 여자를 최대한 이용하는 거라 생각한다.


도사의 영기와 냄새가 느껴진 건 그로부터 10분쯤이 지난 후였다.


‘온다···!’


나찰은 자신이 돌아 들어왔던 골목의 코너를 바라보며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BW 빌딩 로비에서 마주쳤던, 안 보이나 느껴지는 영기와 냄새!


도사들이 과연 무엇으로 변신한 건지 궁금했던 나찰이었다.


짐작건대 날아다니는 곤충 정도?


그럼 이번에도 그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 나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깨 정도 높이쯤에서 어른대는 무언가가 보일 테지···.’


가늘어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의 것이 다가오는 걸 본 나찰은 다시 눈이 확 커진다.


‘뭐야 저거? 개 아니야?’



6.


정철은 버스정류장 안에 보이는 세 사람을 주목했다.


지팡이를 든 할머니, 여학생,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남자!


남자는 자신이 쫓던 바로 그놈이 확실했다.


아직 사기(邪氣)가 다른 쪽으로 옮겨가지 않은 걸 보니 또 다른 몸을 취하지는 않은 듯했다.


“이런···.”


그런데 곁에 바짝 붙어있는 할머니가 눈에 자꾸만 걸렸다.


저렇게 붙어있으면 강술을 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러는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든 떨어뜨려 놔야 했다.


비에 흠뻑 젖은 진돗개가 버스정류장 쪽으로 다가갔다.


똑바로 가던 개가 어느 순간 갑자기 길을 건너서 다가간다.


길을 건넌 건 나찰이 잘 보이는 각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나찰은 얼른 자기 상체를 뒤로 눕히더니 할머니의 등 뒤로 숨는다.


“저 자식이···!”


정철은 멈춰 섰다.


강하던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털을 흠뻑 적신 빗물을 털어내자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다시 비가 거세지면 도로 묵직해질 것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불리한 건 정철이었다.


놈은 이렇게 계속 버티다가 버스가 오면 그걸 타고 달아날 것이다.


승부를 빨리 내야 한다.


정철은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이 상태에서 장풍을 쓸 수 없으니 할머니를 먼저 비켜나게 해야 한다.’


바닥에 몸을 눕혀 엎드린 정철이 앞발을 모은 후 염력의 수인을 맺었다.


“흐으으읍!”


진돗개의 앞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버스정류장의 기둥과 천장이 덜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할머니의 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구··· 에그머니나!”


얼레를 당길 때 끌려오는 방패연처럼 할머니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확 쏠렸다.


중심을 잃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놓쳤고, 두 손을 앞으로 짚으면서 꿇어앉았다.


“열렸다!”


나찰의 몸이 드러난 걸 확인하자 정철은 얼른 수인을 바꾼다.


이번에는 장풍!


붕-!


하고 공기가 우는 소리와 함께 묵직하고 빠른 바람이 일어났다.


장풍은 할머니의 머리 위로 강하고 속도감 있게 날아갔다.


제대로 일격이 들어가겠다는 생각에 정철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여우 같은 나찰은 그걸 그대로 얻어맞고 있지 않았다.


“에구, 할머니···!”


얼른 할머니를 일으킨 놈은 장풍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할머니를 돌려세웠다.


퍽-!


할머니는 왼쪽 어깻죽지를 쥐면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 아야··· 이게 뭐야···.”


할머니가 한 바퀴 빙그르 돌더니 다시 바닥에 쓰러진다.


사색이 된 정철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찰의 얼굴이 보였다.


놈은 웃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놈은 자기 몸이 완전히 노출되는 걸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옆에 여학생을 끌어들인다.


“학생, 여기 할머니 부축 좀 해줘. 119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나찰의 너스레에 여학생이 당황한 얼굴로 다가왔다.


놈은 교묘하게 할머니와 여학생의 뒤에 숨으면서 핸드폰을 귀에 댔다.


나찰이 진짜로 119에 전화를 거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놈이 계속 정철을 보고 웃고 있다는 거였다.


그때 버스정류장 안내 단말기에 찍힌 표시가 바뀌었다.


버스 번호 옆에 붙어있던 ‘지체’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어서 도착까지 2분, 3분이란 사인이 차례로 떴다.


정철은 빗속에서 혀를 내민 채 할딱대며 나찰을 노려보았다.



7.


나찰은 버스가 곧 들어온다는 걸 확인하자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진돗개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았다.


진돗개는 확실히 변신한 도사임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영기를 발하며 집요하게 자기 목을 조여들다니.


“할머니 괜찮으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병원차 곧 올 거예요.”


거짓말이었다.


그냥 전화를 하는 척하며 진돗개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것일 뿐.


나찰은 버스 도착시간을 계속 확인하면서 곧 떠날 채비를 한다.


“아니, 근데 아까 뭐가 날 친 거지? 아파 죽겠어··· 숨 쉬는 게··· 힘들어···.”


할머니가 나찰에 몸을 기댄 채 숨을 식식댔다.


나찰은 진돗개를 노려보고 있다가 할머니의 손을 지그시 잡는다.


고통스럽던 할머니의 얼굴이 조금씩 평화롭게 변해 갔다.


이어서 나찰은 자기 얼굴을 천천히 할머니의 귓가로 들이댔다.


“할머니, 저기 저 진돗개 보이세요? 저놈이 그런 거라고요! 후~욱!”


순식간에 할머니의 몸을 취한 나찰.


하지만 바로 움직이지 않고 정류장 의자에 잠시 앉는다.


그 사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멍한 표정이다.


“뭐야?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학생 여기가 어디지?”


정류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기까지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 리가 없다.


여학생은 오히려 남자를 황당하게 쳐다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앞쪽에서 거칠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자신의 몸을 때렸다.


퍼억!


“커허어엌···.”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후 가슴을 움켜쥐면서 쓰러진다.


“아! 이런···.”


깜짝 놀란 정철이 두 발을 부르르 떨었다.


“그새 또 몸을 바꿔치기한 건가?”


정철은 정신을 집중했다.


여학생 아니면 저 할머니인데.


이번에는 어디로 들어간 거지?


정철이 나찰의 사기(邪氣)를 느끼기 위해 두 발을 내뻗는 순간이었다.


정류장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지팡이를 움켜쥐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곧바로 정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 요망한 개새끼를 봤나! 네 놈이 감히 나를 때렸겠다. 너도 어디 죽어봐라!”


조금 전의 병약한 할머니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고, 지팡이까지 휘두르며 달려드는 할머니!


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바로, 악귀 나찰에게 영이 지배당하는 할머니였다.


흠칫 놀란 정철이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나찰의 일격이 날아들었다.


휙-!


퍽-!


“깨갱···!”


몸에 힘을 빼고 있던 정철은 지팡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꼬리 쪽을 강타당한다.


정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행히 이어지는 나찰의 지팡이질은 요리조리 잘 피해낸 정철.


옆 골목까지 기를 쓰고 달아나서는 한 의류 수거함 뒤에 겨우 몸을 숨긴다.


잠시 약해졌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 요망한 것! 어딜 자꾸 도망가냐! 이 망할 개새끼야!”


정철은 마약 맞은 삼신할미 같은 얼굴을 한 채 따라오는 나찰의 포악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기회를 노렸다.


쏟아지는 빗물은 금세 여기저기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동시에 땅과 부딪치는 물방울은 물보라까지 일으켰다.


나찰과의 거리는 불과 5미터 정도!


정철은 전정술을 생각하며 한쪽 발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찰은 재빨리 먼저 지팡이를 던진다.


부웅-!


진돗개의 머리 위로 지팡이의 끝이 스치고 지나갔다.


“크흡···.”


정철은 위기는 겨우 모면했으나, 수인이 틀어지며 전정술은 실패하고 만다.


그 사이, 나찰은 성큼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다급한 정철이 하는 수 없이 바로 앞 물웅덩이를 힘껏 내리쳤다.


파앗!


순간 물방울이 튀어 올랐고, 그걸 보며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공중에 뜬 물방울들이 영력을 받아 구슬처럼 단단해졌다.


“하압!”


기를 쓰며 기합까지 넣자 물방울들이 슈욱, 소리를 내며 뻗쳐나갔다.


타깃은 할머니··· 아니, 나찰!


팟!

파밧!

파바밧!

파파파바바밧!


“흐아아아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나찰은 온몸을 비틀어 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거기서!”


정철이 달려들자 나찰은 바로 몸을 돌려 내빼기 시작한다.


나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돌아나가 버스 정류장까지 뛰었다.


그러고는 마침 들어온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나찰을 쫓던 정철이 버스 옆에서 멈춰 섰다.


진돗개의 몸인 정철은 버스에 올라탈 수가 없었다.


그저 천천히 떠나는 버스를 보며 이를 악물 뿐.


버스 안에서 할머니가, 아니 나찰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입가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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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77. 기다려라, 나찰 1 24.03.30 9 0 11쪽
76 076. BW, 비상사태! 4 24.03.29 7 0 11쪽
75 075. BW, 비상사태! 3 24.03.24 8 0 11쪽
74 074. BW, 비상사태! 2 24.03.23 9 0 11쪽
73 073. BW, 비상사태! 1 24.03.22 9 0 11쪽
72 072. 한 피디 2 24.03.17 8 0 11쪽
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70 070. 나찰을 잡아라 2 24.03.15 9 0 11쪽
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68 068. 동상이몽 2 24.03.09 7 0 12쪽
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3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4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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