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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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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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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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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DUMMY

1.


빗속을 뚫고 달리던 버스가 상가 지역을 지나 임대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하차 문 바로 앞에 앉은 나찰은 버스 승객들을 살폈다.


시끄럽게 전화하는 노인.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중년의 아줌마 둘.


회사원처럼 보이는 정창 차림의 젊은 남자 둘.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학생들 몇몇.


나찰은 그중 한 명에 시선을 고정한다.


여학생!


아까 정류장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나찰은 다음에 취할 타깃을 정했는지 혀끝으로 입술을 가볍게 축였다.


‘그래··· 이번에는 어린 학생이다. 후훗!’


그간 많이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려면 젊은 몸이 제격일 테다.


또 어린 학생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나찰은 학생으로 변한 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회를 노렸다.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창밖을 보고 있던 여학생이 내릴 때가 됐는지 몸을 일으켰다.


나찰의 앞에 서서 하차 벨을 누를 때였다.


나찰이 갑자기 여학생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학생··· 미안한데··· 내려야 하는데··· 나 좀 일으켜 줘.”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목소리에 여학생은 측은한 얼굴이 된다.


선뜻 내미는 여학생의 손을 잡은 나찰은 힘겹게 일어나 몸까지 슬쩍 기댔다.


할머니의 체중이 자신에게 실리면 부담을 느끼게 될 테다.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내릴 때 버스에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그런 부담감!


그 때문인지, 여학생은 할머니를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


하차 문이 열리자 여학생은 할머니와 함께 천천히 하차 계단을 내려왔다.


여학생은 버스가 떠날 때까지 할머니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나찰이 감사의 말을 하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 할머니, 아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 때 지팡이 들고 계시지 않았나요?”


여학생이 갑자기 뜬금없는 의문을 품었다.


나찰은 흠칫 놀라 우물쭈물한다.


“아··· 그리고··· 아까 강아지 쫓아서 막 뛰어가지 않았어요?”


여학생의 눈이 가늘어졌다 커지기를 반복했다.


나찰이 대답을 못 하고 계속 어물대자 여학생은 잡고 있던 손을 확 뿌리치려 한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찰이 여학생의 손을 끌어당기면서 몸을 안았다.


앙상한 자기 갈비뼈에 볼록한 여학생의 가슴이 느껴졌다.


당황한 여학생이 나찰을 떨쳐내려 몸부림을 쳤다.


“왜··· 왜 이러세요?”


하지만 그럴수록 나찰은 더욱 강하게 여학생을 끌어안았다.


여학생의 왼쪽 어깨를 타고 올라간 나찰의 얼굴이 여학생의 귀에 닿았다.


“저기··· 말이야!”


소름 끼치는 나른한 속삭임.


이어서 훅,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눈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며 할머니를 떨쳐내려던 여학생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돌았다.


“좋구나! 어린 몸이···.”


여학생의 몸을 취한 나찰은 제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보았다.


체구는 작지만, 탄력이 있고 싱싱한 느낌이 만족스러웠다.


젊은 남자의 몸도 좋았지만, 어린 학생의 몸은 파릇파릇하면서도 에너지가 항상 넘치는 느낌이었다.


“후훗···.”


나찰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여학생의 가방을 주워 들었다.


그런데 그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허우적댔다.


“아이고··· 여기가 어디야? 누가 나 좀··· 나 좀···.”


나찰을 보자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뻗쳤다.


하지만 나찰은 도끼눈을 뜨고 소리를 지른다.


“아니, 노친네가 이런 날 어딜 기어 나와서 주접이야? 집구석에서 잠이나 처 잘 것이지···.”


매몰차게 돌아서 버리자 할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가는 숨을 색색댄다.



2.


나찰은 여학생의 핸드폰을 열어 쿠팡 앱에서 집 주소를 찾아냈다.


“그래, 인간들 속에 들어가서 한동안 같이 사는 거야.”


예전에 운천에게 잡히기 전에도 사람으로 변해 도망 다닌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인간들의 삶 속에 숨어 들어간 적은 없었다.


지속적인 분탕질로 도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면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 내가 이렇게 한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하겠지.”


나찰은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 B동을 찾아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을 눌렀다.


“709호”


집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찰은 집 안에 있을 만한 사람을 생각하며 벨을 눌렀다.


띵동-!


잠시 후 문이 살짝 열렸다.


“뭐야?”


중년이라고 하기엔 좀 젊어 보이는 여자가 문틈으로 나찰을 내다봤다.


여학생의 엄마인 듯싶었다.


곧 문은 활짝 열렸다.


“연기학원은?”


나찰은 잠시 생각했다.


그럴싸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는 제일 만만하면서도 무난한 답이 제일이다.


“아파서···.”


눈치를 보면서 집안으로 들어서자 잔소리가 쏟아졌다.


“맨날 그렇게 학원 빼 먹으면 나중에 실기는 어떻게 하려고, 응?”


나찰은 대답 없이 잠시 여자의 시선을 피했다.


학생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이 상황에서 무슨 대답이 적절한지 알 수가 없었다.


“우산은 또 안 가져갔니?”

“어? 어···.”

“넌 정신이 있니 없니? 이 장마철에···.”

“깜빡했어.”

“그럼 편의점에서 하나 사서 쓰고 오든가 하지. 이 비를 다 맞고··· 쯧쯧! 옷 갈아입고 얼른 씻어.”


나찰은 거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문이 세 개!


그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변기가 보였다.


그럼 나머지 둘 중 하나가 여학생의 방일 것이다.


‘어떤 걸까?’


눈동자를 굴리면서 눈치는 보는데 엄마가 먼저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아··· 저기가 안방!’


회심의 미소를 지은 나찰은 나머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학생의 방은 작지만 아늑했다.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뒤지면서 여학생에 관한 정보를 빠르게 주워 모았다.


이름은 이미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이지은.


19살이고.


고등학교 중퇴.


꿈은 배우.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연기학원 다니는 중.


좋아하는 연예인은 서한국, 유애리, 줄리 한.


“너 뭐 하니? 빨리 씻으라니까? 밥 먹어야지···.”


엄마가 보채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뒤집어 놨던 방안을 다시 대충 정리하고 갈아입을 옷을 든 채 밖으로 나갔다.


부엌에선 음식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찰은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외출복 차림이었다.


“오늘부터 엄마 야간근무야. 아침은 혼자 차려 먹는 거 알지?”


나찰은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떨어진 타일에 살짝 금이 간 거울.


낡고 오래된 화장실은 천장에 전등도 흐릿했다.


젖은 옷을 벗어 구석에 세워진 세탁기 안에 넣으려는데 그 안에서 엄마의 유니폼이 보였다.


왼쪽 가슴에 ‘에이스 청소용역’이라는 글자가 자수로 놓여있었다.


옷을 다시 던져넣은 나찰은 욕조에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온수는 한참 있다가 나왔다.



3.


엄마가 나간 후 방안을 뒤졌다.


집안 식구에 대한 정보를 더 캐내야 했으니까.


나찰은 안방 서랍장과 화장대 안에서 쓸만한 것들을 제법 찾아냈다.


사진첩.


연애편지.


은행 통장.


아빠의 전 직장 서류들.


이러저러한 정보를 꿰맞춰 보니 대충 이랬다.


지은이의 집은 대기업 다니는 아빠가 살아있을 때는 제법 잘 살았다.


그런데 아빠가 과로로 사망한 후 가세가 기울었고, 결국 이곳 임대아파트까지 밀려나게 된다.


아빠의 퇴직금과 사망위로금을 다 까먹고 나자 더 냉혹한 현실이 가정을 덮쳤다.


결국 엄마는 청소일을 하고 있다.


살림을 유지하고 지은이의 학원비라도 대려면 어쩔 수가 없다.


나찰은 뒤졌던 서랍과 화장대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으면서 피식 웃었다.


“인간들의 세상이란 참···.”


낭만적인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돈 때문에들 웃고 우는 삶들!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게 짜증 나서 한때는 인간들의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리 처량하게 꾸역꾸역 사는 걸 보니 아무 거리낌 없는 악귀의 삶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부엌에 나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반쯤 남은 캔맥주가 보였다.


분명 엄마가 남긴 것일 테다.


나찰은 주둥이에 박힌 휴지 뭉치를 뽑아내고 맥주를 들이켰다.


소파에 드러누우니 그간의 피로가 한순간에 다 녹아내렸다.


나찰은 눈을 감은 채로 도사들을 더 집요하게 괴롭힐 방법을 고민했다.


또 일성이 준 부적을 언제쯤 피워 올리는 게 좋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피가 빠르게 돌면서 취기가 올랐다.


악귀의 몸이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이 취기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나찰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4.


- 지은아, 그래 일어났니? 얼른 씻고 준비해야지!


일찍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는 게 인간의 특성인 건 알겠는데,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해가 뜨자마자 걸려 온 엄마의 전화를 받은 나찰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인간들의 일상에 숨어있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적응하는 수밖에.


나찰은 어기적어기적 거실 바닥을 기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을 데워먹고 가방을 챙겼다.


어제 지은이의 핸드폰 안에서 확인한바, 검정고시 학원에 가는 게 첫 일정이었다.


8시 30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찰이 집을 나섰다.


학원까지는 아마도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것 같았다.


‘귀답으로 달리면 금세 일 텐데.’


나찰은 잠시 떠올랐던 생각을 흔들어 흩어버렸다.


어디선가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고 있을 도사들에게 괜히 노출될 필요는 없었다.


‘먼저 노출만 되지 않으면 언제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이미 두 번의 작은 교전을 통해 그걸 실감한 상태였다.


우산을 펼쳐 들고 걷다가 버스정류장에 먼저 도착하는 버스를 보자 바로 뛰기 시작했다.


겨우 버스에 올라타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만원이었다.


‘이런, 아침부터 짜증 나게···.’


나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답답하고 축축한 버스 안이 쇠통바위 아래 갇혀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손잡이를 잡은 채 졸다 깨기를 반복하던 나찰은 가방을 멘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정류장에서 눈을 떴다.


학원 근처인 것 같아서 얼른 따라 내렸는데, 제대로였다.


학생들이 몰려가는 길을 따라 걷자 눈앞에 학원 건물이 드러났다.


나찰은 학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인간의 일상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렇게 졸린 눈으로 지은의 반을 찾아 들어가던 중이었다.


“어···!”


복도 반대편 새벽반에서 쉬는 시간 종소리와 함께 뛰어나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저놈은···.”


감기던 눈이 확 떠지자 나찰의 발걸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건우!


일성이 말했던 바로 그 건우였다.


이것 참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걱정과 경계심도 살아났다.


“뭐야? 그럼 이 근처에 또 도사 놈들이 있다는 말인가?”


나찰은 건우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뭐야 이거. 한숨 좀 돌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방파리로 변해 천장에 붙어있던 운천, 정철, 그리고 철산이 동시에 날갯짓을 했다.


“여기 이 근처에 있습니다.”


철산이 아픈 날개를 참아가며 더 아래로 하강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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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9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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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1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2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3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5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3 1 11쪽
»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4 1 12쪽
47 047. 쫓기는 놈 쫓는 놈 2 24.01.20 17 1 12쪽
46 046. 쫓기는 놈 쫓는 놈 1 24.01.19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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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4. 안 보이나 느껴지는 1 24.01.17 19 1 11쪽
43 043. 차가운 남풍 3 24.01.16 2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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